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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넓은 마루. 그 한가운데에 작은 반상과 마주하고 있다. '안녕?' 반상에게 자그마한 인사를 마음속으로 건네보지만 아무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색한 시간이였다. 갑작스럽게 받은 차 대접 제안에 얼떨결에 수락해버렸기에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곧 딸의 수업이 끝나기에 데리러 갈 생각이였건만...케이네 선생이 알아서 맡아두고 있어주려나?
"갑작스럽게 붙잡아둔것같아서 미안...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하니..."
무녀가 허둥대며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있었고, 쟁반 위에는 찻주전자와 찻잎, 잔이 올려져 있었다. 무녀는 반상위에 살짝 쟁반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을 나열해놓고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저...얼떨결에 승낙해버렸지만...조금은 서둘러줬으면 하는데..."
"조금은 여유를 가지는게 좋아. 차도, 당신도"
무녀는 그렇게 말하며 여유로움을 잃지 않은 자세로 찻잎을 계속해서 우려내고 있었다. 한번 케이네 선생을 믿기로 하고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잠깐 하늘을 바라보니 그세 비가 올듯 다시 먹구름이 꾸역꾸역 몰려들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밝은듯 어두운 마을의 풍경이 묘하게 아름다웠다. 마치 한편의 동화책속 배경을 보는듯 했다. 그 동화책의 내용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지만.
조금 여유를 가진 덕분일까. 마음의 한켠이 조금은 가벼워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사 안쪽은 서서히 찻잎이 뜨거운 물에 우러나면서 내뱉는 향기로 서서히 가득차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였다.
"자. 받아. 날씨가 날씨다보니 금방 식을거야"
아직 초가을이긴 하지만 비가 내린 지금은 꽤나 쌀쌀했다. 옷을 얇게 입고왔기에 조금 한기를 느꼈었지만, 찻잔을 잡아드니 금세 그런 생각은 눈 녹아내리듯 사라져버렸다.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전해져오는 온기에 온 몸이 따뜻해진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서 마셔. 하쿠레이 신사에서는 나름 자부하는 차라고. 덕분에 별별 별종들이 와서 차만 마시다 가는 신사가 되버렸지만..."
뒤에 덧붙인 이야기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아마 무녀의 지인이나 친구들을 저런식으로 표현하는듯 했다.
호록. 입 안으로 차가 들어왔다. 차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온도가 매우 적당하여 입 안에 차가 들어올때 마치 온 몸의 근육이 풀어지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잠시동안 차의 느낌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무녀가 큭큭하고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웃는거야?"
"아니...그냥 평소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도 있구나 싶어서"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무녀가 웃음까지 지을 정도였을까. 아니 그것보다 평소에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당신 매일같이 신사에 올때마다 어떤 모습이였는지 알아? 꽤나 피곤해보였어. 마치 세상일에 치여사는듯 했단말이야"
"그랬나? 나름 씻고 꽤나 깔끔하게 다녔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생각에는 그래보였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당신은...뭐랄까 눈이 되게 슬퍼보였어"
"..."
"무언가 소중한걸 잃어버린거지?"
무녀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몸을 움찔했다. 찻잔 안에 남아있는 차가 작게 요동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픈 상처를 헤집어서 이야기를 하는것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기에 그저 침묵하고 있었을뿐이다"
"1년동안의 당신은 한결같았어. 오래도록 그 누구보다 간절히 소원을 빌고, 항상 슬픈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사라졌지. 가끔은 딸이랑도 오곤 하지?"
"맞아. 딸이랑도 오곤 하지. 덕분에 딸아이가 당신을 매우 좋아해. 예쁘다면서"
"그건...기쁘네...언젠가 찾아오면 사탕이라도 줘야겠네"
무녀가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
다시금 침묵. 찻잔이 절반정도 비었을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작은 발걸음 소리가 사이에 끼어있는것으로 보아선...아이가 있는듯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또 오는것일까? 내심 호기심에 밖을 바라보았다.
"찾았다..."
"아빠!"
맙소사. 케이네 선생이 아닌가. 여기까지 딸아이를 데리고 올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저..."
"하루가 하쿠레이 신사에 가있을거라고 말했네...하여튼...금방 돌아올것이라고 약속을 하고선 느긋하게 차나 마시고 있다니..."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져...하여튼 신세를 지게됬군..."
"다음에는 딸아이와 약속은 잘 지키도록 하게. 딸이 얼마나 자네를 걱정하던지..."
"조심하도록 하지...답례는 반드시 할테니..."
케이네는 손사래를 쳤다. 선생으로서 해야하는 일을 했을뿐인데 답례는 필요없다면서 다시금 계단을 내려갔다.
덕분에 지금은 딸이 추가되어 3명이 나란히 마루에 앉아있는 모습이 되었다. 어색한 기운이 마루를 감돌고 있었다.
"저기 언니. 언니는 이름이 뭐야?"
맨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하루였다. 하루는 천진한 표정으로 무녀를 바라보며 이름을 물어보았다. 지금이라도 친해지려는 생각일까?
"레이무...하쿠레이 레이무라고 해"
레이무. 나쁘지 않은 이름인것같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이름이다. 무녀의 모습에 걸맞는 이름같다고 생각했다.
"하루. 잠깐 저기에서 놀고 있을래?"
"왜?"
"레이무 언니랑 잠깐 할 이야기가 있거든. 잠깐이면 되니까...멀리가지 말고 아빠가 보이는데서만 놀아야해. 알겠지?"
하루는 고개를 끄덕이고 멀지 않은곳에 있는 고양이와 놀기 시작했다. 도둑고양이처럼 보였지만 어째선지 사람에게 친밀한 녀석이였다. 새까만 고양이는 이리 저리 묘기를 부리며 딸아이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줄 아는 기특한 고양이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듣자하니 하쿠레이 신사의 주변에는 요괴가 많다고 한다. 야밤에는 그들이 문지기 노릇을 한다고 한다. 덕분에 밤 늦게까지 참배를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잡아먹히거나 노리개감이 되어 지쳐죽거나. 어찌됬든 죽는 결말은 바뀌지 않을테니 말이다.
"결국 나에게 차를 대접해준 이유는...그런것 때문이였던건가?"
"그런거?"
"한번쯤은 내 밝은 얼굴을 보고싶다는 이유...에서?"
"그런것도 있고...한번쯤은 위로를 해주고 싶었어"
레이무가 살짝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선 두 손을 꼭 잡아주는것이 아닌가.
"...?"
"이젠 그만 힘들어할때도 됬어"
"힘들어하다니...신경 쓸 일이 아닌데..."
말 끝이 점점 흐려졌다.
"오래도록 당신은 아내를 생각해주었어. 그정도면 충분해"
'아내가 슬퍼하지 않을까?'
"잊으라고는 하지 않아. 하지만 너무 그것에 연연하지마. 그것때문에 서로가 힘들어 하고 있어"
"나는..."
마음에 쌓여있던 둑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것같았던 둑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발악하듯이 지탱을 하고 있던 둑은 순간적으로 와르르 무너져 그간 담아놓았던 감정들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 감정들은 내 마음에 남아있는 흉터에 하나하나 자리잡아.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것같았던 흉터를 천천히 흘려보내었다.
"어라..."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이것참...네 앞에서 칠칠치 못하게..."
조금 부끄러워져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감정을 주체할수 없었다. 결국 눈물을 닦는것을 그만 두고 한쪽 소매로 눈을 완전히 가린채 소리죽여 흐느끼며 울었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마다 그간의 추억이 새겨져있었다. 이젠 그 추억을 모두 흘려보내야할 때다. 어쩌면 별로 신경쓰고 살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잊어버릴수도 있고. 나중에 먼 미래에 아련히 남은 구름같이 느껴질수도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상관 없었다.
가슴에 남아있는 흉터 하나하나 자리잡은 추억은 잊혀져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모두 마음속에 남아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추억을 흘려보내기 위해 더욱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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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남자가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했어..."
"아니야. 오히려 자기 감정에 솔직해져서 후련했어. 막힌 무언가가 뚫린듯한 느낌이야"
"그런가...'
"이제 집에 가도록 해. 가서 딸이랑 놀아줘야지"
"그래. 어서 돌아가야지"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딸의 손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어! 무지개다!"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것같던 먹구름은 사라지고 서서히 하늘에 빛줄기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 빛줄기 사이로 예쁜 무지개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딸은 해맑은 모습으로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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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치유물!
쓸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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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게 끝이네요! 훈훈하게 끝났네. | 17.06.18 18: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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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쾅쾅코앜와오카콰왘ㅇ (책상을 미친듯이 두들기며) | 17.06.18 18: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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