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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비가 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하늘은 이미 먹구름이 짙게 끼어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을만큼 어두칙칙해졌다. 향림당 이라는곳에서 얻어온 '디지털'시계 라는것을 보았다. 시계의 널찍한 판 부분에는 흐릿하게 초록색 빛이 나며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침 8시. 8시는 빠른 시간일까. 해가 먹구름에 가려져 내가 늦게 일어난건지 일찍 일어난건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매 시간마다 짧게 신호음을 내준다는것 같았지만 어째선지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고장이라도 나버린것일까. 머지않아 이 판의 불빛이 사라지게 되면 그때가 고장이 났다는 증거라도 되는걸까. 그렇다면 그 시계는 다시 되돌릴수 있는걸까? 아마 그럴수 없을것이다. 지금 나와 하나밖에 없는 딸 아이의 마음에 새겨진 '고장'이라는 단어처럼 아마 씻을수 없을것이다.
그렇다. 아마 되돌릴수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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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준비했다. 함께 백년가약을 맹세한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나버린 후 식탁은 조금 협소해졌지만 1년동안 먹고 지내다보니 어느정도 익숙해져버렸다. 딸아이는 아직도 새근새근 콧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었다. 입가에 살며시 번진 미소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걸지 궁금하게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꿈에서 엄마랑 마저 못한 산딸기를 따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창문을 보니 모노톤의 하늘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하늘의 먹구름이 마치 이 세상 전부를 회색으로 물들여버린것 같았다. 어쩌면 회색빛으로 바래버린 내 마음이 내 시야마저 회색빛으로 물들여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접시를 달그락 거리며 식탁에 올려놓으니 딸아이가 살며시 눈을 떴다. 이제 막 5살이 된 딸은 아내가 비록 겨울에 태어난 아이지만 항상 봄처럼 해맑고 따스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자아이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 또한 마음에 들었기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빨리 일어났네"
하루가 아직 잠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빨리 일어난지 어떻게 알아?"
"그야 내가 아직 졸린걸 보니 해도 안떴지?"
해는 물론 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구름에 가려져 빛 한줄기 조차 땅에 닿을수 없을만큼 어두운 지금이였다. 어쩌면 딸은 그런 바깥을 보고 아직도 새벽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거같았다.
"네가 눈을 떴잖아. 그러면 아침이지"
"그런가?"
"그렇지. 어서 이불 개고 밥먹자"
내가 하루를 보채자 하루는 밍기적대며 일어나 차곡차곡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양 손에 모으고는 '잘 먹겠습니다' 인사. 순식간에 한접시를 해치워버렸다. 반찬투정이 심한데다 입맛까지 까다로운 아이였지만 오늘은 대만족인 모양이다. 식탁에 정성을 쏟은 보람이 있었다.
"오늘은 어디갈거야?"
"음...잠깐 산에 다녀오려고"
"신사에?"
"응."
"거기에 있는 무녀 언니가 참 예쁘던데"
하쿠레이의 무녀를 말하는걸지도 모른다. 항상 무료한 표정으로 경내를 쓸면서 특별한 나날을 기다리는듯한 모습이 평범한 10대 소녀들과 다를게 없었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남다른 특별함이 보였었다. 아마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큰 일을 해낼거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전히 어른의 감이다. 신빙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지...예뻐"
"나도 자라면 그 언니처럼 예뻐질수 있을까?"
"어쩌면. 아마 그 무녀 언니보다 더 예뻐질거같은데. 우리 하루는"
"정말?"
하루는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쪽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케이네 선생님말 잘 들어야 해"
"오늘은 늦게 들어올거야?"
"아니.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오늘의 일정은 정말로 심플하기 그지 없었다. 신사에 가서 아내의 행복을 빌어주기.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도자기를 빗는 일이다.
미리 이야기를 안했지만 내 직업은 도예가다. 스승의 등 너머로 배운 솜씨긴 하지만 그래도 스승님이 인정해준 솜씨이고 하니 나름 자신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흙을 만지면 어떤 모습이 만들어지는지 머리속에 그려지곤 했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짙은 갈색의 점토에서 끄집어내주는 일을 해주는것 뿐이다.
문 밖으로 나가니 비는 그치고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해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자 딸과 나의 몸에 햇살을 비추었다. 마치 무언가 축복을 받은듯이 온몸을 휘감는 따스한 기운에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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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로 터벅터벅 걸어가다보니 계단이 나왔다. 다시 터벅터벅. 경내가 나온다. 새전함에 소소하지만 몇푼의 동전을 넣고 종을 울린다. 댕댕 하고 청아한 소리가 공기중에 퍼져나간다. 아내가 이 소리를 저 세상에서도 듣기를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기도는 꽤나 길었다. 남들처럼 짧은 소원을 빌고싶지 않았다. 좀더. 좀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계속해서 신께 간절히 빌었다.
"오래 기도하네. 당신처럼 오래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간만이야. 그만큼 간절했던걸까?"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도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무녀가 빗자루를 들고 서있었다. 무녀는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주 보여서 말 걸어봤어...1년 사이에 얼굴을 기억할 정도니까 말이야..."
무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간절하긴 했지...간절했고 말고"
거울이 없었기에 내 표정은 짐작조차 할수 없었겠지만 아마 그때 내 표정을 기억해본다면 분명히 쓸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것이다. 떠나간 아내를 잊지못해서 아직도 신사에 매달려 떠나가는 영혼을 놓지못하는 남편의 모습은 타인의 눈에 보기에는 어떨까.
'내가 죽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줘'
죽기 하루전까지 입에서 피를 쏟아내던 아내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순간 그 모습이 흐릿해졌다. 두 눈이 이상해진듯 해서 눈들 살짝 만져보니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이런...실례를 했네..."
무녀가 당황한듯 말을 흐렸다. 나는 괜찮다는듯 손을 들어올렸지만 무녀는 못내 미안한듯한 표정이였다.
"저..."
무녀가 말끝을 흐렸다.
"괜찮다면 차라도 마시고 가지 않을래?"
"...?"
감정을 추스리자 무녀가 내게 한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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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시간상 여기까지밖에 못쓰겠네요.
분량이 생각보다 길어져버렸습니다.
다음편은...오늘 밤 아니면 내일중으로 쓰겠네요.
간만에 마법이 사방에서 폭발하고 칼이 사방에서 휘둘리는 내용이 아닌 진지하게 쓰는 내용이라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나도 잔인한것만 쓰는게 아니라 이런 내용도 쓸수 있다고! 라는 마음에 오늘 하루동안 구상하고 쓴 내용입니다.
진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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