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높으신 분의 자제라고 말한 이 여자아이는 지금 우리의 옆에 앉아서 내가 샀던 당고를 마음껏 먹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먹은 음식이라곤 도마뱀 껍데기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보다 바로 옆에 테루가 어리둥절하며 아야를 쳐다보고 있는데도 별다른 내색조차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당고만 먹고 있었다.
"너...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애가 누군지 알아?"
"당연히 백랑 텐구겠죠. 카라스 텐구들중에 저런 흰 머리를 가진 텐구는 없으니까요"
"너 겁이 상당히 없구나!"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외치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쳐다보았기에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 앉긴 했지만 여전히 꺼림직한 녀석이다. 나이도 테루보다 어려보이는데다 높으신 분의 자제분이라고 했다. 녀석은 아마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밖으로 나와서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부자집 꼬마아이인걸까?
"지금 철없는 아가씨라고 생각했죠?"
"뭐 독심술이라도 익힌거냐"
"그야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겁없이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고는 사라져버리니까. 하지만 아니라구요. 그건 다른 동네에 있는 하타테나 하는 짓이니까요"
아야는 누군가를 팔아먹으면서까지 자신은 철이 없는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빨리 세상 물정 돌아가는 꼴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것이라고 했다. 그쪽이 덜 철없어보이려나? 나는 당고를 모조리 먹고 자리에서 일어난 샤메이마루 아야를 바라보고는 말을 걸었다.
"이제 가려고?"
"네. 덕분에 신세 졌어요. 이 은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을게요. 카라스 텐구란 그런 존재니까요"
나는 샤메이마루 아야의 인사를 그저 감사인사쯤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렸지만, 내가 저지른 일과 아야의 말은 후에 나의 목숨을 살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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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츠바사, 테루"
잠시후 마을로 돌아온 우리에게 이누바시리가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테루는 그대로 막사 안으로 쪼르르 달려가 테츠에게 갔다. 질끈 묶었던 머리를 풀어내린 탓인지 등까지 길게 내려뻗은 장발이 테츠의 얼굴을 반쯤 가려버렸다. 테츠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테루의 볼을 꼬집었다.
"다른 조원들은?"
"천랑은 어린 백랑 텐구들을 교육시키러 갔다. 다른 조원들은 각자 막사로 돌아가 쉬고 있지. 너도 오늘은 꽤나 수고했으니 들어가서 푹 쉬도록 해라"
"본부 받들겠습니다"
내가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자 이누바시리는 '풋'하고 웃고는 손짓으로 어서 가라는 행동을 했다. 며칠 사이긴 했지만 이누바시리와 꽤나 가까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아마 좋은 전우가 될수 있을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내가 지내는 막사에 도착했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 몸을 가볍게 받치고 있던 갑주를 내려놓고 허리에 채워져 있던 칼도 내려놓았다. 매번 전투후에는 깨끗하게 피를 닦아 관리를 해놓지만 오늘은 조금 쉬고 싶었다. 꽤나 먼 거리를 걸었다. 산도 엄청 탔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카라스 텐구의 마을을 보았다.
예전에 도쿄에 있었을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누가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여긴 환상이 모이는 환상향이다. 온갖 환상이 모여 서로 살아가기 위해 뭉친 장소. 그곳의 일원이 되어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바깥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장소...그렇기에 나는 바깥 세계를 완전히 잊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나 고된 훈련이 끝나 막사로 돌아와 몸을 누이면 항상 뼈저리게 느껴지는 바깥 세계의 그리움은 언제나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게 다가왔다. 홀로 그리움에 미쳐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다.
오늘도 그 그리움은 쉬지 않고 나를 덮쳐온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자기가 힘들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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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마리의 말을 들었겠죠..."
"물론입니다. 이런 날이 오긴 하는군요"
"화친이라니...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진게 아니겠습니까?"
"백랑 텐구와 손을 잡는건 꺼림직 하지만...이것도 다 1000년동안 이어진 전쟁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맞습니다. 그 말에는 틀린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움직일때군요..."
"화합은 있을수가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한 텐구가...이 환상향에서 사라질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저희와 같은 뜻을 가진 백랑 텐구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뒤에 보도록 하지요"
어두운 동굴 안에 모여있던 어두운 그림자들은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고는 밖으로 나갔다. 눈부시게 밝은 빛을 온몸으로 쬐는 그들의 움직임은 기분이 나쁠정도로 불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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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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