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목소리로 센라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던 쵸는 마른 목을 축이는 듯 잔을 기울여 술을 홀짝 마셔 넘겼다. 그리고는 격앙된 목소리로 반박하는 센라를 반개한 눈으로 응시하며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뗐다.
"뭐든지 하겠다고 했으니까, 내 부탁 하나 들어줬으면 하는데."
"부탁? 이상한 게 아니라면 못 들어 줄 것도 없지."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그냥 네가 백귀야행의 선두에 서 주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야."
"그 말은 나 더러 백귀야행의 일원이 되라는 거야?"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내일 하루면 되는 거니까."
그 정도의 일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후배와 불기분방의 요괴를 찾는 여행 중이긴 하나, 며칠 체류하는 걸로는 아무 지장이 없고, 그 일이 아니더라도 이틀이나 삼일 정도는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거라면 딱히 이상하지도 않고 괜찮지!"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판단한 센라는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이며 잔을 들이켜 꿀꺽꿀꺽 술을 삼켜 넘겼다. 딱 내일 하루, 백귀야행의 선두에 서기만 하면 되는 일. 그런데 왜 하필 선두일까? 의문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까진 신경 쓰지 않는 그다.
그 보다
"그런데, 너 여기서 뭘 하면서 지내고 있었던 거야?"
우연히 만난 옛 동행자의 안부가 궁금한 그였다.
옅은 미소를 띄운 쵸가 그의 물음에 답한다.
"네가 오늘 박살내 버린 백귀야행을 이끌고 있었지."
"으음.. 저거 네 작품이었던 거냐?"
"그런 셈이지. 난 너처럼 언제까지고 떠돌이 생활할 자신이 없어서 어딘가에 적당히 정착할 생각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인해 지금은 백귀야행의 우두머리를 하고 있지. 그러니까, 더 책망하는 거라고."
"아.. 알았어. 미안하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마."
정말로 미안한 짓을 해버린 센라의 목소리가 움츠려들었다. 자신처럼 방방곳곳 떠돌아다니던 녀석이 어느새 한 곳에 정착해 백귀야행을 꾸리다니. 자신도 언젠가는 저 녀석처럼 정착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마도 한참 나중의 일일 것이다. 설령 정착하게 된다고 해도 머잖아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겠지.
쵸는 술병이 텅 빈 것을 확인하고, 손을 들어 주인장에게 새 술병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주인장이 술을 가져다 놓기 전에 코우가 불쑥 물었다.
"저기.. 백귀야행이란 거, 항상 밤마다 떠들썩하게 노는 겁니까?"
"그래. 매일 밤 지치지도 않고 시끄럽게 구는 게 백귀야행지."
"왜 그런 건가요?"
"그건... 이유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인간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다들 낮 동안 숨죽여 있느라 답답했기 때문이지. 그렇게라도 쌓인 것을 풀지 않으면 날뛰는 녀석이 나오기 마련이거든."
백귀야행의 우두머리답게 코우의 물음에 척척 답해주는 쵸. 옆에서 듣고 있던 센라가 입이 근질거리는지, 입을 쩝 거리며 끼어들었다.
"그런 거 말고, 어떻게 하면 여자랑 떡칠 수 있는지 그거나 물어 봐. 저 녀석 여자 후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거든. 도움 많이 될 거야~."
"날 난봉꾼처럼 말하는 거 그만뒀으면 하는데."
"백귀야행 대가리를 하고 있으니, 여자들이랑 많이 자봤을 거 아냐? 후배는 그런 쪽 경험이 전무 하거든. 도움 되는 말이나 해줘봐!"
낄낄거리며 웃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조롱이었다.
순간 한쪽 눈썹이 씰룩인 쵸였지만, 평정을 유지하며 되받아쳤다.
"내 조언 따윈 필요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부러워서 훼방이나 놓을 정도니까."
"내가 언제 부러워했다고!"
"그럼, 질투한 거야?"
"그.. 그래! 질투했다 왜? 나쁘냐??"
"후배를 상대로 질투라.. 꼴사납네."
역으로 조롱당하는 입장이 된 센라는 심통 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말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결국, 센라는 말없이 술만 들이켰고, 대화는 자연스레 중단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유지되었고, 코우가 불편한 기색으로 눈치를 살필 때였다.
"너 불기분방의 요괴에 대해 알고 있냐?"
센라가 뜬금없이 그렇게 물었다.
쵸는 방금 비운 술잔을 탁상 위에 올려놓으며 답했다.
"물론, 알고 있지. 오니의 정점이라고 하는 요괴를 말하는 거지?"
"어. 후배랑 유랑하는 김에 그 요괴와 만나 보려고 하는데, 어디에 있는 지 통 알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러니까, 정보가 부족하다는 말이야."
"그래서 나라면 혹시나 그 요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거야?"
"그렇지 뭐. 넌 그런 소식은 잘 알 것 같으니까."
"그거 지레짐작이잖아."
비워진 쵸의 잔을 센라가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조금 아쉬움이 묻어나는 투로 말했다.
"모른다면 됐고."
그런 센라를 가늘게 뜬 눈으로 응시하던 쵸는 툭 내뱉듯이 물었다.
"그런데, 불기분방의 요괴는 뭐하려 찾는 거야? 이유라도 있을 거 아냐?"
"그건..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것 보다 나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 되는 요괴라면 누구라도 만나보고 싶지 않아?"
"너처럼 일부러 만나러 가는 요괴는 드물 거라 생각하는데. 소문으로는 잔학한데다, 제멋대로라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간 목숨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해. 그런 요괴를 만나겠다고? 하.. 겁도 없지. 아 참, 넌 원래 겁 대가리 없는 놈이었지."
"각오는 하고 만나려는 거다. 불기분방의 요괴와 싸우다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영광이라고!"
"저기.. 선배. 저는 그런 영광 필요 없는데요..."
얘기를 듣고 있던 코우가 불안한 얼굴로 잔뜩 움츠려 들었다. 불기분방의 요괴가 그렇게나 위험한 존재인 줄 몰랐을 터. 쵸가 거 보라는 듯이 말했다.
"후배가 저렇게 겁먹었는데, 괜찮겠어?"
"아직 담력이 없어서 그런 거지. 나랑 같이 다니다 보면, 웬만한 일 가지고는 끄덕도 없게 될 거야."
"네 독단에 휘둘리는 후배가 불쌍하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 주지. 그 불기분방의 요괴는 원래 이부키산에 살고 있었다는 듯 해.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곳을 떠나 혼슈를 유랑하고 있다는데, 그 유명세에 비해 목격자가 적어."
"그럼,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다는 거잖아?"
"애초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 목격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찾기 쉽지 않겠지.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오니아라소우에서 투귀를 때려 눕혔다 하더군. 아직도 거기에 있다고는 장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행적은 쫒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 그 정도면 충분해. 역시, 넌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알고 있구먼. 그런 얘기를 도대체 어디서 듣는 거야?"
"소문 정도라면 여기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어. 이 마을에 정착해 사는 요괴뿐만 아니라 너처럼 여행 도중 잠시 들리는 요괴들도 많으니까."
센라는 턱을 긁적이면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점내에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는 요괴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별것 아닌 잡담이라도 그것이 어떠한 소문을 근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점이란 그저 술만 마시는 공간이 아니, 세상만사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
세 요괴는 그 후로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다 주점을 나섰/다. 쌀쌀한 새벽 공기를 느끼며 헤어지기 직전, 쵸가 코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 괜한 고생 하지 말고, 여기서 정착해서 살지 않을래? 내가 이끄는 백귀야행에 넣어 줄 테니까. 그렇게 해 보라고."
"아뇨.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아직 선배와 여행을 계속 할럽니다."
그 달콤한 권유를 코우는 바로 거절했다.
사실, 쵸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의 백귀야행 일원으로서 정착해 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껏 매일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겨우 살아온 그에게 백귀야행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거절하기 힘든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세이의 얼굴이 아련 거렸지만, 그 이상으로 시소우 센라라는 오니의 존재가 컸다.
지금도 말을 바꿔 센라가 아닌, 쵸를 따라가고 싶은 욕망이 일지만, 앞장 서 가는 센라의 커다란 등을 바라보며 그런 갈등을 단칼에 잘라낸다.
어쩌면 아까운 기회를 놓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선배와 헤어진다면 더 후회할 코우였다.
----------------------
짬도 안나고 집중도 안 되고 미침
(IP보기클릭)175.223.***.***
(IP보기클릭)14.45.***.***
6시부터 8시까지 일 할 정도로 바쁨. | 17.05.29 22:53 | |
(IP보기클릭)14.45.***.***
오해 할까봐 추가 설명 하는데 오전6시, 오후 8시임. | 17.05.29 22:5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