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후 카라스 텐구들이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드높은 첨탑 위에서 바라보는 카라스 텐구들의 무리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였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마을이라 생각했더니 아파트 같이 높은 건물들에 한데 모여살던 탓이였을까. 생각보다 카라스 텐구들은 이 자그마한 땅에 우글우글 모여 살고 있었다. 아마 중심이 아닌 다른 작은 마을에 사는 카라스 텐구까지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많은 텐구들이 모여 살고 있겠지.
텐구들은 생각보다 이 환상향에 널리고 널린 존재들이였을지도 모른다. 예전 지식을 총 동원 해보자면 아마 이 환상향에는 그렇게 천적이라고 따질만한 요괴들도 없을뿐더러 인간들과도 나름 평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고 하니 개체수가 많은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모두들 잘 와주었다."
아야마리가 입을 열었따. 웅성대던 카라스 텐구들은 아야마리가 입을 열자 일제히 침묵하고 아야마리를 올려다 보았다. 붉은 눈동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랑 텐구인 테루도 아야마리가 특별히 허락을 해주어서 이 모습을 멀찌감찌서나마 지켜보고 있었다.
근처를 멤도는 카라스 텐구들이 조금은 불편한지 머리 위에 달린 귀가 계속 쫑긋대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 너희를 부른 이유가 있다...나 아야마리는 지금부터 백랑 텐구와 화친을 맺을 생각이다"
그렇게 빨리?!
아야마리가 말했던 계획이란게 이런거였나!
아야마리가 웅성대던 카라스 텐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듯 다시 표정을 바로 하고 카라스 텐구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우리 카라스 텐구와 백랑 텐구는 너무 오랜 기간동안 싸워왔다. 이대로 가면 자멸할 뿐이다"
아야마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요점은 이누바시리의 생각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설령 우리가 자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환상향에 있는 다른 인요들이 언제 텐구들을 공격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제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두고 텐구들끼리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온것이다"
카라스 텐구들은 아야마리의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아야마리의 의견이 옳다며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 언성을 높히는 이들도 있었고 별 다른 말 없이 다음 말을 꺼내길 기다리는 텐구도 있었다.
"이 모든건 백랑 텐구의 수장과 이미 이야기를 마친 상태에서 이야기 하는것이다. 너희들은 그래도 나를 따를텐가? 그렇지 않다면 이 마을을 떠나도 좋다. 다른곳에서 잘 살아도 뭐라고 하지 않겠다."
카라스 텐구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테루는 그저 나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였다. 나는 곁눈질로 카라스 텐구들을 바라보았지만, 카라스 텐구들은 얼추 아야마리의 말에 수긍하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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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이런 저런 연설을 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별 영양가 있는 말은 아니였다. 앞으로의 계획과 그것이 텐구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일장 연설을 해놨기에 꽤나 긴 시간을 잡아먹었다. 아야마리는 그것이 못내 미안했던지 연신 사과를 했지만 그닥 급한 일도 없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돌아가는 길에 카라스 텐구가 만든 음식이라도 먹어볼래? 괜찮지 않아?"
"그렇긴 한데 백랑 텐구인 네가 괜찮을지..."
"츠바사 오빠는 바보구나? 카라스 텐구 닮은 오빠가 가서 내것까지 사오면 되지!"
틀린말은 아니지만...나는 한숨을 내쉬고 길거리에 있는 노상점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조금 읽기 힘들게 휘갈겨쓴 일본어긴 했지만 그래도 일본어는 일본어라 간신히 읽을수는 있었다.
"에...도마뱀 껍질 구이랑...음...그냥 당고 하나 주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 아래 지방에서 오셨나?"
주인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며 대답을 했다. 주인장은 살아있는 도마뱀의 껍질을 산채로 능숙하게 벗겨내고는 그대로 껍질이 벗겨진 도마뱀을 화로의 연료로 넣어버렸다. 굳게 닫힌 철뚜껑 너머로 도마뱀이 몸부림치느라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한채 주인장이 만드는 도마뱀 껍질 구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자 다 만들어졌다고! 아랫지방에서 온 손님이니까 특별히 무료로 해주지!"
"어? 그래도 괜찮은건가요?"
"아랫지방 녀석들은 늘 백랑 텐구들에 의해 힘들잖아...나도 배운건 짧지만 그정도는 훤히 알고 있다고! 간만에 윗지방으로 놀러온 김에 재미있게 보내다 가라고!"
주인장이 어깨를 마구 두드리면서 도마뱀 껍질 구이와 당고 3개를 손에 쥐어주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되어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뭐 상관없으려나. 덕분에 덤으로 얻기까지 하고.
"와! 많이 얻어왔네!"
테루는 당연하다는듯 손에 들린 당고를 낚아챈다. 내가 먹으려고 했던건데.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2개만 집어가버렸다. 결국 엿먹이려고 주문해놓은 도마뱀 껍질 구이는 나의 점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근데 츠바사 오빠. 오빠는 인간이랬지?"
"응...그런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떨어져 오게 된거야? 산 타다가 길을 잃은거야?"
"그게...조금 설명하면 길어"
안그래도 바보같은 테루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다가는 나도 힘들고 테루도 힘들어질거같아서 설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테루도 그냥 "흐응..."하며 적당히 넘겼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당고를 한입 한입 먹기 시작했다. 간만에 느껴보는 단맛인지는 몰라도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빠. 저기 저 카라스 텐구좀 봐"
문득 고개를 돌리니 한 어린 카라스 텐구가 자기 머리보다 한두개쯤 큰 카라스 텐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이런데서도 이지매냐..."
나는 질겅질겅 씹고 있던 도마뱀의 껍질을 퉷 하고 내뱉고는 거침없이 카라스 텐구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니까. 네 아버지 뒤만 믿고 나대지 말란 말이다! 망할 텐구가"
"내가 뭐! 뭘 어쨋다고!"
"카라스 텐구 주제에 신문 기자나 하겠다고 하고 말이야...우왁?"
나는 거침없이 카라스 텐구의 뒷목을 잡아채어 뒤로 내던졌다. 아무리 커도 중학생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녀석들이였기에 별로 힘을 쓰지 않아도 쉽게 나동그라지곤 했다.
"뭐...뭐냐 너는!"
"지나가던 텐구입니다. 저희 아가씨가 폐를 끼친 모양이군요"
"뭐야. 집 하인이냐?"
"관리 안하냐!"
"하하 곤란합니다...저희 아가씨가 위해를 입는 날에는...큰일이 날텐데요"
나는 최대한 어딘가에서 봤던 집사 캐릭터를 떠올리며 그 역할에 몰입하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 빨이니 뭐니 하는걸보니 꽤나 높으신 집안의 자제분같은데 게다가 어린 아이가 이런식으로 괴롭힘 받는걸 그다지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크읏...하인 주제에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카라스 텐구 패거리들은 눈물을 감추며 우루루 도망치고 말았다. 그제야 한숨이 놓였다. 아무리 어리다고는 해도 요괴는 요괴다. 까딱했다간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괜찮니...?"
내가 손을 내밀자 꼬마아이는 손을 뿌리쳤다.
"이거 놔요!"
"에...?"
"당신은 카라스 텐구면서 제가 누군지 모른단 말입니까!"
모를수밖에. 난 여기 온지 1년도 안된 녀석인데다 인간인데.
"에...제가 감히 귀공의 존함을 여쭈보아도 되겠사옵니까?"
내가 과장되게 격식을 차려 말을 걸으니 꼬마 아이는 입술을 삐죽대며 말을 했다.
"저를 모른단 말입니까? 카라스 텐구 사이에서도 꽤나 명문으로 손꼽히는 샤메이마루 가문의 샤메이마루 아야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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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이야기가 계획대로 진행되는군.
가끔 궤도를 벗어난 스토리를 바로잡는것도 재미있긴 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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