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원정은 환상향에서 여러가지로 유명한 저택이다. 영원정이 어지간한 미로보다 빠져나오기 힘든 미혹의 죽림 깊숙히 있다는 건 유명한 이유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영원정이 유명한 이유는 거기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 때문이다. 저택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약사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던지, 토끼귀를 가진 연보랏빛 장발의 조수는 매력적이라던지, 얹혀 살고 있는 백수는 경국지색이라던지, 가끔 놀러오는 토끼 요괴는 사기를 잘 친다던지 등.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건 없었다.
그 소문의 주인 중 한 명인 약사 야고코로 에이린은 아주 오랜만에 고민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달의 두뇌라는 이명을 가진 그녀는 이명이 서럽지 않게 어지간한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침대 위에 있는 청년은 그런 그녀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내주었다. 붕대에 온몸이 둘둘 말린 그 청년이 하고 있는 건 단지 자고 있는 것 뿐이었다.
"정말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한데?"
곁에 앉아 청년을 곰곰히 지켜보던 에이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체온도, 맥박도, 호흡도 모두 정상이었다. 바로 그것이 이상했다. 청년이 붕대로 가린 상처─상처로 표현하자면 약간 부족한 감이 있지만─는 당장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에이린이 치료하긴 전엔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온몸의 뼈는 산산조각 나있었지, 출혈량은 이미 치사량을 넘어서고 뇌수까지 흘러내리고 있었지, 거기다가 심장은 제대로 뛰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던 거야?"
자신이 치료한 거지만 에이린은 믿기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분명 당장 죽을 것 같던 그를 에이린을 살린 것이 맞지만 그 전까지 그 청년이 살아있었던 이유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에이린은 아마 그때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도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고 고민해보았지만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분명 죽기 바로 직전이었다.
"요괴거나 봉래인일 리는 없겠지?"
에이린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어서 청년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그래야 해답이 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청년은 요괴도, 봉래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치료하면서 그의 신체를 샅샅이 살펴본 에이린은 그걸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단지 운이 엄청나게 좋거나…… 그녀가 알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가 둘 중에 하나였다
에이린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방문이 서서히 열렸다. 토끼귀를 가진 연보랏빛 장발의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스승님? 차 가져왔어요."
"아, 레이센 고마워."
레이센은 차를 내려놓으며 청년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건 금발의 마법사가 그 청년을 들고 여기로 찾아온 것, 그리고 그 청년이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는 것, 그 이후로는 에이린이 다급히 수술을 집행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와서야 다시 볼 수 있었다. 레이센은 에이린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응? 다시 한 번 말해줄래?"
"그냥 어쩌다 이렇게 다쳤을까 하고 물어본……."
레이센은 뒷말을 흐렸다. 에이린은 이미 자기 만의 고민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린은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있나에 대해서만 고민햇지, 왜 그렇게 다쳤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에 불구하고. 에이린은 흥미로운 질문이라 생각하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에이린은 차를 마셨다. 레이센은 청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청년은 눈을 떴다.
마치 얕은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청년의 눈꺼풀이 열렸다. 눈꺼풀이 반쯤 열리며 멍해보이는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다. 그리고 상체가 서서히 일어났다. 상처를 생각하면 온몸이 쑤실텐데도 청년은 작은 신음 하나 없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에이린과 레이센을 돌아보았다.
청년의 눈이 에이린과 레이센을 몸을 훑어보고 지나가더니 레이센의 토끼귀에서 멈춰섰다. 청년은 고민하는 듯이 살짝 인상을 쓰며, 결심한 듯 인상을 풀며 입을 열었다.
"취향은 존중합니다."
그것이 청년의 첫마디였다.
* * *
"기억 안 나요."
청년은 별 생각없이 툭 내뱉 듯 말했다. 에이린은 그런 청년의 태도에 한숨을 쉬었다. 미라처럼 온몸에 압박 붕대를 둘둘 말고 있는 덕분에 청년은 그것이 거슬리는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물론 붕대를 풀려는 기색을 보이면 레이센이 그때마다 제지했다. 결과적으로 청년은 에이린의 질문에 별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에이린은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정말 기억이 안나? 그런 거 같지도 않은데?"
청년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 그 이상의 대답은 하지 않았다. 청년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디서 사는 지나 뭐하고 살아왔는 지도, 어쩌다가 그렇게 다친 건지도, 심지어 이름이나 나이같은 것조차도.
"그래도 스승님보단 어리……."
레이센은 나이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중간에 말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기운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바로 입을 다물어버린 것이다. 레이센의 고개가 마모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뻣뻣하게 돌아갔다. 레이센은 싱글벙글하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에이린을 볼 수 있었다.
"응? 뭐라고 했니?"
레이센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급히 저었다. 에이린의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말을 잘못했다간 한 채로 해부당해 장기 자랑을 하게 되거나 살아만 있는 표본이 되어버릴 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신가 보군요?"
레이센은 깜짝 놀라 청년을 돌아보았다. 에이린도 여전히 웃으며 청년을 돌아보았다. 레이센은 청년에게 이 몸짓 저 몸짓으로 더이상 말하면 죽는다고 전달했고, 에이린은 죽일 듯이 방긋 웃었지만 청년은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그저 말했다.
"걱정마세요. 전 실제 나이보다도 겉모습 나이를 존중하는 편이거든요."
"어머, 고마워. 하지만 난 17살이거든? 의외로 젊거든? 내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니?"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에 붕대를 둘둘 말고 있고,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고, 여긴 어디고, 난 누구인 마당인데 눈 앞에 수억살 먹은 미녀가 있다고해도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에이린은 청년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웃음을 거두었다. 자기 입으로 기억을 상실했다고 말하지만 담담하고 여유로웠다. 기억상실증의 증세는 발견하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어?"
"……."
청년은 이때까지와 같이 바로 답하는 대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2초 정도?
"복수."
"복수?"
"네. 복수요.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야된다는 건 기억나네요."
"누군가가 누군데?"
"누군지 모르니까 누군가라고 했겟죠?"
레이센은 풋하고 웃었다. 별로 웃긴 말은 아니었지만 달의 두뇌라고 불리는 에이린을 바보 취급하는 듯한 청년의 말에 그만 웃어버린 것이다.
"……정신과는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기억을 찾는데 도와줄 수 있지. 어때?"
"조건은 없죠?"
"평상시라면 상관없을텐데, 지금은 조금 사정이 달라."
"그래서 조건은 뭐죠?"
청년은 칼 같이 말을 바꾸었다. 에이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의 기억."
"나쁘지 않군요."
"싼 편이지?"
"제 기억에 보상이 될만한 가치가 있을 지 궁금하네요."
청년은 마치 기억이 남아있다는 듯이 말했다. 에이린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슬슬 바로 시작해볼까?"
"여기서, 바로요?"
"그래. 레이센?"
"예?"
"메스."
청년과 레이센은 흠칫했다. 메스? 메스라고? 수술할 때 피부 자르고 하는 그거? 기억을 되찾는 데 그게 왜 필요하지? 망치와 같은 둔기도 아니고 날붙이를 사용한 신개념 충격 요법인가? 그것도 아니면 머리를 갈라서 뇌를…….
"농담이야."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레이센은 분명 장난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에이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청년에게 말했다.
"환자를 생각하면 안정을 취하는게 우선이겠지.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쉬고 있어. 근데 그 전에 당신, 당신하고 계속해서 부르기도 뭐하니 가명이라도 정하는 게 어때?"
청년은 2초 정도 생각한 다음 말했다.
"아나타(あなた, 당신). 앞으로 그렇게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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