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우는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에 들면 안 되었다.
의지하던 선배가 곯아떨어진 지금, 자신마저 잠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정체를 모를 집주인 여자에게 너무도 위험한 냄새를 맡은 이상, 잠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곤히 자는 선배를 깨워봤자, 여자에게 콩깍지가 씌인 현재로선 무슨 말을 해봤자 소용없을 거다. 그렇다고 혼자 도망가는 건 논외. 결국,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 한 코우는 답답한 심정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으려나?
조심스레 방문을 여니, 반겨주는 것은 세찬 빗줄기가 아닌 묘한 정적이었다.
"어라? 분명, 비가 오고 있을 텐데?"
빗방울 소리는 지금도 들려오고 있는데, 문 밖으로는 고요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코우는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이 밝고 있는 것이 흙이 아닌 마루인 것을 깨달고 전신이 오싹해져 왔다.
밖이어야 할 공간이 또 다른 실내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코우는 마치, 너구리에게 홀린 것만 같았다.
"그 여자의 짓인가?"
지금 보고 있는 괴현상에 대해 달리 짐작 가는 이가 없었다. 무슨 의도로 밖을 복도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는 모르나, 다분히 불길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발에 닿는 감촉으로 보아 환영이 아닌 진짜 복도이다.
코우는 불안감에 도로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정도의 괴현상이라면 고집불통인 선배도 경계할 터.
그리 확신하며 방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어?"
분명, 선배가 코를 골며 자고 있어야 하는데, 보이는 것은 정갈하게 다다미만 깔려있는 방이었다. 아까까지 있었던 방이 아닌, 전혀 다른 방. 코우의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올라간 심박 수와 함께 찬찬히 주변을 살핀 코우는 확신했다.
자신과 선배는 여자의 술수에 빠진 것이라고.
"어떻게 돼 먹은 집이야..."
문지방을 넘으면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집.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은 코우는 일단, 이 집으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생각했다.
"일단, 선배를 찾아야 해!"
그리고 떠올린 것은 일관성을 잃은 공간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선 선배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 뿐.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는 코우였다.
*
코우는 자신이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방에서 나와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계속 걸어갔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끝이 존재하지 않는 길일지도 모른다. 일단, 벽에 나 있는 문을 보이는 족족 열어보나, 선배가 있는 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계속되는 복도를 떠도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자꾸만 쌓여가는 코우. 정말 이 끝없는 공간에 갇혀진 것이라면 뭘 해도 소용없는 것이겠지.
다만, 지금도 들려오는 거센 빗소리는 이곳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 그나마 안심이라고 해야 할까.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쉰 코우는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그러자, 방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수 없이 봐온 문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문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속이 떨려온다. 문 안 쪽으로부터 지독하게 불길한 기운이 세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 문 너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영원히 복도를 헤매다 굶어 죽느니,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이었기에 코우는 일단, 열어보기로 했다.
쿵덕쿵덕. 코우의 심장은 빠르게 달음질 치고, 열어선 안 되는 느낌이 드는 문이 끼익-, 오래된 경첩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와 동시에 드려나는 괴이.
문 너머는 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물의 내장 같은 온통 붉은 빛의 무언가였다.
코우는 그것을 보자마자, 공포에 질려버렸다. 구역질이 나는 혐오감과 함께 당장 저것에서 멀어지라는 본능이 그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저.. 저게 뭐야... 대체 저게 뭐냐고!"
극심한 공포 속에서 뒷걸음을 치는데, 돌연 복도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 탓에 발이 엉켜 넘어진 코우는 이번에야 말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복도 전체가 출렁이더니 점점 꼬불꼬불해져 가는 광경을.
아까까지 보였던 문들이 사라져가고, 복도 바닥과 벽이 문 너머로 봤던 그것처럼 붉게 변해간 것이었다.
"도대체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제는 통로라고도 볼 수 없는 기괴한 공간이 된 복도. 간신히 중심을 잡고 비틀대며 걷는 코우는 이곳이 집, 건물이 아닌 괴물의 뱃속이 아닐까 싶을 때였다.
"후후후훗. 꼬마야, 내 뱃속을 걷는 기분이 어떠니?"
그 여자의 목소리가 공간 전체를 울리며 들려왔다.
"배.. 뱃속이라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여자의 뱃속임을 알게 된 코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경악했다.
"젠장.. 통 채로 삼켜진 기억 따윈 없는데!"
언제 산 채로 먹힌 것인지 짐작 가는 구석이 없다. 그보다 자신을 집어 삼킬 만큼 여자가 컸었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쯤은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일. 다만, 확실한 것은 집 밖을 나서니 보이던 복도가 여자의 몸 안이었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왠 복도가 있나 싶었더니, 둔갑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
"후훗. 생각은 자유지만 말이야."
공간 전체에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조소를 담고 있었다.
"둔갑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게 내 본 모습. 이 집 자체가 나란다. 꼬마야."
"그럼.. 그 여자 모습은?!"
복도가 괴물 뱃속처럼 변한 이후로 더는 놀라지 않을 거라 생각 했었던 코우는 그 이상으로 놀라버렸다. 비를 피해 들어온 집이 요괴 그 자체이며,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괴물의 뱃속이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배를 홀린 여자의 정체.
그것은 아마도.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거다."
"방이 위장이라면 여자는 목젖 같은 건가...?"
"재밌는 비유를 대는 구나. 비슷하다고 해줄게."
발산의 장수라도 미인에게는 약하다. 그래서 고대부터 미인계가 전술로서 통용되어 온 것이고, 미인은 암살을 위한 미끼로서 종종 이용되어 왔다. 어디서 들은 얘기는 아니고, 코우의 근원이기도 한 원혼이 남긴 기억의 단편이리라. 그 비유대로 여주인은 요괴의 본체가 아닌, 코우와 센라를 끌어들이기 위한 단순한 미끼. 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집의 모습을 한 요괴.
비록, 십여 년 밖에 살지 못한 코우였지만, 자신을 뱃속에 가둬 놓은 요괴가 여태 만나왔던 요괴들 중 누구보다 괴이하다고 단언 할 수 있었다.
꾸루룩, 하고 발밑이, 통로 전체가 요동친다.
코우는 넘어지지 않으려 비틀 거리면서도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때, 축축한 물기가 그의 발바닥을 적셨고, 여자의 광소가 울려 퍼졌다.
"허기가 지니, 이만 소화 시켜야겠구나."
발을 적시며 점점 수위를 높여 오는 물기는 다름 아닌, 요괴집의 소화액. 어느새 발목까지 차올라온다. 코우는 소화액의 산 반응으로 발이 뜨거워져 오는 것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 날 잡아먹는 걸 그만 두는 게 좋을 걸?"
"흐음.. 무슨 말을 하나 싶더니, 목숨 구걸이냐?"
코우의 말에 목소리는 가소롭다는 어조로 비웃었다. 그러나 코우는 굴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나와 같이 있던 선배는 무서운 오니님이라고! 내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을 알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꼬마야. 내게 그런 협박에 통할 것 같으냐?"
"협박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다!"
그 말에 목소리는 미친 듯이 깔깔 웃었다.
"그 멍청한 오니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나본데. 꼬마야, 내가 진짜 진실을 말해 주겠어."
지금부터 요괴집이 하려는 말이 듣고 싶지 않은 나쁜 소식이라는 것을 코우는 직감했다. 발에 전해져오는 소화액의 타는듯한 뜨거움을 견디며, 이정도 난리 통이면 둔감한 선배라도 눈을 뜨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하는 그에게 요괴집은 절망을 선언했다.
"지금쯤이면, 내게 저급한 농이나 치며 환심을 사려한 오니는 소화되어 형체도 없이 녹아버렸겠지. 그러니, 오니가 구해주려 올 것이란 기대는 헛된 것이야."
믿기지 않는 사실에 코우는 혼란해했다.
선배가 그리 쉽게 당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요괴집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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