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보였다고 하니, 죄송합니다."
둘이 대화하는 도중, 여자가 죄송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럴 생각이 아니옵고, 그저.. 그 쪽이 조금 신경 쓰여서 쳐다 본 것뿐이었는데.."
"야 임마-! 미치루 씨를 울리면 어떡해!"
죄송해하는 여자의 반응에 센라는 후배에게 버럭 호통을 쳤다. 그에 가만히 야단맞고 있을 코우가 아니었다.
"제가 뭘 울렸다는 겁니까? 선배, 저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어 그러는 거죠?"
"내가 뭘... 그.. 그리고 임마! 미치루 씨에게 관심 받아 놓고 위험한 여자니 어쩌니 한 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니냐? 이 부러운 새끼!"
"역시, 여자 때문에 이상해 졌어.."
붉은 얼굴을 더욱 붉어진 센라의 억양은 격앙되어 있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코우에 대한 질투이리라. 미모의 여인에게 관심을 받는 후배에게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선배의 행동에 코우는 질렀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코우를 죽일 듯 노려보면서 씩씩 거리던 센라는 심호흡하여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진정하자마자 여자를 향해 다시 징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치루 씨. 저 녀석 보단 제가 훨씬 더 좋은 남자입니다!"
강하게 관심을 끌어 보려는 센라.
여자가 재밌다는 듯 후훗, 웃었고, 센라는 자신의 매력을 호소했다.
"저로 말 할 것 같으면, 삼라만상을 탐구하는 지적이면서도 강한 남자이지요. 그러면서도 미치루 씨 같은 미녀를 웃게 만들 능력이 있는 재밌는 남자!"
여자 앞에서 방정을 떠는 선배를 보며, 코우는 내심 어처구니없었다. 선배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렇게 까지 한심한 모습을 보여 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간 보았던 박학다식하며 통찰력 있던 선배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후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 지. 아니, 아예 신경도 쓰고 있지 않은 센라의 방정은 계속 되었다.
"미치루 씨. 이렇게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용이 노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용이 죽으면 뭐라 하는 지 아십니까?"
"뭐라고 하는지요?"
"용~용~ 죽겠지~~! 흐하하하하!!"
자기 딴에는 웃긴 농담이라고 저 혼자 배를 잡고 웃는 센라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수준의 농에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웃어 넘어가는 추태에 코우는 생전 처음으로 살의라는 감정을 품었다.
거짓 하나 안 보태고, 저 선배란 오니를 진심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데, 살의를 가지게 만드는 농을 재밌어하며 맞장구 쳐주는 저 여자는 대체 뭘까? 농담에 대한 감각이 이상한 것인지, 코우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재밌는 분이시군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당신들이어서 다행입니다."
"흐핫-! 그거 쑥스럽구먼."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인지, 여자는 센라의 방정을 받아 주는 것도 모질라, 매우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제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알 것이다.
여자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한 코우였다.
선배가 미인에 저렇게나 약했다니.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저러다 여자의 형편에 맞게 이용당하다 끝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비가 밤새도록 올 것 같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시는 게 어떠신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미치루 씨 같은 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면 더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요."
하룻밤 묵고 가는 것을 권하는 여자와 그걸 흔쾌히 승낙하는 선배.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진 코우는 센라에게 트집을 잡기로 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니, 삼라만상의 탐구는 어쨌습니까? 그리고 불기분방의 요괴와 만난다는 목표는!?"
이대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된다면 저 여자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다. 자신을 향했던 그 요사했던 눈과 이상할 정도의 호의.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절대로 좋은 의도일리가 없다고 자신의 본능이 말해오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배를 설득해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 그 딴 거 몰라!"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센라는 이미 여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코우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 그러나 이대로 포기한다면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
센라의 양 어깨를 잡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선배, 정신 차려요! 그걸 하찮게 여기다니, 선배는 저 여자한테 홀려서 제 정신이 아닌 거라고요!!"
"아 쓰벌. 나 정신 멀쩡하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
"아~뇨. 제가 봤을 땐, 선배 지금 절대 제 정신이 아니에요."
"어허~, 제 정신 맞대도! 이게 날 미/친놈 취급하네."
"맞아요! 여자한테 빠져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는 등신입니다."
"이 새끼.. 너 말이 점점 奀같아 진다?"
급기야 말다툼으로 번진 코우와 센라. 그걸 지켜보던 여자는 조용히 소리 죽여 웃었다. 후배와 한창 말싸움을 하던 센라는 문득, 여자의 시선을 느끼고는 다시 미덥지 못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하하. 후배 녀석이 저와 미치루 씨 사이를 질투하는 모양입니다."
질투하는 쪽이 누군데!
그야말로 사돈남말이 아닌가?
센라의 헛소리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코우. 이젠 난 모른다는 심정으로 선배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그는 삐친 얼굴로 '흥!'하고 고개를 훽 돌렸다.
안 좋은 예감만 들지만, 선배가 저래서야 어찌할 방도가 없지.
코우는 이대로 선배와 헤어져 혼자라도 이 수상한 집을 나와야 할지 고민해 봤으나 소용없었다. 이제 와서 다시 혼자가 되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고, 선배와의 여행에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배 정도의 요괴라면 어지간한 위험 정도는 해쳐나가겠지.
결국,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신변이었다.
그것도 선배가 해결해 준다면 좋겠지만, 역시 예감이 좋지 않다.
코우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도 여자의 호감을 사려는 센라의 노력은 계속 되었다.
*
연이어 이어지는 센라의 수다로 날은 저물어 벌써 한밤중이 되어있었다. 야행성인 요괴라도 이렇게 공기가 눅눅한 날은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이 그랬다. 손님이 잦은 집이라서인지, 여인 혼자 살면서 센라와 코우. 두 사람 분의 이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자는 문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센라는 그녀가 같이 동침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워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구었다. 여자의 행방이 궁금하나 코우는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무리 방이 하나 뿐인 집이곤 하나 남정네 둘을 재우는데 젊은 처자가 같이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에 밖에서 취침하진 않을 것 같고, 여자는 아무래도 미처 보지 못한 별채에서 자는 듯 했다.
정중히 깔아놓은 이불에 센라는 사양하지 않고 덥석 눕는다. 곧 코우도 따라 누웠지만, 미심쩍은 기색을 드려내고 있었다. 이불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는데 반해, 티끌도 축축하지 않았다. 마치, 쾌청한 날에 널어 말린 이불같이 뽀송뽀송하다.
이 집에 들어오고 나고 부터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 어찌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는가. 코우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벌써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센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강해진다면 저렇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잠들 수 있는 걸까?
쉬이 잠이 오지 않으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코우.
십여 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그 동안 겪었던 일 들을 떠올려 본다.
최초로 기억하는 것은 시체만이 가득한 풍경. 참을 수 없는 공복에 발아래에 놓인 시체를 허겁지겁 뜯어 먹었고, 그 이후로는 퇴마사라 불리는 인간에게 쫓겨 발이 닿는 대로 도망쳐 다니기만 했다.
같은 요괴와 만났다 싶었더니, 다짜고짜 공격을 당한 기억. 요괴 무리에게 죽을 뻔 한 기억. 인간에게 죽을 뻔 한 기억.
돌이켜보니, 불운으로 점철된 요생이었다.
만나는 자들은 전부 자신을 해하려 했고, 그들을 피해 부리나케 도망치던 나날.
그런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유일하게 자신을 호의적으로 대해준 인물은 다름 아닌, 시소우 센라라는 이름의 오니. 즉, 옆에서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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