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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찢겨지는 것 같은 비명. 동시에 둔탁한 무거운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렸다.
내 눈에는 손목과 팔꿈치 사이에 원래 존재하지 않을 관절이 생겨버린 렌코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있었다. 어째서지. 비명이라니 렌코답지 않다고 순간 생각해버렸다. 렌코의 오른팔은 괴물에게 먹혀버렸는데도.
「……………….」
나는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렌코는 왼팔로 오른팔을 쥐며 괴물의 입에서 팔을 빼낼려고 있다. 하지만 날카롭고 뾰족한 칼 같은 이빨이 렌코의 팔을 물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집어당겨도 물고 있는 이빨이 렌코의 피부를, 살을 가를 뿐이었다.
「흐윽……으아아아아악!!」
괴물이 가볍게 목을 흔든 것만으로도 렌코의 팔에서 뼈가 살을 뚫고 나왔다. 관절이 빠지고 뼈의 끝 부분이 상처를 뚫고 나온 것이다. 철철 흘러나오는 빨간 것은 무릎에서 떨어져 땅에 떨어진 렌코의 팔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다. 뚝뚝 떨어지면서 렌코의 흰 셔츠를 붉게 물들였다.
직각으로 꺾인 원래 관절이 존재하지 않는 부분은 무정하게도 괴물이 다시 목을 움직여 사냥감을 끊어먹어 피부가, 살이 비명을 질러가며 대롱대롱 찢겨나갔다. 렌코의 비명이 울리며 털썩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렌코!」
드디어 드디어 나온 말은 이름이었다. 나는 땅에 쓰러진 렌코에게 달려가 그 몸을 안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있다. 너무나도 무참한 오른팔은 나는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렌코! 렌코!」
렌코를 부르는 외침은 낮고 무겁게 울리는 포효에 가라져버렸다. 불길한 괴물. 이 세상의 생물이 아니다. 저 편의 존재. 그 눈은 기분 나쁘게도 비어있으면서도 생생하게 빛났다. 온 몸은 까맣고 두터운 털로 뒤덮여있다. 온 몸에 피와 살을 계속 뒤집어쓴듯한 악취와 추태. 4족 보행을 해 개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걸 제대로 표현할 방법은 내게는 불가능했다. 그저 괴물이 저기에 있었다.
「도, 도망가야 돼……!!」
나는 렌코를 잡고 일어설려고 했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인간은 예상 이상으로 무겁다. 렌코의 몸을 제대로 붙잡고 끌어가듯이 데려가 괴물에게 등을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가 끝없이 있다. 이끼가 생긴 땅은 조심하지 않으면 발을 헛디딜 수준 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야.」
나는 무의식 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내 귀에 닿았을 때엔…….
바로 옆을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생각도 못할 속도로 지나갔다. 팔에서 렌코가 렌코가 떨어졌다. ……아니 팔과 함께 렌코를 가져가버렸다. 눈에 들어온 내 오른쪽 어깨는 그 앞으로 아무것도 없어졌다.
「거짓……말…….」
나는 땅에 쓰러졌다. 모르겠다. 그저 몸의 밸런스를 못 잡게 됐다. 몸 반의 감각이 없다. 이상하다 한쪽 팔이 없어졌을 뿐인데 밸런스라는 것은 이렇게나 간단히 무너지는 것인가. 그러고보니 인간은 엄지 발가락만 없어져도 밸런스가 무너져 서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에 렌코가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 태평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에 검은 안개가 끼었다.
「응……? 뭐, 야……………….」
희미한 시야 안에 그 괴물이 비췄다. 괴물의 입에는 렌코가 먹히고 있었다. 옆구리에 날카로운 이빨을 세워 그대로 하늘로 들려 올려져 렌코의 왼팔과 발은 힘없이 쳐져있다. 하얀 옆구리에 이빨이 물려 새빨간 피가 흘러 넘치고 있다. 찢겨져 버린건지 내장이 튀어나와 무참히 흘러내리고 있다.
「렌……코…….」
나는 렌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괴물을 렌코를 집어삼켜 한번에 물었다. 그 박자에 뭔가가 괴물의 입가에 뚝 떨어졌다. 커다란 고깃덩어리. 렌코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반신이 그곳에…….
하늘은 아직 푸르지만 시간은 이제 해질녘이어서 햇빛은 크게 기울어져있다. 곧 하늘은 붉게 물들며 이윽고 밤이 올 것이다. 예전에는 잠들지 않는 도시라 칭송받던 도쿄는 이젠 밤이 되면 금세 풀과 나무도 잠들 정도로 어두워진다. 그러겠지. 아마도. 확증은 없지만 왠지 말해보고 싶었던 허언이다. 그렇지만 정말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장소에 불필요하게 빛을 밝혀둘 필요도 없으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렌코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메일을 답장한 후, 갑자기 치유리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렌코의 휴대폰이 반응을 보였다. 렌코가 휴대폰을 귀에 대니 내게도 들려올만큼 치유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다음에 꼭 만나자고 꼭 꼭 약속이야. 란 내용의 전화였다. 치유리의 목소리는 조금 우는 것처럼 들려서 나와 렌코는 조금 웃었다. 치유리는 렌코가 엄청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럴까라니 뭐야. 뭐가 있어?」
렌코의 말에 대답하니 딱히 없는데~? 라는 의욕 없는 답이 돌아와 나는 렌코의 뺨을 양손으로 붙잡아 힘껏 집어당겼다.
「아야야앗, 머흐는그야.」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렌코 마침내 일본어를 잊어버린걸까나.」
렌코는 내 손을 붙잡고 억지로 끌어당겼다. 렌코의 뺨이 한계까지 늘어나 짝 소리가 났다. 양쪽 뺨이 새빨개졌다. 부끄러워서 빨개진 것이 아니어서 상당히 아파보인다.
「……아프다고 메리.」
「미, 미안. 설마 갑자기 잡아당길 줄은 몰라서…… 세게 잡고 있었으니까…….」
렌코는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한숨을 쉬고는 옷으로 눈을 닦고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뺨은 빨간게 뭔가 우스꽝스럽다.
「그러고보니 우리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목적지를 못 들은 거 같은데.」
「레일에 흘러가는 인생을…….」
「그런 건 됐으니까.」
우리들만큼 레일을 탈선해 배로 산을 오르는 인생을 보내고 인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런 눈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우리는 상식이라는 레일을 타고 있지도 않다. 오키나와에 전철이 존재하는 것 같은 거다. ……알기 어려울려나 이 소재는.
「즉 오키나와에는 전철이 없으니까 레일이 없는 장소에 전철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상식적이지 않다는 걸 말하는…….」
「뭔 소리를 하는거야 메리. 목적지는 오키나와가 아니라고?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저기야. 저 관람차가 보이는 기슭.」
렌코가 창 밖을 가리켰다. 바라보니 바닷가에 거대한 관람차가 있고, 그 기슭에는 거대한 건물이 있다. 쇼핑몰처럼 보이는데 방금 갔던 쇼핑몰은 그다지 좋은 인상은 없었다.
「괜찮겠지? 저기는. 또 셔터 거리라면 싫어.」
「괜찮아……아마도. 저 쇼핑몰은 관광지로써 잘 발전 되있으니까. 그 쪽은 잘 되있을거라고 봐. 전에 정보를 봤을 때에는 쇠퇴했다는 인상은 못받았으니까.」
「정말? 그럼 뭐 괜찮지만…….」
도쿄에 와서 아직 한 번도 렌코와 같이 쇼핑몰에서 쇼핑을 해본 적이 없다. 히로시게 안에서 렌코에게 듣고 나서부터 쭉 기대하고 있었다, 슬슬 그것이 실현되야 하는 게 아닌가.
「곧 있으면 도착할거야. 내릴 준비 하자!」
「그런 어린애 취급은 하지말아줘! 보면 알잖아. 역이 벌써 눈 앞에 있는걸.」
유리카모메가 승강장에 들어가 오른쪽 문이 열렸다. 내리는 건 우리들 뿐이고 몇 명이 유리카모메에 올라타고 있었다. 승강장에는 몇 명이 있다. 다들 신바시행 유리카모메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정말로 괜찮은 거겠지?」
「부, 분명…… 괜찮을 거라 생각해…….」
개찰구 앞의 보행자 통로는 그대로 쇼핑몰로 이어져있었다. 안내판에는 『팔레트 타운』이라 적혀있다. 저 쇼핑몰의 이름이겠지.
「팔레트 타운 안에서 쇼핑몰로 지어진 건물은 비너스 포트란 이름이야. 듣건대 연인의 성지래나 뭐래나.」
렌코는 역에서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준비 해온 것인지 어느샌가 팜플랫을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연인하고는 정말 관계없는 우리들에게 연인의 성지라 해봤자 뭐…….」
왠지 말하면서 쓸쓸해졌다. 쿄토에 돌아가면 연인이라도 사귀어볼까.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 정도로 미인이라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을테고.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바보같다.
연인을 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는데 그건 잘못된 거라고 이의를 표하고 싶다. 애초에 연인이라는 것은 서로 좋아하고 있는 남녀 간의 사이를 찌르는 것이다.
「찌르면 안 돼. 그럼 커플을 질투해서 저지른 범행. 이라는 느낌이 되어버리잖아.」
즉 연인을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다른 사람을 좋아지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좋아진 사람을 처음으로 『연인으로 삼고싶다』고 생각 할때가 바로 연인을 원한다는 감정인 것이다. 예전에 렌코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꽉 안으면서 머리를 쓰다듬더니.
「순수하구만~ 메리는 정말 귀엽다니까!」
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런 의미로 일단 내가 첫눈에 반할 운명에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는 비봉구락부는 계속 남색이 없는 불량 오컬트 서클로 남아 있을 것이다.
「뭐 단순히 쇼핑을 즐기면 되지.」
「그렇네. 그 때문에 온거니까.」
「아 맞다. 렌코! 나 커피 마시고 싶어! 달달한 케이크도 있으면 더 좋고.」
「아니, 또 먹을 생각이야?」
「그런 거 말해봤자 디저트는 다른 배인걸? 난 숙녀라고.」
「칼로리는 그런거 상관없이 흡수 되는데.」
「그만둬!」
보행자 통로 밑은 여전히 바다로 되어있다. 팔레트 타운도 1층 부분은 반 정도 바다에 잠겨있어서 1층은 2층에서 가는게 아니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걸로 보인다. 그래서 역에서 직접 연결 되있는 팔레트 타운의 중앙 홀로 도착. 크게 원을 그리는 천장이 높은 홀에 그대로 1바퀴를 도는 통로와 1층에서 3층까지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여기서 360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제법 세련 되어있네. 확실히 데이트하기엔 꽤 좋을 것 같잖아.」
「비너스 포트는…… 여기네.」
렌코는 통로를 왼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의 옆을 지나 원을 4분의 1정도 걸으니 비너스 포트의 입구가 보였다.
자동문이 열리고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공기가 살랑살랑 불어온다. 안에 들어가니 온 몸에 시원한 공기가 감싼다. 그리고 그 안은 어스레해서 빛이 조금씩 비추고 있는 거리와 상승효과가 있어 마치 갑자기 다른 세계에 끌려간듯한 착각에 빠졌다.
「어두운 이유는 천장이야.」
렌코가 위를 가리켰다. 태양이 잠기기 바로 직전의 타는듯한 새빨간 노을이 천장에서 비추고 있다. 칼레이도 스크린이다.
「칼레이도 스크린으로 만든 스카이 퓨처 프로그램이야. 실물과 같은 하늘이 2시간 정도 반복해. 계속 해가 저물다가 알아차릴 때쯤 보면 아침이 되어서 태양이 바로 위에 올라가있어. 마치 다른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중세 유럽의 거리 같은 느낌을 낸 거리. 그 거리를 우중충하게 밝히고 있는 건 조금씩 존재하는 가로등과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있다.
「꽤 재밌네. 방금 전의 홍콩이나 에도와는 또 다른 분위기야. ……아니 근데 오늘만 홍콩에 에도에 유럽. 정말로 뭐야 도쿄는. 의미를 모르겠어.」
「옛날부터 카부키모노가 잔뜩 있던 곳이라니까. 어쩔 수 없어. 그런 풍습은 간단히 사라지는게 아니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그런 도쿄하고 대극을 이루는게 쿄토지. 도쿄는 동쪽의 쿄토인걸. 쿄토만큼 일본 전통의 문화, 문명을 존중하는 장소는 없잖아. 그렇게 생각해보면 시골인 도쿄가 이렇게나 이문화, 이문명을 취하고 있는 것도 납득되지 않아?」
「확실히…… 그렇네.」
렌코가 말하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렌코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폼 잡고 있다. 뭔가 짜증난다.
「자 그럼 빨리 비너스 포트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내게 제공하지 않겠니? 우사미 렌코 양.」
「그렇네. 그럼 일단 여기의 유명 스팟을 하나씩 봐볼까.」
렌코가 안내 해준 곳은 방금 전에 들어온 2층 메인 게이트 바로 앞, 제복을 입은 안드로이드가 맞아주는 인포메이션 센터의 옆, 조금 안 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커다란 얼굴.
「히익!?」
부끄럽게도 놀라서 작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무의식적으로 렌코의 팔을 끌어안듯이 달라 붙었다.
「겁쟁이구만 메리는. 진실의 입이야. 몰라? 로마의 휴일에서 본 적 없어?」
「아니 뭐 갑자기 이런걸 보면 놀랄 수밖에 없잖아 보통.」
그 곳에 있던건 커다란 원형 대리석에 파여진 얼굴. 왼쪽 눈에 생긴 틈이 공포감을 부추긴다. 바다의 신 트리톤의 얼굴이다. 여기 있는 건 복제품이지만 로마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만든 복제품이라던가.
「자 메리. 손 좀 넣어봐.」
「뭐엇!?」
렌코의 손이 내 오른손을 꽉 붙잡는다. 진실의 입은 손을 넣은 자에게 거짓된 마음이 있으면 그 손을 손목째 잘라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거짓된 마음 같은건 없는 내겐 이런 거에 떨 필요는 없었다. 나는 렌코의 손을 떨쳐내고 입 안에 손을 넣었다.
「……………….」
「………………메리, 몸무게 몇이야?」
「50……48. 앗.」
함정에 걸려들었다.
「너무해 너무해! 하필이면 그런 질문을! 하필이면 이럴 때에!」
「뭐~ 그 때문에 메리의 손목은 사라졌다면 모를까 제대로 붙어있잖아. 그럼 된거지.」
「그렇긴 한데 그건 결과론이잖아…… 그럼 렌코도 해봐. 마음이 청렴한 렌코라면 아무 일도 없겠지?」
나는 렌코의 오른팔을 붙잡고 그 손을 입 안으로 넣을려고 했다. 그 순간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뇌리를 지나갔다.
「잠깐 메리? 왜 그래?」
「렌……코……? 여기는 숲……?」
가로 질러가는 풍경. 한없이 계속 이어지는 깊은 숲. 흐트러지는 호흡. 폐가 조여와서 아프다. 땅에 자라난 이끼에 걸렸다. 몸이 굴러떨어져 온 몸을 땅에 부딪혔다. 시야가 빨갛게 물든다. 하지만 어둡다. 우리들을 감싸는 완전한 어둠과 등 뒤를 쫓아오는 존재에게서 풍겨오는 썩은내랑 비슷한 냄새. 무서운 양의 요력.
「우웃기지마아아아아아아앗!!」
렌코가 금속 배트를 오른손에 지니고 내 앞에 서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옷. 여기저기가 진흙으로 더럽혀져 있고 항상 쓰고 다니던 모자는 머리에 쓰고 있지 않았다. 렌코가 쳐다보고 있는 건 괴물. 하지만 렌코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야 저건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 우리들이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렌코에게도 저 괴물은 보일 것이다…….
「안 돼! 렌코 도망쳐!!」
필사의 외침에도 렌코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쫓아오는 괴물. 렌코의 다리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
뭐야?
기억나지 않아.
아니 애초에 체험을 하지 않았어?
아니 그러면 아냐.
비명.
나는 그걸 들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렌코는…….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메리!!」
모든게 역방향으로 회전해간다. 마치 단숨에 잡아당겨지는 것 같은 감각. 오감의 전부가 한번에 되감겨 모든게 한 순간 한 순간 주마등이 지나가면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그 사라져가는 광경은 대체…….
「메리, 정신차려!! 왜 그래? 괜찮아!?」
의식이 현실로 끌려 돌아왔다. 걱정해서 바라보고 있는 렌코가 시야에 끝자락에 들어온다. 나는…… 렌코의 오른손을 잡았던 자세 그대로였다.
「어라……? 나는 뭐를……?」
주위를 둘러본다. 진실의 입이 무표정으로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뿐이었다. 현재 위치, 비너스 포트.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괜찮아? 시간의 굴절로 시간의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 아 그러면 불이 껐다 켜져야 했겠네.」
「렌코…… 무사했어?」
「무사했냐니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메리가 갑자기 안 움직이는 상태로 3분 정도 지났다고!」
「……………….」
그럼 그건 꿈? 아니 환각이라고? ……지금이 되어서야 심장의 고동이 빨라졌다는 걸 눈치챘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 몸에 탈력감이 찾아왔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아, 응. 이제 괜찮아. 걱정 끼쳐서 미안.」
「너무 걱정 끼치게 하지 말아줘. 조금 초조해졌으니까 정말…….」
렌코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던 손이 어느샌가 놓쳐있었다.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니 렌코는 나를 선도하듯 불잡으며 걷기 시작했다. 방금 본 광경을 렌코에게 얘기할까 순간 고민했지만 그건 얘기하면 안 될 것이라 깨달았다. 그런건 어떤 것의 인과가 보여준 착각이나 망상이라 결론짓고 바로 잊어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불쾌하다.
내 손을 끌고 렌코는 어디로 갈지 생각했더니 그대로 분수가 있는 천장이 높은 광장에 도착했다. 비너스 포트의 중앙인듯하다. 6 명의 여인상이 지탱하고 있는 분수가 어듬 속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다. 물에 반사 돼 흔들리는 빛이 여신상에 빛의 문양을 그린다.
「아, 분수도 보이는 괜찮은 카페가 있네. 저기 들어가자.」
렌코가 가리킨 곳은 요즘은 보기 힘든 앤틱 카페. 평소 우리가 쿄토에서 자주 다니고 있는 대학 내의 카페와 크게 차이는 없다. 그저…….
「키이치고 마법점. 점, 각종 마법약, 운세 컨트롤, 그 외……. 뭐어!?」
「조금 판타지한 느낌의 가게야. ……아마도.」
창문에서 가게 안을 엿보니 다양한 꽃과 약초, 병에 담겨있는 약 같은 것, 수정 구슬, 천칭, 천문시계가 여기저기에 놓여있다. 정말로 마법 가게를 하고 있다는 분위기지만 제대로 된 커피 머신도 놓여져있고 가게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손님의 모습도 어느정도 보인다.
「사이펀인가…… 뭐 상관없지만…….」
「일단은 들어가자. 메리 커피 마시고 싶다고 했잖아. 휴식도 같이 하고.」
렌코가 카페의 문을 여니 안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오세요.」
카운터의 여성이 말했다. 그녀가 이 가게의 주인이겠지. 금발에 제법 미인이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겨 『미모의 미망인』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나와 렌코는 적당히 창가측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그 곳에서 보이는 분수 광장의 풍경을 훑어보니 하늘의 색이 약간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주문이 결정 되시면 불러주세요.」
주인인 여성은 메뉴판을 2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웃으며 갈색의 가죽 메뉴판의 표지가 제법 낡아보이는데 그렇게 만든건지 아니면 정말로 오래된 건지. 열어보니 그을어서 밤갈색이 된 종이에 깃펜으로 적은듯한 찌그러진 필기체의 문자가 적혀있다.
「으…… 조금 읽기 어려워…….」
「으음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블랜드,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오레, 아이리시, 아메리카노, 프란치스카너야. 케이크는 쇼트케이크, 자허토르테, 카스텔라, 라즈베리 마스카르포네 타르트…… 제법 풍부하네.」
뒷 페이지는 잘 모르겠는 언어로 적혀있다. 혹시 마법약이나 그런게 마법 문자로 적혀있는게 아닐까? 주인을 슬쩍 보니 목에 뭔가 수상한 목걸이를 차고 있다.
「좋아. 그럼 블랜드에 자허토르테로 해야지.」
「그럼…… 프란치스카너랑 라즈베리 마스카르포네 타르트로 할게.」
렌코가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주문을 다 말하니 주문표를 테이블에 1개 놔두고 주인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미인이네. 저 주인장. 하아~ 안드로이드의 붙여넣은 것 같은 미소 이외의 표정은 오랜만에 본 느낌이야. 통곡의 벽…….」
「불쾌한 골짜기겠지. 그나저나 나이가 상상이 안 가네. 어쩌면 진짜로 마법사라서 불로불사인 거 아냐?」
「……설마. 어딘가의 폭신폭신도 아니고……. 있을리 없잖아?」
창 밖은 완전히 새벽의 남색이 되었다. 분수에 비춰지고 있던 등들이 점점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마치 수면을 원하지 않는 것 처럼 밝게 아니……. 그랬었지. 지금은 아직 저녁이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정말 이 장소에 있으면 시간 감각이 이상해지니까 무섭네.」
「그렇네. 무서울 정도로 스카이 퓨처 프로그램이 비추고 있는 하늘이 내 눈을 속이고 있는 것 같아. 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는게 보여. 그 속도는 원래 속도의 12배속 정도.」
「우와~ 그 정도면 기분이 나빠지겠네.」
나는 2시간만에 한 바퀴를 다 도는 시계를 상상했다. 심하지는 않지만 이상한 기분이 든다.
「블랜드와 프란치스카너 나왔습니다. 케이크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커피가 2개. 렌코 앞에는 프란치스카너가, 내 앞에는 블랜드가 놓였다. 주인이 카운터에 돌아가는 걸 보고 서로의 커피를 슬쩍 교환했다.
「어머, 맛있어보이네.」
프란치스카너는 거품이 올라가 있는 커피에 보기에는 카푸치노와 닮았지만 여기에 올려져 있는 건 휘핑 크림이다. 은은하게 달며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는게 내 취향이다.
「그러고보니 프란치스카너라는 맥주도 있었지.」
렌코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커피 컵을 들었다. 렌코의 블랜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다. 아무래도 이 가게의 커피는 블루마운틴(물론 블루마운틴을 재현한 합성 식품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가격으로 블루마운틴을 마실 수 있을리가 없다) 인 것 같은데 그걸 설탕도 우듀도 넣지 않고 블랙으로 마시는 렌코는 커피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으으, 써.」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고 렌코는 바로 각설탕 2개를 커피에 넣어 녹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넣으면 되잖아. 렌코는 커피 본연의 풍미 같은 건 이해 못하니까.」
「잘 모르네. 처음에 블랙을 마시는 걸로 설탕을 몇 개 넣을지, 우유를 넣을지 판단 할 수 있는 거야.」
렌코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랑 할만한 것도 아닌걸 자랑스럽게 얘기 해봤자…….
「자허토르테와 라즈베리 마스카르포네 타르트 나왔습니다. 주문은 이걸로 끝입니까? 그러면 모쪼록 편히 보내주세요.」
테이블에 케이크가 있는 2개의 접시가 놓였다. 렌코의 앞에는 자허토르테가 놓이고 내 앞에는 라즈베리 마스카르포네 타르트가 놓였다. 이번엔 제대로 주문한 사람에게 줬다.
「자허토르테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케이크야. 초콜릿 맛의 버터 케이크를 초콜릿 퐁당으로 코딩한 것. 참고로 이 케이크를 고안해낸 사람은 요리사인 프란츠 자허야. 당시엔 아직 16세 였다고 해.」
「메리,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거야.」
「어라?」
내 앞에 놓여진 라즈베리 마스카르포네 타르트는 이탈리아 산 크림 치즈인 마스카르포네와 라즈베리를 잔뜩 사용한 타르트다. 포크로 잘라 입 안에 넣는다. 달콤짭짜름한 라즈베리에 은은하게 단 맛이 느껴지는 마스카르포네. 맛있다.
「뭔가 오랜만이네. 비봉구락부로써 활동을 신경쓰지 않고 이렇게 카페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도. 생각해보면 언제나 렌코가 소동을 일으키는 걸.」
「내가 생각하기엔 이야깃거리를 가져온다고 보는데…… 어떤 문젠데?」
「귀찮은 일의 원인.」
「아아, 그런…….」
언제나 렌코는 뭔가…… 대부분의 경우 렌코가 안팎 루트라 부르는 자기만의 루트를 통해 소재를 입수해온다. 그 대부분은 렌코의 넓고 옅은 교우 관계다. 인터넷이나 오컬트 서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뒷거래』에서 금품이나 어떨 땐 그 정보의 진상을 교환하기 위해 렌코는 내게 귀찮은 일을 가져온다.
「그런데 금품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보의 진상과 교환은 잘 모르겠네…… 어떤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아무리 조사해도 해결하지 못한 수수께끼를 우리들에게 위탁하는 거지. 우리들은 그 수수께끼를 구명, 해명해내 상대는 그 정보의 진상을 알 수 있는 거야. 그야말로 상호의존 관계이지 않아?」
렌코는 자허토르테 조각을 포크로 찔러서 먹고는 포크를 빙빙 돌려서 원을 만들어가며 말했다.
「그 상호의존 관계에 존재하지 않는 내가 휘말리는 건 신경쓰지 않나보네.」
「존재하지 않을리가 없잖아. 내 판단은 비봉구락부의 전체의 의사인걸?」
터무니 없는 에고이즘이다. 하지만 난 그런 렌코가 좋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비봉구락부의 활동을 즐기고 있다. 렌코가 가져오는 귀찮은 일의 씨앗을 같이 화단에 심어 그 싹이 땅에서 나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들은 비슷하네.」
「나는 메리 같은 기분 나쁜 눈은 가지고 있지 않아. 같은 취급은 하지 말아줄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서로 마치 언쟁을 하는 것 마냥 말을 주고 받지만 우리들의 표정은 즐거워서 웃음을 띄우고 있다.
「……정말 이번엔 좋은 위안 여행이 됐네. 가끔은 이렇게 활동 없이 이거저거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뭐라는 거야. 내일이라도 당장 성묘 아니, 명계 탐방하러 갈 거잖아?」
「굉장해. 정답이야. 빰빠카빰! 역시 메리야. 이젠 완전 일심동체네.」
렌코가 기쁜듯이 말한다. 그래봤자 오늘 갈 예정이었던 성묘가 렌코의 집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취소되서 도쿄 관광을 오늘 한 거니까 자연히 성묘는 내일이 되는 건 당연한거지. 참고로 그 묘는 다마 공동묘지라는 곳이라 한다. 많은 유명인이 매장 되있는 도쿄에서 가장 넓은 묘지라 한다.
「우사미 가는 대대로 다마 공동묘지였으니까 까무러칠 정도로 넓어. 그래도 옛날 사람들이 만든 이상한 묘도 잔뜩 있으니까 제법 즐길 수 있을거야.」
렌코는 자허토르테의 정중앙에서 포크로 2등분 해 커다란 쪽을 내 접시에 자연스럽게 옮겨 담았다.
「묘지에서 즐긴다니 천벌 받을 만한 소리네. ……그래도 그런 장소에선 이러저러한게 보일 것 같으니까 내일도 내일대로 재밌을 것 같아.」
나도 내 타르트를 반으로 갈라 렌코의 접시에 담는다. 싱긋 웃는 렌코에게 나도 미소로 답했다. 별 것 없는 주고받기. 나는 렌코에게 받은 자허토르테를 먹었다. 마치 당연한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우리들은 케이크를 교환했다. 이런 것이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아마 우리들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메리도 귀찮은 일을 즐기고 있잖아. 결국 우리들은 비봉구락부의 멤버네.」
「나도 어렴풋이는 자각은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으면 온 힘을 다해 부정하고 싶어지는데, 같은 비봉구락부의 멤버인 렌코는 왜 그런지 알까나?」
「그런 심리적인 일에 대한 건 메리의 전문 분야잖아?」
렌코가 자기는 모른다는 걸 돌려서 어필해 대화는 일시적으로 중단 됐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완전히 날이 밝아온 비너스 포트. 로마의 거리. 창 밖에서 비치는 아침 해가 테이블 위에 마치 손가락과 같이 긴 커피 컵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정말 모르게 됐다. 이 쇼핑몰 『비너스 포트』라는 가상 공간이 현실 세계라고 착각해버리는 것이다. 손목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간은 오후 5시를 조금 지나있다.
「다른 곳도 둘러보러가자. 덕분에 순조, 쾌조, 절호조야.」
「그렇네…… 그럼 슬슬 가볼까.」
내가 집을려는 것보다 빠르게 렌코가 영수증을 집고서는 카운터로 직행해버렸다. 렌코를 따라가니 주인 여성 분이 나를 슬쩍 본 것이 느껴졌다. 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오랫동안 내게서 눈을 뗄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눈을 떼버릴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무의미하게 그녀와 계속 눈이 마주친 상태로 고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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