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다리 위에 여인이 한명 서있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트렌치 코드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매력적일정도로 붉게 타오르는 빨간 머리는 밤 가로등의 조명을 받아 한층 더 아름답게 보였다. 여인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빠른 중얼거림에 미친 여자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고 제 갈길을 갔다.
"딸아...미안해. 너 또한 이런 운명을 미워할거야. 그리고 이런 운명을 안겨준 나를 원망하게 될거야. 하지만 어쩔수 없단다. 이것은 우리 일족의 숙명...너무나도 괴롭단다. 너를 떠나두고 갈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거같이 아파오고 눈물이 멈추질 않는단다. 하지만 알아주길 바란다. 이 엄마는 너무나도 지쳐서...더 이상 우리 일족의 운명을 받아들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단다...정말 미안하다..."
여인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앗 하는 사이에 난간을 넘어 다리 밑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하고 물이 사방으로 튀기는 차가운 소리만이 다리 밑에서 이 여인의 운명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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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는 어느샌가 사그라들었고 점점 열기또한 식어가 완전한 가을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기온이 되었다. 나무들도 서서히 옷을 갈아입으며 마지막 연회를 즐기고 있었고, 바람은 서늘하게 불며 그동안 아스팔트를 녹일듯 뜨겁게 대지를 달구던 열기를 지나간 여름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아직까지 오후는 따스했지만 밤이 되면 역시 여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늘해지곤 했다. 우리 또한 가을이 됨과 동시에 학교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대단했다. 방학한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개학이라니.
하긴 레이무와 함께 다니며 처리한 요괴를 하루꼴로 세어보아도 방학 가득히 요괴퇴치만 한 꼴이다. 그렇다고 레이무가 공부를 소홀히 한것도 아닌게, 개학일에 학교로 향하며 레이무에게 물어보았더니 방학 과제를 느긋하게 다 끝냈다고 했다. 이쪽은 전날까지 50%도 못끝내서 부랴부랴 밤을 지새우며 숙제를 끝냈건만. 가끔 인간이 아니라 진짜로 요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몸이 된지도 벌써 몇개월째인지,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했었던 남자다웠던 행동이(다리 벌리고 앉기라던가 남자 화장실에 실수로 들어간다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어느샌가 여자의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각이라는게 이렇게 간사하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니 말이다. 사실 앨리스의 취향이 잔뜩 들어가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귀여운 모습이라 가끔씩 거울을 볼때마다 당황하긴 했다. 아마 내가 앨리스의 호문쿨루스에 영혼이 주입되는 일이 없었다면 이 몸도 전투용으로 쓰였을까?
교실 안에서는 아직도 여름방학의 열기가 식지 않은지 간간히 학생들끼리 방학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곤 했다. 아르바이트의 이야기라던가, 단체로 해변에 가서 놀았던 이야기라던가. 저기 저쪽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한 학생을 제외하면 말이다.
"저기 봐. 오늘도 오노즈카는 자고 있네."
"수업시간때도 일어나있는걸 본적이 없어. 도대체 밤에 뭘 하는걸까?"
간간히 오노즈카의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내가 남자였을때부터 오노즈카는 학교 안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아주는 잠꾸러기였다. 그래도 신기한게 학교는 꾸벅꾸벅 지각조차 하지 않고 등교한다는것과 성적또한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안에서 자느라 못한 공부를 밤 세워 학원이나 집에서 공부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어쨋거나 참으로 신묘한 일이였다. 게다가 이런식으로 늘상 늘어지게 잠만 자는것만 빼면 행실도 좋고 사람 성격도 그렇게 나쁘지 않으니 선생들도 이 학생에 대해서는 간단히 주의를 줄 뿐 따로 교무실로 끌려가거나 하는 일 또한 없었다.
"오노즈카"
레이무만 빼고. 언제나 오노즈카만 보면 이를 갈며 반드시 저 잠자는 습관을 고쳐주겠다고 엄포를 놓던 레이무였다. 그건 내가 남자였을때나 여자일때나 변함이 없는 일과중 하나였다. 레이무는 오노즈카의 머리를 책으로 내려쳤다.
오노즈카는 두 눈을 비비고는 레이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핀다. 그리고 다시 잔다.
"자지 말라고! 수업시작이라고!"
레이무가 다시 강하게 교과서로 머리를 내려친다. 세로로.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과 책 모서리가 단단히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오노즈카가 머리를 싸매쥐며 벌떡 일어났다.
"우오오! 아파!!"
잠깐동안 주변을 둘러보다 당초 무슨일인지 알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레이무를 바라보았다.
"수업시간이라고! 어서 잠 깨게 세수나 하고 와!"
오노즈카는 멍하니 레이무를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수업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았거늘 참으로 여유로운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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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치는 오늘도 한결같네"
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레이무가 귀신같은 노기를 띄며 말했다.
"짜증나! 저 녀석 깨우는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 3년동안 다 같은 반일수가 있지?!"
책상을 덜컹거리면서 까지 강한 분노를 띄고 있는 레이무를 보며 나는 그저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책상을 부숴버릴만큼 노기가 달아오를때 나는 레이무를 진정시키려 손을 뻗었다.
"꺄아아아아!"
손이 멈췄다. 아니 이 긴 비명소리에 모든 교실이 조용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것처럼. 지옥같은 침묵이 몇초간 지속되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뭐...뭐야?"
"무슨 일이야?"
하나 둘 웅성거리다 점점 웅성임이 커지며 교실 안에는 불안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레이무 또한 좋지 않은 표정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이 단말마의 비명에 마치 겁에 질린 양떼들처럼 우왕좌왕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한번 가볼게. 같이 갈래?"
레이무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이무의 뒤를 따라 나섰다. 비명이 들린 장소는 우리 교실이 있는 3층의 복도 끝 음악실쪽이였다. 음악실쪽 복도로 향하는 길은 이렇다할 반이나 교실이 없어서 인적이 뜸한데다 최근에 형광등까지 고장나는 바람에 불또한 잘 들어오지 않아 한낮에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음악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쳐오며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건 음악실 문 너머에 있거나 아니면 그저 누군가의 장난일수도 있다는거겠지. 레이무와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음악실의 문을 열었다. 음악실 안은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창문 마다 쳐져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레이무가 커튼을 걷자 주변이 밝게 빛났다.
음악실 벽 한 구석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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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30분 쓴거 치고는 나쁘지 않은 분량이네요. 감동!
간만에 잘써지는거같네요 이 기세로 잘 써질수만 있다면 다행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