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오래 된 이야기지.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카라스 텐구와 백랑 텐구의 싸움은 한창이였으니까 말이야"
천랑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나오는건가. 과거 이야기가.
나는 찢어질거같이 아파오는 배에 힘을 주어 자세를 바로 잡아 몸을 일으켰다. 몸에서 뼛소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문제라면 역시나 배쪽이랄까.
"내 선대가 해주신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종족이였었다고. 하지만 사소한 계기가 발단이 되어 두 텐구는 완전히 갈라서게 됬고...지금은 거의 개별적인 세력이 되어 독립적인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크게는 주로 사용하는 무기부터, 작게는 식습관까지 말이야"
"사소한 계기?"
천랑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머리에 달린 귀가 쫑긋거리며 움직이는것이 상당히 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백랑 텐구의 마을에서 카라스 텐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었다고 들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죽인것이 아니라고 항의했지만 분노에 찬 카라스 텐구들은 듣질 않았었다고 했다. 결국 먼저 무기를 꺼내들고 위해를 가한건...부끄럽지만 우리쪽이였다. 녀석들이 먼저 공격하기 전에 말이 안통하는 답답한 녀석들을 몰아내겠다는 심산이였지."
천랑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선대들의 기대와는 달리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어. 카라스 텐구들은 예상 외로 거세게 저항했었지. 카라스 텐구들은 회계나 작전같이 머리쓰는 일에만 통달해있다고 생각한 선대들의 착각이 컸었어. 별 다른 생각 없이 무턱대고 카라스 텐구들을 잡아 죽이던 선대들의 절반이 카라스 텐구의 저항에 죽어나갔지. 적잖이 당황할수 밖에 없었어"
"결국 텐구 한명이 죽은거로 이런 싸움이 일어났다는거야?"
"그렇다. 두 사이가 좋지 않다보니 이런 일이 불씨가 되어버린거지. 결국 작은 불씨가 큰 산불이 되어 1000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는 끔찍한 화마가 되었다. 이젠 텐구들도 지쳐가고 있어. 그 전에 한쪽이 먼저 쓰러져야해"
"좋게 갈수 있는 방법은 없는거야?"
내가 물었다. 하지만 천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누바시리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 하지만 1000년 이상 지속된 싸움 끝에 결국은 자신이 무엇때문에 칼을 드는지도 잊어버린 채 그저 각자의 원한만이 남아 싸우고 있다. 마치 투귀(鬪鬼)가 붙은것처럼 말이다"
천랑은 좋지 않은 표정이였다. 어쩌면 천랑또한 싸움을 원하지 않는것이 아닐까?
"아까 말했듯이 카라스 텐구와 백랑 텐구는 서로 너무 오랜 세월동안 떨어져 있다보니 서로 다른 요괴라고 불러도 될만큼 다른 생활을 하고 있어.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알고 그것만 노리다보니 결국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져버린거지"
"무기라던가...?"
"그래. 텐구들은 거대한 태도나 박도 또는 나처럼 양손으로 쥐고 사용할수 있는 무기를 선호하는 반면 카라스 텐구같이 날렵한 녀석들은 너가 쓰는 우치가타나나 노다치같은 예리한 무기를 애용하지. 아마 이쪽 텐구들 사이에서도 너는 유별난 녀석 취급 받을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천랑이 문득 창문 너머를 바라보더니 말을 멈췄다. 그러고선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는거야?"
"여기서 너무 시간을 지체시켰다. 호위무사는 그렇게 느긋하지 않거든. 너도 하루라도 빨리 나아서 이누바시리님을 지킬수 있도록 해라"
천랑이 그렇게 말하며 문을 나섰다. 문득 창문을 바라보니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버린걸까? 별로 이야기도 하지 않은거같았지만 말이다. 나는 말없이 욱신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침대에 몸을 바로잡아 누웠다. 숨을 내쉬고 들이쉴때마다 내장이 꿈틀대며 춤을 추는 느낌이였다. 이제와서 느끼는거지만 팔이며 어깨며 허벅지며 안아픈곳이 없었다. 고작 요괴 한놈과 몇합을 주고 받았다고 몸이 축나버리는걸까. 다음 연습때는 좀더 심혈을 기울여서 공격을 흘려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뭐 그래봤자 다음부터는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라고 천랑이 말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천천히 눈이 감겨왔다. 나는 두 눈을 가볍게 감은채로 고통에 끙끙대는 백랑 텐구들의 신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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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구름이 꾸물꾸물거리며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거같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습하다기 보다는 건조했다. 주변에는 이미 무장을 마친 백랑 텐구들이 삼삼오오 조를 짜서 모여있었다. 나는 천랑과 함께 이누바시리의 양 옆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속에서는 항상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나. 부상을 치료하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천랑이 이쪽으로 와서 호위무사의 기본부터 심화까지 정석 그 이상급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에 이미 머리속에 각인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한편으로는 귀찮아서 빨리좀 꺼져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였지만 천랑이 '네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호위무사가 일반 병사보다 빨리 쓰러진다는것은 그만큼 백랑 텐구에 인재가 없다는 뜻으로 녀석들이 알아들을 테니까' 라고 말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들을수 밖에 없었다. 검술같은건 기초가 잡혀있으니 앞으로는 훈련보다는 실전에서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었으니 더 이상 천랑이랑 칼을 맞댈 이유는 없을것이다.
3시간 전에 이누바시리는 카라스 텐구가 자주 발견 된다는 장소로 병력의 일부를 이동시켜 수색을 시켰다. 물론 나와 천랑또한 발에 땀이 차게 돌아다니는 이누바시리의 뒤를 쫒느라 진땀을 뺐다.
3시간 후 일부 백랑 텐구가 모여 이누바시리에게 하나 둘씩 보고를 했지만 별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색을 소홀히 한거같다고 이누바시리가 판단한 모양이다. 이누바시리가 30분간 휴식후 다시 집결하여 수색을 실시하겠다고 말하자 작은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때 수풀이 부스럭 거렸다.
순식간에 모든 텐구가 소리가 들린 방향쪽으로 칼을 뽑고 경계 자세를 취했다. 자세는 조별로 가지각색이였지만 조마다 철저히 연습을 한 결과인것인지 한개의 조의 인원들의 자세는 하나도 다른점이 없었다.
수풀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발걸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자 백랑 텐구들이 긴장한 상태로 검을 꽉 움켜쥐었다. 천랑을 흘끔 쳐다보았다. 천랑은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양손검을 부드럽게 잡고 경계를 취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보았던 그 자세다. 몇번이고 따라해보려 했지만 어째선지 따라하기가 힘든 자세였다. 역시 일본도보다는 저런 서양검같은 모양의 검이 자세를 잡기 쉬운 모양이였다.
"신분을 밝혀라!"
이누바시리가 소리쳤다. 수풀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멈추더니 잠시후 요란한 발걸음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망치는것이 아니였다. 이쪽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수견(搜犬)조의 하나비(花火)입니다!"
수풀속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텐구들이 '헉'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하나비의 몸 이곳 저곳에는 칼로 베어진 상처가 나있었다. 옷은 사방이 피로 얼룩져있었고 머리에 쫑긋 솟아난 귀의 한쪽이 절반즘 잘려나가 머리 또한 피로 젖어있었다.
하나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의 모든 요괴가 백랑 텐구인것을 확인한 하나비는 그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백랑 텐구가 급히 달려가 하나비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하나비는 울음을 멈출 기색이 없었다.
"죄...죄송합니다...! 수견조 하나비를 포함한 13명의 인원...저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모두 카라스 텐구의 습격을 받아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비는 울음으로 말을 더듬는 와중에도 또렷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백랑 텐구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조용!"
이누바시리가 큰 소리로 외치자 백랑 텐구가 일제히 조용해졌다.
"하나비가 도망쳐 오면서 흔적이 남았을수도 있다."
천랑이 중얼거렸다. 내가 의아한듯 바라보자 천랑이 방금전 하나비가 뛰쳐나왔던 수풀을 가리켰다. 수풀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이누바시리님! 녀석들이 하나비의 혈흔을 보고 역으로 추적해올수도 있습니다! 어서 퇴각을 해야합니다!"
"맞는 말이다. 서둘러서 이곳을 떠난다!"
이누바시리가 큰 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하나비는 눈물이 젖은 눈으로 아직도 아무것도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건지 전혀 알수 없다는 표정이였다.
하나비의 옷에 붉은 피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어깨부터 가슴 한복판까지 기다란 상처가 나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멈춘 칼날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쑥 빠져나왔다. 하나비의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뒷쪽에서 카라스 텐구가 튀어나와 배를 갈랐다. 하나비는 배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어어...?"
잘려나간 뱃가죽 사이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비는 울먹이며 쏟아져나온 내장을 움켜쥐려 했지만 피에 젖은 내장이 미끌거리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갔다.
"안돼...안돼...어째서...?"
그때 하나비의 등 뒤에서 카라스 텐구가 튀어나와 키다란 칼로 하나비의 목을 꿰뚫었다. 뼈가 쪼개지고 살을 파고드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적어도 5척은 되어보이는 기다란 칼이 하나비의 목 뒷쪽을 시작으로 척추를 완전히 꿰뚫어버렸다.
카라스 텐구가 있는 힘껏 칼을 뽑자 마치 스프링 인형이 튀어나오듯 하나비의 몸이 펄쩍 튀어오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하나비는 죽어가면서 까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였다.
"여기있었네. 빌어먹을 백랑 텐구놈들. 어쩐지 우리 주변에 왠 찌끄레기가 기어다닌다 했지"
카라스 텐구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백랑 텐구들을 둘러보았다. 어느샌가 주변에는 수많은 카라스 텐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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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5척은 약 150cm
본격적으로 칼부림을 하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얍얍 챙챙 하고 끝내고 싶은데 그건 너무 성의 없는거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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