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명작이자 그녀의 작품 중에서는 꽤 이질적인 편에 속하는 작품,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스릴러 추격극을 다룬 사회파 미스터리, <스나크 사냥>을 읽었습니다. 역시 미미 여사 작품답게 무지하게 흡인력 좋더군요.
그런데 이 작품...1992년작이거든요?;; 그래서 시대상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휴대전화가 없어요!!
-'예전에 이런 느낌의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하고 예전 신문들을 일일이 차례차례 뒤지느라 시간을 상당히 쓰는 장면. 요즘 같으면 그냥 인터넷 검색 하면 장땡이죠.(...) 그나마도 스마트폰 없던 시대라면 컴퓨터를 켜야 하고, 만약 주변에 컴이 없는 환경이라면 PC방을 찾아 헤맸겠지만 스마트폰 보급 이후에는;; 이하 생략.
-상황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는데 연락을 취할 수단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장면. (그러고보니 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가 있었을 때, 마침 그날 소풍을 떠난 어느 중학교가 사고 현장 근처를 지났기에 아들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던 학부모들이 소풍장소인 '화원유원지'로 울며 찾아와 아들을 찾았었다고 하죠. 다행히 다들 무사했지만, 요즘 같으면 그냥 전화만 했으면 다 해결됐을 일;; 93년 서해훼리호 참사 때도 통신기기라고는 배 통신실에 있는 유선전화기밖에 없었는데, 침수로 전기가 끊겨 먹통이 되면서 그냥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밖에-몇몇 운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없었다고...세월호 때는 휴대전화가 있었기에 승객이 제일 먼저 신고한 것과는 대조적이네요. 이렇게 보면 휴대전화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당장 다치거나 죽을 판인데 공중전화를 찾아야 한다면 어떻게 도움을 받겠어요;; 아, 그리고 세월호 때는 스마트폰 시대였기에, 그날 소풍을 떠났던 희생자 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여객선 침몰 소식을 아침부터 알 수 있었다고 하죠ㅡ학교에 있었으면 교실 컴퓨터로 알 수도 있었겠지만 야외에 있으면 아예 인터넷과 연결될 방법이 끊기니까요. 하물며 소풍 중이라면ㅡ.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서 나오는 이야기.)
-특히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연락을 취하고 싶으니까 휴게소에 들르자'라는 대화가 나오는 부분은 정말;; 우와! 그랬겠네요?;; 공중전화가 휴게소에 있으니까!;; 카폰이 조금씩 나오던 시대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시대 사람들에겐 차를 타면서 전화를 한다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던 거예요. 으아~(물론 휴대전화가 보급되자 운전 중 통화로 문제가 일어나거나 사고가 터지는 일도 새로 생겨났습니다만.)
와~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에요! 으아, 불편했겠다ㅠㅠ
역시 과거의 생활상을 아는 데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는 게 훨씬 공감과 이해에 도움이 되나 봅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기전체를 도입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아는 데 큰 도움을 주고, 매우 시시콜콜한 정보도 역사 연구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군요. 흠흠.
그러고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분신>에서도 비슷한 묘사가 나왔죠. 이것도 95년엔가에 나왔는데, 호텔을 잡고 방에 있는 전화로 연락을 한다든가 전화가 있는 찻집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그래서 전화 없는 찻집은 안됨!) 그걸로 연락을 한다든가 하는 묘사가 신선했던 기억이 나네요. 옛날 사람들은 만남의 장소를 세세히 정해놓고 옷까지 정해놓아야 약속과 상봉(..)이 가능했다고 그러던데. 요즘 같으면 전화와 카톡으로 하면 그만.
하긴 저만 해도 맛폰을 사기 전과 후의 생활이 꽤 달라졌죠. 귀가길에 도서관에 들르려고 할 때 빌리려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 실제로 가봐야 알 수 있던 것과 달리, 가는 길에 검색해보고 '아, 대출 중이구나. 그냥 집으로 직행해야지'가 가능해지고, 책 읽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들고(..)
아, 어딜 찾아갈 때도 예전 같으면 전날 밤에 미리 조사해서 적어두든 뽑아두든 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대충만 조사한 다음에 가는 길에 폰을 켜보면 됨. 최단시간으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 정보를 제공하는 네이버 길찾기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더 쉬워졌죠!;;
......그런데 핸드폰이 발명되면서 오히려 각종 이야기꾼들은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전화 한 번, 문자 한 통이면 다 해결되는 상황을 어떻게 어렵게 만들어야 하나 하고 말이죠, 하하하;; [리뷰]'너의 이름은.', 흔한 재료로 만들어 낸 훌륭한 칵테일 이 기사를 인용하자면(* 스포가 많이 있습니다. 안 보신 분들은 클릭하지 않길 권함),
[휴대전화, 특히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바뀌었다. 그리고 그 바뀐 세상에서 대중들을 위한 작품과 상품도 변해야만 했다.
스릴러부터 로맨스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휴대 전화가 대중화된 초창기에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못 쓰게 할지 각본을 짜는 것부터 골몰해야 했다는 업계의 볼멘소리가 나오곤 했다.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아예 휴대 전화가 나오기 전 시대를 무대로 하거나 장르에 따라서는 전파가 차단된 패닉룸을 무대로 한 영화도 있었다.
로맨스 드라마의 경우 특히 문제였다. 이 장르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간을 무대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작품속에서 전화 한 번, 톡 한 번이면 쉽게 해결될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 관객이 민감하게 반응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허허허(...)
그리고 이제는 각종 작품에서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예 성립이 안 되는 이야기 전개가 수없이 등장하고 있네요. 뭐, 그걸 쓰는 작가들부터가 휴대전화가 당연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으니... 바로 이 <너의 이름은.>이라든가. 다시 위 기사를 인용할게요.
[서로 몸이 바뀐 타키와 미츠하가 큰탈없이 일상생활을 수행하는데 있어 관객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스마트폰의 역할이 컸다. 친구들과의 톡으로 인간관계를 유추하고 알바 시간은 스케쥴러가 알려준다. 몸이 바뀐 동안 있었던 일들은 그간 찍은 사진들과 스마트폰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뒤바뀐 채로도 서로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점, 그리고 이것이 관객에게 설득이 된 점은 펜과 종이 밖에 없는 세상에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가는데 성공한 것은 건축을 지망한 그림 실력과 라멘가게에서의 우연도 있었지만, 사당에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의 GPS와 지도 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0대를 주인공으로 스마트폰 없이 같은 수준의 설득력을 갖춘 각본을 쓰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기연과 우연이 쏟아졌어야 할지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프다. 그 상황이었다면 타키에겐 입시를 위한 국토대장정 마니아라는 설정이 붙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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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 무렵에는 이미 핸드폰이 당연한 세상이었거든요, 제겐. 하하;; 그리고 그런 시대를 살다보니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 17.04.02 0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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