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막 다 읽었습니다.
반드시 읽어야할 한국젊은 작가들을 추천받으면 장강명이 항상 껴 있어 언제부턴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작가였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이번, 전국일주 동안 읽으려고 샀던 책이었지만, 이제서야 다 읽게 되었네요. 반성해야겠습니다.
장강명의『표백』을 원래 읽고 싶었지만 당시 포항의 서점에는 없어 이 작품을 골랐습니다.
감상을 굳이 쓰는 것보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평이 제 마음에 들어 한 번 옮겨 봅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소설을 분절하는 소설 속 세개의 표제
'패턴/시작/표절'의 형식에서 알 수 있듯이 세 가닥의 이야기가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일진으로부터 놀림을 받다가 엉겁결에 그 아이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된 남자,
그 남자의 과거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응모작을 읽고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자, 그리고 그 남자의 칼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여자 등
이 소설은 제각기 다른 관점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 인물의 서사를 정교하게 뒤섞어놓는다.
구상이 절묘하고 거침이 없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문장 역시 간결하고 정확하다.
특히 빼곡하게 들어찬 지문 대신, 가급적 따옴표 없는 대사로 서사를 진행함으로써
시각적 쾌감과 가독성을 높이고 있는 점은 이즈음의 독서 인구 하락세를 생각하면
영리한 방책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나로선 바로 이 부분이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잘 짜여진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야기의 진성성이랄까, 미묘한 질감이라고 할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감각이라고 할까, 소설만이 지니고 있는 어떤 매력이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일본풍의 만화영화를 보고 났을 때 종종 만나게 되는 어떤 인공의 느낌.
그것은 장르 감각이라고 해도 좋고 세대 감각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로선 이 소설의 작위성에
유혹되기 쉽지 않았다.
장강명의 문체는 굉장히 간결합니다. 제 사견으로는 심하다싶을 정도로 간결합니다.
어느정도로 간결하냐면, 분명 현실의 모습을 자료조사하고 그것을 옮겨 놓았는데도
현실적인 공간처럼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예전부터 현대한국문학을 읽으며 느꼈던 것인데, 현대한국문학에서는 급속도로
사진적현실주의적인 모습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만화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극화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점점 단순해져가고, 현실성에서 벗어나고, 캐릭터와 그 내면에만 집중해가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간결은 이러한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좋지만
요새 들어서 너무 남발하는 경우가 많아보입니다. 그래서 문장들이 너무 가벼워 보여요.
그래서 이상하게도 현대사회의 부조리에 말하면서도, 그것들을 말하는 문장들이 너무 간결해
마치 우화같이 유치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게 일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소설적인 면은 차치하고서라도, 요새 한국소설들은 너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그 영향에 벗어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무거운 문장같은 것도 참 좋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