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크라넬 소년의 사건부
"심해....."
그것을 본 모험자들이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다.
주위 일대에 낭자한 것은 검붉은 도료. 그 중심에서 인형처럼 널브러져 있는
것은 한 구의 시신. 무참히 찢어진--아니 분별없이 난자된, 동업자의 시체였다.
눈앞의 광겅에 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이, 정말로.....?"
소란을 듣던 모험자들 중에서, 한걸음 늦게 온 엘프들이 미간에 주름을 새기며
신음 소리를 냈다.
장소는 던전 18계층.
원정중에 [하층]에서 [강화종]과 [이상사태]를 겪던 우리들,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파벌 연합]은 간신히 이를 극복하고 부상자 치료를 위해 이곳 안전계층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도중까지 [모디 파밀리아]의 루비스씨들과 [마그니 파밀리아]의 도르무르씨들과
함께 좀 전까지 무사를 자축하고 연회에서도 열기로 뜨거웠던 것이었다.
그것이, 나타난 한구의 시체로 반전됐다.
"과연...분명히 [살인]이다. 몬스터의 소행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리빌라 거리]의 바깥, 한 늪지대에 떠오르는 거대한 [섬]의 자락에 모인
모험자등리 술렁거리는 한편, 역참거리의 두목, 보루스씨는 시신을 곁에서
내려다보고 혀를 끌끌찬다.
그의 말대로 시신에 새겨진 것은 괴물의 마수에서 있을 수 없는 예리한 상처,
모험자의 무구로 새겨진 것이었다.
치명상은 아마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목의 관통상.
슴격의 강도를 말해주듯 시체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뼈를 분쇄하고, 손발을 부러뜨린 둔기의 흔적도 보인다.
핏발선 두 눈은 부릅뜨고 있으며...마치 두려운 [무언가]와 조우하고,
어찌할 바 없이 참살된 듯 했다.
"우우....."
"보지마십시오, 하루히메공..."
입가를 누르던 하루히메씨의 어깨를 안고서, 미코토씨가 그녀의 시선을
시체에서 가로막았다.
소란을 듣고 모인 군중들 틈에서, 릴리와 아이샤씨는 험악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근처에는 입을 다문 오우카씨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다프네씨,
누구보다 하얗게 질려있는 것은 힐러 카산드라씨였다.
"어이, 벨. 괜찮아?"
"....."
벨프가 걱정하듯, 말한다.
나는 그것에 답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모험자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가슴이, 몹시 고동치고 있었다.
물론, 이는 동요이다. 보고있는 동업자의 시신은, 사람의 [죽음]은, 내 마음과
몸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그 동요와 비슷한 [위기]가, 뺨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질풍]이야! 질풍이 나타났어! 질풍이 이것을....!"
그 말에, 퍼뜩하고.
그렇다, 지금도 모험자들을 발칵 뒤집고 있는 것은, 다름없이 [질풍]이라는 단어였다.
"후드를 뒤집어쓴 엘프가...쟝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달아나는걸 봤다고!"
시체의 첫 발견자인 거리의 주민, 웨어울프 남성이 큰소리로 외친다.
죽은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 보루스씨 및 다른 모험자들의 시선을 끈, 그는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전에도 [질풍]을 본적이 있어, 괴물같이 강한 [아스트레아 파밀리아]사람들
속에서, 계속 얼굴을 가리던 엘프...복면 속에서 봤어, 그 하늘색 눈동자....
오늘 본 것과 같았어!"
그 장담에, 순간적으로 [기다리세요] 하고 말하려 하지만,
"그러고 보니...나도 망토로 몸을 숨긴 녀석이 대초원으로 달려가는 걸 봤어"
"아, 나도야! 그대로 중앙수...아래 계층으로 들어가고 있었어"
차례대로 나오는 목격 증언에 의해서, 내 말은 나갈 차례를 잃어버렸다.
전망좋은 벼랑에 구축된 역참지 안에서, 여럿의 모험자가 [질풍]으로 보이는
사람을 목격했다.
나 이외에도, 류시의 내력을 아는 릴리, 벨프, 미코토시, 하루히메씨의 표정이
굳어지려 했다.
그리고 아이샤씨는, 왠지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질풍리온]은 5년전에 죽었다고? 설령 살아 있었다고 해도,
어째서 이제와서 말썽을 부린 것입니까?"
류씨의 싸움에 매료된 한 사람인, 미코토씨가 결심하고 의문을 던지자.
".....소문으로 들었는데, [길드]와 [로키 파밀리아]가 곧 대규모 작전을
펼칠 것 같아. 뭐냐, 어둠파벌의 잔당들이 숨어있던, 거처를 발견했다고."
보루스씨가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보루스씨의 말에는 짐작이 있었다.
[인조미궁 크노소스]
비네들 [이단아]를 잡고 있던 포악한 수렵자가 근거지로 삼던 [악]의 소굴,
[악]의 온상.
5년 전까지만 해도 오라리오에 팽배하던 [악]과, 정의의 파벌의 일원이던
류씨는 확실하게 인연이 있다. 다름아닌 이 18계층에서, 나는 그녀 본인의 입에서
그렇게 들었다.
"만약 이번 [길드]의 작전을 이용해서, 살아있던 [질풍]이 다시 움직인다고 하면....
앞뒤는 맞을지도..."
".....!"
"[질풍]은 파벌을 부서트린 원한을 갖고, 냄새가 나는 놈들을 문답무용으로 날려버린
이력이 있는 모험자야. 검다고 판단되는 녀석들은 몰살.....그 중에는 상인, 길드직원도
포함되어 있다."
보루스씨는 팔짱을 끼면서 주위의 모험자들을 둘러보았다.
"이 거리의 거주자에,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니, 오히려
구린놈들 밖에 없지. 관리기관의 단속에 지상에서 살기 어려워서 할 수 없이
우리는 이런 던전 속에서 [불량배들의 거리]를 하는 거니까 말이야."
[길드]의 눈이 닿기 어려운 [리빌라 거리]는 모험자를 상대로 터무니 없는 장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뒷시장의 측면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님들의 신혈을 재료로 한 [개정약] 이라는 희소한 도구 및, 비합법적인 물건이 거래되고
있다고. 물론 그것은 한없이 검정에 가까운 회색이다.
계층의 공략을 위해 들른, 우리같은 모험자는 그렇다 쳐도, 이 거리의 주민들은 한결같이
그런 아슬아슬한 악행에 손을 대고 있다.
보루스씨의 말에 찔렸는지,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리빌라 거리]의 주민들이 움찔 어깨를
흔들었다.
"[질풍]은 우리들을, 거기에 나뒹굴고 있는 쟝을, 어둠이라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어이,농담하지마, 보루스! 분명 꺼림칙한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해왔는데
의심이란 이유만으로 죽은걸 넘어가라고?"
"그래, 아무렴 우리들도 어둠파벌과 연관은 없다고!"
수인 여관주인이, 아마조네스의 상인이 노성과도 비슷한 비명을 올린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주민들도 떠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흥분이, 아니 [질풍]에 대한 분노가 커진다.
"보루스, 이렇게 넘어갈 거냐!"
직후 날아든 그 호소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쟝이, 거리의 동포가 이유도 모르고 살해당했다! 비록 [불량배들의 거리]라 해도 의리를
내새울 이유는 있을 것이다!"
"누우웃..."
같은 거리주민의, 낯익은 사람을 잃은 분노ㅗ 탓인지, 첫 발견자인 웨어울프가 얼굴을 붉히며
떠들어댔다. 그 열기가 점점 주위에 전파되는 가운데, 굵은 팔짱을 끼고 있던 보루스씨는
어렵게 목소리를 냈다.
"너의 주장은 당연하지만....나는 내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 말그대로 다른 모험자따위 알 바 아니다.
[질풍]은 요주의 인물 목록에 오를정도의 수배자 이다. LV.4의 괴물을 쫒는 짓따위...."
"수배자라 해도 생각났는데, [질풍]은 고액 현상범이었지? 일부 상인이 내걸은 현상금, 아직 살아있지 않아?"
"아, 참. 확실히 상금은....8000만 발리스!"
"그럼 당장, 토벌대를 짜서!!"
부하의 말소리를 들은, 보루스씨는 힘껏 팔을 들어올렸다.
"거리의 동료의 원수는 우리가 갚는다! [질풍]의 목은 누구에게도 안넘긴다!
그리고 현상금은 우리들의 것이다아!!"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분명히 사욕에 사로잡힌 보루스씨의 눈속이, 발리스 금화가 되어있었다.
나는 낯빛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터진 호령에 드디어 초조함을 품었다.
벨프와 미코토씨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모인 모험자들의 속셈은 저것, 혈기 왕성하게 외치고 있었다.
많은 증언에 의해, 가장 유력한 것은 [질풍].
안타깝게도 그것은 분명했다.
보루스씨의 이야기를 듣고, 짐작이 가는것도 나를 헷갈리게 하는 요인이었다.
분명 류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격정의 말을 듣고 설욕을 했다.]
[그것은 이제 정의라 부를 수 없다.]
용서받지 못할 [악]을 알아차렸을 때, 만약 류씨의 비정하다는 이름의 복수심이 살아났다면....
동기를 확실히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이런짓을 한 것이 류씨....'
떠오르는 것은, 선혈과 시체 더미 속에서 서있는 한 엘프.
무자비한 눈빛을 품고, 검은 격정에 사로잡힌 냉혹한 요정의 모습.
뇌리에 스친 그런 싫은 광경을 나는 곧바로 날려버렸다.
"기다리세요!"
이번에는 한 그 말에, 모두가 나를 돌아본다.
그 사람이, 류씨가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적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나만은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공허함과 안타까움이 동거한 그 눈빛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질풍]의 소행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습니까?"
"무슨소리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게다가, 궁금한 것도 있다.
대들어 오는 웨어울프 모험자에게, 나는 정면으로 대치했다.
"왜 [질풍]이라고 생각하셨죠?"
"그러니까 말했잖아! 나는 [질풍]을 본 적이 있어! 쟝을 죽인 범인은, 전에 봤던 그거랑 같았다고!"
"당신은, 이 [리빌라거리]에 얼마나 있었나요?"
열변하던 상대방은 갑자기 기묘한 질문을 해온 나에게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이미 몇년 전부터라고! 너는 모르겠지만, 거리에서는 몇번이고 마주쳤다고,
슈-퍼-루-키 씨!"
"그렇다면, 당신은 네달 전 그 사건때도 있었군요?"
"그러니까, 그게 어쨋다고!"
그래, 궁금한 게 있다. 아니, 지금의 말을 듣고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상하다.
정확히는 삼개월 반 전의 사건---[칠흑의 골라이아스]가 출현한 그 때,
우리와 함께 있던 류 씨는 거리의 주민들과 공동 투쟁하고 있었다.
사전에 있었다고 확실히 말하는 이 사람이, 당시 류씨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계층속에서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모험자를 외우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류씨는, 아스피씨와 함께 계속 계층주를 짓누르고,
단연 강력한 [마법]을 쳐박고 있었다.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누구도 고발하지 않았을 간으성은 있다.
하지만 사건 이후 류씨의 신상이 걸리지 않았고, 보루스씨들의 지금 모습을 보면, [질풍]이
18계층에서 함께 싸운 모험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류씨의 변장이 완벽했다고 해도, 그토록 화려하게 싸울때는 모르고, 정보가 한정된
이 상황에서는 알 수 있다니, 정말일까?
가능하다면, 의심은 없다.
의심은 없지만......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험악한 눈길로 듣고있는 웨어울프 남성을 흘겨보았다.
이 사람은, [질풍]을 모른다.
모험자의 직감 같은것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래빗풋]은, 범인은 [질풍]이 아니라고 말하는거야?"
주위에서, 많은 모험자들이 수상쩍은 눈을 돌리고 있었다.
같은 거리의 거주자인 웨어울프 남성을 믿고 있는지, 나에게 회의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다가온 보루스씨도 마찬가지였다.
현상범인 [질풍]과, 거리 주민의 설명.
어느 쪽을 믿을지는 분명하다. 요주의 인물 목록의 [질풍]을 감싸는 나에게 아군은 없다.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말해라.
사방을 둘러싼 수많은 눈이 그렇게 말했다.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류씨는 이런 짓을 하지않는다. 그렇게 믿는다.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질풍]은..."
"잠깐"
그런 나를, 옆에서 뻗은 아이샤씨의 손이 가로막는다.
"앗....!?"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군, 계속 얘기해라"
나와 뒤바뀌게 앞에 나온 아이샤씨가, 가슴아래에서 팔짱을 끼면서 주위를 재촉한다.
강조되는 풍만한 가슴과 깊은 골짜기, 싱싱한 입술에 떠오르는 요염한 미소에,
보루스씨들, 남자들은 금세 코 밑을 늘렸다.
여성들의 혐오의 시선과, 혀 차는 소리에 번쩍.
일부러 헛기침을 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화를 재개한다.
나의 건은 잊은 듯.
난폭한 남자들의 대응에 새삼 익숙한 듯한 아이샤씨는 말 없이 턱을 치켜든다.
이곳을 떠나자는 신호였는데, 왜 그만둔 거냐고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샤에게 따지자, 살짝 오른쪽 어깨를 붙잡는다.
"침착해라, 벨"
"벨프....."
벨프도 타이른다. 머리 하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형의 눈동자에, 나는 입을 다물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가 전부 모이고, [질풍]의 토벌을 논의하는
보루스씨들의 곁에서 떨어진다.
"뭐하고 있어, 리더"
충분히 멀어진 뒤, 아이샤씨는 입을 열고 그렇게 말해왔다.
"지금, 그 여자를 감싸는 건 좋을게 없어"
"릴리도 동감입니다.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다른 분들의 반감을 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아이샤씨, 릴리, 하지만....!"
"잘못하면, 릴리들도 사건에 관계된 것이 아닌가 의심받습니다"
"!"
릴리에게 거기까지 듣고, 어깨를 흔든다.
류씨를 생각하다가, 그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샤씨의 말대로, 파티의 리더 실격이다.
그 사람을 감싸면서, 더 차분하게 대처해야 했다.
하마터면 벨프들도 한꺼번에 휘말릴 뻔했다. 자신의 칠칠치 못함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쳇, 약간은 성장했다 생각했는데, 역시 넌 [애송이]그대로구나"
"죄송합니다...."
땅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떨구며 사과하자...아이샤씨는 거기서 웃었다.
"뭐, 그래도 좋지 않을까? 너의 근본은, 그것대로"
"네?"
"[파밀리아]도 아닌 동료때문에 뜨거워질 수 있는....다른 사람은 너의 그런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뭐, 나는 절대로 아니지만"
그리고, 퍼뜩.
주위를 둘러보자, 싱글벙글한 하루히메씨와 미코토씨, 눈을 감고 입술을 굽힌 오우카씨,
어깨를 움츠린 다프네씨,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카산드라씨가 있었다.
그리고 릴리와 벨프도, 씨익 확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지, 그 올곧은 엘프가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겠다."
마지막으로 아이샤씨는 입술을 끌어올리고, 전혀 닮지 않은 목소리로 흉내를 냈다.
"[당신의 그것은 미덕입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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