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왕이 하는 일! 7권 및 이전 권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권수로는 7권, 햇수로는 벌써 4년째를 맞이한 <용왕이 하는 일!> 시리즈입니다.
현실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꾸준하게 흘러갔던 작중의 달력도 어느덧 한 바퀴째를 맞이했습니다.
1권은 (일본 기준으로) 새로운 기(期)가 시작되기 직전인 3월
2권과 3권은 순위전 시작을 앞둔 4, 5월
4권은 마이나비 여자오픈 예선이 열리는 7월
5권은 용왕전이 시작되는 10월
6권은 신년를 맞이하는 1월
그리고 이번 7권은 다시 3월이 돌아왔습니다. 다만 그 시간적 배경에 담긴 의미는 1권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1권이 3월이 '새로운 출발을 앞둔 시기'였다면, 7권의 3월은 '끝을 맞이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프로기사로서의 목숨이 걸린 리그, 바로 순위전이 끝나는 시기입니다.
7권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키요타키 일문의 축하회에서 시작됩니다.
용왕전 방어 성공의 기세를 타고 연승을 쌓으며 승승장구하는 야이치
천고의 노력 끝에 여류기사의 꿈을 이룬 케이카
마찬가지로 초등학생 여류기사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두 명의 아이
그리고 장기계 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3단에 오른 긴코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것 같은 동문 일동을 축하하는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야이치의 별 생각 없는 한 마디가 파란을 부르고 맙니다.
때때로 기행을 벌이기는 하지만 제자들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지한 키요타키 스승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키요타키 9단에게 2년 연속 강등점의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현재 키요타키 9단은 B급2조. 여기서 강등되면 C급1조로 내려가게 됩니다.
한편 야이치는 C급2조에서 연승을 쌓은 덕분에 C급1조로 승급 기회가 찾아온 상태.
제자에게 따라잡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키요타키 9단은 스승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C급으로 강등된다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하고 맙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키요타키 9단 같은 옛날 세대 기사들에게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미 프로기사들조차 너도 나도 컴퓨터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새로운 수를 찾아내고 연구하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밖에 알지 못하는데다, 나이 때문에 체력도 수읽기도 서서히 쇠퇴하는 키요타키 9단으로서는 최신 전법을 쫓아가기조차 벅찬 상황이죠.
과연 키요타키 스승의 운명은? 이대로 주저앉은 채 은퇴해버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고집을 꺾고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발버둥칠 것인가?
<용왕이 하는 일!> 7권은 대체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언제까지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던 나날이 끝나고, 예전보다 확연하게 퇴보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때.
지금까지 내가 쌓아왔던 것들이 그저 과거의 영광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권위에 의존하는 '꼰대'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이를 먹은 사람일수록 절실하게 다가올 내용들을 7권은 가차없이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재미없거나 지루해서가 아니라 구구절절 너무나도 괴로워서 읽는 게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마지막의 카타르시스는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결코 기적적인 행운도, 낙관적인 미래도 없지만, 그 메시지 안에는 값싼 대리만족 이상의 희망이 담겨있으니까요.
3권에서도 이미 야이치가 말한 적이 있었죠.
살아가는 한, 안주할 땅도 골인 지점도 없다고, 끊임없이 싸워나갈 수밖에 없다고.
7권의 또다른 주제는 6권에서도 비중있게 나왔던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체스나 바둑, 장기 같은 반상게임에서 인공지능의 성능은 이미 인간을 뛰어넘은지 오래입니다.
그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재작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었고요.
장기계에서도 작년 장기 소프트 포난자가 사토 아마히코 명인 상대로 2승0패를 거두며 반상게임에서 인공지능의 우위를 재확인했죠.
인공지능이 프로기사가 상대로 승리한 적은 과거에도 몇 번 있었지만, 장기계의 상징인 명인을 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 7권 작중에서도 그 절대적인 명인보다 인공지능이 더 강할 거라고 공언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강하다면, 과연 인간이 장기를 두는 의미는 있는 건가?
설령 인공지능 상대로 인간이 어쩌다 이겼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스포츠물에서는 으레 그 누구도 이기기는커녕 대등한 위치에 설 수조차 없는 절대적인 챔피언이 등장해서
열혈과 근성으로 무장한 주인공이 동료들의 격려와 히로인의 사랑(특히 중요)에 힘입어 도전하는 내용이 클리셰처럼 나옵니다.
<용왕이 하는 일!> 5권도 예외없이 그런 이야기였고요.
하지만 절대적인 챔피언보다 인공지능이 더 강해져버린, 특이점이 지나가버린 지금 시대에 저 클리셰는 이미 통용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 클리셰 대신 마음이 없는 컴퓨터 상대로 주인공이 인간의 저력과 근성을 보여주며 승리하는 이야기가 필요한가?
계산하는 것이 곧 정체성인 컴퓨터보다 계산이 빠르다는 게 기인열전에 수록될 자격이 있을지언정 스포츠물로서는 어떨까?
7권은 이런 현시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고민에서 나온, '특이점 이후'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서 그 해답이 얼마나 오랫동안 생명력을 지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그 이상 없을 정도로 완성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묵직한 주제를 두 가지나 다루고 있는 권이지만 서비스씬은 변함없이 알찹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의 아유무와 샤칸도 여류명적의 알콩달콩한 사제 콤비가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이 둘은 야이치와 아이의 미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긴코를 응원하고 있지만.
순조롭게 승리를 거듭하며 마이나비 결승까지 진출한 야샤진 아이를 스승으로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야이치의 모습도 좋았고요.
대국을 끝내고 인터뷰가 올지도 모르니 마음의 대비를 해두라는 조언은 소소하긴 해도 타이틀 보유자 직함이 겉멋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야샤진 아이는 이대로 결승전도 이겨서 긴코와 여왕 타이틀을 놓고 동문대결을 펼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야이치로서는 어느 쪽을 응원할지 난감한, 3권의 수라장이 재현될지도 모르겠네요.
반면 히나츠루 아이 쪽은 이번 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합니다. 제자로서는 야샤진 아이에게, 히로인으로서는 긴코에게 밀리는 느낌.
5권에서 혼자 좋은 위치를 독차지했던 반동일까요? 아니면 단지 힘을 비축하는 중일까요. 그냥 이대로 긴코한테 히로인 자리 양보해주면 좋겠는데(희망사항)
또 이번 권에서는 6권에 조금씩 스쳐지나갔던 장려회 3단들도 본격적으로 비중있게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초등학생 최연소 3단으로 승단한 쿠누기 쇼타...가 아니라 소타 군. 거의 서브히로인급 비중을 자랑합니다.
최연장자에 연령제한을 앞둔 카가미즈 3단. 알고보니 의외의 캐릭터였네요. 살짝 깨기도 하지만.
여기다 이번 권에서는 등장이 없었지만 6권에서 악역스러운 포지션으로 나왔던 카라코 쇼지 3단까지.
긴코를 응원하는 저로서는 이들과 본격적으로 맞붙게 될 3단 리그가 기대되기는 한편 걱정되기도 합니다.
프로가 될 수 있는 건 오직 단 두 명 뿐. 과연 긴코는 그 지옥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쓰고 보니 어째 죄다 긴코 이야기로 흘러가네요.
그렇게 7권은 끝나고, 작중은 이제 4월을 맞이합니다.
많은 것들이 시작되는 계절이 찾아옵니다.
산성앵화전이 시작되고, 여왕전이 시작되고, 3단 리그가 시작됩니다.
이들을 무대로 다음 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마지막으로, 7권의 재미 50% 이상을 날려먹을 수 있는 초중대 스포일러 하나.
아마존 리뷰를 읽다가 이걸 스포일당하는 바람에 얼마나 좌절했는지...
대류...긴코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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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 18.01.24 2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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