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개인적은 추측글로, 주관적인 시선이 담겨있는 글이라는 점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청춘의 하치유이를 보면
초반에는 유이쪽에서 상당히 적극적이고, 하치만쪽은 소극적이고 수동적,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죠.
4권 中
"우움~ (생일)파티가 싫음, 다 함께 놀러 가는 건 어때?"
"다 함께라니, 누구 말이야?"
참가 멤버를 미리 체크해두지 않으면 골치 아픈 사태가 벌어진다.
특히 입학한 지 얼마 안됐을 때는 비교적 친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같이 놀자길래 가봤더니 모르는 놈들만 가득한 경우도 있다.
게다가 입학 후 첫 이벤트인 만큼 거기서 서먹하게 굴었다간 얄짤없이 외톨이 직행 테크를 타게 된다.
학교생활에서 「다 함께 놀러 간다」는 행위는 일종의 시험대나 마찬가지다.
우선 초대받았는가를 기준으로 한 번 걸러지고, 실제로 놀러 갔을 때 보여주는 모습에 따라 상세한 등급이 결정된다.
"글쎄, 유키농하고 코마치하고 사이쨩 정도이려나?"
어이쿠, 자이모쿠자 선생님께서는 탈락이신가.
하긴 탈락인 게 당연하지. 나 같아도 제일 먼저 그 녀석부터 빼버릴 테니까.
내가 잠시 침묵하자,
"그, 그것도 싫음...... 우리 둘이......"
유이가하마가 양쪽 집게손가락을 맞댄 채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번쩍 고개를 치켜든다.
"싫을 리가 있겠냐. 오히려 대환영이지. 특히 토츠카란 부분이!"
"사이쨩이 그렇게 좋아!?"
"조, 좋아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냥 좀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라고!"
"그게 그거잖아!"
유이가하마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휴우...... 긴장을 늦추면 순식간에 유이가하마의 페이스로 흘러가버리는군.
헛다리 짚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상당한 중노동이다.
그래도 토츠카와 함게 놀러 간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오늘은 모처럼 만났는데 말도 못 붙여봤으니까.
에잇, 이 소심한 놈! 구더기! 해캄!
이때부터 하치만은 유이를 의식하긴 하는데, 태도는 상당히 방어적이고 소극적이죠.
뭐, 넘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나 다름 없지만.
4권 中
"전부 바란 대로 이루어졌잖아. 그니까...... 둘이서 놀러가는 것두 이루어줘, 알았지?"
말이 끊김과 동시에 빨려 들어가듯 유이가하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유이가하마가 웃는다. 파직 불꽃이 피어났다.
그래 봐야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래, 조만간 적당히."
유이는 다시 다음에 같이 둘이서 놀러가자며, 어필을 하지만
이때도 하치만은 "야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같은 느낌으로 조만간 적당히라는 말을 하고 넘어가죠.
5권에서 정말로 둘이 놀러가는게 아이러니.
5권 中
“그래서,분명……."
부르르.
둔탁한 진동음이 새어나왔다.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다.
"앗……."
유이가하마는 들고 있던 주머니를 곁눈질했지만,진동음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다.
"나는……."
“전화,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하마를 가로막았다.
시선을 떨군 유이가하마가 주머니를 꼭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부랴부랴 휴대폰을 꺼내더니 아하핫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화. 엄마야."
잠깐만, 하고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한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음응,집에 다 왔어. 응,그렇다니까. 뭐? 됐어! 필요 없다구! 금방 들어간다니까!”
득달같이 쏘아붙인 유이가하마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입을 삐죽거리며 한동안 휴대폰을 노려보다가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집,바로 요 앞이니까 이제 그만 가두 돼. 바래다줘서 고마워. ……그,그럼 잘 가!”
“그러냐……."
“응,굿나잇."
바이바이 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길래 나도 살짝 손을 들어 화답했다.
“그래, 잘 들어가라."
내 인사는 듣는 둥 마는 둥하고 허겁지겁 걸음을 재촉하는 유이가하마.
저러다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가까운 아파트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도 발길을 돌렸다.
번화가를 가로질러 돌아가는데 축제의 여운에 젖은 취객들과 젊은 남녀가 여기저기서 왁자지껄하게 노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길옆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말없이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소란스러움과 어수선함이 조금씩 멀어져갔다.
인적이 드물어지고 주위에 높은 건물들이 줄어듦에 따라 차량의 흐름에도 속도가 붙었다.
가속을 시작한 맞은편 차선의 헤드라이트가 눈부셔 시선을 피하며 멈춰 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어긋난 시선은 언젠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만 한다.
하치만은 5권에서 유이가 고백하려는 걸 눈치채고, 전화를 핑계로 그걸 막아버리죠.
유이가 자신에게 반한 건 지나가는 착각이라며 어긋난 시선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만 한다며
상처받는게 두려워, 유이를 거부합니다.
6권 中
유이가하마의 다정함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한 끝에 나온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안이하게 의탁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것이 다정함이나 친절함이 아닌, 무언가 별개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남의 약점을 파고드는 행위니까.
감정의 처리는 적절하게.
피아의 거리는 적당하게.
—그러니 한 발짝 정도는 더 다가서도 되지 않을까.
문화제는 축제다. 축제란 비일상이다.
비일상이기에 가치 판단 기준이 평소와 조금 어긋나기도 한다.
제아무리 나라도 오늘 하루 정도는 잘못된 판단을 할지도 모른다.
“……그거 말고 다른 것도 되냐?"
“응,돼.”
유이가하마가 생긋 웃었다.
“……것보다 언제루 할건데?"
그 미소에서 기묘한 박력이 느껴졌다.
"저,저기,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볼 시간을 주세요……."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을 쓰고 말았다.
내 대답에 유이가하마는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후우 한숨을 쉬어 대답을 대신했다.
문화제는 아직 첫날.
그래도 반드시 끝은 온다.
시시각각 나아가는 시곗바늘은 지금 이 시간도 언젠가는 끝난다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하치만도 결국 함락(?)되기 시작한 건지, 본인이 한 발짝 다가가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치바 파셀라 말고, 다른 곳도 되냐며 본인쪽에서 이야기하죠.
하치만도 서서히 하치유이 관계에서 능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여담으로, 하치만은 유이의 다정함을 (이때는 아직 애매한 개념이긴 했지만)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유이가하마의 다정함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한 끝에 나온 것이다. 』
『 “고뇌하고 초조해하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면서 고민해라. ――그렇지 않은 건, 진실된 게 아니야.” 』
하치만이 유이에게 끌리는 건 유이의 다정함 역시 진실된 것이기에, 끌리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6.5권 中
“그런데 말이야~ 주말에는 뭐 하고 지내?”
나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 남자 쪽을 힐끔 쳐다보게 된다.
자세히 보니 이젠 작업 같은 건 아예 손 놓은 채 수다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야야, 카미누마 에미코(上沼恵美子)의 수다 쿠킹 도 그것보다는 부지런히 만들면서 진행하겠다.
에미코 좀 보고 배우지 그러냐?
하지만 뭐,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유이가하마는 상대방이 화제를 꺼내면 착실하게 대답해 주는 애니까 말이다.
“어~? 그냥 평범한데~. 그치만 요즘은 막 체육제 관계된 일 하고 그래. 하긴 뭐, 오늘도 해야 되지만 말야.”
“주말에 할 거 있으면 우리도 부활동 끝나고 나서 도와줄까? 연락처 가르쳐 주면 그리로 연락할게.”
예예, 도울 생각이 있는 놈이셨으면 아까 땡땡이 같은 것도 안 치셨겠지요.
이런, 갑자기 손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과연 나답다.
괜히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소풍 가던 날 남녀가 손을 잡고 걸어가라고 시켰을 때
손에 땀이 줄줄 흐르는 바람에 징그럽다는 소릴 들은 게 아니다.
이렇게 손에 땀이 줄줄 흐르다간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망치가 휙 빠져나가서
저기 어딘가의 운동부 남자 놈 뒤통수에 직격해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우후후후.
어디다 처박아 줄지 정확하게 확인해 두려고 시선을 들어 힐끔 쳐다보는데, 때마침 유이가하마가 입을 열었다.
“오~ 그것도 괜찮겠다~. 그래두 평일에 제대로 하면 주말에 안 해도 되잖아? 쉬는 날엔 역시 놀러 가구 싶거든.”
유이가하마는 일 얘기로 화제를 돌려 보지만, 그 남자는 이미 의욕 따윈 물 건너 가 있는 모양이라 계속 수다가 이어진다.
뭐랄까, 이젠 뭔가 집념마저 느껴질 정도다…….
“놀러 가게~? 어디 놀러 가는데?”
“어? 그런 건 보통 유미코가 정하는데……. 글쎄, 유미코한테 맡길까?”
“아~ 미우라 말이구나…… 미우라 말이지~……”
기분 탓인지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혹시 이거 뭐 내가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인가? 그래, 틀림없다.
아마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음악이 안 들리게 되는 그런 현상과 비슷할 것이다.
무심이다, 무심. 나무에 집중하자. 다른 일에 의식을 할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니, 그 뭐냐… 나, 일 같은 거 완전 좋아하거든…….
6.5권에 오자 하치만은 유이에게 독점욕을 품고, 유이에게 찝적대는 운동부 남자에게 질투와 짜증을 느낍니다.
어지간히도 진정이 안 되는지 내청춘 독자면 아무도 안 믿을 일 같은 거 좋아한다는 구라까지(...)
7권 中
“나, 나도 보고 싶어!”
내게 업히듯 어깨에서 등에 걸쳐 유이가하마의 팔이 걸쳐졌다. 오싹, 하고 한기가 들었다.
갑자기 몸을 만져져 깜짝 놀라 버렸다. 살짝 뿌린 향수 냄새가 움직임에 맞춰 피어올랐다.
보디 터치라니, 이거 반칙이잖아..
그렇다고 뿌리치거나 피하거나 할 정도로 나도 냉정한 녀석은 아니어서, 그대로 그 자세로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유이가하마는 풍경에 푹 빠져 있는 건지, 잠시 입을 다문 채로 있었다. 가느다란 숨결만이 내 귀에 닿고 있었다.
"헤에~ 후지산 되게 예쁘다~ 엿차.“
한바탕 둘러 본 뒤 만족한 듯, 유이가하마는 그제서야 내 등 뒤에서 떨어져 자기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힛키~“
".....아아.“
태연함을 가장하고 대답했지만, 솔직히 심장이 아직도 전력질주를 한 듯이 뛰고 있었다.
이 녀석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괜찮겠어요? 그런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이 말이죠.
수많은 남자를 착각에 빠뜨리고 그 결과, 사지로 내몰게 된다구요? 알겠으면
이후로 '보디 터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남자 자리엔 앉지 않겠습니다', '잊고 안 갖고
온 물건이 있더라도 남자에게서 빌리지 않는다', 상기 내용에 조심하며 행동해 주십시오.
그리고, 새빨갛게 된 듯한 뺨을 의식하지 않으려 설교를 해 주기 위해 유이가하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말이다..“
"아, 나 슬슬 저 쪽에 돌아갈게~“
말하자마자 확, 하고 힘차게 일어선 뒤 또박또박 빠른 걸음으로 유이가하마가 다른 곳으로 갔다.
도망갔군.. 그게 왠지 분하고, 답답하고, 귀찮고, 약간 아쉽고, 동시에 약간 안심했다.
처리할 수 없는 감정은 한숨으로 슬쩍 내뱉어 정리하도록 하자.
그러자, 팔 안에서 아기새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하치만.. 이제... 됐어?“
그 쪽을 보니, 토츠카는 억지로 밀려 넘어진 듯한 자세를 취한 채였다. 그 자세가 약간 괴로웠는지,
토츠카는 울먹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미, 미안!“
서둘러 내 자리로 돌아가려 하다, 손잡이에 강렬하게 등을 부딪혔다.
"아윽..“
"하, 하치만! 괜찮아!?“
"아아, 괜찮아.“
손을 가볍게 흔들어 토츠카에게 괜찮다는 것을 알려 주고, 등을 어루만졌다. 묘한 따스함이 남은 등은 아픔보단,
왠지 근질거리는 느낌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이가 소극적으로 된 건 아니고, 여전히 적극적입니다.
토츠카한테 반드립성으로 헉헉(?)거리자, 유이가 질투가 났는지 돌발행동을 해버리죠.
냉정한 녀석이 아니라서 피하지 않았다는둥 하지만, 약간 아쉬웠다는 말을 보면
하치만도 놀란 거지, 싫은게 아니죠.
유이를 얼마나 의식했는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몇줄이나 되는 독백을 하며
토츠카를 눕혀놓고도 신경도 못 씁니다. 오히려 유이가 닿았던 등을 의식하며 여운을 느끼죠.
9권 中
“언제든지 올 수 있잖아? 가깝기도 하고.”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하마는 내 분위기를 살피듯 힐끗 시선을 보낸다.
가슴을 콕 찔러 오는 그 시선에, 문화제 때 했었던 무책임한 약속을 떠올렸다.
체육제와 수학여행, 학생회 선거로 분주한 나날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줄곧 그대로 담아 둔 채로 있었다.
한 발 다가갔다고 생각했던 거리감은 과연 얼마만큼 변해 버린 것일까.
나는 아까까지 유이가하마가 어루만지고 있었던 팬돌이 인형에 손을 뻗으며,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 요즘 같은 시기에 랜드는 좀 그렇긴 하지만, 옆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거긴 어떠려나.”
“어?”
유이가하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본다.
“랜드도 사람만 안 많으면 딱히 상관없긴 하지만.”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딱히 그럴싸한 말을 찾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유이가하마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 준다.
“……그쪽은, 꽤, 조용… 할지두?”
“……그래?”
“응……”
유이가하마는 바닥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인형 머리를 툭 치고는 다른 선반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뭐, 조만간…”
“응, 조만간이야?”
밝은 분위기로 돌아간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 온다.
“그럼, 골라 보실까…”
의욕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걸로 이 이야기는 일단 끝.
다음 이야기는 약속을 지켜줄 때 마저 하기로 하자. 그러자 유이가하마도 거기에 화답하듯이,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여러모로 암울했던 8, 9권 초중반이 끝나고 하치만은 묻어뒀던 약속을 떠올리며
유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이 시점부터 하치만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유이 역시 적극적이죠.
그리고 하치만은 유이가 만지던 인형을 왠지 모르게 만지작댑니다.
6.5권 보너스트랙 中
“아, 맞다. 이제 좀 있음 유키농 생일이야.”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했었지.”
정확한 날짜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겨울이었을 것이다.
유이가하마는 진열장에서 무언가 집어들고 살펴보더니 이내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는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나서야 겨우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내 생일 때 있잖아, 그 선물… 유키농이랑 같이 사러 갔었지?”
“뭐 그랬지, 코마치도 같이 가긴 했지만.”
“흐, 흐응~”
유이가하마는 무덤덤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또 손에 들고 있던 잡화를 달그락 하고 진열장에 되돌려 놓은 뒤,
그대로 가만히 진열장을 쳐다볼 따름이다.
“그럼, 나랑, 가, 같이, 가 줬으면 좋겠어……. 그, 선물 사러……”
나도 시선을 진열장에 고정시킨 채 아까까지 유이가하마가 만지고 있던 잡화를 왠지 모르게 만지작거려 본다.
선물을 사러 가자고 부탁해 온다면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본다.
실제 유키노시타와 같이 간 적도 있었고, 목적도 명확하게 존재한다.
언젠가 같이 놀러 가기로 한 약속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과는 또 약간 다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편하게 생각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깨닫지 못할 만큼 나직이 한숨을 흘린 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음……. 선물 사러 말이지……. 뭐, 그냥 선물 사러 가는 것 정도야 언제라도 상관없지.”
“응……”
유이가하마는 짧게 대답하고는 살짝 난감한 듯 얼굴을 돌린다. 그 시선 끝에 유키노시타가 있음을 깨닫는다.
유키노시타도 이 가게에 선물을 찾아 보러 온 모양이다.
“아, 유키농이다. 그럼, 이 얘긴 나중에 또 하기루 해. 얘~ 유키농~”
말이 끝나자마자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 쪽으로 금세 달려간다.
유이쪽에서 권하긴 했으나, 사실상 데이트나 다름 없는 쇼핑 권유를 받아들이며
하치만은 쇼핑과 같이 놀러 가기로 한 약속과도 구분을 합니다.
이는 하치만쪽에서도 유이와의 데이트에 대한 이미지가 잡혀 있으며,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그리고 하치만인 9권에서 했던 것처럼 왠지 모르게 유이가 만지던 잡화를 만지작 댑니다.
이는 미러링메갈들이 하는 거 말고이라고 하는 건데, 간단하게 말해 상대방의 행동을 무의식중에 모방하는 겁니다.
보통은 관심이 없거나,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호감이 있는 상대의 행동을 모방하죠.
9권 시점부터 하치만은 자기도 모르게 유이의 행동을 모방하는 수준까지 옵니다.
하지만 반대로 유이는 하치만에게 호감을 본격적으로 가지기 시작한 유키노를 의식하기 시작하죠.
뭐, 이전부터 유키노 앞에서는 티를 안 내는 편이었지만.
10권 中
쇼핑을 마친 후, 한동안 계속 걷기만 하였으므로 휴식도 할 겸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바깥에 있는 스타벅스 같은 데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요즘은 춥다 보니 어디 돌아다니기가 싫다.
게다가 어떻게 주문해야 되는지도 모르다 보니 오늘은 별로 가고 싶지가 않다.
따라서 몇 번 들러 본 적이 있는 친숙한 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마실까?”
“응.”
유이가하마의 대답을 듣고 소고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다.
이곳은 구석진 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지 전혀 시끌시끌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두 명요.”
점원에게 인원수를 말하고 안내받은 창문 옆 4인석 자리는 치바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안쪽 자리를 양보한 다음 그 뒤로 펼쳐진 치바역의 전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노레일이 달리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뭔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치바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스가 다른 미래도시, 치바.
하치만과 유이는 쇼핑을 마치고 함께 찻집에 옵니다.
정말로 쇼핑이 목적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헤어졌으면 됐겠지만 하치만도, 유이도 단순한 쇼핑이 아닌 걸 뻔히 알기에
데이트같은 루트를 타고 있죠.
하치만은 자연스럽게 유이를 배려하는 수준까지 왔고, 단 둘이서 찻집에 갈 정도로 상당히 친밀해졌다는 걸 알 수 있죠.
...아니, 단 둘이서 쇼핑 갈 정도니까 이미 친밀하다는 건 알 수 있지만.
10권 中
갑작스럽게 눈앞에 누군가 확 나타나는 바람에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가라앉히고 있자,
그 눈앞에 있던 인물, 유이가하마 유이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혀 있었다.
“……아, 힛키.”
“유이가하마였나……. 지금 왔어?”
“어, 아, 응. 맞아맞아! 딱 노크하려구 그랬는데……”
내 물음에 아까 놀라야 될 것이 한 발 늦게 도착하기라도 했는지, 유이가하마가 당황한 모양새로 그렇게 말한다.
그러더니 살짝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른 후 고개를 척 들었다.
“유키농~! 늦어서 미안해!”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양호실로 들어오더니, 그대로 유키노시타 맞은 편 자리에 가서 앉는다.
유키노시타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유이가하마에게 미소를 건네 주었다.
“그리 신경 안 써도 괜찮아. 지루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다행이구……. 아, 그치. 힛키두 있구, 마침 잘 됐다.”
유이가하마가 나를 향해 얼른 와 보라고 손짓을 해 온다.
뭐, 문을 활짝 열어놓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겨우 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복도는 무척이나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유이는 양호실에서 하치만과 유키노가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거기서 하치만이 유키노에게 유이 이상으로 끌렸는가, 그것은 해석에 따라 갈리겠지만
(물론 저는 그렇지는 않다쪽)
그와 별개로 유이에게 하치만과 유키노. 둘의 관계에 자신은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유이는 상당한 심적 충격을 받았고
유이가 있던 복도는 그런 유이의 마음을 보여주듯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11권 中
그래,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나도 때로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간 군상들을 보고 익히다 보면,
얼마간이나마 그런 분위기 사이에 끼어 한 패라도 된 것처럼 그럭저럭 즐기고는 『분위기 좀 맞춰 봤어』 하는
한마디로 때워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마냥 기대하고, 호의에 기대고, 내맡기고, 기다리고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태도는 불성실하다.
어떤 해답과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허위도, 기만도, 시기와 의심도 없이 똑바로 다가서고,
그런 다음에 후회하고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그 분위기에도 맞춰 줄 겸, 지금 물어보기로 하자.
“그러고 보니……”
애써 입 밖으로 꺼낸, 살짝 쉰 소리가 섞인 그 말에 유이가하마가 뒤돌아본다.
갸우뚱 기울인 고개와 시선이 이어질 말을 묻는다.
그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기에는 조금 눈이 시렸던 탓에 얼굴을 약간 돌리고 만다.
“……너, 조만간 시간 되냐?”
“어? 으, 응. 어, 아마두…… 어지간하면 시간 다 될 텐데…”
살짝 놀란 듯 허둥지둥 손을 놀리며 황급히 폰을 꺼내보는 둥 바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내 그 움직임이 뚝 그친다.
유이가하마는 부실 문을 힐끔 본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어딘가 침울하게도 보이는 표정으로.
그 얼굴은 다소 뜻밖이기는 했지만, 구태여 그 이유를 묻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던 탓에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복도의 공기는 무척이나 차갑고 건조하여 무언가 목구멍 깊숙이 엉겨 붙은 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물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나은 다른 표현이라든가,
뭔가 더 스마트한 방법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새삼 이렇게 일부러 물어보는 그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있게 판단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윗몸을 숙이고 내리뜬 눈 그대로 유이가하마의 얼굴을 힐끗 살핀다.
그제서야 시야에 들어오는 난처한 듯 미소 띤 그 얼굴에 나도 모르게 숨이 탁 멎는다.
드리운 침묵을 애써 깨려는 것처럼 유이가하마가 빠른 어조로 말한다.
“쪼끔 생각해 볼게, 나중에 또 얘기하자!”
“……아, 응.”
안도일까, 혹은 탈진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일까.
무엇이든 간에 깊은 한숨과 함께 흘러나온 탓에 살짝 쉰 소리가 섞여버린 내 대답도 채 기다리지 않고,
유이가하마는 또박또박 몇 발짝 앞서 나가 부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11권에서 하치만은 다시 유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런 저런 변명을 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유이에게 9권의 약속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유이는 하치만의 말에 당황하다, 유키노가 있는 봉사부를 보며 침묵에 빠집니다.
하치만은 그 반응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며 불안해하지만
유이는 나중에 얘기 하자고 넘기죠.
사실, 말이 좋아 나중에 얘기하자는 거지
사실상 유이가 최초로 하치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점부터 유이는 서서히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죠.
반면, 하치만은 거절을 당하고도 포기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나 고민합니다.
11권 中
허나 잇시키는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 녀석이 둘씩이나 있는 것도 문제거니와, 유이가하마가 잇시키처럼 변하는 것도 살짝 아니다 싶지만
뭐, 그건 그것대로 괜찮달까, 그대로라도 괜찮달까, 그대로인 게 좋지 않을까 어떻달까, 뭐 그렇습죠,
예……. 하마터면 입 밖으로 횡설수설 늘어놓을 뻔한 그런 잡생각을 으흠으흠 커흐흠 헛기침을 하며 꾹 삼킨다(병맛).
그 어색한 헛기침 소리에, 책상에 엎드려 있던 유이가하마가 살포시 고개만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사과머리에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사르르 뒤로 넘어가고, 앞머리는 하늘하늘 앞으로 흘러내린다.
그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가, 그리고 흘러나오는 숨결을 타고 희미하게 떨리는 요염한 입술.
아래쪽에서 빼꼼히 올려다보는 그 시선에 포착되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말은 금세 꼬리를 감추고 만다.
“아니, 잇시키의 그런 점이 귀여운가는 좀 생각해 봐야지, 귀여운 게 딱히 그런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을 하다 보니 스스로도 무척 부끄러운 나머지 괜히 머리를 긁적거리고, 읽지도 않은 문고본 페이지로 고개를 떨군다.
전혀 말 같지도 않은 의미 불명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말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 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피식 하고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쪽을 보니 어느새 몸을 일으킨 유이가하마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응, 그러게.”
하치만은 부끄러움을 참아가면서도, 이로하를 부러워하는 유이보고 '너도 귀엽다'고 돌려말합니다.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모습이죠.
하치만은 부끄럽거나, 창피한 감정을 참고 말을 쥐어짜낼 정도로 유이를 신경쓰는 마음이 커졌다는 얘기.
11권 中
『힛키, 데이트 하자!』
“……뭐?”
전화 첫머리부터 인사도 뭣도 없이 말해 오는 그 한 마디는 예상의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어서,
내가 봐도 얼이 쏙 빠진 기묘한 목소리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중략
언제였던가, 언젠가 여기에 같이 오게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약속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약속은, 말로써 나눈 그대로의 형태가 아닌 다소 변경된 조건으로 이행되었다.
새로이 약속된 약속 장소는 한 정거장 다음에 있는 역이다.
큰 다리를 건너 현(県) 경계선에 위치한 강을 지나자 거대한 관람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분명 일본 최대 크기라고 선전하던 관람차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 왔던 전화를 떠올린다. 갑작스럽게 입에 올린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던 건 단지 당혹감과 놀라움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처음에 제안했던 사람은 나다. 단지 그 실행을 차일피일 계속 미루어 왔을 뿐이다.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을까. 문득 그런 의구심이 스쳐간다.
거기에 대한 답을 찾는 사이 전철은 속도를 떨어뜨렸고,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 차례 크게 흔들린 후 움직임을 뚝 그쳤다.
중략
두 사람에게 별다른 이의가 없다면, 나도 이견은 없다.
다만 딱 하나 묻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었다.
그 물음을 입에 담으려니 차마 유이가하마의 얼굴을 직시하기 어려웠던 탓에 시선을 약간 돌린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지독하게 꼴사나운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좀처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을 어떻게든 쥐어짠 끝에 간신히 입을 열어 말한다.
“……여기로, 괜찮겠어?”
“여기가 좋아.”
유이가하마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절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으로.
내 물음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었고, 아마 그녀의 대답의 의미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었으리라.
아니, 과연 그럴까. 의외로 평범하게 별다른 의미 없이 이야기한 건 아닐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유이가하마가 그러기를 원한다는데 내가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래……?”
“응! 여기서 놀면 눈 와두 상관없잖아! 다 같이 놀려면 여기가 좋을 거 같애.”
그렇게 답하며 유이가하마는 자신 있게 가슴을 쭉 편다. 확실히 다 같이 논다고 치면 이쪽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곳은 셋이서 가기에는 조금 번잡해 보이니까. 그러니 뭐, 어쩌면, 언젠가 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 가 볼까?”
오늘 갈 곳은, 다 같이.
이런 저런일을 겪은 뒤, 유이는 하치만에게 데이트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키노까지 함께 있는 사실상의 봉사부 데이트.
하치만은 이걸로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이에게 정말로 이런 식으로 약속을 끝내도 괜찮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유이는 이걸로 괜찮다며, 다 같이 놀려면 여기가 좋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하치만은 그 얘기를 듣고는 지금의 데이트와 데이트 약속과는 구분을 지으며
유이와 둘이서 데이트 할 날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유이는 정말로 이걸로 끝내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죠.
마치, 내버려둔 무언가를 정리하듯.
11권 中
“……그러니깐, 그냥 답례.”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하마는 가슴을 펴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때의 답례라면 그 문제는 진작에 끝났을 터이다. 과거의 일은 이미 다 청산된 상태고,
그걸 이제 와서 다시 꺼낼 생각은 없다. 답례라면 지금까지 보내온 나날 속에서 이미 과분할 만큼 받아 왔다.
따라서 이걸 답례로 받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잘못되었던 시작은 완전히 끝을 맺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담긴 마음과 답이 변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만약에. 혹시 만약에. 그 마음이 무언가 특별한 것이었다면.
나는 유이가하마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답례라면 벌써 받았어.”
정말로 답례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그냥 답례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순순히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정면에 서 있던 유이가하마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보고 말았으니까.
“그래도, ……그냥 답례인걸?”
어긋난 시선은 언젠가 되돌려놓아야 한다던 하치만은
이제는 유이의 마음을 답례로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받을 수 없다고 독백합니다.
그리고 유이는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어버리죠.
여기서 하치만이 유이의 마음을 거절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그렇게 되면 12권에서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하치만은 말 그대로 개1새가 되는 겁니다.
받아주지도 않을 마음을 왜 쓸데없이 오해하게 할까요? 그것도 그런 일에 가장 강한 트라우마를 가졌던 하치만이.
말이 안 되는 거죠.
하치만은 유이의 마음을 답례로 받아 넘길 수 없는 겁니다.
12권 中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정말이다.
전혀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한다.
뒤집어 엎고, 어지르고, 내버려 두고,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워진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가는 걸 좋아한다.
그러고 있으면, 이걸로 잘된 거란 생각이 드니까.
중략
그 봉투는 어디서 본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그만 손을 대고 말았다.
살짝 봉투를 열어 틈새를 들여다보니, 안에 있던 건 기념사진. 옛날에 나도 똑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가족끼리 놀러갔을 때, 그 놀이기구 마지막에 받았던 거다.
안 보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걸 열어 보고 말았다.
거기에 찍혀 있던 건 익숙한 두 사람.
살짝 놀란, 뭔가 바보 같은, 그치만 즐거워 보이는 얼굴.
그리고, 몸을 움츠리고, 눈을 감고, 등 뒤에 숨긴 거 같은, 하지만 꼬옥 강하게 쥐고 있는 손.
──아아, 역시. 그런 생각만이 들었다.
그때 두 사람은 제대로 얘길 나눴을까 마냥 걱정만 했었는데, 솔직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 귀여워 보였다. 사진도, 그걸 소중히 간직해 둔 것도, 감추어 버린 것도.
그래서, 나는 그걸 조용히 한구석에, 원래 있었던 자리에 밀어 두었다.
잊어버려.
못 본 걸로 해.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잊어버릴 수는 있으니까.
분명 그녀도 그럴 생각이었을 테니까.
아무 장식도 없이, 하지만 소중하디 소중하게 보물 속 가장 밑바닥에 고이 간직한 채.
감히 말로 담아낼 생각도, 행동으로 옮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쩌면 내가 물어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장난스레 놀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응원할 테니까 힘내라고, 그런 식으로 웃으며 말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그랬다간 아마 다 끝나버릴 테니까.
내가 물어봐 버리면, 질문해 버리면, 그녀는 절대 아니라며 부정할 테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거절할 테고, 그리고는 그대로 끝날 테니까.
인정하지 않고, 못 본 척하고, 간과해 버리고, 그대로 두고.
없었던 일로 하고,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절대 묻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을 묻는 건 치사한 짓이다.
내 마음을 얘기하는 건 치사한 짓이다.
그치만, 그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게 무서운 탓에.
그녀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게 가장 치사한 짓이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어딘가에 있어서 몇 번이나 그 문 앞에 서 봤지만,
그걸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저 틈새 너머로 엿보고 귀만 쫑긋 세우고 있을 뿐.
사실은 오래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나는, 거기로 가고 싶다는 걸.
오직 그것밖에 없기에.
그렇기에, 사실은.
──진짜 따위, 바라지 않았다.
유이는 10권 양호실건부터, 하치만-유키노 사이에 대해 서서히 의심을 쌓아가며 이 시점에서 확신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이는 마치 예전의 모습을 연상시키듯 하치만의 마음이 어떤지, 알기 두려워 하죠.
11권부터 보이던 유이의 태도 변화는 이런 점이 원인입니다.
12권 中
방과 후가 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탓인지, 특별동으로 향하는 복도는 평소에 비해 한층 더 인적이 드물다.
늘 그렇듯이 차갑고 메마른 공기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코 춥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옆에 있는 유이가하마…… 가 손에 들고 있는 복슬복슬한 담요 때문이려나…….
중략
내 자리는 무지 추운데. 그렇게 살짝 부러운 마음에 유이가하마가 안고 있는 담요로 눈길을 돌린다.
그랬더니 유이가하마는 멀뚱멀뚱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의외로 다 보고 있었네…….”
“아, 아니, 그게, 일부러 봤다기보다는 자연스레 시야에 들어왔을 뿐인데…….”
“자연스레…….”
“아~ 응, 그야 뭐 난 은근히 시야가 넓다 보니까…….”
대충 둘러댄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내 시야는 꽤 넓을지도 모른다. 낯간지러운 나머지 고개를 돌렸는데도,
시야 한구석에는 담요에 빨갛게 물들은 뺨을 폭 파묻고 있는 유이가하마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고요한 복도에 발소리만이 메아리친다.
그밖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창문을 때리는 바람 소리와 옆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나직한 숨결 소리뿐.
어떡하냐, 이 침묵 무진장 어색하다고요!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이대로 입 다문 채 5초 지나면 오답, 배드 커뮤니케이션이 된다구! 업무 보상이 깎여 버린단 말야!
퍼펙트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굿, 아니 노멀 커뮤니케이션 정도는 따 놓고 싶다.
하긴 뭐 퍼펙트를 딴다고 친애도가 올라가고 그러진 않겠지만 말이지요.
그런고로 머릿속에 대충 떠오르는 말을 입 밖에 꺼낸다.
정작 하치만은 독백으로 추운 복도지만 그럼에도 춥지 않은 이유는 유이가 옆에 있어서라는둥
(부끄러워서)침묵에 빠지자 이런 저런 변명을 붙여가며 말을 거는둥
유이와 비견될 정도로 적극적이고, 유이에 대한 감정 역시 독백으로나마 대부분 드러납니다.
정작 유이는 하치만과 유키노가 서로에게 감정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는게 아이러니.
12권 中
조금 난처하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유이가하마에게 맥이 쭉 빠진 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마지막으로 대화가 끊기고, 복도에는 발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전에도 이런 묘한 침묵을 맛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부활동에 갈 일이 없어졌던 날의 일이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에 있는 유이가하마를 힐끗 쳐다봤다가 그만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대로 시선을 피해버리기도 어쩐지 마음에 걸리다 보니, 그 대신 입을 열어 말한다.
“……어디 들렀다 갈까?”
“어?”
놀라기보다는 거의 황당함에 가까운 얼굴로 쳐다봐 온다. 의외이기는커녕 아예 이해가 안된다는 투의 리액션.
어허, 이거 아무래도 크게 사고 친 모양이로구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끼고,
그걸 가려 볼 생각에 머플러를 쓱 끌어 올린다.
“아, 아니……. 코마치 합격 축하나, 생일 축하나…… 그런 거 준비해 볼까 싶어서.”
위에서도 말했지만, 침묵이 생기면 유이가 먼저 말을 꺼내는 장면 말고도 하치만이 먼저 말을 꺼내는 경우도
꽤나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하치만은 유이가 예정이 비었다는 것을 알자
명분도 제대로 만들기 전에 유이에게 어디에 들렀다 갈까. 라는 말부터 먼저 꺼냅니다.
유이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이런 저런 명분을 붙여가며 변명을 하죠.
12권 中
“오, 오오……. 이게 그 맥캔형 자판기……. 기간 한정이라길래 혹시 벌써 없어진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렇게 감동에 몸을 떨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으음, 이 샛노란 느낌, 좋아요!
“와, 신기해. 정말로 맥캔이랑 똑같은 디자인이네.”
뒤따라온 유이가하마가 하나도 관심 없어 보이는 투로 말한다. 딱히 사진도 찍으려 하지 않는다.
인스타에 올려서 따봉을 모으려는 기미도 전혀 없다.
……어쩔 수 없지, 조금 설명해 주기로 할까.
“그냥 디자인만 똑같은 게 아니야. 뒤로 돌아가 보면 알겠지만, 자판기 뒤에 성분 표시까지 다 적혀 있다고.
디테일 대단하지? 사랑까지 느껴진다니까.”
“헤에.”
……여전히 무관심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맥캔형 자판기라 그래도 보통은 뭔 소린지 심드렁하겠지. 나야 좋아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사진을 찍어댄 후 자판기를 배경으로 가로☆브이 포즈로 이예이~♪ 하고 셀카를 찍어 준다.
그러자 유이가하마가 후훗 웃는다.
“……그치만, 이렇게 보니 살짝 귀여운 디자인일지도.”
“그치!? 지금까지 몇 번 디자인이 바뀐 적은 있지만, 이번 게 역대 최강이라고! 역대급으로 귀엽다니까!”
“오늘 최고로 신났다구!? 애초에 옛날 디자인은 모르는걸…….”
무심결에 그만 열변을 토하고 마는 내 모습에 유이가하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흘린다.
하치만은 코마치에게 조차 이런 맥캔사랑을 이해받을 생각을 못 했으나,
유이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운 취향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이해받길 원합니다.
그리고 유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자 하치만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할 정도로 기뻐하죠.
12권 中
“뭐, 됐어. 나도 찍을래.”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걸음을 또박 내딛어 내 곁에 섰다.
방금 전까지 셀카를 찍고 있던 내 옆에 나란히 서서는, 딱히 구도도 잡지 않고 찰칵 사진을 찍는다.
그 거침없는 움직임 탓에 뭐라 거부권을 행사할 틈도 없었다. 덕분에 아마 엄청나게 얼빠진 얼굴로 찍혔을 테지. 하기야 미리 허락을 받고 찍었다 한들, 결국은 뺨을 새빨갛게 붉히고 시선을 돌린 얼빠진 얼굴이 공개되었을 거라는 점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러니, 뭐, 지금 사진 쪽이 그나마 조금 더 나을 거다.
“……그 사진, 나도 보내 주라.”
“응.”
내 말에 유이가하마는 무척이나 평온하게 대답해 온다. 시선은 여전히 자기 스마트폰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스마트폰을 뭔가 쓱쓱 척척 조작한다 싶더니, 금세 내 스마트폰에 부르르 진동이 온다.
확인해 보니 유이가하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첨부된 사진 데이터는 온통 하얗게 뜬 바탕에 반짝반짝 별들이 난무했고,
덤으로 둘 다 강아지귀, 강아지코, 강아지 수염이 달려 있다.
……글쎄, 이만큼 가공해 놓으면 초상권 침해 걱정도 없겠구만. 쓴웃음을 지으며 그 데이터에 락을 걸어 놓는다.
유이가 기습적으로 투샷을 찍자, 하치만은 당황하지만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습니다.
지금 사진 쪽이 그나마 나을 거라는 핑계를 대며 사진을 자신에게도 보내달라고 할 정도죠.
유키노가 하치만과의 추억을 사진이라는 형태로 가지고 싶었던 것처럼,
하치만 역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이는 유키노의 사진을 보고 자신도 사진이라는 형태의 추억을 가지고 싶어 이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6.5권 드라마cd에서도 유키노와 쇼핑을 갖다왔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도 하치만과 쇼핑을 가고싶어 하거든요.
12권 中
“……그리고, 신부, 같은 거 말야.”
뒷모습 너머로 그렇게 말하고는, 유이가하마는 몸을 빙글 돌렸다.
그녀가 멈춰 선 곳은 부스 안쪽으로 이어져 있던 부엌 앞.
그곳은 벽도 타일도 새하얀 색에, 채광창을 본뜬 유리창 너머로 비쳐 드는 빛이 베일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유이가하마가 입에 담은 말은 꿈이라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나머지, 웃어넘길 수도 쓴웃음을 지을 수도 없었다.
대신에 나 또한 부엌까지 천천히 걷는다. 걸음을 걷는 동안 적당한 농담거리를 생각하면서.
“그것도, 나하고 별 차이도 없네 뭘. ……전업주부, 꿈같은 얘기지.”
“그렇게 얘기하니깐 하나도 꿈 안 같애…….”
유이가하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어이가 없는지 훗 웃는다. 웃어 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밝은 광원 가운데에서도 그 미소는 역시 다정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낯간지러운 나머지 슬그머니 시선을 떨군다.
부스 안의 부엌은 실제로 쓸 수도 없건만 조리 도구부터 식기까지 빈틈없이 마련돼 있어서,
당장이라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리얼리티가 느껴졌다.
원래는 상품으로 판매 중인 물건일 테니 현실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어째서인지 그것들은 아무리 보아도 가짜처럼 보이고 만다.
가구도, 식기도, 부엌도, 침대도, 그 모두가 진짜임에도 모조품.
무엇이 그 차이를 구분 짓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무심결에 찬장을 만진다.
현실감이 느껴지지만 가짜, 이는 유이 자체가 가짜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유이가 말한 꿈. 신부라는 꿈이 정말로 리얼하지만, 그러나 가짜라는 얘기.
이는 12권 마지막 장면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죠.
“아, 직접 만드는 건 어떨까?”
“뭐? 가구를?”
“그거 말고. 선물 말이야. 케이크 같은 거.”
순간적으로 무슨 소린가 싶어서 엄청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선물이라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 딱 떠오른다.
코마치 줄 선물 얘기지! 암, 기억하고 말고, 잠깐 생각이 안 났던 건 안 잊어버렸다는 증거라니까?
그렇게 내가 마음속으로 폭풍처럼 변명을 쏟아 내고 있는 사이에도 유이가하마의 아이디어는 멈출 줄을 모른다.
앞에 있던 접시에 나이프와 포크, 거기에 머그컵까지 늘어놓고는 열변을 토한다.
개인적으로 이때 하치만은 신부->신혼생활이라는 생각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뭐 어디까지나 반쯤 농담으로 하는 추측.
그런 추측을 빼고 봐도 하치만은 코마치 선물이라는 핑계는 진작에 잊고, 유이와의 데이트에 빠져있었죠.
“그러니깐, 케이크 내놓을 때 머그컵에 음료수도 담아서 같이 내놓는데…….
실은 그 컵이 생일선물이었던 거야~! 굉장해! 내가 얘기한 거지만 왠지 멋져!”
유이가하마는 양손을 뺨에 가져다 붙이고는 와아~! 하고 환성을 지른다.
“……그래? 멋지냐?”
“머, 멋진걸! 뭔가 살짝 서프라이즈한 느낌이라서 좋은걸!”
냉정하게 한마디 했더니 본인의 센스에 약간 자신감이 떨어졌는지,
유이가하마는 살짝 뺨을 물들이더니 어물어물 식기를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기 시작한다.
“뭐, 그래도…… 직접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의외로 나쁘지 않네.”
토라진 듯이 반응하는 게 귀여웠던 나머지, 나도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문자 그대로 달콤한 말도 함께 흘러나온다.
“그럼 지금부터 달달한 디저트라도 먹으면서 연구해 볼까?”
“아, 그거 너무 괜찮네! 가자가자!”
신이 난 유이가하마에게 꼭꼭 꾹꾹 등을 밀리며 전시 부스를 떠난다.
실제로 직접 만들어 선물한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받는 이의 마음에 강하게 어필하는 있는 부분이 있고,
무엇보다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주었다는 사실이 심금을 울린다.
그게 밉지 않게 여기고 있는 상대에게서 받는 거라면 더욱 그러할 터.
정말로, 마음이 흔들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하치만이 정말로 유이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는데
저런 소리 하면서 유이랑 데이트하러 다닌 거면 정말로 양심이 없는 겁니다.
하치만의 트라우마와 성격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상냥하게 대해주며 착각하게 하는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뻔히 아는 하치만이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나오는 건 유이와 정말로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치만쪽에서 연구를 핑계로 디저트 가게에 가자며 유이에게 권유합니다.
하치만의 원래 성격을 감안하면 거의 유이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변했죠.
12권 中
“아, 그렇구나. 뭐 하러 가는 거야?”
“일단 상황 파악을 위해서지. 솔직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라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런 속절없는 대답을 건네자 유이가하마는 후훗 웃는다.
“……그렇구나. 그치만, 힛키가 가 준다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리고 나를 긍정해 주는 것처럼 음음 몇 차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맞추어 또르르 반짝이는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걸 눈으로 본 순간 나는 숨이 멎었다. 하지만 내가 넋을 놓을 만큼 놀랐던 까닭인지,
유이가하마도 자기의 눈가를 깨닫고는 바로 뺨을 손가락으로 훔친다.
“어, 아, 어쩐지 안심했더니 눈물 나왔어. 깜짝 놀랐네…….”
하아 한숨을 내쉬더니 유이가하마가 손가락을 맞대어 비빈다.
자못 당연한 일처럼 이야기해 왔으므로, 나 또한 동요를 억누르며 말을 건넨다.
“아니, 깜짝 놀란 건 내 쪽인데……. 괜찮아? 일단 집에 갈까?”
“어? 아, 괜찮아 괜찮아! 이런 거, 여자들한테는 꽤 자주 있는 일이니깐.”
유이가하마는 카디건 소매를 잡아당겨 눈가를 꼭꼭 누르더니,
부끄러운 듯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당고머리를 꼬물꼬물 만지작거린다.
“아니~ 온통 모르겠는 거밖에 없어서……. 뭔가 하나라도 알게 되니깐 진짜 안심돼. 오히려 지금은 더 팔팔해진 느낌이야.”
확실히 라인을 보던 중에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심하게 긴장하고 있었던 탓에,
갑자기 마음이 놓이자 그만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끄러미 유이가하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입가에 방긋 미소가 맺힌다.
“야단스럽긴. 힛키, 가도 괜찮아. 나, 집에 가서도 라인 보고 있을 거니깐, 무슨 일 생기면 가르쳐 줄게.”
배낭을 고쳐 메고는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이며, 유이가하마는 그만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온다.
“아, 응. 그럼 고맙지. 그럼, 일단 가 볼게. 내일 보자. 조심해서 가라.”
“에이, 바로 코앞인걸.”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하마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 손 흔드는 속도에 맞춘 걸음걸이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몇 걸음 걷다가, 어쩐지 미련을 떨칠 수 없어 문득 뒤돌아봤더니 유이가하마의 모습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크게 한 차례 숨을 토해 낸 후,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치만은 유이의 눈물을 보고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랍니다.
하지만 유이는 괜찮다며 하치만을 보내주고, 그런 유이에게 미련이 떨쳐지지 않아 돌아보고는
전력으로 달리죠.
이때의 대화를 보면, 하치만과 유이의 대화는 묘하게 어긋납니다.
하치만은 분명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는데,
유이는 뭔가 하나라도 알게 되니 안심이 된다고 합니다.
하치만은 말 그대로 '무도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가'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얘기지만,
유이는 하치만의 마음이 어떤지 알았다고 생각한 겁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렇게 말한 유이는 하치만이 한 마디도 한 적 없는 자신의 마음을
단편적인 정보로만 결론을 내려버렸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때의 하치만을 보면 유키노를 돕는다는 선택에
유이에게 죄책감을 느낀다던가, 하다못해 유이를 조금이라도 의식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유키노를 도우려는 감정이 연애감정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유키노를 도우려는 마음은 유키노에게 연애감정이 전혀 없을때도 드러나던 부분이기도 하구요.
12권 中
Interlude…
눈물이 멈춰 줘서 다행이었다.
정말로 순식간에 흘러내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살짝 방심했다. 잘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바로 감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바로 떠나가 줘서 다행이었다. 바로 돌아와 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울어버렸다면, 그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눈물이 멈춰줘서 다행이었다.
나는, 하나도 불쌍한 애가 아니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그는 또 구하러 와 줄 테니까. 내 히어로니까.
내 친구가 곤란해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는 반드시 도와줄 거다. 내 히어로니까.
맨 처음부터, 그는 내 히어로였으니까.
나는 벌써 구해졌으니까.
내 「언젠가」는 벌써 끝나버렸으니까.
그러니까, 히어로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그저 곁에 있길 원했다.
히어로가 아닌 걸 아니까, 제대로 상처 주길 원했다.
가지 말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어째서 구하려는 거냐고 묻지 못했다.
이제 다정하게 대해 주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다 알고 있으니까, 그치만 그녀처럼 포기하고, 양보하고, 거부하지 못했다.
너무 간단한 일일 텐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전부, 그녀 탓으로 돌리고 그러지 않았다.
그녀가 그에게 의존했던 것처럼, 나는 그녀에게 의존했는걸.
전부 떠맡기기만 해 왔던 건 내 쪽이다.
그러니까, 이걸로 다 잘됐을 텐데, 지금도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유이의 독백은 조금 특이하게 진행됩니다.
바로 눈물이 멈춰 다행이다. 바로 감출 수 있어 다행이다. 바로 돌아와주지 않아 다행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진심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 것을 다행이라고 말하죠.
다행이다. 이건 12권의 두 번째 인터루드에서도 나오는 단어죠.
──아아, 역시. 그런 생각만이 들었다.
그때 두 사람은 제대로 얘길 나눴을까 마냥 걱정만 했었는데, 솔직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때도, 유이는 다행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내 언젠가는 끝나버렸다는 말 이후로 유이의 독백에서는 점점 진심이 드러납니다.
히어로가 아니어도 좋으니 옆에 있어주길 원했다, 제대로 상처주길 원했다, 가지 말라고 얘기하지 못 했다...
결국 유이가 다행이라고 이야기 한 것들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말이었던 거죠.
이걸로 다 잘됐을 텐데.
이런 말 역시 두 번째 인터루드에서 나오는 말이죠.
뒤집어 엎고, 어지르고, 내버려 두고,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워진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가는 걸 좋아한다.
그러고 있으면, 이걸로 잘된 거란 생각이 드니까.
유이는 정리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치만과의 데이트 약속을 정리하고, 자신의 마음을 답례로서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곁에 있는 하치만을 유키노에게 보내주죠.
그러나 정작 하치만은 데이트 약속을 언젠가는 지키려고 생각하며, 유이의 마음을 답례로만 생각하지 못 하고,
마지막에 유키노에게 간 것도 유이가 정말로 울어버렸다면 떠나지 못 했을 겁니다.
애초에 연애 감정때문에 움직였다고 보기도 힘들고.
정작 하치만쪽에서는 정리는 커녕 마음이 더 강해지고 있죠.
유이의 꿈이 현실감 넘치는 것과 별개로 가짜처럼 느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유이는 그 꿈을 진실하게 바랄지라도 속으로는 이것저것, 정리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결국 자신의 진심을 숨기지 못 한 유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며,
하치만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12권은 끝이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은 마치 2권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2권 이벤트와 12권 이벤트가 대칭되는 점 이 글을 참고해주세요.
처음에는 유이와의 관계에 있어 지극히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이던 하치만은
서서히 유이에 대한 마음이 강해지며, 유이에게 한 발짝 다가가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유이와 데이트 약속을 잡고, 자기 쪽에서 먼저 코마치 선물을 핑계로 쇼핑을 가자고 하기도 하며
6권. 어찌보면 4권에서 시작된 단 둘이 놀러가자는 유이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유키노를 도우려는 명분은 유키노가 구해달라고 해서. 라는 이유지만
실제로는 유키노를 하치만 본인이 구해주고 싶기에 그런 것처럼
유이와 데이트를 하려는 명분은 유이에게 부탁받고, 자신쪽에서 먼저 약속을 했다는 이유지만
실제로는 하치만 본인이 유이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유이는 잠시 츤데레짓(?)을 하다, 관계리셋 이후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유이는 유키노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며,
양호실에서 유키노와 하치만 사이에 무언가를 느낀 유이는 이전에 비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게 되어가죠.
그리고 하치만과의 약속,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가고 있죠.
이 이야기의 끝은 13권과 14권이 나오면 알 수 있지만,
저는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위의 링크글 참고.
하지만 만약이지만,
밀어주는 캐릭터를 떠나,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는 건 조금 싫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유키노가 진히로인 확정이 난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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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엔딩되면 보려고 안보고 버티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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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엔딩되면 보려고 안보고 버티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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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8.01.10 21: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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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취! | 18.01.13 07:54 | |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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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짝사랑은 아닌데 참.. | 18.01.13 07: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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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딱히 그게 큰 영향이 없다고 봐요. 오히려 하치만이 누굴 좋아하냐를 보여줬다고 생각하거든요. | 18.01.13 09: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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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유키노 부분까지 전부 보고 있습니다. 그거 감안하고 쓴 거예요. | 18.01.13 19: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