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노벨의 다양한 소재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역시 오타쿠에 관한 것일겁니다. 그게 주인공의 캐릭터성이건 히로인이나 조역의 캐릭터성이건, 혹은 좀더 넓은 범위로 보자면 각종 패러디 개그에도 이르기까지 아무래도 독자층을 의식한 탓인지 오타쿠적 소재는 라이트노벨에서 나름대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혹은 그것을 메인 플롯으로 삼아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작품도 종종 나오지요. 제가 이런 계열을 처음 접한건 노기자카 하루카의 비밀 입니다만, 아무래도 이러한 오타쿠 소재는 그대로 다루면 너무 암울해지는(...) 경향이 있다보니 대개는 소설 특유의 판타지성을 팍팍 집어넣어 정말 비현실적이라는 소리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올 만한 전개를 자주 보여줍니다.
그런면에서 이 작품 역시 제목에 대놓고 '오타쿠'가 들어가는 만큼, 거의 클리셰라 할 법한 소재를 취하고 있습니다. 클래스 제일의 미인이 사실은 오타쿠이며, 주인공도 오타쿠라는 것은 이제는 러브 코미디에서 어느정도 정석적인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은 그런 서로의 본성을 숨긴채로, 반쯤은 위장인 연인 관계를 시작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대개 이런 작품이 서로의 본성을 두 사람만의 비밀로 알고 시작하는 케이스랑은 다소 다른 접근 방식으로, 두 사람은 작중 내내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으나 숨덕질을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 못채고 지나갑니다. 착각의 방향성을 약간 틀어놨다고 봐야할까요? 다른 착각계 러브 코미디도 그렇듯이 이러한 엇갈림과 그로인에 나타나는 긴장상태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괜찮은 편으로, 아슬아슬한 감각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네요. 말 그대로 '팝콘 씹으면서 구경이 가능한'느낌입니다. 저는 이러한 엇갈림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너무 심하지 않게 적절하게 묘사해서 꽤 흥미진진 했습니다.
다만 제가 이 작품에 주목한 점은 러브 코미디적 요소보다는 다른 면에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최대 특징이라 할만한 점으로, 현대 오타쿠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점이나, 오타쿠들의 일상이 상당히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뭐 저는 남자이니 여자 쪽의 취미까지 공감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미사키와 그 친구인 사타케의 행동이나 사고 방식은 아마 덕질을 하면서 한번쯤은 겪어 봤던 일들이고 이 점에 상당히 공감을 느꼈다고 하겠네요. 물론 덕질 스타일도 사람 나름이니 왜 이렇게 생각하지? 라는 생각이 나올수도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오타쿠의 심리묘사에 굉장히 충실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중에서 다루는 소재가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는 모 작품(특히 주인공 두 사람이 파는 작품은 아무리봐도 쿠로코의 농구)이 모델이기도 하고, 픽시브, 코미케 등등의 사이트나 행사 역시 이름을 미묘하게 바꿔서 존재하며, 2차 창작에 대한 생각이나 거기에 빠져 드는 계기 등등 말 그대로 '덕후들이 할법한 요소'는 거의 다 모아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처음 온라인 게임을 고르는 장면에서는 다들 맞아, 바로 이거야! 싶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 한두가지를 꼽으라면, 주인공과 히로인의 캐릭터성을 설명하는게 다소 매끄럽지 못했던 점은 아쉽습니다. 주인공이 오타쿠 취미라는 점이 상당히 뜬금없게 나온지라 당황스러웠네요.
현대 오타쿠의 생활을 설명해주자는 면에서 상당히 상세하게 표현한 점은 좋지만, 아무래도 설명이 많다보니 스토리 진행과는 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품이 진행되면서는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는 부분입니다만...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푸념이지만 그렇게 숨덕질에 힘쓰면서도 러브러브한 진도는 나름대로 잘 빼고 있습니다. 하늘이 돕고 있다 싶은 수준이네요 거의...
다른 착각계 작품과 마찬가지로, 빨리 오해가 풀려라 싶은 느낌이 강하지만, 그렇기에 작품을 계속 보고싶다는 생각 역시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엇갈림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충분히 즐길 만 하다고 봅니다. 덧붙여 오타쿠 소재를 다룬 작품을 한번 보고싶다면, 과감하게 추천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번역 수준은 괜찮은 편입니다만 몇몇 부분에서는 현지화를 한것 같습니다. 알못이라거나 ~~하는 콘 이라거나 아무래도 역자분이 디시를 좀 하신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역주를 다는걸 좋아해서 미묘한 부분이었습니다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영역이네요. 오역은 딱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었습니다만 아마 한군데인가 문장이 이상한게 있던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