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기념 외전 - 리제로 EX 『제로부터 거듭되는 이세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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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매년 돌아오는 만우절 기획!
본편이 아닌 IF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본 내용은 『Re:제로부터 시작할 이세계 생활』 4장 74로부터의 분기이므로 아직 거기까지 읽고 있지 않는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또한, 본편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며, 캐릭터들의 관계 등등이 크게 변화하고 있기에 양해 바랍니다.
이하를 숙지하시고 즐길 수 있는 분만 보시길.
※각종 의역, 오역이 미쳐 날뜁니다
※분량이 하도 긴지라 A, B로 나눠 올립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아직 서적화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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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을 꾸고 있었다.
수그러들지 않는 꿈을, 반복되는 꿈을, 끝나지 않는 꿈을, 끝낼 수 없는 꿈을 ― ―.
몇번이고 거듭해서, 몇번이나 다시해서, 수도 없이 잘못해서, 몇번이고 고쳐서.
천번, 잣고. 만번 잣고. 억번을 넘겨. 언젠가, 세는 것을 잊어.
고통이 있고, 경악이 있고, 혼탁이 있고, 파멸이 있고, 증오가 있고, 광란이 있다.
마모하고 뒤흔들려, 왜곡되고 퇴폐하고 통곡하고 노심초사한다.
그런데도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
그런데도 지키고 싶은 소원이 있다.
반복하며 쌓인 비극을 아무도 모른다 해도, 잊지 않기 위해.
비록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은 잊지 못하도록.
― ― 비록 구하고 싶은 상대가 운다고 해도 구하고 싶다.
그렇기에, 그 손을 잡았던 것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후회할 것이 있다면, 그 손을 잡는 것에 품었던 망설임과 방황이, 약하고 약해 강철로 닿지 않는 나의 마음이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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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텅 빈 꿈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에 느끼는 것은 항상 희미한 두통이다.
「――――」
졸음의 손길에 저항하며 눈을 열고 몇번 깜박여 의식을 부상시킨다.
멍하니, 의식에 모호한 안개가 낀 채였지만, 혈액 순환이 나쁜 것은 단 몇초다.
이내 의식은 잠을 쫓아내고, 각성이 육체에 활동력을 제공한다.
「아, 아-」
그런 육체의 자각과 달리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맥빠진 목소리다.
언뜻 보기엔 잠결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지만, 이것도 아침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이다.
누운 채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몇가지 정보가 유입된다.
목소리의 어조, 자의식의 확립, 손발의 무사, 기억의 정리, 일과의 운행, 생명의 유무 ― ―.
정해진 행동을 매일 아침, 반드시 실시함으로써 그것들이 확인된다.
그것이야 말로 나츠키 스바루가 무사히 아침을 맞이한 것의 증명이다.
「후아」
하품과 함께 이불을 치워, 올린 다리를 내려치는 동작으로 상체를 일으킨다.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살펴보면 그것은 익숙한 일실 ― ― 그런 대로 호화로운 일상 용품과 휘장 달린 침대가 놓인 자신의 방이 보인다.
다만, 스바루가 눈을 뜬 것은 휘장 달린 침대가 아닌 방 안쪽에 놓인 소파의 위였다.
거기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둥글게 말아 밤을 보내는 것이 요즘의 ― ― 아니, 이 몇년간의 취침 습관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침대에서 자지 않는 것에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이나마 자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고심했을 뿐.
그런 시행 착오의 결과, 침대에서 자는 것 보다 소파에서 자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고 배웠다.
그 이후,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 뿐인 이야기이다.
「― ― ― ―」
눈을 비비며 그 잠들었던 소파에서 내려와, 스바루는 몸차림을 정돈하기 위해 세면장으로 향한다.
침실과 맞닿은 세면장에서 얼굴을 씻고, 젖은 얼굴을 거울에 비추며 차분히 자신의 얼굴을 관찰한다.
피로감이 서린 얼굴과 어딘가 허탈감이 떠오르는 눈빛.
칠칠치 못하게 얼빠진 뺨과 함께, 3박자가 모여 무기력해 보였다.
그 낯짝을 단단히 조이기 위해, 스바루는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힘껏 두드린다.
마른 소리와 저린 아픔에 눈물이 떠오르고, 그것을 밀려오도록 찬물을 얼굴에 퍼붓는다.
그리고 다시 젖은 얼굴을 거울에 띄우고 얼굴과 눈빛과 뺨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기도한다.
「웃어라, 나. 할 수 없으면, 죽어라」
마법의 주문을 외치고 스바루는 입가를 비틀어 인상이 나쁜 웃음을 만든다.
흰 이를 보이며 삼백안을 가늘게 뜬 미소는 18년 넘게 사귄 자신의 나쁜 얼굴이다.
눈도, 표정도, 눈치도 문제없이 『흉내』내고 있다.
「좋-아, 좋아, 유지」
그 미소를 확인하고, 스바루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저택에 있을 때 스바루의 모습은 사용인의 제복― ―이 아닌 나름대로 격조 높은 귀인의 예복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딱딱한 상의는 벗고 하얀 셔츠의 소매를 접어 거칠게 해 옷의 일부를 일부러 흐트러뜨리고 있다.
그저, 그렇게 대외적으로 상응하는 모습이 지금은 당연하게 요구된다.
그것들은 아무래도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입장에 걸맞은 모습을 하는 것은 의무이며, 그것은 스바루 자신이 바래서 얻은 입장이니까.
「슬슬 언제나의 시간이 되겠는데」
옷을 갈아 입고 방문 위의 마각 결정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짙은 녹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아침의 도래, 그리고 예정 기상 시간이 임박했음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은 조금 미소를 만드는데 시간을 너무 들인 것 같다.
몇분 뒤면 시간에 꼼꼼한 소녀가 정시대로 방문을 노크할 것이다.
그 전에, 끝내야 할 일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 ― ― ―」
의식을 바꾸어 스바루는 셔츠의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그곳에는 자는 도중에도 벗지 않고 있던 목걸이, 『검은 결정』에 가느다란 체인을 이은 펜던트가 흔들리고 있었다.
신비하게 반짝이는 검은 크리스탈, 그것을 손바닥에 꼭 쥐고, 스바루는 눈을 감았다.
차갑고 딱딱한 결정석의 감촉 ― ― 그것은 스바루의 손바닥에 감싸이자 돌연 열을 가진 것처럼 존재감을 키우며, 마치 생물인 것처럼 맥
박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손 안에서 태어난 기묘한 고동, 그 리듬과 횟수를 무의식이 세기 시작한다.
전력질주한 뒤의 맥박보다도 빠르고 높아지기 시작한 고동.
그 고동은 어느새인가 스바루 자신의 심장 소리와 겹치며, 심장의 고동과 같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뇌가 이해했을 때, 스바루의 의식은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다른 공간으로 빠져들었다.
순간, 세계에서 소리도 공기도 사라지고 대신 눈부신 빛이 의식을 감쌌다.
「― ― ― ―」
빛에 의해 빈틈없이 칠해진 의식, 그것이 천천히 각성으로 이끌어진다.
감았던 눈을 열자 쏟아지는 것은 눈에 스며드는 듯한 햇빛이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바람이 부는 웅장한 초원이다.
넓고, 어디까지고 이어지는 녹색의 초원이다.
끝없이 풀의 바다가 이어지고, 키 작은 묘목의 무리는 온화한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낀다.
머리 위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쏟아지는 햇빛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의 파랑과 대지의 초록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것들은 머나먼 지평선에서 얉게 맞물린다.
비현실적인 몽환의 세계에 걸맞은, 유구하다고 생각되는 정적이 거기에 있었다.
장대하고, 맑게 갠, 아무것도 없는 공간.
― ― 그런 세계에 한가지 다른 부분이 있다.
「― ― ― ―」
초원의 중심, 그곳에 서서 스바루가 뒤를 돌아보면 바로 배후에 완만한 비탈이 있었으며, 이는 언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자그마한 화원이 있고, 그 가련한 꽃들의 바로 옆에는 햇빛을 받는 파라솔과 하얀 테이블이 존재했다.
「― ― ― ―」
말 없이, 스바루는 그 언덕을 올라 파라솔 안으로 파고든다.
하얀 테이블에는 김이 나는 컵이 놓여 있었으며, 호박색의 액체가 따뜻하게 채워져 있었다.
놓여진 두 컵과 테이블을 끼워진 하얀 의자.
한쪽은 자신에게 마련된 것이기에, 스바루는 확인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이제 막 따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차에 입을 대어 목을 축였다.
― ―여전히,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는 묘한 차다.
단지, 맨 처음에 이 차를 반드시 마실 것.
그것이 이 곳의 주인과 나눈 약속이었으며, 묘한 관계의 인사치레라도 있었다.
다만 ― ―,
「아, 마셨다, 마셨어, 잘 마셨습니다. 그럼,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확실히, 처음의 한 입은 인사치레나 다름없다고 내가 말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결코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차를 들이키고, 테이블에 컵을 내던진 스바루의 한마디.
그 내용에 테이블을 사이로 마주 앉은 이가 엷게 웃으며 불평을 제기했다.
그 소리에 스바루는 코 끝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인사 따위 딱히 필요 없지 않아? 온종일, 내 머릿속을 관찰하는 너에게 해봤자 인사도 작별도 의미없을테고」
「그것과 이건 이야기가 달라. 첫째, 항상 너를 들여다본다니 남이 듣기에 나쁜 말은 그만둬주었으면 하는데.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도 꽃도 부끄러워할 처녀의 나이야. 마음에 든 남자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고 알려지면, 체면이 나쁜 것도 분수가 있지 않나」
「꽃도 부끄러워할 처녀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말의 용법의 개념이 바뀌었어?」
「신랄한데. 뭐, 처녀라고 우기기에는 연령적으로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며, 상대는 불만스럽다는 내용과는 달리 입가를 즐겁게 올린다.
완전히 익숙해진 말의 교환, 상대는 스바루의 무례한 태도에도 상당히 관대하다― ―라고 하기 보단, 그런 말의 응수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웃는 것에, 스바루의 마음은 일그러진 죄책감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식으로 접해야 정답인 것인지, 그조차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만은 그 최적의 솔루션을 확인할 수단이 전혀 통하지 않았으니까.
「역시, 너는 싫은 여자야」
「그거 기쁜데. 착하고 욕심 많은 너에게 온갖 좋은 누군가가 되기보다도, 네가 구원의 손길을 뻗칠 가치를 찾지 않는 무관심한 누군가가 되기보다도, 너의 마음을 잔혹하게 상처입히고, 빠지지 않는 쐐기를 박는 얄미운 누군가가 되는 것이 언제까지고 나에겐 반가워」
완전히 몸에 밴 상대방에게는 빈정거림도 불쾌하게 하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그 대답에 스바루는 싫은 듯한 얼굴로 코를 울렸지만, 그조차도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결과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 이 이상 너의 반감을 사서 미움을 받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 슬슬, 오늘 아침에 만난 목적을 다하지 않겠나」
「미움 받고 싶어하는 건 본심 아니었어?」
「여자의 귀여운 허풍이라는 녀석이야. 그 정도는,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줬으면 하는데」
「귀여운……?」
진심으로 의문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는 스바루에, 상대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 ―,
「정말, 너는 어디까지고 겁이 없는 인간이다. 『탐욕의 마녀』로서,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나츠키·스바루」
스스로 어울리는 계약자에 『탐욕의 마녀』는, 에키드나는 생긋하고 실로 반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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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키스담의 달 14일.……그건 틀림없는 거지?」
「안심해도 좋아. 너는 어젯밤에 말 없이 잠들고 오늘도 별일 없이 눈을 떴다. 하룻밤 사이에 최악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바보 같은 말하지 마. 그렇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면 죽어 있던 적도 있어. 언제 어디서 죽을지는 아무리 신경써도 부족하다고」
마녀의 낙관에 혀를 차며, 스바루는 절망적인 상실감을 느꼈던 『죽음』을 떠올린다.
그저 막연히, 반드시 찾아온다고 의심도 하지 않던 내일 ― ― 그것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빼앗기고 느닷없이 『사망회귀』한 사실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잊혀진 현실. 그것이 얼마나 큰 공포와 실망을 가져왔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렇네. 지금 건 내가 경솔했어. 사과하지.」
「……이상하게 솔직한데?」
「나쁘다고 생각하면 사과도 해. 나는 그렇게 머리 둔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너에게도 잘 보여 왔다고 생각하는데」
과민 반응으로 민망해 하는 스바루에게 그렇게 말하며 윙크를 하는 것은 검은 옷의 소녀다.
그 소녀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가장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눈을 빼앗고 마음을 붙잡는 마성의 미모와, 그 아름다움을 단 두가지의 색으로 표현한다는 경악의 사실이다.
길고 눈처럼 아름다운 백발은 허리 정도까지 늘어뜨러져 있었으며, 가느다란 몸은 검은 상복 같은 드레스에 감싸여 있다.
의자에 앉아 긴 다리를 꼰 모습은 어딘가 퇴폐적인 성적 매력이 감돌았고, 엷은 입술이 컵에 든 액체를 삼키는 모습은 이상하게 감기는 요염함이 있었다.
그것은, 무리하게 닿으면 멸망에 이름을 직감하는 도착적인 마모 ― ― 그런데도 불구하고, 닿으려고자 도전하는 자가 끊이지 않았던 일화를 남긴, 종식을 가져오는 재앙의 마녀.
그것이 스바루와 계약을 맺은 검정 투성이의 하얀 소녀, 에키드나의 정체다.
「― ― 지그시-」
「― ―? 무슨 일이야.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뭐라도 묻었을까?」
「응, 눈과 코과 입과 귀와 털이」
「……왜일까. 당연한 것을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 모욕당한 기분이 들어」
스바루의 대꾸에 에키드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다.
그 모습에 스바루는 「잠깐 잠깐」하고 손을 들었고,
「딱히 모욕한다던가 그럴 생각은 없어. 다만 왠지 마녀라는 소문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인간도 아니구나 하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
방금 전에 퇴폐적이고 도착적이니 뭐니 여러가지로 표현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대화해보면 약간 특징이 강한 점은 있어도 상냥하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아닌 보통 소녀다.
물론 마녀답게 일그러진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호오, 그건 아주 별난 의견인데」
라고, 그런 스바루의 감상에 에키드나는 어딘가 즐거운 듯이 입술을 열었다.
그녀는 컵을 테이블에 두고, 긴 다리로 자신의 백발을 쓸어올린다.
「이래뵈도, 나는 사백년 전에 여러가지로 각지에 일화를 남긴 마녀 중 한 사람이야. 그 나에 대해, 보통이라는 건 들어넘길 수 없는데」
「특별 취급에 동경하는 중학생 같은 이야기 꺼냈는 걸」
「너에게, 라고 덧붙이자면 나의 심정에 많이 근접하지만 말이지.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야. 그것도,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말했을 거야」
「아, 뭐였더라. 확실히, 내성 없는 사람이라면 처음 보자마자 즉석에서 토하는 꼴이 어쩌구였나」
「그 부분만 잘라내면, 내 인물상이 심하게 오해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위엄 있는 마녀의 풍격이 엎어지고, 스바루의 대꾸에 에키드나가 토라진다.
그 반응에 스바루는 「자아자아」라며 적당히 맞춰주고, 비틀어진 화제의 수정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도, 이야기하는 내용은 아침 일과로 충분하다.
「농담만 하고 있을 때도 아냐. 나는 얼른 현실로 돌아가겠어.」
「벌써 나가나? 조금 더 정도는, 여기서 시간을 보내도 아무도 이의는 하지 않아. 아시다시피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위안이 된다면 얼마든지……나도, 그것에 기대하고 있어」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키는 스바루를 에키드나가 그렇게 말하며 만류한다.
그 마녀의 감언에 스바루는 목을 비틀며,
「그렇네. 솔직히, 나도 여기에 오래있는 선택지로 구원받는 건 알지만……」
거기서 말을 끊고, 뒤를 돌아보며 스바루는 에키드나를 내려다봤다.
마녀의 검은 눈동자와 스바루의 검은 눈동자가 똑바로 마주치며 시선이 얽고 맺힌다.
하지만 ― ―,
「나는 그런 식으로 너에게 응석 부릴 생각이 없어. 그럴 속셈의 계약이 아닌 건 알고 있을텐데」
「정말이지, 솔직하지 않군.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너의 고통도 슬픔도 공유할 수 있는 공범자로 있을 셈인데」
「――나는 고통도 슬픔도 누군가에게 맡길 생각은 없어. 이건 나만의 것이고, 나만의 것으로 그치는 것이 너와 내가 계약한 이유니까. 그렇겠지?」
토라진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에키드나에게 스바루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단언했다.
그 대답에 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말없이 자신의 컵에 입을 댄다.
그것은 반박할 말을 없애고, 대화를 계속할 이유도 없앴다는 표시다.
그것을 지켜보겠다고, 스바루는 그녀를 외면하고 언덕 아래로 가겠다고 내딛는다.
다만, 그 전에 멈춰서 마녀에 돌이켜 물었다.
「그런데, 너, 아까 온종일 날 바라보는 걸 부정하지 않은거지?」
「……설령, 이라고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
「설령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내 국어 실력이 이런 표현은 말 밖으로 그게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문맥이라고 생각하는데」
「― ― ― ―」
「― ― ― ―」
스바루의 추궁에 에키드나는 작게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컵에 입을 댄다.
그것은 대화를 계속할 이유를 없앴다는 의사 표시이며 ― ―,
「너, 그걸하면 내가 내려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제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엿보는 건 멈추고 있는 거지? 어이, 하고 있는 거지?」
「당연하잖나. 나도 너의 목욕과 화장실 장면까지 엿볼만큼 천하지 않아. 다만, 그런 무방비한 장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너의 계약자로서 눈길을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약정을 준수하는 『탐욕의 마녀』로서의 의무감에서 비롯한 행위로...」
「이제부터 목욕탕이랑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펜던트 뺄 테니까」
빠르게 변명하는 마녀에게 그렇게 말하고, 스바루는 수치심을 씹어 죽이며 언덕을 내려갔다.
언덕 아래, 스바루가 처음 초원에 나타난 지점에는 어느새 문이 생기고 있다.
독립된 하나의 문, 그것은 바깥 세상으로의 출입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문이다.
「― ― ― ―」
문 앞에 도착해, 문 손잡이에 손을 댄 스바루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언덕 위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억누르며 무료한 듯 서있는 에키드나가 이쪽의 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올려다 본 스바루의 시선을 깨닫자, 그녀는 조금 주저한 후 그제서야 스바루에게 작은 손을 흔들었다.
그에 아무런 답례도 없이, 한숨만을 남기고서 스바루는 문을 열었다.
― ― 직후, 꿈의 세계에 갇혔던 의식이 해방되어 현실로 회귀한다.
「― ― ― ―」
의식이 현실로 되돌아오자, 스바루는 검은 결정석을 꽉 쥔 자세 그대로 방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긴 숨을 내쉬고 문 위의 마석 결정에 시선을 돌린다.
색깔은 초록에서 변화가 없다.
꿈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은 현실 시간으로 단 몇초라는 그 증거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익숙해지질 않는데……」
꿈의 세계를 방문해, 에키드나와 티타임을 보내는 것은 매일 아침의 일과다.
하지만, 거기에서 현실로 되돌아온 후, 그곳에서의 체감 시간과 실제 시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위화감은 쉽게 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망회귀』, 혹은 또 다른 감각이다.
그것에 스바루가 탄식하자, 마치 귓가에 속삭이듯 방금 막 이별을 고한 마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선 발상을 역전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떨까. 위안에 불과하지만, 좀 더 편안하게 될지도 몰라?』
그것은 실제로 귓가에 들리는 것은 아니다.
그 목소리는 계약에 의해, 목에 건 결정석을 통해서 흘러들어오는 마녀의 사념파다.
꿈의 세계로 가지 않아도, 스바루와 에키드나는 계약에 의해 패스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꿈의 세계로부터 마녀는 스바루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 ―,
「용무가 없을 때는 쉽게 말을 걸지 말라고 말했을텐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딱히 방에서 혼자 있을 때 정도는 나한테 신경써도 벌을 내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무심코 남 앞에서 같은 걸 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랑 대화하는 불쌍한 놈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어쩔 할 거야」
『그 평가를 이제와서 신경써도 말이지. 거기에 정령사라면 계약한 정령과 사념파로 대화하는 일도 드물지 않아. 혼잣말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을걸』
「정령사의 경우는 서로 생각하는 파. 내 경우는 네가 사념파, 나는 혼잣말. 옆에서 보면 내가 이상해」
『그래 그래, 알았어. 네 소원대로 필요한 때 이외는 잠자코 있기로 하지. 마녀를 자기 말대로 부리다니, 너는 꽤나 폭군 같은 남편인데』
「적·당·히·다·물·어」
『이런 이런. 용건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을 걸어주시길, 계약자님』
목소리가 분노로 바뀌자, 에키드나는 연극 같은 말을 남기고 들어갔다.
그래도 마녀는 펜던트 너머로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겠지만, 일단 그에 대한 것은 머리에서 지우고, 스바루는 완전히 이골이 난듯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팬던트는 목욕과 화장실에 갈 타이밍에 반드시, 엉덩이 주머니에라도 처박아 두기로 하자.
― ―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 스바루님, 일어나고 계신가요?」
방문이 밖에서 노크되며, 언제나의 기상 시간이 도래했음을 전한다.
건네진 부드러운 목소리에 스바루는 작게 헛기침한다.
그리고 뺨에 손을 대고, 거울로 확인한 웃음을 만들 수 있도록 의식하면서 「괜찮아」라고 김빠지게 답했다.
그것을 듣고 문을 천천히 열며 한 소녀가 방으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스바루님. 오늘도 기분 좋은 아침이에요」
그렇게 웃으며 말한 것은 메이드복 차림의 소녀 ― ― 스바루 담당 메이드인 페트라 레이테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 어린 꽃 봉오리였던 그녀도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아름답게 피는 과정에 이르렀다.
옛날과 비교해 키와 손발이 성장했고, 가련한 메이드 옷도 갈수록 어울려갔다.
그 태도나 행동도 사랑스러운 의상에 결코 지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기억력도 요령도 좋은 소녀였다.
지금의 페트라는 메이드와 해도 일류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꽃다운 14살 ― ― 아주 어른스러운 페트라의 미소에, 스바루도 미소로 회답했다.
「페트라도 안녕. 기분 좋은 아침……그건 동감이야. 오늘도 아침부터 페트라의 귀여운 얼굴을 봐서 나도 대만족인 걸」
「참, 스바루님은 또 그런 걸.……그래도 숲 너머 하늘에 구름이 걸려서 오후부터 날씨가 나빠질 지도 몰라요. 오늘은 마을에 쇼핑에 갈 계획이 있는데, 맑은 그대로 있어주지 않으려나」
스바루의 인사에 고개를 기울이고, 슬그머니 창문 쪽으로 눈을 돌린 페트라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 말꼬리에는 희미하게 어린 나이의 편린이 남아 있었고, 스바루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앗차, 스바루님」
「아니 아니, 지금, 살짝 훌륭한 메이드씨 껍데기가 찢어졌었다고. 페트라다워」
「정말, 그렇게 어린 아이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어른이 다 되었습니다. 메이드의 일도 이제 2년……한사람 분이니까요」
불그스름한 갈색 머리를 흔들며, 페트라는 수줍게 볼을 붉히고 입술을 삐죽 내밀다.
그런 귀여운 여동생 뻘의 모습에 스바루는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펑펑 쓰다듬었다.
그 감촉에 페트라는 행복한 듯 싱긋 웃고, 서운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직 아침 식사에는 이른 시간입니다만……」
「아-, 일단 평소의 일과만 하고 괜찮을 것 같으면 다같이 아침밥일까. 힘들 것 같으면……일단, 언제나 대로」
「……네」
스바루의 대답에 희미하게 눈을 내리깔고, 페트라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다.
귀여운 소녀에게 그런 얼굴을 하게 놔두는 것이 견디기 어려워, 스바루는 머리를 긁으며,
「그렇다고 해도, 오늘 아침도 고마워. 굳이 깨우러와줘서 말이야」
「― ― ― ―」
「페트라?」
「스바루님의 그런 점, 정말로 서툴러요」
화제의 전환이 몹시 서툰 스바루를 그렇게 평가하며 페트라는 기막힌다는 듯 탄식한다.
그리고 소녀는 고개를 흔들어 꽃이 핀 듯한 미소를 만들고
「아뇨, 이것도 저의 일이니까요. 그리고, 스바루님은 늦잠을 자는 일이 없으셔서 정말 좋아요.……이건 조금 더, 늘어져도 괜찮은데」
「응?」
「아무 일도 아니예요. 그럼, 또 나중에. 실례하겠습니다」
매일 아침의 관례, 스바루의 기상 알림을 마치고 페트라는 점잖게 스커트를 올린다.
그리고 페트라는 스바루의 환대를 받으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스바루는 그녀의 성장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페트라도 훌륭하게 되었는 걸. 오빠뻘로서 기가 사는데」
『그녀로서는, 너를 오 뻘로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지』
「……필요한 때 이외에는 가만히 있겠다고 막 말해놓고 이거냐. 마녀님이 꽤나 쉽게 약속을 어기는데」
혼잣말에 맞장구를 치고, 스바루는 침묵을 못 견디는 마녀의 약함에 질렸다.
하지만 이내 체념의 탄식을 남기고, 페트라가 사라진 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그 아이의 오빠뻘이야. 고로, 페트라는 나의 귀엽고 귀여운 여동생뻘. 그러니까, 저 아이는 행복하게 해줄거야. ― ― 그것은 절대적이다」
『절대로, 행복하게 해준다, 라……의외로, 그것은 무서운 말일지도 모르겠네』
스바루의 딱딱한 음성에 에키드나는 농담이 아닌 듯 그렇게 말했다.
그 마녀의 말을 흘려듣고 스바루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그 방을 나온다.
저택의 복도는 새벽 기운에 싸늘했고, 스바루는 몸을 떨며 어깨로 그 차가운 공기를 가로지르면서 걸었다.
― ― 매일의 『일과』, 그것에 착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몇달간, 아침의 로즈월 저택에서는 장절한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그것을 『살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섭섭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공방을 옆에서 바라보는 스바루에게 있어서 그것은 『살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가혹한 교환이 오가는 것이다.
사실, 적어도 서로 부딪치는 둘 중 한쪽은 죽일 생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을 상대하는 사람은 그 사나운 전의를 가볍게 받아넘긴다.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실력 차이는 누구가 보기에도 절망적일 만큼 분명했다.
물론, 그렇기에야 이런 위험한 일과가 아침마다 계속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루, 아아아 ― ―!!」
거칠게 울부짖으며, 앞마당의 잔디를 날려버릴 기세로 발차기가 폭발한다.
맹렬한 추진력을 얻은 금색 그림자가 일직선으로 파고들며 맹진해, 적의 그림자에 짐승의 손톱을 할퀴었다.
그것은 두꺼운 철판을 찢으며, 인체라면 가볍게 다진 고기로 바꾸는 비정한 일격 ― ― 짐승의 발톱은 무수한 연격으로 휘몰아치다, 사냥감의 도망을 막도록 덮친다.
그러나 ― ―,
「유감이지만 빈틈이 많은데」
「가, 아 ― ―!?」
난무하며 쏟아지는 치명적인 짐승의 발톱을, 그림자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몸을 돌려 피한다.
직후, 한마디와 함께 긴 다리가 치솟으며 짐승의 몸통을 바로 밑에서 꿰뚫었다.
그 일격에 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맞은 측의 몸이 위로 발사되어― ―,
「가, 즉 ― ―!?」
― ― 야 할 것이었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
위로 떠올려진 몸을 요격하는 것처럼 내리치는 발꿈치에 맞아 지면에 격돌한다.
그 충격은 잔디의 지면에 원형의 크레이터를 만들었고, 짐승은 네다리를 뻗고 완전히 침묵하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계속할래?」
「― ― 아, 오」
신음 소리를 내는 패자에게 승자가 속행의 의사를 묻는다.
그것은 싫은 소리도 빈정거림도 아닌, 순수한 투쟁심으로 던진 말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패자의 영혼을 깊게 상처입힌다
그래서 ― ―,
「자각은 없겠지만, 역설 밖에 되지 않아. 무사의 인정으로 그만해 줘」
이미 승패의 결정된 장면에 들어온 스바루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 말에 큰 대자로 넘어진 상대를 굽어보던 청년이 뒤돌아보며 웃음을 띄운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의 청년은 스바루를 향해 손을 든다.
「여, 안녕, 스바루. 오늘도 빠르네」
「너희들 만큼은 아니야. 그건 그렇고 매일 매일 질리지도 않는다고 할까……딱히 너도 고지식하게 어울릴 필요 없다고, 라인하르트」
「강해지고 싶다는 그의 뜻은 틀리지 않았어. 거기에 날로 그가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야. 머지 않아 나를 따라잡을 때도 오지 않을까」
「그래?……잠시 나로서는 상상이 안되는데」
붉은 머리의 청년 ― ― 라인하르트의 말은 농담도 겸손도 아닌 분위기다.
그의 자타평가에 스바루는 한쪽 눈을 감고 땅에 누운 쪽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곳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짧은 금발의 소년이다.
괴로운 듯 신음하며, 아직 전투 불능 상태에 있지만, 그 녹색 눈동자에 맺힌 전의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의사에 따르지 않고, 그저 속상한 듯 이를 갈 뿐이다.
그 억울한 기분을 이해하고 스바루는 소년에게 손을 뻗쳤다.
「자, 설 수 있겠어, 가필. 너무 우울해 하지 마. 네가……」
「……아무렇지 않게, 만지려고 하지 마라. 굳이 네놈 손 따위를 잡지 않아도 설 수 있다고"
내민 스바루의 손을 뿌리친 금발의 소년 ― ― 가필이 엄니를 드러내다.
그러나 그것이 허세인 것은 누가 보기에도 분명하다.
얼굴에는 고통이 짙고, 호흡도 거세다.
다만 그 허세를 조롱할 만큼 스바루도 점잖지 못하진 않았다.
뿌리친 팔을 가볍게 흔들며 몸을 일으키는 가필에게 스바루는 한숨을 쉬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 좋을대로 해. 그래도, 아침 식사 전에 목욕하고, 땀과 진흙은 씻어 둬. 그렇지 않으면, 람이 싫어한다」
「……시끄러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스바루의 쓴소리에 고개를 흔들고, 가필은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선다.
그 무릎은 아직 떨고 있지만 그래도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경이적인 회복력으로 일어서, 가필은 시원스럽게 선 라인하르트를 노려보았다.
「다음엔, 지지 않아」
「기대하고 있어」
조금의 거짓말도 없는 라인하르트의 답에 가필는 콧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다리를 저는 소년은, 스바루의 옆을 지나갈 때에 언뜻 그를 보고
「― ―켁」
하고 분한 듯이 혀를 차며 그대로 안뜰에서 저택으로 향해 갔다.
그 모습을 쓴웃음으로 배웅하고, 스바루는 이런 이런하고 고개를 젓는다.
자존심이 상처입고 꼴 사나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쁜 감정은 아침까지 땀과 함께 물에 씻어 주면 된다.
정말이지, 어려운 나이인 것이다.
「저 녀석에 대한 걸, 너에게만 맡겨서 미안해. 너도 피곤한다면 목욕탕……은, 그렇게 목욕탕에서 마주쳐도 곤란하나」
「그렇네, 그에게 나쁘겠지. 다행히, 나는 땀이 날 정도로 움직이지 않아서 사향해둘게. 가필을 진흙 투성이인 채로 람 씨 앞에 끌어내는 것도 불쌍하고」
가필을 배웅하고, 그렇게 말한 스바루에 라인하르트는 웃는다.
말한 대로 『검성』에게 지금의 아침 연습의 영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죽일 기세로 덤벼드는 가필을 완전히 어린 아이 취급했다.
거기에 그는 시원한 얼굴로 가필이 쳐 함몰한 잔디를 발로 고른다.
그러면 어떤 원리인지 잔디는 깨끗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이것도 그가 소유하고 있는 무수한 가호의 힘인가.
― ― 알면 알수록, 적대했던 때를 생각하면 오싹해지는 인물이다.
그런만큼, 그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 넣을 수 있던 것은 스바루의 최대 전과일 것이다.
『검성』 라인하르트 반 아스트레아.
현재 그의 소속은 로즈월을 뒷받침한 왕 후보인 에밀리아 진영에 있다.
왕선 시작 직후, 펠트의 기사로 그녀에게 편든 『검성』은 왕국에서도 특출한 지명도 아래, 최대의 적대자로 군림했던 것이지만 ― ―
「― ― 이런 말하기도 그렇지만, 여기서 펠트가 돌아와서 다시 너랑 적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싹한데」
「― ― ― ―」
「왜 그래?」
「……아니, 염려해주는 건 고맙지만, 나는 아마 펠트님의 기사로 되돌아갈 수 없어. 아무래도, 나는 그 분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된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나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았을테니까」
스바루의 발언에 쓸쓸하게 시선을 돌리고, 라인하르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의 그 대답에 눈을 감고, 스바루는 내심을 감추며 한숨을 내쉰다.
― ― 왕 후보자 가운데 1명이자 라인하르트의 주군인 소녀, 펠트가 그의 기사 앞에서 사라진 지 이미 1년 가까이 경과하고 있다.
그 고양이 같은 소녀는 아스토레아가를 배반하고,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한 『검성』을 뒤로 한 채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가족 같은 노
인과 함께 왕선에서 도망 쳤다.
그것이 세속적인 그녀에 대한 소문이며, 그것은 거의 사실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라인하르트는 펠트에게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채 왕선에서 느닷없이 탈락했다.
충성을 바친 주군이 행방을 감춘 그 사실에 『검성』이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는지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고, 새로운 진영의 아군으로 끌어들인 것이 스바루다.
자책감과 책임감이 막무가내였던 라인하르트도 스바루의 필사적인 설득에 가슴을 치며, 새로운 주군으로서 에밀리아에게 칼을 바치기로 승낙했다.
이후, 『검성』은 에밀리아 진영의 칼로서도 왕선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과거 『질투의 마녀』을 봉인한 『검성』의 후예가 반마라고 멸시되는 에밀리아를 지원하는 입장에 가담한 것이다.
그 의미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거기에, 왕선 관계 이외에도 라인하르트의 존재에는 도움이 되고 있다.
같은 진영에 소속하면서도 반발적인 가필에 대한 대처도 그 중 하나다.
「너와 람에겐 머리를 못들겠다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나는 가필에게 몇번 때려눕혀졌을지 상상도 안되는데」
「거기까지 무분별하진 않을 거야. 확실히 표면상 가필은 스바루에게 엄하게 대하고 있지만, 그건 실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이니까. 다만, 너의 강함은 한눈에 보기 힘든 부분이 있어. 그것이 좀처럼 그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야」
「뭐, 그만큼 꼼수의 연발로 연기에 휩싸이면 누구라도 화나겠지. 그 밖의 수는 없었으니까 후회도 반성도 하지 않지만」
라인하르트의 옹호에 어깨를 으쓱며하, 스바루는 『성역』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묘소와 연결된 결계에 의해 마을 사람들의 탈출이 불가능한 『성역』.
거기에 일시에 몰려들어온 마수 『대토』의 위협 ― ― 그 난제의 돌파에 스바루는 몇개의 수를 썼다.
『성역』이 해방되는 것에 대한 두려워 해 스바루와 에밀리아 일행을 어떻게든 저지하려던 가필, 그에 대한 대처는 『사망회귀』의 혜택을 전력으로 발휘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스바루와 에키드나의 계약의 시작이다.
마녀의 손을 잡기로 선택한 스바루는 그 『성역』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망회귀』를 반복하면서 온갖 시행 착오를 거듭했다.
그 결과, 스바루는 『성역』에 체류한 모든 인원의 행동을 파악하고 가필을 완전히 따돌려 그의 방해를 근본부터 무효화했다.
묘소의 『시련』을 비밀리에 돌파하고, 결계를 풀고, 로즈월은 류즈와의 교감을 끝내고 대피를 유도, 대토의 위협이 『성역』을 덮치기 전에 주민을 피난시켰다.
그동안 눈앞으로 다가온 해방의 시간을 어떻게든 멀리하겠다고 분투했던 가필의 모든 저항을 봉쇄하고.
결국, 가필이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성역』의 주민의 피난이 끝나고, 엎질러진 뒤였다고 알았다.
가필는 그래도 『성역』에 남겠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성역』은 대토의 내습을 받아 단독으로 맞서지 못하고, 소년은 빈사에 내몰린다.
바로 그때, 그는 스바루와 로즈월의 손에 의해 도움 받았다.
역부족과 판단 미스, 소년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10년 이상 지켜왔던 사정이 외부인에게 붕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따돌려진 채 해결되어버린 가필의 마음은 상처 투성이였다.
그 후 그가 울적한 감정을 분노로 바꾸고, 스바루를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람과 그의 누이인 프레데리카의 설득이 없었다면 형태만이라도 가필이 에밀리아 진영에 가담한다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필의 분노의 배출구가 되었던 것이 새롭게 참가한 라인하르트다.
결국, 가필이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무조건 강하게 되려고 발버둥치는 가필은 확실한 목표로서 『검성』의 강함을 알며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윽고 『성역』에서는 얻지 못한 답에 이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은 나랑도 허물없이 대해주면 만족스러울텐데 말이야」
「너와 마음은 금방 통할 거야. 서두를 필요는 없어」
스바루의 소극적인 결론에 라인하르트는 위로하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붉은 머리의 기사는 저택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가필에 대한 건 한동안 내게 맡겨 주었으면 해.……펠트님의 신뢰를 얻지 못한 나에게, 네가 아직 기대한다면」
「비굴하게 되지 마. 너를 믿을 수 없으면 누구를 믿을 수 있다는 거야. 기대하고 있다고」
「알겠어. 그럼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 ― 그것이, 제1의 기사로서의 의무야」
마지막 한마디에만, 라인하르트는 특별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제1의 기사』, 그것은 주종 관계에서 가장 강한 유대로 맺어진 사이에만 허용되는 입장이다.
라인하르트는 펠트의 그것에 되지 못했다.
스바루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마음이 담긴 것 같았다.
「그럼 나중에 다시」
그런 감상은 조금도 표정에 드러내지 않은 채, 라인하르트는 스바루의 어깨를 두드리고 마당을 떠나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의 발 밑, 패였던 잔디밭에 방금까지의 싸움의 흔적은 추호도 없다.
원래대로 돌아간 잔디 위에 서서, 스바루는 라인하르트가 정원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토했다.
「가필에 대한 건, 너에게 맡겼어……라」
『꽤나 익숙해진 연기였어. 너도 참 뻔뻔스럽게 되었군』
「― ― ― ―」
다시 협정을 깬 마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더이상 스바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무언을 허가로 받아들였는지, 에키드나는 결정석 너머로 사념파를 날린다.
『가필에 대한 연민은 네 자유야. 하지만, 『성역』의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했을텐데. 수도 없이 시행 횟수를 거듭하면서, 최선을 택했을 터야.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고……결국엔 전원의 목숨을 구했다. 그렇겠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딱히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잖아」
『라인하르트에 대해서도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애초에, 그 소녀 ― ― 펠트는 왕선에 대해 내켜하지 않았었지. 그렇기에, 뒤탈 없는 퇴로를 제시해주었고. 지금쯤 그 거인족 노인과 함께 카라라기에서 한적하게 살고 있을거야』
「― ― ― ―」
나츠키 스바루의 선택을, 에키드나가 정중하고 정중하게 부스럼 딱지를 벗기듯이 달랜다.
가필의 정체, 라인하르트의 고뇌 ― ― 그것은 모두 스바루가 선택한 결과이다.
가필에 대한 것은 그나마 좋다.
그것은 『성역』의 문제를 희생 없이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으니까.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다르다.
그와 그의 주군을 떼어낸 것은 전부 나츠키 스바루의 책략이었다.
사실을 안다면 규탄과 경멸은 불가피하다.
그런 시도다.
하지만 그런데도― ―,
『에밀리아를 노리는 마녀교의 악의를 물리치는데 너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깨끗하기만 해선 누구도 구할 수 없어. 너는 어디까지나 올바른 선택을 했을 뿐이야』
「시끄러워」
『원만하게 프리스테라을 구했던 것도, 그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 수문 도시를 강타한 재앙에, 라인하르트 없이 얼마나 대항할 수 있었지?』
「― ― ― ―」
『물론, 그 자리에 모인 전력이라면 다른 수단에 의한 격퇴도 가능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만큼의 대사건에서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여러가지 대죄 주교를 격퇴할 수 있었던 건 틀림없이 사건 전에 라인하르트를 거느렸기 때문이다』
겹치는 에키드나의 말은, 스바루를 위로하는 것 같지만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그것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내려쳐지는 말의 칼날이다.
그렇게 스바루의 마음을 갈가리 갈라놓는 것이 진짜 목표인게 아닌지 생각할 정도로 정확하게, 말의 칼날이 나츠키 스바루의 행동을, 기만을 다진다.
수십, 수백번을 반복해도 부족했다.
압도적으로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힘은 『사망회귀』를 반복하는 나츠키 스바루의 경험만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었다.
미래의 기억과 경험, 그것만으로는 뒤집을 수 없는 절망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그렇고 해도, 타협할 수 있었다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을 허용할수록 스바루는 강하게 있을 수 없었다.
체념을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것을 허용하고, 희생에 눈을 감으면 의미가 없다.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고 마녀의 손을 잡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필요한 전력을 긁어 모으기 위해 분주했다.
그 결과로 최강의 칼, 라인하르트 반 아스트 레어를 빼내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를 위해 필요한 펠트의 왕선 이탈 ― ― 그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 착오를 거듭했는지, 그 전부를 말할 기운은 없다.
라인하르트와의 적대, 그 검 앞에 죽은 것도 열에 스물은 넘어갔다.
그런데도 최종적으로 원만하게, 누구 하나 희생시키지 않고 그것은 달성되었다.
그 결과만이, 나츠키 스바루에 있어서 다행이다.
비록 얼마나 마음이 상처받는다 해도, 생명만 구한다면--.
「생명이, 있어. 생명이 있다면, 미래가 있어. 미래가 있으면, 희망이 있어. 희망이 있다면, 가능성이 있어. 가능성이 있으면--」
『――사람은 구해진다. 너는 올바르다. 잘못되어 있지 않아. 내가 보증하지』
「너의 보증은 딱히 필요 없어……」
자신을 타이르며, 자신을 북돋으며 스바루는 자신의 토대를 입에 담는다.
마녀는 그것을 긍정하고, 이해하고, 공유하고, 칭찬했다.
그 말에 불평으로 응하지만, 마녀의 말에 구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 생명이다.
생명만 있으면, 또 다시 할 수 있다. 가능성이 있다. 희망을 연결한다.
희생이란, 스바루 이외의 생명이다.
모든 계산에 포함하는 것을 그만둔 스바루의 생명 이외가 지켜질 수 있다면 끊임없이 『사망회귀』에 계속 도전할 가치는 반드시 있다.
――비록, 구하고 싶은 이가 운다고 해도, 나는 구하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마녀의 손을 잡아서라도 이루겠다고 결정한 스바루의 구원인 것이다.
충격과 공포의 만우절 IF 외전입니다
보고 나서부터 번역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드디어 손댔네요
이게 한 40퍼센트 정도 되나;;
끝내지마자 올려서 다음 분량까진 며칠 걸릴 듯 싶네요
내용도 내용이고....
정말, 여기까진 그래도 그나마 잘 흘러갔다고 생각했는데
저 구원 드립칠 때부터 뭔가 이상하게 된 건 알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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