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에서 자기와 닮은 고아 소년을 만나 처음으로 진정한 공감을 경험했던
바이올렛은 7화에서 드디어 의뢰인과 완전히 한 마음이 되어 같은 목표를
위해 협력합니다. 그렇게 바이올렛이 공감 능력을 길러 자신과 타인이
공유하는 고통을 오롯이 이해하게 된 순간,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반환점을 돌아 완전히 다른 감성을 담은 후반부에 접어듭니다.
1. 상실의 흔적들
딸을 잃은 오스카는 삶의 의지를 잃고 그저 괴로움을 잊으려 술로
소일하는 중입니다. 정돈되지 않은 실내와 집주인의 추레한 행색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무성한 수풀과 낙엽에 뒤덮인 별장 풍경에서
오스카가 자포자기한 상태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회상 속 별장의 말끔한 모습을 작중 현재와 비교해 보면,
오스카가 얼마나 오랫동안 상실감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방치해 왔는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2. 한계를 넘는 바이올렛
출장을 부탁하고서도 비협조적인 의뢰인을 굳이 도울 의무는 없겠지만,
인형으로서 남다른 사명감을 가진데다 5화부터 소소한 업무 규정에
얽매이지도 않는 바이올렛은 이제 눈앞의 인형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서 아득히 벗어난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 의뢰받은 일의 성격을 완전히 알지도 못하는 바이올렛이
이렇게까지 오스카를 돕는 이유는, 마지막 술병을 빼앗으며 직접 밝힌
것처럼, 오스카의 건강을 염려해서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렛이 본질적으로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다시금 드러납니다.
스펜서의 경계심을 사면서도 우직하게 대필한 편지를 건넸던 3화에서처럼,
7화에서도 바이올렛은 봉사하려는 대상이 다소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섭니다.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오스카도 처음에는
불쾌함을 표시하지만, 이내 바이올렛의 진정성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입니다. 3화에서 스펜서는 바이올렛이 누이 루쿨리아의 친구임을
이미 알았기에 경계심을 쉽게 누그러뜨렸지만, 7화에서 오스카는
바이올렛이 자신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것을 느꼈기에 그녀의
진정성을 인정합니다.
3. 바이올렛이 공감하는 방법
늘 한계를 넘는 바이올렛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관성 있게 한계를
보이기도 합니다. 마시지 않으면 쓰지 못한다는 오스카는 글을 저술한다는
의미로 '쓰다'를 사용했지만 쓰는 것은 자기 담당이라는 바이올렛은 손으로
글을 적는다는 의미로 '쓰다'를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언어를 가장
표면적이고 즉물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이올렛이 호수 위에서 기적을 연출했던 것도 오스카의 유머를 있는
그대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오스카가 오열하는 것이 슬픔 때문인지, 육체적 고통 때문인지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표정을 잘 읽지 못하는 평소대로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계들 때문에 바이올렛은 일반인처럼 순발력 있게 상황의 감정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서, 많은 경우 자신이 무엇에 공감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정돈된 설명이 주어지면, 그녀는 전보다
더 깊은 감정이 담긴 반응을 보입니다.
바이올렛이 오스카의 연극을 동료들과 함께 극장에서 보지 않고 굳이
대본을 구해서 읽는 것은, 아마도 배우들의 표정이나 몸짓을 읽는 것보다
지문을 읽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자신의
상황에 매우 걸맞는 대사를 찾아내자 그 대목을 소리내어 읊조립니다.
"아아, 난 이 죄를 짊어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거야. 죽을 때까지 평생!"
여기서 그녀가 희미하게나마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들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감정을 매개로 가상의 인물에 이입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화에서 리온에게 쓸쓸함이 어떤 느낌인지 배운 후,
바이올렛은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올리브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고, 오스카의 딸을 잃은 슬픔에 공감하여
처음으로 남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아픔에 비추어
타인의 아픔도 헤아리고 있음은 그날 밤 소령이 남긴 에메랄드 브로치를
깨물어 보는 모습으로 더욱 강조됩니다.
극작가인 오스카에게, 자신의 슬픔에 공감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창작 욕구를 다시 일깨우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바이올렛이 눈물을 흘렸던 날 밤, 두 사람은 작품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짓기로 의기투합하고 다음날부터 열정적으로
대본 작업에 나섭니다. 바이올렛이 이렇게까지 의뢰인과 감정적으로
동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 결실은 <바이올렛 에버가든>에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가장 경이로웠던 이 장면입니다.
"기적을 이뤄준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있다면, 그건 너일 거라고."
오스카처럼 감수성 예민한 작가에게 바이올렛은 무수한 영감을 주는
뮤즈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4. 양산의 의미
프릴 달린 양산은 오스카의 딸, 올리비아가 가장 아끼던 유품입니다.
오스카는 바이올렛이 죽은 딸의 '언젠가 반드시'를 이루어 주었다며
그 양산을 선물합니다. 양산은 바이올렛이 성장 과정에서 어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씩 늘어가던 소지품 목록에 마지막으로 더해진
물건입니다. 오스카의 말 그대로, 이 양산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꿈을 상징하고, 그 꿈을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 주는 바이올렛의
특출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음을 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실
'자동수기인형'의 역할입니다. 2화에서 에리카는 자동수기인형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타자기의 원형이기도 한 그 기계는 원래 활판 인쇄의 권위자인 올랑드
박사가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소설가였으나 시력을 잃게 되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 아내 몰리를 위해 만든 기계였는데, 박사는 그걸
자동수기인형이라 이름지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대필업종을 말하는
명칭이 되었다. 그 아이를 만나고 실감했다. 하마터면 잊을 뻔한 나의 꿈을.
깊게 묻혀 있었던 나의 마음을."
즉, 자동수기인형은 아내의 꿈을 이루어 주려는 남편의 사랑이 탄생시킨
존재였습니다.
바이올렛은 이제 그 이야기의 의미에 걸맞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이올렛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전투가 벌어진 11, 12화를 제외하면)
선물받은 양산을 늘 구비합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어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양산을 받았던 날 그녀가 과거 명령에 따라
짓밟아 온 "언젠가 반드시"와 "사랑해"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떠올리면,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를 잊지 않겠다는
바이올렛의 다짐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5. 픽션과 현실
7화에서는 픽션의 힘과 한계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어 나타납니다.
픽션을 통해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욕구를 승화시키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스카가 무력감에서 벗어나 극작가로서 재기하는 과정은
픽션의 그러한 순기능을 잘 활용한 것입니다.
반면 픽션은 잠시 도피할 공간을 제공해 줄지언정 현실의 문제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픽션이 제공하는 즐거움이 달콤할수록,
냉혹한 현실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대본 집필을 끝낸 후부터 바이올렛이 겪는 고통이 그에 해당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올리브의 꿈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을 감상하던
바이올렛은, 이제 자신이 그런 꿈을 숱하게 짓밟아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녀가 꾸는 꿈은 다소 모호하지만 분명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피 묻은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형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바이올렛을 과거의 바이올렛이 붙드는 것으로, 자신은 결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그녀의 생각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의수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바이올렛조차 꿈 속에서는 맨살로 된 손을 본다는 것이
의미심장한데, 죄를 지은 손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죄도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라이덴에 돌아온 바이올렛은 소령의 실종 소식을 뒤늦게
접합니다. 소리없이 절규하며 우편사를 뛰쳐나간 바이올렛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모험을 떠난 올리브처럼 소령을 찾아 먼 길을
떠납니다. 배가 망가져도 올리브는 정령들의 도움으로 양산을 타고
낙엽을 밟고 물 위를 건넜지만, 기찻길조차 끊긴 오지에서 바이올렛은
오직 자신의 다리로 밤새 걷고 또 걸어 초라한 몰골로 소령의 옛 저택에
도착합니다. 올리브는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지만, 바이올렛을 기다리는
것은 소령의 가묘입니다. 7화와 8화를 이어서 보면, 여기서 바이올렛이
느꼈을 절망감이 곱절로 느껴집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 7화는 원작 소설에서는 본래 첫 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인형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주인공의
신비롭고 우아한 매력이 섬세하게 잘 표현된 단편이라 첫 에피소드로는
제격이었습니다. 반면 애니메이션의 7화는 바이올렛에게 지극히 인간적인
슬픔과 고통을 부여하고, 유일하게 픽션을 소재로 다룬 이 에피소드를
바이올렛이 가장 고통받는 8, 9화 앞에 배치하여 이상과 현실의 대비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더욱 격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6. 메리 포핀스의 뱅크스 씨 구하기
우산(양산)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드레스 차림의 우아한 여성은
거의 반세기 전(1964년) 디즈니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 영상화된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 메리 포핀스는 어느날 홀연히 우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뱅크스 가의 보모 역할을 자청합니다. 그녀는 마법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던 아이들에게 즐겁고 따뜻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동안의 무관심을 늬우치고 아이들과
화해할 즈음, 그녀는 다시 우산을 펼쳐 들고 조용히 하늘로 떠나갑니다.
영화 <메리 포핀스>는 사실 같은 이름의 원작 소설(1934년작)을 각색한
작품이었습니다. <뱅크스 씨 구하기(Saving Mr. Banks)>는
바로 그 각색 과정의 뒷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월트 디즈니를 비롯한 영화 제작진은 원작자
P. L. 트래버스와 심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원작 <메리 포핀스>의 주요 인물들은 작가 트래버스의 어릴 적 추억을
여러모로 반영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그런 요소들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것이 그녀로서는 불만스러웠다고 합니다. 특히 원작의 뱅크스 씨에게는
딸을 무척 사랑했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는데, 영화의 뱅크스 씨는 그저 차갑고 무책임한
아버지로 변해버린 것이 트래버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각색된 시나리오에 불만을 표시하며, 트래버스는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 가에 온 이유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은행가로서의 사회적 야심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했던 영화판에서의
뱅크스 씨. 결국 디즈니는 원작자의 마음을 헤아려 영화 <메리 포핀스>의
결말에서 뱅크스 씨가 구원받도록 합니다. 메리 포핀스가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뱅크스 씨는 마침내 자신이 삶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닫고 아이들과 화해한 후 함께 즐겁게 연을 날리러 갑니다.
<메리 포핀스>에 얽힌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로 <바이올렛 에버가든> 7화의
원형이 되었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겁니다. 양산을 타고 날아오른
바이올렛이 메리 포핀스 역할이라면, 그녀에게 구원받아 삶을 되찾은
오스카 웹스터는 뱅크스 씨 역할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이야기 속에 꿈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바이올렛과
오스카는 그들 나름의 <뱅크스 씨 구하기>를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웹스터 씨를 구한 후 정작 자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에 빠진
바이올렛이 어떻게 스스로를 구해낼지, 우리는 9화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IP보기클릭)59.12.***.***
바이올렛이 에메랄드 브로치 다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우산 에메랄드 브로치는 무기였을 때 소령과의 연결점(눈동자색)으로 인해서 관심을 가졌다면 우산은 소령과의 연결점이 전혀 없는 자동수기 인형인 바이올렛 에버가든으로서 순수하게 관심을 가진 물건이죠.
(IP보기클릭)59.12.***.***
바이올렛이 에메랄드 브로치 다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우산 에메랄드 브로치는 무기였을 때 소령과의 연결점(눈동자색)으로 인해서 관심을 가졌다면 우산은 소령과의 연결점이 전혀 없는 자동수기 인형인 바이올렛 에버가든으로서 순수하게 관심을 가진 물건이죠.
(IP보기클릭)82.7.***.***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바이올렛의 인형 복장 중에서 정말 본인의 취향에 따라 고른 것은 양산 뿐인 것 같군요. | 19.06.17 19:42 | |
(IP보기클릭)59.23.***.***
(IP보기클릭)82.7.***.***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19.06.17 19:43 | |
(IP보기클릭)175.215.***.***
(IP보기클릭)82.7.***.***
정말 훌륭합니다. | 19.06.17 19:48 | |
(IP보기클릭)39.121.***.***
(IP보기클릭)82.7.***.***
서술자가 극작가여서인지 대사 중에도 유려한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 19.06.17 19:53 | |
(IP보기클릭)59.12.***.***
(IP보기클릭)131.111.***.***
"야수성과 인간성은 한끗 차이"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무기' 시절부터 바이올렛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가슴 속에 품은 세상이 넓어짐에 따라 얼마나 '사람'답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범위만큼 인간적으로도, 야수적으로도 행동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너무도 쉽게 눈먼 야수성으로 돌변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채플린의 연설이 더욱 비극적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 19.06.19 03: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