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명작 '기동전사 건담'을 감독한 토미노 감독은 자신이 관여하지 않아도 후속작들을 만들 수 있도록
허가하는 대신 이 말을 남겼다.
'반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담을 만들어 달라.'
그 유지를 받들어 건담 프랜차이즈는 일단 반전주의적 요소를 포함하지만 사실 이는 실로 모순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멋진 로봇 프라모델을 팔아 먹으려고 건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어떻게 반전적 메세지를 넣을 수 있겠는가?
그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로봇 공장 폭파하는 장면이라도 보여줘야 하는가?
창과 방패의 싸움은 상업성을 택한 창의 승리로 끝났다.
창은 곧 건담 프랜차이즈 제작사와, 프라모델을 만드는 스폰서이다.
멋진 로봇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스폰서와 제작사는 건담 프랜차이즈들을 계속해서 만들었고
그 결과 언젠가부터 건담 시리즈라는 프랜차이즈는 반전이란 껍데기를 표방 한 로봇 프라모델 광고 영상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2010년 무렵 급격히 우경화된 일본의 서브컬쳐계와 소비자들의 성향도 이에 부채질했다.
전쟁을 겪어 본 적도 없고, 겪어 볼 일도 없을 세대.
은근히 과거의 영광을 노래하는 자국의 작품들을 즐기는 젊은 일본인들 눈에는 한 때 아시아를 침탈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수 없이 죽인 자신들의 선조가 자랑스러웠을 터이다.
그렇기에, 패전의 이유로 자신들을 묶은 그깟 조약만 풀게 되면 좁아 터진 열도에서 벗어나 다시 세계를 상대로 총부리를
들이댈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자랑스러운 일본을 되 찾게 된다.
그런 연유로 강한 일본을 만들고 싶어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반전이란 말은 고색창연한 말일 뿐이다.
승리에의 의지가 없는 겁쟁이의 말뿐이라 생각한다.
그런 세태가 반영된 현 세대의 일본 서브컬쳐물은 극히 호전적이고 전쟁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 비해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되던 시기, 70년대의 사람들은 어떠했나.
태어나고 자란 조국 일본이 자국이 일으킨 어리석은 전쟁으로 인해 불바다, 잿더미가 되는 참상을 두눈으로
목격한 토미노를 비롯 그 시대의 창작자들은 두 번 다시 자신들의 국가가 끔찍한 전쟁을 불러오지 않도록
'상호간의 이해를 통한 평화'를 이야기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동력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진 못하다.
시대가 바뀌었고, 반전을 노래 할 만큼 지금의 일본 국민들은 여유도 없고 영광도 없으므로.
2015년에 등장한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는 그렇기에 이색적이고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 소년병의 이야기를 다뤘다면서 '사실 야쿠자의 이야기를 넣은거에요~'라고 자신들의
태만과 무지함을 드러낸 다른 건담 애니메이션의 제작진들과 달리 이 작품은 지극히 슬프고 비참하다.
원작자 토미노는 여간해서는 후속작을 좋게 보지 않는다. 싫어나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건담이란 '생물'은 자신의 손을 떠나 자본에 논리에 따라 제 멋대로 만들어지고 굴려지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자는 이 작품에 '전쟁의 광기를 잘 표현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건담 프랜차이즈 중 최고로 영광스럽던 시절인 초기 우주세기를 배경으로 연방과 지온측의 인물들은
제각기 생명력을 갖고 전쟁의 참화를 노래한다.
우주세기 0079년, 인류의 절반을 넘게 절멸시킨 1년 전쟁.
독립을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킨 우주군 '지온공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지구연방'
두 세력에는 두 명의 에이스 파일럿이 있다.
지온공국에 의해 우주의 인류 거주구역 콜로니의 시장직을 역임하던 아버지를 잃은,
지구 연방측의 이오 플레밍.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걸 좋아했지만 연방의 폭격으로 두 다리를 잃어 상이군인이 된 채
즐거웠던 지난날을 잊으며 씁쓸한 군 생활을 이어나가는 지온공국측의 대릴 로렌츠.
이 두 인물은 원전(原傳)이 되는 '기동전사 건담'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나블 이상의 숙적이자
아치 에너미, 그리고 철천치 원수이다.
엘리트 장교인 이오 플레밍은 목숨걸고 나선 전투에서 적기까지 나포해오며 동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몸에 받지만 내면으로는 지온에의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소꿉친구였던 함장의 정신상태를 무너뜨리며 동료들을 숱하게 죽여나가는 지온,
자신의 아버지를 처참히 죽인 지온.
그들, 그리고 무력했던 자신을 도저히 용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안정시켜 주는 건 즉석에서 연주하는 프리재즈 음악이다.
다정 다감한 성격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받는 대릴 로렌츠는 두 다리,그리고 팔까지 지구연방과의 전투에 의해
잃고, 두번 자신의 발로 달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우주 거주민인 자신들을 억압하고 신체의 자유까지 뺏어간 지구연방군은 자신과 같은 신세인
동료들마저 무참히 죽이기에 이르고, 수세에 몰린 지온공국측은 그들에게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그나마 남은
대릴의 한팔마저 잘라내는 결정을 한다.
자신의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 같은 감각에 감응하는 사이코 자쿠에 탑승하기 위해선 신체의 모든 사지가 없어야 하므로.
그렇기에 그 역시 그에게서 모든 것을 뺏어간 지구연방을 증오한다.
몸이 자유롭지 않은, 구속된 그에겐 편안한 복고풍 포크송만이 안식처이다.
서로에 의해 끝없이 동료와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오와 대릴은
건담 시리즈라는 긴 역사속에서 '주인공'과 '악당'을 대표하는 건담과 자쿠에 타고
누가 악당인지,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참혹하기 짝이 없는 살육전에 뛰어들게 된다.
확실하게 인간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개발된 전쟁병기를 기체에 잔뜩 싣고,
그리고 전쟁병기로써 끝없이 증오만을 불태우는 자신을 그나마 인간답게 해줄
사랑하는 음악을 가득 담은 카세트 플레이어까지 싣고..
정열적인 이오와 차분한 대릴,
속도전에 능한 건담과 사격에 능한 자쿠의 대결은 작중 가장 화려하고 먹먹하게 연출된 전쟁의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하필 전투가 벌어지는 배경도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민간 거주구역 콜로니이기에 그 비극성은 배가된다.
반전을 담아내기 위한 감독의 세심한 연출은 이 전투 시퀀스에서 빛을 발한다.
시체가 부유하는 콜로니. 의도치 않게 서로를 참혹하게 죽인 지온과 연방 군인들.
그 광경을 보고 미쳐버렸거나 죄책감을 가지는 조연들.
사상과 사상의 대립, 독립과 억압이란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이유로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이들의 넋을 달래기라도 하듯 잔잔한 포크송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전투의 마지막 순간, 확실하게 대릴을 죽이기 위해 거추장스런 장갑을 떼어낸 이오의 건담과
파일럿의 몸과 마찬가지로 팔을 잃은 대릴의 자쿠의 모습에는 비극적인 두 사람의 모습이 서려보인다.
전쟁만 없었더라면 대릴은 푸른 하늘 어딘가의 해변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었을 것이고
이오는 좋아하는 비행기를 실컷 타고 어딘가의 하늘을 날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간성을 지켜주는 가느다란 음악의 끈만을 잡고, 그 둘은 원망과 환희가 섞인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기체에게 묵직한 한방을 꽂아 넣는다.
전쟁으로 사라지는 인간성을 대변하듯, 서로의 얼굴을 날려버리며..
나폴레옹은 일찍이 '악인일수록 훌륭한 군인이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훌륭한 군인은 악인'라는 말이 된다.
전쟁으로 향하는 모든 과정, 그리고 그 전쟁속에서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도 모르게
악자가 되고 아군이 환호하는 훌륭한 군인이 되는걸까. 자신이 바라지 않았을지라도.
서로의 목숨을 건 대조적인 두 주인공 이오와 대릴의 광기어린 모습을 보면 나폴레옹의 그 명언에
안타까운 공감을 표하게 된다.
로봇 프라모델을 팔아야 할 스폰서.
그리고 그 스폰서의 입김을 받는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편한 길은 많았다.
스타워즈의 팬들이 에피소드 4를 그리워하듯, 건담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적당적당히 그럴싸한 반전적 메세지를 내세우고, 멋진 로봇들을 디자인해서 갖다 박아
놓으면 되려 상업적으로 더욱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사악한 적군을 무찌르고 맹활약하는 정의의 주인공을 등장시켰다면 금상첨화였을테다.
하지만, 건담 프랜차이즈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을 법칙에 충실하게,
그리고 원작자의 유지를 받들어 감독은 구슬픈 전쟁을 노래하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
'평화는 폭력에 의해서 유지될 수 없다. 오직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본 작을 끝까지 관람하고 난 후에는, 직접 만든 두개의 주연기체 프라모델이 책상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글쓴이의 소박한 취미이다.
하지만 그 두 기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주 간만에 씁쓸한 뒷맛이 느껴 질 것 같다.
<전쟁의 광기에 빠져 들어가는 두 사람을 담은 팬메이드 뮤비. 리뷰의 본문과 일치하기에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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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 오 전쟁이 모든걸 앗아가는구나 !! "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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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따위 엿바꿔먹은 나가이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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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로봇 프라모델을 팔아 먹으려고 건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어떻게 반전적 메세지를 넣을 수 있겠는가?" "언젠가부터 건담 프랜차이즈는 반전이란 껍데기를 표방 한 채 로봇 프라모델 광고 영상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신랄하면서도 여러모로 공감가는 글입니다. 건담 프라모델의 주력 라인업은 대부분의 연령에게 어필할수있는 HG 등급인데다 TV시리즈로 나오는 작품들 역시 저연령층까지 커버하려다보니 작중의 전쟁을 묘사하는데에는 제약이 걸리고 결국 건담의 전쟁은 십대 주인공이 멋진 로봇을 타고 활약하는 낭만적인 배경이 되어버리니 이로인해 상업성과 반전이라는 주제 사이의 모순이 더욱 두드러질수밖에 없죠. 썬더볼트가 기존작들 이상으로 전쟁에 대한 묘사와 분위기를 더 현실적이고 무겁게 그려낼수있던것은 그 전쟁에 대한 낭만을 내쳐버렸기에 가능한게 아닐까합니다. 그만큼 아동층에게는 어필하기 힘든 물건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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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역대 건담중에서 가장 쩔었던 건담이었음. 비극적인 씬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재즈와 감성적인 올드팝이 역설적인 맛을 자아내는데 그걸 보면서 왜 2015년 이 애니가 대단하다 1위를 먹었는지 알수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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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1화의 자쿠 시점에서 건담을 보는 것이 참... 압도적 성능차이에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는 군인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게 참 인상깊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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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 오 전쟁이 모든걸 앗아가는구나 !! "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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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전쟁도 전쟁에 대한 묘사가 둘째가라면 서럽죠.. | 18.10.16 09: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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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 쓴게 하나있다면 .. 전쟁이 아니라 죽음 이였네요 .. 하도 읽은지 오래되서 죽음을 전쟁으로 잘못 썼군요 ;;;; | 18.10.16 1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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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로봇 프라모델을 팔아 먹으려고 건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어떻게 반전적 메세지를 넣을 수 있겠는가?" "언젠가부터 건담 프랜차이즈는 반전이란 껍데기를 표방 한 채 로봇 프라모델 광고 영상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신랄하면서도 여러모로 공감가는 글입니다. 건담 프라모델의 주력 라인업은 대부분의 연령에게 어필할수있는 HG 등급인데다 TV시리즈로 나오는 작품들 역시 저연령층까지 커버하려다보니 작중의 전쟁을 묘사하는데에는 제약이 걸리고 결국 건담의 전쟁은 십대 주인공이 멋진 로봇을 타고 활약하는 낭만적인 배경이 되어버리니 이로인해 상업성과 반전이라는 주제 사이의 모순이 더욱 두드러질수밖에 없죠. 썬더볼트가 기존작들 이상으로 전쟁에 대한 묘사와 분위기를 더 현실적이고 무겁게 그려낼수있던것은 그 전쟁에 대한 낭만을 내쳐버렸기에 가능한게 아닐까합니다. 그만큼 아동층에게는 어필하기 힘든 물건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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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과감히 낭만을 내쳤기에 수작이 탄생하지 않았나 합니다. 싸이코자쿠 콕핏에 새겨진 대릴 피규어에 팔다리가 없다는 조립기 보고는 소름돋더군요. | 18.10.16 09: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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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1화의 자쿠 시점에서 건담을 보는 것이 참... 압도적 성능차이에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는 군인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게 참 인상깊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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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갖고있던 이미지인 건담의 압도적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동시에, '건담도 관점에 따라서 비정한 살인병기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선언하는듯한 명연출이었습니다. | 18.10.16 09: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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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따위 엿바꿔먹은 나가이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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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장면을 뽑아내는데만 혈안이 되었지 않았나 합니다. | 18.10.16 09: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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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4화 까지만 발매했어도 여운이 아주 깊었을 것 같습니다. | 18.10.16 1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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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역대 건담중에서 가장 쩔었던 건담이었음. 비극적인 씬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재즈와 감성적인 올드팝이 역설적인 맛을 자아내는데 그걸 보면서 왜 2015년 이 애니가 대단하다 1위를 먹었는지 알수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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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22222 | 18.10.16 1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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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이 사람을 관통하면 어떻게 될까''빔의 열기에 노출 된 채 실내에 갇힌 사람은 어떻게 될까' 등등의 세밀함을 고려한, 감독의 노련한 연출이라 생각합니다. | 18.10.16 14: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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