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루리웹 애니메이션 유저 칼럼 시리즈입니다. 일정기간 동안 루리웹 애니갤러리 상단 공지로 노출될 예정입니다. 필진으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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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애니메이터 길 알카베츠의 '늪'이 표현하는 전쟁
1. 독일과 애니메이션
개인적으로 독일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수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독일 유학을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독일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품은 몇 개 안 됩니다. 그나마 TV에서 방영되는 독일 애니메이션 몇몇 작품들도 전부 아동용이며, 대부분 합작입니다. 독일에서 살게 되면 엄청나게 비싼 방송 수신료를 무조건 내야 하는데, 애니메이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가 해외에서 수입해 온 것이라 이 방송 수신료가 어디로 가는 건지 의문을 갖는 독일인도 있습니다.
그래도 독일 애니메이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독일 특유의 색채가 담긴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독일도 대부분의 다른 유럽 국가처럼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작가’입니다. 작가가 플롯을 짜고 그림을 그리고 연출을 하는, 1인 애니메이션도 자주 눈에 띕니다. 거기다 대부분 개성 있고 화려한 캐릭터가 가득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미국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사람들이 봤을 때, 독일 애니메이션은 난해하고 투박한 느낌이 강합니다. 사람의 표정이 없는 그림자 애니메이션도 많고, 예술성이 극대화되어 직사각형이나 선만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있습니다.
<한스 리히터 ‘리듬 21’ 중(1921)>
또한 옛날에 독일이 분단되어 있을 때, 정치 선전용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도 많았습니다. 주로 동독에서 이런 애니메이션을 많이 제작했고, 반면에 서독은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많이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독일은 작가의 생각과 메시지를 강하게 담은 애니메이션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단으로 소설이나 음악이나 영화 같은 게 아닌 애니메이션을 골랐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길 알카베츠의 ‘늪’도 바로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2. 길 알카베츠(Gil Alkabetz)
길 알카베츠는 현재도 살아 있는 유명한 애니메이터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루비콘(Rubicon)', '죽도록 사랑해서(Morir de Amor)' 등이 있습니다. 서울 시네바캉스에 참여한 적이 있고, 이 때문에 잡지에 실린 적도 있습니다. 독일식으로 읽어서 ‘길’인데 ‘질’로 소개한 기사도 있더라고요. 개인 홈페이지에 몇 작품 그림이 올라와 있으니, 궁금하면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름 그대로 구글에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제목에 독일 애니메이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길 알카베츠는 독일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하지만 1995년 그는 이스라엘을 떠나 독일 슈튜트가르트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독일에는 이스라엘이나 중동 지역에서 이민 온 사람이 많이 삽니다. 그들의 문화가 독일에 스며들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기나긴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독일이 이들을 받아들이는 건, 독일 내부의 저출산 문제와 과거 독일이 저지른 잘못 때문입니다. 이게 점차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요즘은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그들을 내쫓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전쟁’이 만들어 낸 피해자라는 걸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끊이질 않는 이스라엘의 전쟁과 내분. 길 알카베츠의 ‘늪’은 바로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작품입니다.
3. 늪(Swamp, 1991)
작품 첫 시작은 바람에 나부끼는 파란 풍선 다발입니다.그 다음 컷에는 파란 풍선을 매단 한 기사가 등장합니다.
기사도 말도 검은색입니다. 흔히 검은색은 죽음과 힘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전쟁에서 죽음과 힘을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무기’입니다. 즉 기사와 말이 무장을 하고 있다는 걸 표현한 겁니다. 그럼 풍선은 무엇일까요?
제목이 지나간 뒤, 물 위를 달리는 소리가 나며 빨간 풍선을 매단 기사가 달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물 위를 달리는 소리’가 중요합니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늪’입니다.
즉 그들은 ‘늪’ 위에 서 있고,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무거운 무장을 한 기사와 말은 늪에 가라앉습니다. 그런 그들을 붙잡아 두는 ‘생명줄’이 바로 풍선입니다.
다시 첫 컷을 돌아보도록 하죠. 작품 처음에 나오는 나부끼는 파란 풍선 다발. 이건 전쟁으로 목숨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민간인’입니다. 그들은 무장을 하지도 않았고, 말도 타고 있지 않기에 ‘민간인’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빨간 풍선을 단 기사는 달려가다 파란 풍선을 단 기사와 맞닥뜨립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대립하는 색깔로 많이 쓰입니다. 특히 냉전시대 때 유럽에서 빨간색은 공산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에 파란색은 자유 진영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자유를 외치는 민간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서 쳐들어간 공산주의 세력, 이것이 즉 빨간 풍선을 단 기사입니다.
두 기사는 서로의 검을 치켜들고 맞부딪칩니다. 그런데 파란 풍선을 단 기사는 검을 제대로 지탱하지도 못합니다. 첫 컷에서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흔들리는 풍선도 그랬지만, 파란 풍선 기사는 힘을 못 쓰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저는 마치 이스라엘에서 가난에 찌들고 제대로 반격도 못하는 팔레스타인처럼 힘없는 약자를 표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전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파란 풍선을 단 기사가 힘을 못 쓰는 사이에 빨간 풍선을 단 기사가 무기로 그의 풍선줄을 자릅니다. 저는 여기서 목숨줄을 풍선줄이라는 명확히 눈에 보이는 물채로 표현한 게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잘리자마자 그는 바로 ‘늪’에 가라앉습니다.
중간에 다시 튀어나와 발악을 하지만, 결국 그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빨간 풍선 기사가 파란 풍선 기사가 사라진 늪을 잠시 봅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소리를 지르자, 빨간 풍선 군대가 전진을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입니다. 그들 앞에는 나부끼는 파란 풍선 다발, '민간인'이 있습니다.
빨간 풍선 기사가 구호를 외치며 사기를 고무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떤 사람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헤이, 헤이!’라며 즐겁게 외칩니다. 계속된 전쟁으로 위기감이 마모된 사람처럼 말이지요.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안전지대에서 우범지대를 보며 불꽃놀이 보듯 즐기는 사람들의 사진이 유출되어서 문제가 터진 적이 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몇몇 외국인들은 한국인도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마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한과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외국인이 꽤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정치면 몰라도 전쟁에 대해선 별로 크게 생각하는 게 없다’입니다. 심지어 요즘은 전쟁 대비 훈련도 제대로 안 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었기에 거기 사는 사람에게는 일상이 된 겁니다.
갑자기 드럼 소리가 들려오며, 파란 풍선 기사들이 나타납니다. 드럼 소리에 이어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두 집단은 맞부딪칩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풍선줄이 끊어지며 다들 늪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경에 쓰인 행진곡은 가볍고 경쾌하며, 그들이 외치는 소리도 제법 유쾌하고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려옵니다.
실제로 전쟁을 오래 겪은 병사가 보이는 증상 중에 하나가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웃고 떠든다는 겁니다. 이 장면은 그들이 점점 전쟁의 광기 속에서 미쳐가는 모습을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차례 전투를 마치고 홀로 남은 빨간 풍선 기사가 파란 풍선 다발을 지키고 있는 기사와 대치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풍선을 끊으려고 긴 무기를 휘두른 순간, 상대의 목숨이 아닌 파란 풍선 다발이 잘려 날아갑니다.
앞에서 파란 풍선 다발을 ‘민간인’으로 비유한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전쟁을 벌였을 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건 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입니다. 점차 성능이 좋아지는 무기로 인해 그 주변은 쑥대밭이 되고, 이에 휘말려 수많은 민간인이 죽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장면은 그 사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란 풍선이 다 날아가고 심지가 늪에 잠기자, 파란 풍선 기사가 놀랍니다. 바로 이 기회를 노려 빨간 풍선 기사가 그의 생명줄을 자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지를 발휘해서 그는 생명줄을 붙잡습니다. 말도 잃고, 무기도 잃었지만 그는 계속 발악합니다. 끈질긴 파란 풍선 기사의 투구를 날리고, 빨간 풍선 기사가 잠시 물러납니다.
이 장면에서 파란 풍선 기사의 행동은 놀라고, 죽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등 인간적입니다. 이 감정 변화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빨간 풍선 기사가 떠난 뒤, 파란 풍선 기사는 자신의 무장을 전부 다 벗어던지고 ‘늪’ 위에 서서 돌아다닙니다. 풍선 없이요.
여기까지 오면 알겠지만, ‘늪’은 전쟁 그 자체도 비유하고 있는 소재입니다. 계속해서 수많은 시체를 먹어 치우고, 말과 검은색으로 표현된 무기와 자원을 먹어 치운 늪입니다. 게다가 늪은 계속 사람을 빨아들이는 속성이 있는데, 이를 통해 전쟁의 광기를 표현한 겁니다. 흔히 애니메이션에서 ‘심연’을 표현할 때 어두운 물을 많이 비춘다는 걸 떠올리면 됩니다.
하지만 전 파란 풍선 기사는 자신의 무장도 다 벗어던지고, 광기에서 벗어나 ‘늪’ 위에 섭니다. 그가 미쳐 돌아가는 전쟁 속에서, 지켜야 할 사람들도 잃고 가진 것도 다 잃고 나서야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났다는 걸 표현한 겁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이미 전쟁으로 잃을 걸 다 잃은 뒤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그런 그 앞에 빨간 풍선 기사가 나타납니다. 도망칠지 말지 망설이던 전 기사는 팔을 펼치고 당당하게 빨간 풍선 기사 앞에 섭니다. 전쟁으로 모든 걸 잃고, 그 광기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이 전쟁을 막고자 맨몸으로 빨간 풍선 기사 앞을 막은 겁니다. 그리고 무방비인 그를 빨간 풍선 기사는 인정사정없이 무기로 꿰뚫습니다.
지금까지 풍선줄을 잘랐던 은유적인 연출에서 벗어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살인 묘사입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그가 더욱 흉폭해지고 잔인해졌다는 걸 표현합니다.
죽은 전 기사와 함께 늪에 빠진 무기를 잡으려던 빨간 풍선 기사는, 자신의 말과 풍선에서 떨어져서 결국 늪에 빠져 버립니다. 전쟁의 광기와 잔인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광기에 잡아먹힌 겁니다. 그리고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풀 한 포기도 없는 텅 빈 화면이 비치면서 애니메이션이 끝납니다.
4. 마무리
전쟁의 참혹함을 주제로 담은 작품은 의외로 많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희망을 담은 작품도 있고, 끝없는 전쟁 속에서 태어난 고결한 영웅을 담은 작품도 있으며, 참혹한 전쟁을 겪은 뒤에 그럼에도 이를 밑거름 삼아 발전하는 인간을 예찬한 작품도 있습니다. 반대로 전쟁으로 인해 도덕적 관념마저 상실한 사람들을 담은 작품도 있고,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본래의 목적마저 상실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걸 담은 작품도 있습니다.
늪도 그런 전쟁의 부정적인 측면을 담은 작품입니다. 길 알카베츠는 전쟁이 남기는 건 아무 것도 없으며,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림도 단순하며, 대사도 고함이나 웃음소리나 비명뿐입니다. 즉, 특정 언어를 몰라도 누구나 알아듣고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그대로 와 닿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상징을 생각하면 대사도 없고 간단한 그림인데도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니메이터 길 알카베츠의 조국인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텅 빈 화면을 통해 이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전쟁을 멈추고 싶다고 표현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한 자료 및 사진 출처]
https://de.wikipedia.org/wiki/Blau
https://de.wikipedia.org/wiki/Israel
https://de.wikipedia.org/wiki/Rot
https://de.wikipedia.org/wiki/Schwarz
http://www.liaa.hslu.ch/speakers/alkabetz
https://www.youtube.com/watch?v=fe_Vs4BSVQ8
https://www.youtube.com/watch?v=aWQ5led8B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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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애갤은 전혀 안그러다가 이런 종류의 이벤트 한번시작하기만 하면 글작성자들 그동안 어디에 계셨나 싶을정도로 글잘쓰고 퀄높은 게시글이 등장해서 놀라게 되네요 덕분에 다른 나라 다른 장르의 애니메이션도 접할수있다는게 가장 좋고요
(IP보기클릭)211.246.***.***
멋진 칼럼 잘보았습니다^^유저분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분석과 열정 그리고 전쟁의 실상과 그로 인한 인간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한편인거 같습니다 마치 영화 나는 악마를 보았다 같은 느낌ㅇㅣ 나는거 같습니다...요즘 애니들이 너무 전쟁을 희화화시키고 영웅적요소로만 많이 쓰는데 이 칼럼의 주제는 왠지 그런 요소를 뜨끔하게 만드는거 같즙니다... 좁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식견을 넓히게 해줘서 좋네요....다음에도 알찬 칼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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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도 명료한 이미지... 대단한 작품이네요. 당장 보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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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합니다~ 영화 나는 악마를 보았다도 묵직하고 잘 만든 작품이지요~ 모든 애니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전쟁의 승자편에서 전쟁을 서술하기에 영웅적 요소나 성장 도구로 삼는 경우가 많지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이나 미국 등의 애니메이터는 피부로 와 닿는,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기에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17.06.29 16: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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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간단명료한 부분이 더욱 작품 주제를 묵직하게 담아내서 처음 봤을 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 17.06.29 16: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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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애갤은 전혀 안그러다가 이런 종류의 이벤트 한번시작하기만 하면 글작성자들 그동안 어디에 계셨나 싶을정도로 글잘쓰고 퀄높은 게시글이 등장해서 놀라게 되네요 덕분에 다른 나라 다른 장르의 애니메이션도 접할수있다는게 가장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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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도 좋은 글 직성해주시는 유저분들이 많답니다~ 글재주가 좋은 건 아닌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17.06.29 1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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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처음이라 사실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ㅎㅎ 칼럼이라는 게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쓰는 거니까,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유저 칼럼에 응모해주셨으면 합니다~ 평소에도 애갤에서 저보다 훨씬 잘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많이 봐서요... | 17.07.05 03: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