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이제 마인드맵에 있는 내용을 글로 표현해 봅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위의 내용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글을 쓴 것입니다. 당연히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이 발생합니다. 저는 아직 이 아이에게 주어동사의 수일치, 주어가 3인칭 단수 일 때 동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어 다음에 Be동사와 일반동사가 같이 오면 안 된다는 등의 세부적인 문법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문법을 먼저 다루어버리면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배우셔서 잘 아시다시피 재미가 없지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조금 틀리면 어떻습니까? 우선 병부터 치료 좀 하자구요. 그리하여 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렇게 내용을 작성하였습니다. 사실 문법을 완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구요. 현재진행형, 과거진행형, 현재완료를 다루었습니다. 다루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수업을 하면서 아이가 궁금해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었지요. 특히 현재완료 문장의 경우 아이가 글쓰기를 하다가 여기에 현재완료문장을 적어야겠다고 정확히 이야기를 해서 저도 놀랐지요. 비록 주어와 동사의 수일치는 안됐지만..... 일단 이 단계에서는 현재완료가 어떤 상황에서 쓰인다는 것과, 그 구조가 have+P.P.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을 확실히 아이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더 세밀한 사용법은 이 글 전체를 수정할 때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나가는데 옆에서 지켜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떠올려봅니다. 첫 시간, 자리에 앉자마자, 책도 펴지 않았는데 했던 아이의 한 마디. “아이고, 재미없어.” 그 친구가 이렇게 영어 문장을 작문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수업시간에 잡담을 많이 하는 친구라고 미리 말씀드렸지요. 그 잡담을 잘 받아주었고요. 가장 좋아하는 것이 돈이라고 적으면서 저에게 돈을 모으기 위해서 맘에 드는 피카츄 인형을 사지 못했다는 것과 수요일 마다 닭꼬치를 팔러 오는 분이 계시는데 닭꼬치를 먹지 않고 매 주 2,000원을 절약했다는 내용까지 자세하게 들어야만 했습니다. 남학생이라면 이런 내용을 이야기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참 아직도 여학생은 적응이 안됩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전적으로 아이가 쓴 글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법적으로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의 포인트는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문법적으로는 틀린 부분이 있지만 스스로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선생님으로서 매우 뿌듯하고 이렇게 잘 써줘서 고맙다고 아이에게 칭찬의 말을 하고, 또 이제 영어를 배워 나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틀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이가 위축되지 않도록 격려해줍니다.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틀렸고 지적하게 되면 아이는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되겠지요.
아이의 초안을 수정작업할 종이입니다. 위에 특별히 아이의 이름을 적고 그 아이에 대한 칭찬을 해줍니다. 모든 학생에게 나가는 활동지가 아닌 너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활동지임을 강조합니다. 아이가 특별히 대우받는 느낌을 가지게 해 주는거지요. 보통 이러면 저의 학생이 되어서 잘 따라오는데 이 아이의 경우는 환자라 생각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수정 작업을 하는데 아이에게 다시 한 번 쓰라니까 쓰기 싫다고 하는 것 입니다. TT TT 쓰기 싫다는데 강제로 시키지 않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써줄게, 대신 니가 내용 불러라.” 하면서 아이에게 내용을 부르게 합니다. 그랬더니 저한테 읽어주면서 스스로가 틀린 내용을 이야기를 합니다. 쓰느라 좁아진 시야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넓어진 것이죠. 3인칭 단수 주어에서 동사의 형태, 과거형 동사의 사용, 명사 앞에 관사의 사용 등 몇 가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스스로 수정해서 저한테 말해줍니다. 혹 수정이 덜 된 것이 있으면 제가 아이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질문을 던져 아이가 스스로 고치도록 하죠. 그래서 위 글에 보시면 취미에 대한 설명 같은 부분에서 약간씩의 문법적 오류는 보이지만 초등학교 5학년의 아이에게 저 정도는 괜찮습니다. 물론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다듬어 지도록 하겠지요. 수정이 다 된 글을 보고 이제 아이에게 저 글을 보조하기 위한 사진이 필요하다고 어떤 사진을 쓰면 좋을지를 둘러보게 합니다. 아이는 읽어보더니 자신의 학교, BTS, 자기가 좋아하는 것 등에 대한 사진을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이 단계는 사실 사진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본인이 수정한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읽으면서 아이는 스스로가 글을 쓰면서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떻게 고쳤는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요. 수정 작업에서 보통은 제가 아이에게 직접 쓰도록 시키는데 이 아이의 수업을 통해 제가 직접 내용을 써 보니 이것도 아이의 영어 향상을 위한 분명한 장점이 있어서 괜찮은 활동이었습니다. 보기에는 지루해 보이는 수정 작업이었지만 아이와 매우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업은 내용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한데 처음에는 좀 안 맞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상호작용이 점점 더 잘 되어 더 좋은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웃어서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너 영어 수업하면서 이렇게 많이 웃은 적은 처음이지?” 하니까 그렇답니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환자의 병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습니다. 수정작업이 마치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진과 꾸밀 색연필, 싸인펜을 들고 하드보드지에 가득가득 내용을 적고 재미있게 꾸밉니다.
처음에 보셨다 시피 스스로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이 작품을 완성함에 있어서 저는 직접적인 도움을 절대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이가 도움을 몇 번 요청하였지만 저는 아이에게 이 작품은 완전히 너의 작품이기 때문에 너 스스로 모든 결정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에게 의존하여 공부하는 습관을 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보았을 때 누군가가 도와준 작품 보다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든 작품을 훨씬 가치 있게 여길 수 있겠죠. 위 작품을 쓰면서 아이는 BTS와 관련된 내용을 쓸때는 아주 신중하게 글을 쓰고 문장을 써 나가면서 엄청 뿌듯해 합니다. 심지어 사진을 붙일 때에도 다른 사진 보다는 훨신 정성들여서 붙이게 됩니다. 역시 소재를 학생이 흥미를 끄는것으로 가져오면 수업이 잘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제가 문제만 풀게하는 수업을 안하는 것이지요. 한 번은 음식 관련 수업을 하려고 제가 만든 책을 준비해 갔는데 표지만 보더니 아이가 "선생님 저 이번단원은 정말 잘할 수 있어요!" 라고 하더군요. 소재만 잘 선택하더라도 아이의 동기부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다 만들고 나면 자신의 글과 다른 사람의 글을 비교하도록 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실제 수업에서 쓴 글을 두 개를 준비해갔습니다.
왼쪽 페이지에 다른 친구의 자기소개와 본인의 자기소개에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아 적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소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인 I live in Daegu. 와 같은 문장에서 3인칭 주어로 전환하는 문법적 연습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He lives in Daegu. 와 같은 것들이죠. 또한 다른 친구는 사용했지만 스스로는 상용하지 않은 문장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지요. 영어의 범주를 조금씩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이 단계가 끝나면 이제 자기소개를 프리젠테이션 하고 녹음을 합니다. 영어를 안보고 자기소개를 쫙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냐구요? 아이는 수업과정에서 자기소개에 관한 비슷한 내용을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 아니고 대다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낸 내용이죠. 그래서 아이는 그 내용을 조금 길지만 영어로 읊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약 5분정도 영어는 하나도 보지 않고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문법이 100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는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서 최종 단계로 이번 단원 수업을 되돌아보면서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아이가 매우 하기 싫어합니다.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아직 병이 치유되지 않았나 봅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피드백도 중요하고 생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병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라 선생님과 부모님께 바라는 점만 적고 넘어가도록 합니다. 이렇게 한 단원이 마치게 됩니다.
위의 글을 5분 만에 빠르게 내려온 분께서는 사실 별로 느끼는 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업 과정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꽤 오랜 시간 읽은 분께서는 아마도 저의 교육철학과 영어교육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 쓰기 위주의 수업이냐구요? 쓰기이긴 하나 말하기를 위한 전단계로 쓰기를 하는 것이구요. 어떤 분들은 독해가 중요한데 독해를 안 해준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실 이 수업을 위하여 아이가 읽어야 했던 양은 중학교 1학년 교과서 다섯 단원의 본문 보다 더 많았어요.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까지 공존하는 수업을 계획하기 위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재를 사서 쓰지 않고 수업 계획을 직접 짜보면 물론 힘은 훨씬 많이 들지만 각 활동에 대한 저만의 목적성이 뚜렷하고 그리하여 수업이 훨씬 내실있게 잘 이루어 지고 수업이 잘 되면 제 스스로가 기분이 좋습니다.
아직 이 학생의 영어에 대한 병이 다 나은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저는 이 학생의 영어교육을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른들이 조바심을 갖고 아이를 개울가로 내 몰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병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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