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시다'의 파멸까지 35.14.56
대령이 얼음 호수 속으로 빠졌을 때 '가보스키' 하사는 충동적으로 그를 구하기 위해 당장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존경하는 상관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을 자제하는 것은 그가 군인으로서 겪은 어떤 일보다 힘든일이었지만, 이런 차가운
물속에서 대령이 살아남는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하사가 지금 대령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남은 팀을 이끌고 이 작전을
성공하고 무사히 병사들을 복귀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걸 가능하게 해준 '스틸' 대령의 명예를 알리는 것.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난 몇초간 벌어진 광란의 사격 끝에 모든게 조용해진걸로 보아 대령은 마지막에 결국 저격수를 사살했음이 분명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일찌감치 병사들은 대령이 마지막에 가라앉은 얼음 구덩이였던 빙판에 서있었다.
또 다시 서리가 내리고 다시 얼음이 봉합된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사는 힘없이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이곳에 서있는 병사들은 모두 죽음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평생 죽음이라는 그늘에서 살았고 언제나 예상치못한 순간에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각오한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스틸' 대령은 그들에게 있어서 무적처럼 보이는 강인한 사나이였다.
그랬던 그의 죽음은 모두의 마음 속에 충격을 주고 말았다.
"모두들 비켜!"
대령의 죽음에 흥분한 '바레스키'가 화염방사기를 발사해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만약 대령이 수면 위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얼음을 녹여서 그를 구조해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였지만 점차 한두명씩 동료들이 모여서 불을 쏘는 '바레스키'를 보면서 희망에 매달리고, 응시하고,
기다리고, 희망을 품었다.
곧 '가보스키' 하사가 놀라며 장갑을 낀 손으로 얼음 표면을 깨뜨리려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의 눈에 물 속에서 힘을 잃은 채 떠있는 '스틸' 대령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음이 부숴지고 모든 병사들이
한꺼번에 그 자리로 오려는 걸 하사가 자제시킨 뒤, 몸이 가장 가벼운 '팔리네브'와 함께 물에 위로 떠오른
대령 쪽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대령의 어깨를 붙잡고 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대령의 피부색은 얼음장 같이 창백한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그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건 '아나코라'였다.
곧이어 '스틸' 대령의 옆에 무릎 꿇은 '가보스키' 하사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의 폐에 공기를 불어넣고 그가 살아날때까지 가슴에 압박을 넣기를 반복했다.
의식이 돌아온 듯 대령이 상체를 들어올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깜짝놀라 점프를 할 지경이었다.
대령은 그 다음 입에서 물을 뱉어냈다. 그는 주변에 모여 걱정하는 병사들을 돌아보곤 다시 의식을 잃어갔다.
'가보스키' 하사는 대령의 붉은렌즈의 생체공학적 안구를 보았는데 반대쪽의 진짜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죠?"
'블론스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힘들지도 몰라."
하사가 설명했다.
"대령님의 두뇌가 물속에서 동면한 것 같다. 내 예상이지만 두뇌 기능의 일부가 작동을 정지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하지만 대령님의 두뇌는 전부가 인공장기로 대체된게 아니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하사의 추측에 '바레스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보사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들었지? 대령님의 인공신체가 목숨을 살린거라고. 머릿 속 '기계' 덕분이란 말씀!"
대령의 초점없던 눈이 뒤집어지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하사는 행여나 상관이 다칠라 조심스레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단 몸을 말려야해요!"
'아나코라'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봐."
'미카레브'가 생각이 난듯 자기 군용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여벌 옷과 군복을 꺼냈는데 9명 동료들 중에서 그가 가장 '스틸' 대령과 신체 사이즈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가운 호수 물에 젖은 대령의 코트와 자신의 코트를 바꿔입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하사는 대령이 괜찮을 것이라고 모두를 달랬다.
이는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시키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불안한 본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대령님은 고작 몇 분간 물속에 있었다.
하사는 과거 물 속에 10분간 빠져있다가 소생한 병사를 여럿보았다.
그리고 대령님은 언제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부대를 지휘할거라고 생각했다.
- - - -
근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정찰을 나선 '팔리네브'는 긴장된 상태로 고개를 빼꼼히 들고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심장고동 소리가 점점 커지는게 조만간 심장이 목너머로 빠져나올 기세였다.
한시간 동안의 정찰은 푹푹 빠지는 눈더미와 달마저 뜨지않은 어둠으로 쉽게 앞을 내다보기 힘들정도였다.
대령의 구출의 기쁨도 잠시, '가보스키' 하사는 작전 속행을 채찍질했다. 아마 '스틸' 대령이 같은
상황이었어도 그랬겠지만서도.
정찰 전 하사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대령을 지킬 병사 두명을 원했다.
그때 '보사크'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쉽게 대령을 번쩍들어 어깨에 들쳐업었다.
그리고 그가 혼자 대령을 돌보겠노라 말했고 하사는 병사의 요청을 허락했다.
이제 그들은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적어도 정찰병은 이곳에 도달했다.
수송기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제국을 상징하는 '아퀼라 문양(쌍두독수리)'가 큼지막하게 그려져있었다.
붉은색 두 날개와 두개의 독수리 머리, 하지만 이 독수리의 등은 부러지고 다리는 묶여있었다. 동체 가운데가 한쪽에
널부러져있고 부러져 날아가버렸는지 저 멀리 수송기의 꼬리부분이 있었는데 망원경으로도 1분이나 걸려야 찾을 정도였다.
이놈이 바로 '스틸' 대령과 모두가 찾아헤매던 '울켄든' 사제가 탔다가 불시착한 수송기였다.
그리고 가장 안좋은 상황이 있었었다. 상당수의 탑승객들이 불시착에서 살아남았고 치열한 교전을 벌인 흔적이
여기저기 남겨있었다. 그리고 제국군은 패배했단 걸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땅에는 불에 타거나 손상된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온전한 복장은 '발리디언 연대' 소속처럼 붉은 군복에 금색 장신구의 모습이었다.
'팔리네브'는 망원경을 돌려 시체들 사이에서 제국 국교회 예복을 찾으려 애썼다.
사제가 이 대학살에서 어떻게든 탈출했을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제가 탈출했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그를 찾아서 데리고 돌아와야했기에 꼼꼼히 시체들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에 살아있는 존재가 주목을 끌었다.
'카오스 컬티스트' - 부서진 수송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타락한 남녀들이 함께 있었다.한때 평범한 남녀였던 주민들은
이곳 '크레시다'의 거주민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였을 거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황제폐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힘든 하루를 끝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가 사악한 힘에 굴복하고 난후 이제 저들은 검은 옷을 입고 사악한 악신을
상징하는 문신을 온몸에 새긴 채 악신의 제단에서 기괴한 숭배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컬티스트 주위에 큰 화톳불에 있었고 망원경의 야간투시 기능이 밝게 빛나 눈을 아리게했다.
이 컬티스트들은 추락한 수송기를 약탈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돌연변이 노예들이 그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특히 수송기의 부서진 철문을 쓰러트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두마리 돌연변이가 인상 깊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한 컬티스트가 라스건의 개머리판으로 큰 체구의 돌연변이를 마구 구타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팔리네브'는 '울켄든' 사제가 살아있다면 여기서 정말 먼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냈다.
그는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고 '가보스키' 하사에게 그가 파악한 정보와 의견을 전했다.
하사는 노련한 정찰병의 생각에 동의했다.
"저 컬티스트들 중에 몇몇을 생포해야겠다."
하사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식대로 심문해야지, 사제를 본적 있는지, 그들이 사로잡았는지.."
적과 불과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하사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침착했다.
"놈들은 몇명이나 있던가요, '팔리네브'?"
'포자르'가 물었다.
"정확히 말하긴 어렵군."
'팔리네브'가 대답했다.
"어둡고 화톳불 때문에 시야각이 좁았어. 적어도 컬티스트 열 마리, 돌연변이는 최소 네,다섯 마리."
추락한 수송기 안에 몇마리 더 숨어 있을지 모르지만 무장은 전체적으로 빈약해. "
"네 말대로라면.."
'미카레브'가 턱을 괴며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쪽이 유리한 지형에서 싸울 수 있겠군.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며 라스건을 쏠수 있을거야.
일단 사격을 시작하면 절반은 죽이고 시작할 수 있어."
'팔리네브'가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래, 확실히 적들에게는 불리한 지형이야."
'가보스키' 하사는 오늘 그들을 또다시 전투로 이끄는 것에 걱정이 있었다.
저격수와 교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 모두들 지쳐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령이 쓰러진 상황에서 자신이 이 부대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걱정도 됐었다.
하지만 하사가 보기에도 이번 싸움은 승리가 확실해보였고 지금 당장 기회를 잡아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락한 수송기가 있었다.
만약 '아이스 워리어'들이 구역을 탈환할 수 있다면 오늘밤을 지낼 조금은 따뜻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다.
눈보라가 치는 밖에서 노숙하는 것보다 모두에게 나은 선택지이다. 특히 대령님을 위해서라도 오늘 밤은
이 추락한 수송기가 부대의 안식처가 되어줘야했다.
그들이 작전계획을 짜는 동안 '보사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령을 보살피고 있었다.
대령은 마치 잠에 빠진 것처럼 편안해 보였고 호흡은 규칙적이었고 혈색은 점차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하사는 교전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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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신체의 파워.. 이것이 제국의 과학력! | 18.12.19 10:1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