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앙 좌측의 인물은 한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당 6형제와 이회영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첫째 이건영(李健榮, 1853~1940), 이석영(李石榮, 1855~1934), 이철영(李哲榮, 1863~1925)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이호영(李護榮, 1885~1931?)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었던 한국의 숱한 명문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경주 이씨 백사공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 이전에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라 말할 만하다.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을 필두로,
영의정 ,좌의정, 이조판서가 두명이나 배출한,
조상 중에 한명만 관직에 있어도 가문의 영광일진데, 그냥 일개 명문가와는 이미 클라스가 다르다고 할수 있다.
조선 말에 10대 자산가 내에 들었다고 한다.
때는 일제의 나라 집어삼키기가 한창 진행중이던 시절.
을사늑약을 파기하기 위해 힘썼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일제는 여타 다른 명문가들에게 대하듯이 그들 형제들에게 작위를 하사하여, 자신들에게 충성하도록 하려 했으나
수많은 자산가들, 독립투사들이 꾀임에 넘어가 친일파가 돼는 와중에도 그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는데
비굴하게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겠는가?
1910년 경술국치.
우당 6형제는 가문의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힘쓰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누구하나 반대하는 이 없이 두달만에 전 재산을 헐값에 처분하여 압록강을 건넌다.
6형제 가운데 이시영은 순종으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로 품계를 올리는 칙서를 받았지만 서간도로 출발하려는 결심을 흔들지 못한다.
당시 그들이 헐값에 급히 처분한 땅
현재의 명동 근처 일대를 포함한 서울의 알짜배기 땅이 우당 일가의 재산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나 그마저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현재시세 6~700억의 돈이 모인다.
이들은 나라가 굴복하게 된 원인이 싸울 힘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신흥무관 학교를 만들어
35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한다. 이들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하며,
김좌진 장군 또한 이회영을 직접 만나고 호의를 표했다.
그들이 가져온 돈은 몇년 가지 못하고 바닥이 나버리게 되고
이후는 입에 풀칠하기도 힌든 험난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금방이라도 될것 같았던 광복은 20여년간 오지 않았고..
이때의 고생은 실로 처참하여 우당 형제들이 한명 두명 아사와 병사로 타계하는 가운데,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조차 친일파로 점차 변질해갔다.
기세등등한 일제의 힘앞에 하나 둘, 항일을 포기하거나 일제에 굴복하게 돼면서
독립의 희망이 점차 사그러갈 즈음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우리에게는 그냥 단순히 훈남 형님이 도시락 폭탄(실제로 던진건 물병폭탄)으로 왜놈들을 크리티컬 낸 걸로만 알지만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과 사단장이 뒈지고 수많은 일본 장교가 중상을 입었다.
이때의 의거 이후 중국과 만주 내의 항일 세력이 크게 고무되고
다시금 일제를 몰아내는데 박차를 가하게 된다.
괜히 장제스가 중국의 백만 대군이 못한걸 조선 청년이 해냈다라고 한게 아니다. 이후 중국의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장제스가 윤봉길의 유족들에게 남긴 휘호. 장렬천추.
1932년. 이회영은 60이 넘은 영양실조의 노구를 이끌고 항일운동의 선봉에서 계속 활동을 지속했는데
밀정들의 고발로 체포당하여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이때의 고발자중 한명이 이회영의 조카이자 이석영의 차남인 이규서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입었던 옷
일제는 쇠약해진 이회영을 고문끝에 죽인후
죽어서도 다리를 뻗지 못하게 몸을 말아 매장한다.
이회영은 단 한마디 밀고도 하지 않았다.
다시 첫번째 사진을 보자.
광복이 오고, 우당 일가는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밝은 표정 가운데서도 유독 눈물을 훔치는 이가 있으니
우당 6형제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초대 부통령을 지내는 이시영이다.
두번다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른 5형제에 대한 생각에 회한이 복받쳤을 것이다.
현재 우당 이회영의 직계 후손들
위의 흑백 사진에서 맨 앞의 꼬마가 전 국가정보원장인 이종찬이다.
현재 일부 특권층의 전횡과 월귄, 병역기피 등으로 인해 재계의 불신이 극에 달한 이때에
한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존경되고 기억되어야 할 인물들이 우당 6형제일 것이다.
(맨날 개드립만 치다가 간만에 의미있는 소리도 내봄)
(진심 백범 김구 선생님은 초딩들도 다 아는데 우당 이회영 선생님은 나이 많은 어른들도 잘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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