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때 이혼하셨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혼이 아닌 집안사정으로 서류상으로 부부사이가 아니여야 되는 사정이 있어 서류상으로만 이혼을 하시고 1, 2년 정도 계속 이사를 다니며 같이 사셨습니다.
그러다 대판 싸우신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외가로 도망와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부모님은 완전 남남으로 지내시며 지금은 각자 가정도 꾸리시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로 향한 이유는 중학교때부터 락밴드를 하고 싶어 기타도 배우고 고등학교에선 제대로 밴드부에서 3년 연속 리더도 맡아가며 밴드 활동을 했고, 학교가 아닌 일반인과 만나 밴드도 하며 공연도 몇 차례했고 락밴드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같이 밴드하던 보컬놈(사이가 많이 좋지 않아져서 형이라고도 하기 싫네요)이 '서울에가서 더 큰 물에서 놀아보자'라는 식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약 1년 반을 서울에서 개고생하며 밴드생활도 못 해보고 서로 갈라졌고, 저 혼자 신림으로 향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건 정말 잘한 선택같았어요.
신림에서 정말 제 인생에 큰 도움과 존경의 대상이 된 사장님을 만나 열심히 일도 하고,
그 보컬놈과 밴드를 하기전. 서울에 기타 녹음을 해준 적 있었는데, 그때 알게된 프로듀싱하던 형과 다시 만나 친해지며 밴드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홍대 클럽쪽에서 활동을 하며 제가 원하던 락밴드는 아니였지만 매일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가야하는 시기가 왔고, 결국 일과 밴드활동을 중단하고 군대에 가기 위해 어머니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바로 갈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소집을 받았던 제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입대일이 없어지고 그 지방에서의 통지가 날아올때까지 단순 알바를 하며 입대일을 기다리다가
동창을 통해 산업기능요원(특례병 or 방위산업체)으로 군생활겸 회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에겐 좋은 기회였죠.
지금 어머니와 같이 사시는 아버지는 스님이신데 신도분이 많거나 절을 가진 스님은 아니였습니다. 처음 만날땐 법사라는 직업이셨거든요.
즉, 집안의 수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안의 수입을 책임지고자 군생활도 해결할겸 특례병을 시작했죠.
정말 힘든 2년 조금 넘는 시기를 보냈네요. 운전면허도 따고, 회사생활도 배우며, 건강이 많이 나빠지고도 하고, 결국 허리디스크와 당뇨로 예비군만 면제받은체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모든게 해결되어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서울을 올라가기전 제가 걱정이 많이 되신 친 아버지가 서울가기전 얼굴한번 보자하여 제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으로 갔습니다.
친 부모님들은 헤어지셨지만, 저는 시간이 나거나 명절때는 꼭 아버지에게 갔죠.
이때 아버지와 대화 이후 여기서 저는 많은 고민과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버지는 유명 마트물품 납품일을 하시며 부족하진 않지만 여유있게 사시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제가 서울가서 큰 일을 하며 돈을 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밴드활동으로 복귀하여 생활하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생각과 마찰이 일어난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가 젊었을 때, 어머니를 만나 지금까지의 인생을 얘기해주시며 너는 이렇게는 안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렇게 이렇게 해보는게 어떠냐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삶의 방식과 제가 서울에서 살았던 방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이 너무나 소름돋게 같았습니다.
아버지께선 원치 않으신 삶을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며 당연히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갔지만 아버지의 말에 충격과 많은 생각이 나면서, 결국 아버지께 정확한 대답도 드리지 못하고 어머니 집으로 향했습니다.
평소에 자주 통화하진 않지만 저희 친가에서 그나마 많이 친했던 사촌 둘째형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사촌 형님은 '아버지와 너가 살고 있는 시대는 많이 다르다. 너가 꼭 아버지 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다.'라며 저를 위로겸 고민상담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커져버린 고민은 그런 말에 풀리지 않았습니다.
몇날 몇일을 생각하고 고민하다 '일단은 서울로 올라가자.' 라는 마음을 먹고 서울로 다시 올라갔죠.
일주일 중에 6일을 일하고, 하루 반을 밴드 생활과 작곡작업을 하며 한달에 하루나 이틀 정도 노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며 비록 고시원에서 부족함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말에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결국 밴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실력도 떨어지며, 건강도 더 잃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때 밴드부 후배이자 아끼는 동생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지금 어머니가 살고 계신곳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심적으로도 힘들고, 여유없는 삶에 건강과 특기까지 잃은 저는 어머니집으로 내려와 2달 정도 일상생활이 조금 힘든 정도의 병으로 일도 못하고 백수처럼 지냈습니다.
그탓에 조금이라도 큰 돈을 벌어보고자 공장에 취업을 했지만 3군데 전부 1달도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지금은 편의점 알바로 용돈 벌이나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오기전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너(또는 형, 오빠).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졌어?"
"옛날보다 많이 죽었네."
저는 이렇게 살아보니 이렇게 생활하면 되겠다라며 자신감있게 살아온 삶이,
아버지에겐 후회되어 살아온 인생이였고 아들인 저는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즉,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의 결과물이 남도 아닌 아버지의 모습인 것에 저는 자신감이 떨어질대로 떨어지더군요.
지인들은 '여행을 가봐라', '지인을 만나며 풀어봐라', '두눈 꼭 감고 이 악물고 빡세게 일해봐라' 등등 많은 해결법을 주며 해보았지만 전혀 해결되진 않더군요...
내년이면 28살, 곧 30을 바라보고 있는 제가 아직도 이러고 있어야 되나, 자신감을 찾을 방법은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이 너무 크네요...
저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IP보기클릭)59.21.***.***
지금 본인 나이가 서른을 눈 앞에 둬서 불안함이 큰 시기일 것 같은데요.. 하지만 본인이 서른이 되어본적이 없어서, 지금 보기에 서른이 많아보일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일생이 돌땡이처럼 단단하게 결정되어지는 시기는 절대 아닙니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 한 집에서 먹고 자란 쌍둥이도 그 삶이 다른데, 지금까지 삶이 아버지와 비슷하다 해서 그 끝에도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거라는건 정말 넌센스입니다. 다만 그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서 결국에 가서는, 거봐...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라는 후회섞인 자기 변명만 남는다면 그건 아버지의 몫도 아니고 모두 본인 몫입니다. 잘된다~잘된다~ 믿고 살아도 쉽지 않은게 인생인데, 나는 이렇게 될거야... 우리 아버지도 그랬어.... 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은 아무래도 빠이팅 부터가 그 느낌이 다르니까요. 사실 점쟁이들이 이런걸로 먹고 삽니다. 별개의 상관 없는 얘기들을 따로따로 쭉~ 해주고 나면 그 얘기들을 연관지어서 필연을 만드는건 점을 보러 간 사람의 몫이죠. 집 주위에 비탈길 있지? -> 거기 조심해야해.... 집 주위에 비탈길 있지? 없어? -> 있었으면 큰일날뻔 했어... 뭐 이런거... 우리 뇌가 사실 그래요. 쌩뚱맞는데, 괜히 연관 지어서 인과관계를 만들고 스스로 세뇌시키기도 하거든요. 많은 연인들이 어쩌다 만난걸 다들 운명처럼 만났다고 착각하는 것 처럼요. (커플 망해라...) 아빠가 어릴 때 낚시를 좋아하셨다... 어!? 나도 낚시 좋아하는데!?!?! 이럴수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날 운명이었어!!!! (우리나라 낚시 인구 수백만....) 오빠를 만난건 운명이야.... 어떻게 그날 딱 그 장소에 있었을까.... (응 거기 1일 유동인구 십만명....) 지금 글 쓰신분은 서른을 눈앞에 둔 불안감과, 아버지로부터 들은 삶의 공통점들이 콜라보를 이루어서, 머릿속에서 지금 기가막힌 운명 비슷한걸 만들어 낸거라 봅니다. 이게 사실 가짜 걱정이라고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죠.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들이 실제 내 삶의 기록들과 더해져서 무슨 증거 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럴 때, 나를 내 주위의 다른사람이라 생각하고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세요. 내 친구가 나랑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것인가... 대부분 교과서에나 나올 따분한 얘기들이 생각 나겠지만, 그 따분한 얘기들이 실제로 대부분 객관적인 답이 됩니다. 본인만 모르는 것일 뿐. 결국 답은 내 안에서 찾는 것이고, 주위에서 백날 자신감 가져라, 너의 삶은 아버지와 다를거다 말 해줘도 본인이 '믿지 않으면' 그 믿음대로 삶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생은 각자의, 선택의 연속입니다. 근데, 20대 어린 나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어머님까지 챙길 정도라면 대단하신거예요.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안가 훌훌 털고 원래대로 빠이팅 찾으실거예요.
(IP보기클릭)101.229.***.***
아버님도 글쓴분처럼 일과 음악을 병행해서 살아오신 건가요? 그런게 아니라면 두분의 인생은 음악이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군요. 글쓴분이 진짜 하고 싶은건 음악이겠죠, 그리고 적당한 일을해서 생계를 유지하고...이 방식을 지적받으신거 같은데요. 하지만 지금 시기가 아주 중요하므로 아버님 말씀대로 세월이 지나서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던, 미술이던, 작가가 되던간에 이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제 생각엔 27~30은 아주 중요한 시기이므로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 고민을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대중예술은 취미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공을 하셔서 순수쪽이라면 어쩔수 없지만 그런것도 아니라면 매달릴 필요는 없지요. 당분간은 현실적인 생계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시고,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시면 양쪽다 좋은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쓴분에게는 음악이라는것이 있으므로 어떤 삶을 살던간에 그 결과가 아버님과는 확실히 틀릴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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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공감되는 글이군요. 이 글을 읽고도 긴가민가 하다면 다른 그 어떤 글을 읽어도 원하는 대답은 얻을 수 없을 듯..
(IP보기클릭)24.212.***.***
글쓰신분은 본질적으론 자신감을 잃는게 아닙니다. 자기자신의 믿음을 잃으신거같습니다. 내가 가는길이 아버지가 지나온 길을 답습하는건 아닌가하는 불신에서 시작된게 점점 눈덩이처럼불어서 새로운 믿음을 만든거같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지배하세요. 세상엔 결코 같은 사람, 같은 운명 같은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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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본인 나이가 서른을 눈 앞에 둬서 불안함이 큰 시기일 것 같은데요.. 하지만 본인이 서른이 되어본적이 없어서, 지금 보기에 서른이 많아보일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일생이 돌땡이처럼 단단하게 결정되어지는 시기는 절대 아닙니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 한 집에서 먹고 자란 쌍둥이도 그 삶이 다른데, 지금까지 삶이 아버지와 비슷하다 해서 그 끝에도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거라는건 정말 넌센스입니다. 다만 그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서 결국에 가서는, 거봐...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라는 후회섞인 자기 변명만 남는다면 그건 아버지의 몫도 아니고 모두 본인 몫입니다. 잘된다~잘된다~ 믿고 살아도 쉽지 않은게 인생인데, 나는 이렇게 될거야... 우리 아버지도 그랬어.... 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은 아무래도 빠이팅 부터가 그 느낌이 다르니까요. 사실 점쟁이들이 이런걸로 먹고 삽니다. 별개의 상관 없는 얘기들을 따로따로 쭉~ 해주고 나면 그 얘기들을 연관지어서 필연을 만드는건 점을 보러 간 사람의 몫이죠. 집 주위에 비탈길 있지? -> 거기 조심해야해.... 집 주위에 비탈길 있지? 없어? -> 있었으면 큰일날뻔 했어... 뭐 이런거... 우리 뇌가 사실 그래요. 쌩뚱맞는데, 괜히 연관 지어서 인과관계를 만들고 스스로 세뇌시키기도 하거든요. 많은 연인들이 어쩌다 만난걸 다들 운명처럼 만났다고 착각하는 것 처럼요. (커플 망해라...) 아빠가 어릴 때 낚시를 좋아하셨다... 어!? 나도 낚시 좋아하는데!?!?! 이럴수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날 운명이었어!!!! (우리나라 낚시 인구 수백만....) 오빠를 만난건 운명이야.... 어떻게 그날 딱 그 장소에 있었을까.... (응 거기 1일 유동인구 십만명....) 지금 글 쓰신분은 서른을 눈앞에 둔 불안감과, 아버지로부터 들은 삶의 공통점들이 콜라보를 이루어서, 머릿속에서 지금 기가막힌 운명 비슷한걸 만들어 낸거라 봅니다. 이게 사실 가짜 걱정이라고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죠.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들이 실제 내 삶의 기록들과 더해져서 무슨 증거 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럴 때, 나를 내 주위의 다른사람이라 생각하고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세요. 내 친구가 나랑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것인가... 대부분 교과서에나 나올 따분한 얘기들이 생각 나겠지만, 그 따분한 얘기들이 실제로 대부분 객관적인 답이 됩니다. 본인만 모르는 것일 뿐. 결국 답은 내 안에서 찾는 것이고, 주위에서 백날 자신감 가져라, 너의 삶은 아버지와 다를거다 말 해줘도 본인이 '믿지 않으면' 그 믿음대로 삶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생은 각자의, 선택의 연속입니다. 근데, 20대 어린 나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어머님까지 챙길 정도라면 대단하신거예요.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안가 훌훌 털고 원래대로 빠이팅 찾으실거예요.
(IP보기클릭)114.145.***.***
Pre-Dec
정말 공감되는 글이군요. 이 글을 읽고도 긴가민가 하다면 다른 그 어떤 글을 읽어도 원하는 대답은 얻을 수 없을 듯.. | 17.10.31 0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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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신분은 본질적으론 자신감을 잃는게 아닙니다. 자기자신의 믿음을 잃으신거같습니다. 내가 가는길이 아버지가 지나온 길을 답습하는건 아닌가하는 불신에서 시작된게 점점 눈덩이처럼불어서 새로운 믿음을 만든거같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지배하세요. 세상엔 결코 같은 사람, 같은 운명 같은건 없습니다.
(IP보기클릭)101.229.***.***
아버님도 글쓴분처럼 일과 음악을 병행해서 살아오신 건가요? 그런게 아니라면 두분의 인생은 음악이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군요. 글쓴분이 진짜 하고 싶은건 음악이겠죠, 그리고 적당한 일을해서 생계를 유지하고...이 방식을 지적받으신거 같은데요. 하지만 지금 시기가 아주 중요하므로 아버님 말씀대로 세월이 지나서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던, 미술이던, 작가가 되던간에 이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제 생각엔 27~30은 아주 중요한 시기이므로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 고민을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대중예술은 취미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공을 하셔서 순수쪽이라면 어쩔수 없지만 그런것도 아니라면 매달릴 필요는 없지요. 당분간은 현실적인 생계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시고,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시면 양쪽다 좋은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쓴분에게는 음악이라는것이 있으므로 어떤 삶을 살던간에 그 결과가 아버님과는 확실히 틀릴거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