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으로 피규어 사진을 찍는 건 사실 처음엔 반은 장난이었습니다.
갤러리에 쓴 글에도 언급했듯이, 수명이 다 되가는 필름이 남아돌아 그걸로 피규어 사진을 찍은 게 시작이었습니다.
수명도 다 되가는 필름이겠다, 별 부담없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36장 짜리 필름 5통 정도를 소비한 지금은 필름으로 괜찮은 피규어 사진을 찍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필름이라는 게 현상하기 전까진 결과를 알 수 없는데다, 특히 제 카메라는 수동이라 성공률이 100%일 경우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나마 처음의 필름 세 통이 지금의 실패율을 조금이라도 낮추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제 경험을 나누어, 혹여라도 필름 카메라로 피규어를 촬영하시는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 접사가 (거의) 불가능함
필카를 만져본 경험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필카는 피사체와 거리를 충분히 벌려야 합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 점이 정말 불편했습니다. 폰카나 디카를 쓰는 남들보다 뒤로 가야 하니, 제가 찍고 싶은 피사체가 인파에 가려질 때가 많거든요.
피규어에서는 이 때문에 접사가 불가능해집니다. 렌즈를 최대한 당겨도 일정거리 이상은 가까워질 수 없으니, 자연히 일반 단렌즈로 찍을 땐 피규어가 작게 나옵니다.
피규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초점이 흐릿해지니, 2배 확대를 해주는 컨버터를 물려야 피규어가 어느정도 크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평소보다 빛을 더 많이 비추어야 했습니다. 렌즈만 통과하던 빛이 컨버터를 한 번 더 거쳐야 하니 같은 광량에서도 어둡게 나오거든요.
정 필름으로 접사를 찍겠다는 분이 있다면, 조명을 사진관 수준으로 맞춘 다음 망원렌즈를 써야죠.
(전 한번 시도해봤는데, 너무 어두워져서 찍지도 못했습니다)
2. 디카로 찍을 때보다 더욱 신경써야 하는 조명
조명은 디카로 찍을 때보다 더 신경써야 합니다. 디카는 찍은 다음에 확인하고 재촬영을 하는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름은 사진을 다 찍기 전에는 도중에 확인할 수 없는데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돈이 듭니다.
만약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조명으로 사진을 망쳤다면 필름 + 현상 + 스캔 비용을 그대로 날립니다.
천장 형광등 + 형광등 스탠드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찍었지만 디카(캐논 파워샷 A490)로 찍은 윗 사진과 필름(코닥 ColorPlus 200)으로 찍은 아래 사진의 차이가 큽니다.
그렇다고 자연광이 만능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조건에서 자연광으로 찍은 사진 역시 디카(RX100)로 찍은 사진과 필름(아그파 vista plus 400)으로 찍은 사진의 차이가 큽니다.
즉 필름 카메라로 찍을 땐 디카보다 조명을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다른 결론은 음영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장 형광등 + 형광등 스탠드로 조명을 삼았지만, 스탠드 빛을 약하게 비추어 음영을 살리는 쪽으로 가니 덩달아 색감 또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조명으로 피규어를 찍자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가 전문 사진작가도 아니고, 제조사 의뢰로 찍거나 사진전에 출품할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하나 싶더군요.
아무튼 이 때는 필름 수동 + 부족한 실력 + 부족한 조명이라는 3박자가 어우러져 건질 수 있는 사진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 필름 자동으로 찍었다면 좀 쉽지 않았을까, 아니면 다르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현상기계나 개인 암실, 필름 스캐너가 없다면 수위를 지키자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필름을 현상해야 합니다. 인화해서 사진을 액자에 넣든 스캔해서 컴퓨터에 사진을 보관하든 현상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진관 사람들이 필름을 보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물론 사진관 사람들이 고객이 맡긴 사진을 남에게 발설하지 않고, 필름 카메라 시절에도 별의별 사진 찍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찜찜하고 엄두를 못 내겠더군요. 그래서 필름으로 찍을 땐 수위를 지키는 쪽으로 찍는 게 철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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