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압니다. 오타쿠들의 전유물인 우주세기 건담으로 이런 문학작품을 굳이 만들어야 했느냐는 시선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설정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 내러티브라는 작품을 철저히 문학 작품, 인문학적 작품으로서의 영화로 접근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의 멋진 점을 설명하자면, 총 2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미장센과 메타포
소설/영화적 연출의 측면에서 건담 내러티브는 정말 대단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창과에서 딱밤 오지게 맞아가면서 글 배운 사람의 말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 하면, 장면마다 지나가는 미장센이 가지는 메타포들이 정말 혹독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무얼 나타내고 싶은가 하는 게 정말 교묘하게 숨겨놓았는데 훤히 보입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 감이 안 오시면, 도가니 등의 독립영화가 유행했을 당시 우후죽순 튀어나온 독립영화들 중, 정말 잘 만들었다 싶은 영화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었나 기억하십니까? 말이 아닌 그림과 장면, 자그마한 행동으로 그 모든 메시지를 담아내는 영화들이었습니다.
비유와 상징이라고 하는 것이 소설과 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아시는 분은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게 왜 중요한가? 라 물었을 때 설명하기 어렵다 느끼신다면, 제가 요약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비유와 상징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칠맛을 냅니다. 요나와 내러티브 건담이 닮았다. 이거 중요합니다. 펜던트, 페넥스가 튼 둥지, 전부 들여다보면 예술적인 미장센이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내러티브 미장센의 정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감독과 후쿠이가 함께 입을 모아 이야기했죠, 내러티브 건담이 갈수록 경량화하는 이유는 요나가 그 상념을 벗어던지는 것을 묘사하는 거라고. 이거 초반 20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단 게 놀랍지 않습니까? 자 그럼 제가 해석한 내러티브 건담의 장비 변화의 상징성들을 한번 나열해드리겠습니다.
A장비는 요나의 불안함, 공포, 죄책감이 똘똘 뭉쳐 만든 요나의 공격적이고 폐쇄적인 자아를 상징합니다. 하이메가포, 사이코 캡처, 고출력 빔사벨, 수없이 많은 미사일에 다리의 움직임을 묶어가며 붙어있는 거대한 부스터까지. 내러티브 A장비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앞만 보며 달립니다. 다리를 묶는다는 건 문학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느냐, 달리지 못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페넥스를 만나 상념을 덜치기 전의 요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닙니다.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을 뿐' 입니다. 자신을 묶고,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이라는 중장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락을 향한 경사로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갈 뿐입니다. 페넥스를 잡고 싶어합니다. 가두려 시도합니다. 그러나 할 수 없습니다. 그 시도를 하도록 하는 장비는 요나의 죄책감입니다. 사람은 죄책감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페넥스는 요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곤 그를 중장비들을 분해해 날려 버리곤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며 요나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난 너를 원망하지 않아. 너는 잘못한 게 아니야. 지금껏 잘 살아와줘서 고마워. 그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그러나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듣고서 요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상념을 내버립니다. 이후 요나와 내러티브가 어째서 동일시되는가를 보여주는 '홀쭉하네.' 장면은 미셸에게 거짓말을 해보려 하지만 알몸에 가까운 몸, 그야말로 모든 거짓말이 다 들통나버리는 것 또한 상징합니다.
B장비는 후련해진 마음을 가지고 리타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요나의 결심입니다. 등에 백팩을 맨 모양새는 흡사 탐험가를 연상시킵니다. 리타라는 보물을 찾으러 가는 탐험가요. 등짐은 또다른 의미로 무게감을 상징하죠. 요나는 여전히 무거운 등짐을 메고 있습니다. 리타를 만나, 사과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요. 인컴은 사이코 캡처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더 먼 거리를 향해 '뻗을' 수 있습니다. 요나는 리타를 향해 손을 뻗을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시난주 스타인이 나타나고, 요나는 리타를 만나기 위해 손(인컴)을 뻗어 시난주 스타인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시난주를 밀쳐내고 드디어 리타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요나. 하지만 그의 선의의 결심은 주변에 의해 최악의 형태로 변질당합니다. 미셸은 예전에도 그랬듯 요나를 거짓말로 속이고 리타를 저세상에 팔아넘겨 영생을 얻으려 들고, 졸탄은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컴플렉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네오 지옹을 부릅니다. 이용당한 요나가 뻗은 손은 리타를 붙잡아 세우지 못하고 도리어 상처입힙(인컴의 사이코캡쳐화)니다. 자신의 마음이 주변인에 의해 리타를 상처입히게 되는 최악의 결과에 이르자, 요나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한번 밀쳐낸 졸탄의 발언권을 막아버리고, 자신의 분노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거친 말(네오 지옹)을 통해 미셸과 졸탄,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욕합(네오지옹을 이용한 파괴행동)니다. 허나 졸탄은 도리어 그의 분노가 마음에 들어버립니다. 그가 외친 말은 자신이 하고싶었던 말이니까요. 그러나 리타는 상처입었음에도 요나를 감싸안아주고, 요나는 자신의 거친 말을 들은 리타가 얼마나 마음아파했을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모든 거친 말을 거둡니다.
C장비의 인체 해부도같은 비주얼은 어느정도 의도된 거라 봅니다. 왜냐면, 이 때부터의 요나는 공허한 마음에 결심만 메고 있던 약골 요나가 아닙니다. 그는 이제 약골이 아니라, 살이 붙은,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공허하게 바람이 통하던 백골의 뼈대에 붉은 근육이 붙었고, 그는 마음의 모든 면이 리타를 통해 채워졌습니다. 내 의지로, 내 근육으로 움직입니다. 내 마음을 통해 스스로 빛납니다. 통틀어, 다시 한번 자신을 가두려던 마음의 벽(수송박스)을 굳은 의지(빔사벨)로 두동강내버리고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요나는 상처입습니다. 부서집니다. 뜯깁니다. 작살납니다. 모두가 인생에서 겪는 고난들입니다. 20대, 청춘이라는 것들이 참 지지리도 겪어대는, 성장통으로 포장되는 고통입니다. 사람들이 으레 고통 끝에 자신의 속마음을 뱉어내듯이, 요나의 몸인 내러티브는 모두 찢어지고, 마음을 상징하는 코어 블록만 남아버립니다.
이 코어 블록이 변한 코어파이터의 모양을 보면 아시겠죠?
요나는, 그토록 리타가 되고 싶어했던
새가 되어 리타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리고 그 새는, 마치 비익조와도 같이- 제 짝인 페넥스에게 정말 운명과도 같이 도달합니다.
이윽고 싸움이 끝난 뒤에 비익조 둘은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을 마주합니다.
요나가 리타에게 한짝뿐인 날개를 주어버렸기 때문이죠.
늘 마음의 내면아이만이 정신상태였던 요나는 어린 아이에서 청년으로 그제야 성장합니다.
이미 다 성장해 있던 금빛 비익조는 하늘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요나가 땅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그를 무사히 땅에 데려다 줄 사람을 찾아냅니다.
하얀 일각수는 요나를 제 등에 태우고 무지개를 흩뿌리며 땅에 도달합니다.
"머네, 빛의 속도로도 따라잡지 못할 거 같아. 그래도- 언젠가는."
일각수는 날개 잃은 새의 다리를 가리킵니다.
네가 이 땅 위에 그 다리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면 언젠간, 네 짝은 네게 날아올 거야.
이것만 봐도 정말 안정적으로 잘 쓰인 미장센인데 영화는 한시간 내내 여기서 한 술을 더 뜹니다. 이건 직접 보시면 다 알 거예요. 잘 나타내 놨고 그렇기에 잘 만든 거니까요.
2. 대사
"이제 됐어, 어째서 이런 일만...아무 것도 좋은 일은 없었잖아! 리타도, 미셸도! 계속 두려운 마음을 감추며 고통을 참아왔는데... 어째서야! 어째서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거야?! 고통만 겪을 바에는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어!! 우리들은 대체 뭘 위해서...!"
청년 요나의 이 외침은, 사실 이후에 나올 다른 대사를 위한 주춧돌입니다.
"또 흩어져 버리는 거지...? 싫어, 나도 데려가...!"
네. 저 긴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로 이 짧은 어린 요나의 독백이 되는 겁니다.
수고했단 말, 잘했단 칭찬을 듣지 못한 어린아이인 채 몸만 커버린 요나이기에, 저 짧은 한 문장을 뱉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버벅대며 온갖 괴로운 말만을 뱉은 거죠.
'거짓말쟁이' 라는 키워드도 중요합니다.
요나가 미셸을 향해 보낸 경멸의 '거짓말쟁이',
미셸이 스스로의 죄책감을 요나에게 떠넘기기 위해 입으로 뱉은 '거짓말쟁이'.
요나의 분노 섞인, 세상을 향해 뱉은 '거짓말쟁이'.
같은 한 단어지만, 이렇게나 색이 다릅니다.
졸탄의 대사들도 걸작입니다.
"맘대로 쏴제껴버린단 말이지, 이녀석이!!"
졸탄의 분노는 그가 통제 가능한 게 아닙니다.
멋대로, 정말 멋대로 나가버리는...잔인하지만 슬픈 이면의 덩어리입니다.
"항상 그딴 식으로 포기해 버리니까 인간이란 것들은 언제까지고!!"
"죽으면 녹아들 수 있는 거지? 인간의 자아와 업이...이 머신과 우리를 낳았어. 편해지자고, 이제."
그렇기에 처절하고 혐오스럽다가도 불쌍해집니다.
리타가 했던, 극중 정말 지겹도록 들려온, 그만큼 요나가 너무도 많이 떠올리며 고민하던 '나는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어. 요나는?' 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였는지도 후반에 가서 전부 밝혀지죠. 네. 요나는 그제서야 깨닫는 겁니다.
"난 요나를 만나서 기뻤어.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고 싶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 요나는?"
거기에 대한 요나의 대답은, 영화를 쭉 보던 저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네가, 새가 된다면...나는...!"
꿈틀대던 요나의 날개가 펑, 펼쳐졌으니까요.
"나도, 새가 되겠어!!"
여러분은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땅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각수가 되고 싶단 생각을 영화 말미에 했답니다.
미장센, 메타포, 대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좋았습니다.
건담 NT는, 우주세기라는 타이틀을 떼고서 만들어져야 했다. 제 소견은 솔직히 이겁니다.
이런 멋진 서사를 굳이 우주세기라는 틀 안에서 설정을 일그러뜨리며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보거든요.
뭐, 아무튼 문창과 출신 신학생의 건담 NT 이야기였습니다.
긴 얘기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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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의견이에요 차라리 비우주세기처럼 독자규격으로 만드는게 속편하고 좋죠 G건담이 뭐하러 파격적으로 틀을 부셔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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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갈등 관계 다루는 건 좋았어요. 단, 이게 독자적인 세계관에서 했다면 거부감이 덜 들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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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느꼈지만 문재의 부재로 인해 표현 못한걸 잘 짚어 주셨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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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의견이에요 차라리 비우주세기처럼 독자규격으로 만드는게 속편하고 좋죠 G건담이 뭐하러 파격적으로 틀을 부셔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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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갈등 관계 다루는 건 좋았어요. 단, 이게 독자적인 세계관에서 했다면 거부감이 덜 들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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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느꼈지만 문재의 부재로 인해 표현 못한걸 잘 짚어 주셨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