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랑 로아 같이 캐릭 시작하다보니 소전 이벤트하랴, 로아하랴 그간 남는 시간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찔끔찔끔 쓰던 게 더 늦어져서 저번에 올린 뒤로 한달 반 정도가 지났네요. 아니 뭐, 딱히 기대하시던 분들은 없으셨겠지만...
어쨌든, 지난화에서 너무 편의주의적인 설정을 남발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3화에서는 이 부분을 보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설명 및 변명을 짜내야 해서 가뜩이나 진도도 느린데 제가 지루해서 쓰는 것도 괴롭더군요...
아무튼 그 동안 써 왔던 3,4,화 같이 올립니다. 앞으로 1,2화 정도면 저도 이야기 하나 겨우 끝내겠네요.
자딸캐가 주인공에 오리지널 설정이 있으니 모르시는 분들은 뭔 똥개가 샤우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 원작 내용 스포 관련으로 주의 및 부탁드린 것이 있으니 처음 보시는 분들은 부디 1화부터 봐 주세요. m(_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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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녀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재미없는 풍경이 펼쳐지는 창 밖을 보고 있다.
검은 색의 아름다운 복장과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과는 대조적인 하얀피부를 가진 그녀는, 살아있는 존재와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차창턱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한쪽 다리를 거만하게 꼰 채, 얼굴에는 불쾌함과 지루함이 가득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아... 정말이지 지루하고 짜증나네. 그러니까 비행기를 타자고 했잖아. 이게 뭐야, 언제 도착하는건데."
소녀는 언성을 높이며 맞은편 대각선쪽에 앉은 검은 메이드복을 입은 미녀에게 쏘아붙였다.
"조용히 하세요 드리머. 여긴 저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를 낮춰주실까요, 다른 분들의 시선도 생각해 주십시오."
검은색의 메이드는 조곤조곤하지만 어딘가 묵직한 어조로 소녀에게 대답했다.
"칫, 그냥 공항 습격해서 비행기 하나 해킹해서 타고갔으면 벌써 도착했을 것을."
"그랬다가는 공중에서 정규군의 공군에게 추격당해 격추되었을 겁니다. 유감이지만 저희는 혼자 힘으로 하늘을 날 수가 없습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소녀의 옆에 앉은 검은 안대로 한쪽 눈과 상처를 가린, 군인과 같은 이미지의 은발의 쿨한 미녀가 소녀의 말에 대꾸했다.
"지금의 우리는 아직 눈을 뜨고 계시지 않는 엘... 아가씨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다소 느리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 가급적이면 띄지 않는 이동편을 취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언제부터 너 따위가 나한테 충고할 수 있는 입장이 되셨지? 응?"
소녀는 이를 악물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검은 안대의 여성을 쏘아보았다.
"넌, 말야. 다 죽어가던 목숨을 내 덕분에 건진 거라고. 알고 있어? 그리고 말야. 네 직급은 나한테 건방지게 충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모르는거야?"
"죄송합니다.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나섰군요."
검은 안대의 여성은 소녀의 비아냥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사과로 되돌려 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더욱 더 험악해진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드리머, 지금 그녀가 한 말은 정론입니다. 저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가씨의 안전을 지켜야 합니다. 당신도 잘 아실테죠?"
검은 메이드는 열차의 진동을 따라 바닥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는 흰색의 밀짚모자를, 무릎베개를 하고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소녀의 얼굴에 다시 덮었다.
"정규군은 당신 수준의 능력...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정예병력을 디너게이트 뿌리듯이 저희들에게 뿌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도망치는 입장인 우리가, 그정도 능력을 가진 집단을 상대로 일부러 눈에 띄이는 짓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메이드는 살의가 가득찬 눈빛으로 소녀를 쏘아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아, 정말! 알았어. 알겠다고. 얌전히 있으라는 거지."
소녀는 짜증난다는 투로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죄송합니다, 차표를 보여주실까요."
일행들이 나지막히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멀리서 열차표를 확인하러 들어온 남자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신입. 당신의 수완을 보도록 하죠. 저희는 당신이 미리 일러준 대로 행동하고, 가능한 한 당신의 말에 입을 맞출 테니까요. 하지만 부디 저 쪽에서 의심을 사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에이전트."
안대를 한 은발의 여성은 의자 아래 넣어두었던 첼로가방을 꺼내 발치에 옮겨 놓고 지퍼를 완전히 연 뒤, 그 위에 한쪽 발을 올려두었다.
"죄송합니다, 차표를... 응?"
검표를 하러 온 승무원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며, 하던 말을 멈춘다.
"아, 네. 승차표 말씀이시군요. 여기있습니다."
검은 옷의 메이드는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열차표를 꺼내 승무원에게 넘겨주었다.
"얼씨구, 인형들끼리 기차여행이라도 가려는 거냐? 응?"
"아, 역시나. 거봐 내가 뭐랬어."
소녀는 피식 웃으며 이죽거렸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가씨께서 지금 몸이 편찮으십니다. 그래서 직접 인솔자가 확인을 드릴수 없는 점, 양해부탁 드립니다."
검은 안대의 인형이 정중하게 승무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니, 그건 너희 사정이고, 우리는 책임자인 인간에게서 확인을 받아야겠으니 그리 알아."
승무원은 비웃음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거칠게 에이전트의 무릎 위에서 자고 있는 소녀가 얼굴 위에 덮고 있는 흰색 밀짚모자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손등으로 에이전트의 가슴 언저리를 슥 하고 문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에이전트는 천박한 인간의 천박한 짓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맞은편에 앉은 그녀, M16을 슬쩍 쳐다보고는 눈을 감았다.
-철커덕
첼로케이스에서 검은색의 소총이 휙, 하고 튀어나와, 승무원의 아래턱을 밀어올린다.
"사람을 함부로 쏠 수 없는 인형이라 다행인 줄 아시죠. 제가 인간이었으면 저희 아가씨에세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당신 머리통에 이미 바람구멍을 냈을지도 모릅니다."
M16은 한 손으로는 빈 소총을, 다른 한 손으로는 실탄이 가득찬 탄창을 승무원의 눈 앞에 흔들어 보이며, 위엄있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쏘아붙였다.
"너, 너 인형 주제에 인간한테 이런 짓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냐? 으, 응?"
"당신이야말로, 저희 아가씨한테 함부로 손을 대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저희 아가씨는 당신이 죽을때까지 한 번 뵐수나 있을지 모르는 그런 고귀하신 분이십니다. 뒷감당할 자신은 있으신가요."
"허풍떨지 마라, 응? 그런 고귀하신 분이 이런 열차를 탄다고? 농담도 정도가 있지?"
"아, 거봐. 그러니까 비행기 타자고 그랬잖아. 진작 그랬으면 이런 불쾌한 짓도 당하지 않았을 건데."
창턱 쪽에서 날카로운 톤으로 짜증내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승무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저희는 지금 함부로 남의 눈에 띄면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경호인형 주제에 인간 어린아이같은 투정은 그만 해 주시지요."
"예, 예, 메이드장. 저는 참아 드릴테니 그쪽도 쓰레기같은 신분의 인간한테 많이 성희롱 당하시고 많이 참으세요. 저는 그런 취급 당하면 당장 이 열차를 통째로 레이저로 날려버린 뒤에 아가씨의 허락을 받았을 텐데 말이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검은 복장의 인형들을 번갈아 보며 승무원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은 그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믿건 안 믿건, 저희는 지금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차를 무력으로 하이재킹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아가씨는 무고한 인명피해를 내고싶어 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M16은 실탄이 든 탄창을 승무원의 이마에 도발적으로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둘째, 어떤 사정으로 신분을 숨기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누군가가 저희 아가씨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저희는 저희의 개별적 판단으로 적대자를 배제할 겁니다."
"흐, 흥! 그랬다가는 이 열차칸의 전부가 알게 될 텐데?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모두 죽여버리면 목격자는 한 명도 없게 된다는 말, 어디서 들어보신 적 없습니까?"
살기가 서린 싸늘한 말에, 승무원의 얼굴빛은 어느 새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무례만 저지르지 않으면, 다른 승객분들의 안전은 지켜주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저희는 오로지 아가씨에게 해를 가하려는 존재만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목적지까지의 조용하고 안전한 여행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무례를 사죄드릴테니 부디 총기를 넣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승무원은 어느 새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M16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됐습니다 식스틴, 그쯤 해 두시죠. 자신의 목숨보다 승객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저 분의 고결한 자세를 높이 사서, 이 쯤에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검은 색의 메이드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 다툼을 끝내길 요구했다. 하지만 턱을 치켜올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승무원을 쏘아보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부디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허겁지겁 도망치듯 사라지는 승무원의 뒷모습을 보며, 드리머는 코웃음을 쳤다.
"역시나 더럽고, 치졸하고, 한심한 인간들이네. 우리가 저런 것들의 비위나 맞춰야 하다니 정말."
"생각 이상으로 잘 넘겼군요. 역시 당신이 말한대로, 이 정도 거리만큼이나 전장에서 멀어지면 정보를 굳이 통제하거나 조작하지 않더라도 저희의 존재를 모르는 모양이네요."
드리머의 말을 무시하며, 에이전트는 M16에게 말을 걸었다.
"정규군이 ELID와 싸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도, 철혈과 그리폰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격전지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 밖에는 모를 겁니다.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해도, 끽 해야 동네 불량배 집단끼리 싸우는 정도로 알고 있겠죠,"
"뭐야 그거, 상당히 기분 나쁘네."
드리머가 정색하며 반박했지만, M16은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폰과 연관이 있는 인간 정도가 아니라면, 이 넓은 대륙에서 저희의 얼굴을 아는 인간은 상당히 드물 겁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 신분을 숨기고 은밀하게 이동한다면, 대략 5시간 정도 후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5시간..."
드리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다시 창 밖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러분."
갑자기 좀 전의 승무원이 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일행에게 다시 다가왔다.
"좀 전의 저의 실례를 사죄드릴겸, 여러분을 VIP실로 모셔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제 말씀을 들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
.
"호오?"
드리머는 VIP 전용열차 안의 시설을 어린아이처럼 신기하다는 듯 들뜬 표정을지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흠, 이 빛과 향을 보아하니 꽤 고급의 찻잎이라는 걸 알 수 있군요. 찻잔도 상당히 고가입니다."
에이전트는 아직 온수를 넣기 전인 차와 찻잔 세트와 디저트 세트가, 열차의 진동에 영향을 받지 않게 잘 고정비치된 한쪽 열차벽과, 냉장고 등을 둘러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M16은 고급 소파의 누워 있는 엘더브레인의 근처에서 경비병마냥 차렷 자세로 뻗뻗하게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개나 확인했나요?"
"16개입니다."
"훗, 일단 저와 동일하군요."
어린아이마냥 들뜬 모습으로 쫄래쫄래 열차 안을 돌아다니던 드리머도, 소파에 풀썩 앉은 뒤 나지막하게 두 인형들에게 중얼거렸다.
"나도 16개. 내가 확인한 위치도 너희들이 공유해준 좌표와 일치해."
에이전트는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에 소파로 돌아와서, 근처에 비치되어 있는 컴퓨터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느긋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도록 프로그램을 작동시킨 뒤, 더운 물로 찻잔을 데워 놓은 곳으로 조신스러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훗 멍청한 녀석들."
드리머는 나지막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까 그 승무원, 아니 이 열차의 인간들은 M16을 비롯한 드리머 일행들이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실례를 사죄한다는 명목으로 VIP실을 내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일 뿐, 이 열차칸은 16개나 되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차체는 방탄소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차장실에서 원격으로 도어락을 조작 가능한 것은 물론, 필요할 때 언제라도 Y자 철로에서 이 칸만을 떼내어 버리는 것도 가능한 특수제작된 차량이었다.
VIP의 안전을 위한 특별차량의 용도는, 조금만 바꿔 쓰면 훌륭한 감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에이전트의 해킹 능력이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CCTV로 드리머 일행들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들의 눈에는, 에이전트는 차를 타기 전에 더운물로 찻잔을 미리 데워 두고, 찻잔이 데워지는 사이에 컴퓨터를 조작해 음악을 키고, 다시 데워 놓은 찻잔에 차를 타러 가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메이드의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은 교활할 정도로 머리가 영리한 에이전트의 연기로, 의심이 가지 않는 행동을 하며 은근슬쩍 차내에 비치된 컴퓨터를 만져 해킹 프로그램을 심는 행동이었다.
저 어리석은 인간들은 일행들을 감시하려는 속셈이었겠지만, 정작 열차의 주도권을 에이전트에게 통째로 넘겨줘 버린 꼴이다.
"이쯤이면 딱 맞게 데워졌겠군요."
에이전트는 주머니에서 시계 모양의 디바이스를 꺼내 슥 확인한 뒤, 스톱워치를 누르듯이 버튼을 슬쩍 눌렀다. 그리고는 익숙한 모습으로 찻잔 세 개에 차를 타기 시작했다.
"거 이미 작업 끝났는데 굳이 계속 연기할 필요 있어?"
"아뇨, 이건 제가 정말 차가 마시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차도 그렇고, 스위츠도 그렇고. 꽤나 고급으로 잘 구비해 놓은걸요."
에이전트는 쟁반에 차 석잔과 조각케익, 쿠키 및 비스킷, 푸딩 등을 얹어놓은 뒤, 소파를 향해 돌아섰다. 차량이 다소 흔들리긴 했으나, 에이전트는 마치 평지를 걷듯 사뿐사뿐하게 차 한 방울 쏟지 않으며 간식거리를 소파를 향해 가져왔다.
"응? 엘더브레인은 아직 눈 뜨지 않았는데? 왜 삼인분이야?"
"당연하죠. 지금 먹을 수 있는 입이 세 개인데."
"지금 저 녀석이랑 같은 곳에서 같은 걸 먹자는 거야?"
드리머의 얼굴에 다시 불쾌하다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엘더브레인 탈환에 지대한 공이 있습니다. 지위는 낮을지 모르나, 우리와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은 충분히 있습니다."
에이전트는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눈을 감고 향과 맛을 음미하며 드리머의 억지를 흘러넘겼다.
"에이전트,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도 사실 스위츠와 차는 별로 즐기지 않는 편입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라, 제가 대접하는 홍차를 마시기 싫다는 건가요?"
온화하던 에이전트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아, 그래요. 데이터에 의하면 당신은 이런 것보다는 알콜 쪽을 선호했었죠. 브렌디를 가져와 섞어 마시는 것 정도는 허락하죠. 물론 남은 것 처리하는 것도 당신 자유에 맡길게요."
"감사합니다. 에이전트의 호의, 잘 받아들이겠습니다."
드리머는 M16이 홍차를 마시는 것이 꼴보기 싫었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컴퓨터 단말기를 툭툭 건드리다, 갑자기 말을 꺼냈다.
"이봐, 그거 먹을만큼 먹고 나면, 열차 위에 올라가서 경계나 보라고."
"저는 당신의 휘하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작전 수행 명령 권한은 당신에게 없을 텐데요."
M16은 아까 전 드리머가 자신에게 비아냥거린 대사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대로 돌려주었다.
"뭐?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냐 신입?"
"그녀의 말은 정론입니다 드리머. 신입은 당신보다 직위가 낮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그녀에게 작전수행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어요."
에이전트는 여전히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기며 M16 대신 드리머의 말에 반박했다.
"아, 정론? 그래? 그럼 나도 정론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네에."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리며, 입술 한쪽 끝을 비틀어 올리며, 드리머는 두 인형을 쏘아보며 말했다.
"신입, 너는 이 지역 쯤 오게 되면 정보전파가 늦어져서 우리를 잘 모를 것이고, 인형이라고 수상하게 여기는 인간들은 적당히 위협만 하면 아무런 위해가 없을 거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정규군은 강력하지만 규모도 거대하고, 명령계통도 복잡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큰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별 볼일 없는 인형들의 소동에 일일히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만 조용히 하면 된다. 이게 네녀석의 주장이었고?"
"그렇습니다."
드리머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긋이 M16을 바라보았다.
"너, 그리폰의 사장이 체포되었고, 그리폰의 지휘관과 남은 전력들은 정규군의 사냥개로 타락했다는 사실은 알아?"
"!!!"
"그리폰의 지휘관들은 인간들치고는 꽤 유능한 편이지. 사고방식도 유연하고, 행동력도 있어. 아니꼽지만 인정해.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추하게 도망치는 꼴이 되었으니까."
M16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만약 저 승무원 인간이 우리를 정규군에 신고하고, 그 신고를 받은 군은 그리폰에 그 정보를 넘겨주었다고 가정하자... 자, 그리폰이라면 어떻게 움직일까? 우리가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가만히 있을까?"
"일리가 있군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에이전트도 드리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지금 내가 너에게 내리는 명령은, 결단코 내 변덕이나 심술이 아냐. 엘더브레인 암살을 노리고 올지도 모르는 그리폰의 움직임을 경계하라는 거야. 오직 엘더브레인을 위해서."
"엘더브레인을... 위해서..."
"내 의견... 정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반론을 들어볼까?"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M16, 경계임무에 나가겠습니다."
"아, 경계근무시간은 네가 두 시간 30분, 내가 두 시간 30분을 보는 것으로 하자. 일단 네 말도 옳아. 아무리 엘더브레인을 위한다지만 너한테 명령을 내리는 건 어느 정도 내 억지이기도 하니까."
"마음써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 써주는 거 아냐. 두 시간 삼십 분. 그 동안 나는 실컷 먹고 푹 자고 올라갈 테니 따지고 보면 네가 더 손해일 걸."
드리머는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앉은 채로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는 자기 몫의 홍차를 홀짝였다. M16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 뒤, 드리머와 에이전트를 향해 머리를 꾸벅 숙이고는 VIP실의 밖으로 나갔다.
CCTV에 비취지는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지나고... 배불리 먹고 잠들어 있던 드리머를 에이전트가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요 드리머. 신입의 지원이 필요한 일이 생겼어요."
"으으... 귀찮아. 무슨 일인데? 알아서 하라고 그래."
"당신이 예측이 정확했어요. 그리폰의 인형들이 이 열차의 지붕으로 습격해 왔어요. 신입이 혼자 상대중이에요."
졸음이 한가득했던 드리머의 눈이, 갑자기 맑고 둥그렇게 커지면서 언제나의 그녀답지 않은 얼빠진 말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뭐야, 정말 온 거야 그녀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