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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파스의 대모험 2부(4) - 팀 러시안룰렛의 휴일(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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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중요한 이야기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라서 사이좋게 쌈을 싸먹고 난 뒤에 하게 되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장님이 여기에 있는 걸 본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거리를 두고 있는데 덕분에 중요한 얘기를 해도 주변에 들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가씨들이 주위에 자리를 잡고 경계를 서고 있으니까 더욱. 에이전트는 잠깐 차에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내가 그래도 환자라고 헬리안 누나가 나한테 부채질을 해주는데 이만한 사치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 모습을 신경도 안 쓰고 사장님은 그 남들이 부럽게 보는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말을 얌전히 듣고.


중요한 얘기는 뭐~ 일 얘기야. 이탈리아 정부의 협력요청이 있어서. 지금까지 이래저래 일이 많았지? 우리 회사가 많은 이들이 세워준 공적 덕분에,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졌는지 얼마 전에 요청을 받았어. 자네도 알다시피 세계가 혼란스럽지 않은가? 각지에서 분쟁은 끈임이 없지. 이곳 이탈리아도 마찬가지고. 원래부터 마피아가 성행하던 나라지 않은가? 그들이 안 그래도 불법적인 일로 긁어모은 자본을 이용해서 국가 전반에 합법적인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는데, 국가전복이라도 노리고 있는 건지 온갖 불법적인 최첨단 무기를 새삼스레 긁어모으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어. 구형 전술인형도 모으고 있고. 수명이 다 되어서 폐기처분하려는 걸 보고도 없이 빼돌린 스파이가 있어서 말이지. 그자들은 따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여기서 자네가 해줘야할 일은 이미 알았겠지만, 규모가 너무 커진 범죄자 집단을 좀 손을 봐줬으면 해서.”

 

우리가 가지고 온 맥주로 가볍게 목을 축이는 사장님 모습을 보고 대답했다.

 

사장님께서 내린 지시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못할 일이 아니니까 시킨 걸 테니까요.”

 

그 전투 이후로 빈손이 된 나에게 있는 부대는 정말 한줌 밖에 없다는 것을 사장님도 알고 있을 테지만 다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애초에 나를 따라온 내 부하는 하나도 없는 걸. 나 혼자였어도 시킬 일이었다는 거다. 물론 사장님이 몰랐던 우리 철혈 아가씨들 전력까지 생각하면 본래의 계획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테고.

 

근데 전술인형 지휘관이 전술인형도 없이 적의 기지를 기습한다는 건 참…….”

무모하지. 보통은 말이야. 자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세상은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과대평가하는지 모르겠다. 나한테는 할아버지만큼의 힘은 없는데. 그 세월의 벽은 정말로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허나 실상을 보니 걱정할 건 하나도 없겠군. 당장이라도 쳐들어가도 되겠어.”

 

그 몹시 믿음직한 부하를 쳐다보는 시선은 거둬주셨으면 좋겠다.

 

아니 잠깐만요 사장님. 저 아직 다리 다 안 나았는데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나. 조금 아프긴 해도 뼈와 살을 급속재생하게 해주는 약물이 우연히 개발되었으니까. 임상실험은 이미 마쳤으니 안심하고 투여 받게.”

 

뭐야, 왜 그런 게 있어? 도대체 인류는 뭘 어떻게 만들고 있는 거야? 그보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아플지 예상은 된다. 피부가 재생되는 것도 화학반응인데, 그게 일어나면 당연히 열이 발생하겠지. 화상이나 안 입으면 다행 아닌가. 그보다 어떻게 재생되는 거지? 단백질 괜찮나?

 

그리고 며칠 몸 상태를 지켜보고 행동에 옮겨주게. 조사부터 하나하나 전부 해야 하지만 잘해주겠지. 나는 조금 이따가 본사로 돌아갈 예정이니 편히 놀다 들어가게나. 그런데 하나만 묻지. 그 상처, 어떤 적에게 당한 건가?”

 

어떤 적인지는 나도 모른다. 옛날에 본 영화에 나온 터미네이터하고 닮은 무엇인가인데. 오히려 나는 사장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액체금속인가,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액체금속. 그거야 공업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아는 바는 있네만.”

그럼 액체금속만으로 이뤄진 전술인형은 어떠십니까?”

 

그 물음에 사장님 눈만은 웃지 않았다. 가까이 앉으니까 사장님의 눈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 사람아. 그런 게 있으면 지금보다 싸움이 더 치열해지겠지. 일부 손상되어도 자연스럽게 복원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런 적을 쓰러뜨리려면…….”

저로서는 용광로에라도 집어넣지 않고는 쓰러뜨릴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고요. 무슨 변덕인지 근접전으로만 응해 와서 살아남은 겁니다. 다리하고 팔을 내주긴 했지만요.”

아쉽군.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치료 전에 미리 흔적을 확인하고 채취해서 분석을 해봤을 텐데. 그래, 그렇다면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무언가일 테니까 모든 지휘관들에게 전달은 해두지. 싸운 장소는 어디였는가?”

러시아 북부 어딘가에 있는 작은 마을 근처에 산이 있는데, 그 안에 있던 철혈공조의 거점이었습니다. 지금은 화산폭발로 마그마에 덮여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럼 자세한 위치는 자네 친구들한테 듣기로 하고, 그쪽도 조사해봐야겠군. 할 일이 많아.”

 

표정변화가 조금도 없이 정말 바쁜 사람처럼 말소리를 줄였다.

 

바쁘신데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으셔도…….”

귀중한 부하직원이 임무 중에 중상을 입었다는데 사장이 당연히 찾아와야지. 안 그런가?”

 

나 말고도 귀중한 부하직원은 넘쳐날 텐데 말입니다. 왜 도대체 나를 애지중지하시는 것인가. 그의 눈길이 조금 끈적이는 게 기분이 묘하다.

 

바쁜 와중에도 신체단련은 꾸준히 하는 모양이군. 교육생 시절부터 변함이 없어서 좋아.”

 

훈련생 시절이 떠올라서 말인데, 사장님한테 얘기를 꺼내봤다. 지금까지 내가 정규지휘관이 아닌 이유를 모르니.

 

사실은 저 아직도 비정규직 지휘관인데 사장님 권한으로 정규직으로 올려주시면 안 됩니까?”

 

사장님이 헬리안 누나를 쳐다본다.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슨 얘기를 말없이 주고받은 거지?

 

그래. 그렇게 하지. 딱히 지금까지 했던 일하고 다른 건 없지만. 급여는 자네 경력대로 쳐주겠네. 거기에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적의 본거지를 하나 괴멸시킨 공적도 있으니 나중에 따로 포상금도 지급하고.”

돈은 모국에 있는 제 계좌에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부양해야할 식구가 많아서요.”

그렇게 하지. 마지막으로, 여기 생활은 어떤가?”

고향땅하고 크게 다른 건 없어서 무난합니다. 간호사도 심심하지 않게 해주고 의사선생님도 미인이어서 좋고. 일거리도 생겨서 심심하지 않겠네요.”

자네니까 별 문제는 없을 테지만, 만의 하나는 늘 주의하게. 그럼 이만 가봐야겠군.”


무릎에 손을 대며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는데,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그 나이에 저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게 대단한 거 같다. 젊었을 시절엔 지금보다 더하지 않았을까? 여기저기 있는 흉터들은 확실히 그의 경력을 말해주고 있다.

 

사장님이 일어나니까 누나도 부채를 내려놓고 함께 일어났다. 정말로 이 둘이 함께 여기에 와서 자리를 비우면 얼마나 많은 일처리에서 손을 놓게 되는 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거기에 내 빈자리를 대신할 우리 동생이 할 일처리도 생각하면 미안하고.

 

얼른 나아서, 얼른 일을 처리하고 집에 돌아가는 게 제일이지. 하는 수가 없다.

 

사장님과 누나가 해수욕장에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여기에 놀러온 다른 지휘관들은 긴장을 끈을 놓고 마음껏 놀기 시작했다. 얼었던 분위기가 녹고, 우리 자리도 아가씨들이 경계를 풀고 다시 놀러 갔다.


답답하게 경직된 공기를 삿팔 간호사가 휘적휘적 저으며 풀었다. 귀여운 흰 수영복에 야전삽을 들고 있는 모습은 왜 귀여운 걸까. 발랄하게 내 앞에 와서 섰다.


지휘관님~ 우리 모래성 쌓아요!”

다리 다쳤는데 내가 어떻게 같이 하겠니.”

아니요. 어떻게 만들지 지시를 내려주면 그대로 만들게요.”

 

주위를 보면 모래성 같은 거 만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 애가 하고 싶다니까 어울려줘야겠다.

 

그럼 밀물에도 자리에 영향이 없게 앞쪽을 둘러볼까?”

이렇게 말인가요?”


삽을 바르게 들고 힘차게 땅을 파는데, 한 삽 또 한 삽 뭉텅이로 떠서 우리 자리 앞에 벽을 쌓아갔다. 이은 내 지시에 벽을 반듯하게 다지고 위쪽에 성벽 같은 느낌으로 울퉁불퉁하게 육면체를 붙이게 시켰다.

 

이러고 있으니까 어디 갔다 온 아키텍트가 보고 끼어들었다.

 

뭐야? 요새 만드는 거야? 나도 할래!”

 

그리고 상자 안에서 야전삽을 꺼내들고 함께했다. 둘이 얼굴을 마주보고 웃으며 작업……아니 놀이를 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사이좋게 잘 지내주면 나야 좋지.

 

땅을 판 곳은 해자로 만들어서 성벽은 배로 높아져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산에서 양동이에 흙을 담아 와서 뭔가 만들려고 한 적이 있었구나. 잘 안 되어서 전부 아버지가 밭에 가져갔지만.

 

정말로 앉아서는 바다가 안 보일 정도로 벽을 쌓아서 우리 앞을 다 막아버리니 조금 답답한 감은 있지만 정말로 밀물 걱정은 없겠다. 옆에도 뒤에도 두르고 여기서 예쁜 아가씨들하고 엄한 짓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환자니까 생각만 하고 말았다. 할 만큼 했으니까 둘을 불러 세우고 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귀여운 아가씨들, 전술인형이지만 양쪽에 앉혀놓으니 참 좋네. 조금 눕고 싶으니까 둘을 팔에 끼고 누웠다. 그 모습을 바로 우로보로스가 보게 되어서 나는 조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휘관.”

?”

 

무섭게 내려다보는 건 무서운 거고, 아래쪽에서 수영복 차림인 그녀를 쳐다보니 꽤 괜찮은 전경이다. 벗으면 대단한 그녀의 몸을 보니 에이전트의 알몸이 떠오르네. 어딘가 닮은 느낌이 있다.


언니가 바닷바람을 너무 쐬어 먼저 집에 돌아가야겠다는군. 의사선생님하고 먼저 돌아간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직접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장님하고 얘기한다고 시간 잡아먹었던 모양이네.”

대신 내가 지휘관을 감시해야겠으니, 내 허락 없이는 멀리 가지 말도록.”


그러면서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앉나 싶었는데, 내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내 쪽으로 엉덩이를 끌어 자리를 옮기고 자기 다리 위에 올렸다. 이 무슨 행복한 상황인가. 어여쁜 아가씨들한테 둘러싸여서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근데 단지 감시의 눈이 무서워서 은근슬쩍 가슴을 만진다든지 할 수는 없다. 높으신 분들이 젊은 여자 끼고 술 마시거나 하는 이유를 알면 안 되는 거였나.

 

그래. 팀 러시안룰렛의 휴가이기도 하고. 한 사건이 있었으니 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맞지. 다들 잠깐 쉴 시간은 필요하다. 나는 엄청 놀았던 거 같지만. 돌아보면 나만 진짜 한 게 없네. 씨 뿌리고 다니는 게 전부라니 종마랑 다른 게 뭔가.

 

그런 기둥서방 같은 삶은 달갑지 않으니까 이번 일은 정말로 내 주도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근데 뭐 그것도 지금은 잠깐이다. 나를 대하는 태도하고 달리 상냥한 손길로 우로보로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바람에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배부르게 잘 먹은 것도 있고, 바닷바람도 시원하고, 여자애들 냄새하고 감촉도 좋고 해서.

 

다시 눈을 뜬 건 해가 지려고 할 때여서 이미 집에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낙하시켰던 상자도 챙기고 없고, 나만 일어나면 되는 상태로 몸을 일으키려고 보니까 우로보로스가 졸고 있었다. 줄곧 얌전히 있다 보니 절전모드 같은 거 들어간 건가. 몸을 일으켜서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깨웠다.


얼굴이 꽤 가까이 있어도 동요도 없이 그녀는 눈을 뜨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이럴 땐 전술인형이 사람이 아닌 걸 느끼는 법이지만, 그녀는 우로보로스다.


집에 돌아갈 시간인가. 일어나도록 하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볍게 나를 안고 들어올렸다. 허미. 모두가 보고 있으니까 쑥스럽다. 기다리던 구사가 돗자리를 정리해서 챙기고 함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얌전히 차에 또 실린 건 좋은데, 우로보로스하고 아키텍트 사이에 끼어서 붙잡혀 갔다. 아니, 몹시 좋은 상황이지. 두 예쁜 아가씨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것도 정말 좋은 상황이다.


병원에 도착하고 알았는데, 의사선생님이 차를 타고 데리고 여기 먼저 왔을 텐데 왜 이 차가 다시 해변에 있었지? 혹시 사장님 차라도 타고 같이 온 건가? 차에서 내리고 휠체어에 옮겨 타고 바로 나는 우리 마누라를 찾았다. 내 침대에 누워서 편히 쉬고 있었다.

 

몸 괜찮아?”

. 쉬어서 괜찮아요. 즐겁게 놀다오셨어요?”

다리 아픈데 마음껏 못 논 게 아쉬워. 조만간 다리 깔끔하게 나으면 또 바다 가자.”

그래요, 그렇게 해요. 그리고 제 눈치 보지 말고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해요. 우로보로스 씨는 제가 잘 타일러 둘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그래. 바람피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경계하고 그러는 거냐고. 더 가까이 가서 나도 침대에 올라가고 손을 꼭 맞잡았다.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집에서 편히 몸조리 잘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당신이 있는 곳이 제가 있을 곳이니까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이마를 맞댔다. 그래,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건가. 내 욕심이지만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


출입문 쪽에 발소리가 들렸지만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봐서 그런지 다시 걸음을 옮겨 나가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다리로 잘 움직이면 혼자 이렇게 휠체어도 탈 수 있으니 거동에 불편함은 다친 다리를 못 쓴다는 것뿐이다. 그 뒤에 에이전트도 일어나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저녁밥 준비를 도와야지요. 쉬는 날이어도 지휘관답게 부하들을 시찰하시는 게 어때요? 환자여도 본업은 잊으시면 안 되죠.”

 

그렇게 말하면서 휠체어를 가볍게 밀어줬다. 내가 머무는 병실에서 나오고 나서 신경 쓰이는데, 우리 팀 아가씨들은 어디서 머물지? 다른 병실에서 머무나? 그렇게 큰 병원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옆 병실 앞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바닥에 발포매트를 깔고 있었다. 조금 지나쳐서 휠체어를 돌리고 그 방 안으로 넣어줬다.

 

너희도 여기서 머무는구나.”

당연하지요. 지휘관님을 지켜야하는 것도 저희 일이니까요.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대처해야죠.”


확실히. 벽 쪽에 무기도 탄약도 준비해놓은 걸 보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근데 다들 전투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으니 신선한 느낌이네. 이렇게 보면 넷 모두 대학생 정도로 보인다. 네 여대생이 놀러온 방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또 묘한 흥분이.

 

그녀들은 매트를 깔고 난 뒤에 그 위에 한 번 모포를 넓게 펴서 깔았다. 그 뒤에야 모여 앉아서 나도 휠체어에서 내려서 바닥으로 옮겨갔다.


배낭을 뒤적거리는 M4A1의 튼실한 엉덩이를 보고 있는데 AN-94가 물었다.


저녁시간까지 대기인가요?”

그렇지, . 사실 내가 나을 때까지 할 게 없지만. 그러니 장비를 꼬박꼬박 점검해두고 있어야지.”

 

M4A1이 뭘 찾는가 싶었는데, 꺼낸 건 트럼프였다.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그런 소박한 거였다. 그걸 들고 그녀가 모두를 돌아보며 제안했다.


그럼 카드게임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이런 건 내기로 거는 게 있어야 훨씬 재미있는데.”

 

동생하고 옛날에 아버지하고 동네 아저씨들이 화투치는 거 보고, 동생 가르쳐주고 점당 10원 하다가 내가 한 탕에 다 따버리는 바람에 울려는 애한테 내 용돈 조금 더 얹어줘서 달래주고 그랬는데.

 

걸만한 게 없으니 그냥 하죠. 게임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겁니다.”

 

무표정한 얼굴하고 무미건조한 말투하고 달리 즐겨야 할 때는 즐길 줄 아는 모양이다. 근데 누구한테 배운 거지? 아무튼 M4A1에게서 카드를 받아서 섞어봤다. 이것도 오랜만이지만 한 번 손에 익은 건 쉽게 잊지 않아서 금방 능숙하게 섞어 보일 수가 있었다.

 

카드를 섞어서 가운데에 놓고 물었다.

 

사이가하고 사십칠은?”

식사준비 도우러 갔어요. 매일 교대로 취사지원을 갈 예정이죠.”


그 카드를 집어서 한 장을 가운데에 내려놓고, ST-AR15가 카드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머지를 돌아가며 분배했다. 도둑잡기를 하려는 모양이네. 패를 받으면서 점점 나는 한숨을 짓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안 겹치게 분배하는 것도 재주다, 진짜. 그나마 조커가 없는 게 다행이네.

 

검은 조커를 한쪽으로 내놓으면서 자기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AK-12가 제안했다.

 

벌칙이 떠올랐는데요. 꼴찌한 사람이 제일 먼저 난 사람에게 뽀뽀해주는 건 어때요? 뺨에.”


M4A1하고 ST-AR15가 서로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눈길이 장난이 아니다. 둘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나? 반면에 AN-94는 벌써부터 얼굴을 붉히고 호흡이 거칠어져보였다. 정말 대비되는 듀오들이다. 거기에 나도 끼어있는데 얘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중복되는 카드를 내려놓고 시작해야하는데, 거의 한 쌍 혹은 두 쌍만 내려놓고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건가? 그마나 꼴찌하지는 않을 거 같다.


첫판은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3. 제일 먼저 난 건 AK-12이고 꼴찌가 M4A1이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눈을 크고 동그랗게 뜬 게 귀여운데, 수줍어하면서 AK-12의 뺨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또 각별했다.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싶을 정도로.

 

두 번째 판에선 나는 시작부터 금방 줄어들어서 선두권이었다. 반대로 이렇게 적으면 단점은 내가 원하는 숫자의 카드가 내 손에 들어올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는 점이지. 근데 혹시 어디서 따로 뭘 보고 있는 건가? 내 옆에 있는 AK-12에게서 카드를 뺄 때마다 내가 원하는 숫자의 카드가 나와서 제일 먼저 끝났다. ! 세상에! 그리고 다들 필사적으로 신중하게 카드를 뽑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나한테 뽀뽀해주는 게 싫은 거야?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은 ST-AR15하고 AN-94인데, 그 필사적인 마음이 ST-AR15가 앞섰는지 결국 AN-94가 지고 말았다.

 

조금 눈물을 글썽이며 내 옆으로 다가오는데, 미안한 마음이 몹시 든다.

 

아니, 정말 하고 싶지 않으면 억지로 안 해도 되.”

아니죠, 지휘관님. 벌칙게임은 공평한 겁니다. 얼른 지휘관님 뺨에 입맞춤 해.”

으응. 알았어.”

 

주저하는 마음에 바로 입맞춤은 안 하고 거리를 두고 있어서 뺨에 그녀의 숨결이 와 닿는다. 전술인형도 숨을 쉰다는 걸 새삼 깨닫고 기다리고 있는데.

 

뒤통수에 묵직한 타격이 가해져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어서 우로보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이를 빙자해서 그렇게까지 뽀뽀를 받고 싶은 건가? 그럼 기꺼이 내가 해주지.”

아니, 어디까지나 놀이인데…….”

시끄럽다. 저녁식사 준비가 곧 끝나니까 준비나 하도록. 손을 깨끗하게 씻고 식당으로 오기 바란다.”

 

몸을 일으켜 뒤통수를 어루만지니 우로보로스는 그대로 이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는 사이에 팀의 아가씨들이 카드정리를 시작했고 나는 먼저 일어나서 휠체어에 앉았다. 빠르게 카드정리를 하는 M4A1을 두고 세 사람은 일어나고, AK-12가 휠체어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그럼 먼저 가있을게요.”

바로 따라갈게. 먼저 가고 있어.”

 

사이좋게 다 같이 방에서 나와 이동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정말 전술 인형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예쁜 AN-94한테 뺨에 입맞춤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근데 본인은 위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나한테 해주는 게 싫었구나. 살짝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침울해진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p.s 1 졸린 가운데에 오랜만에 본편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 썼으니 자러 가야죠.

p.s 2 크루거 사장님이 여기에 있는 건 정규군에게 풀려난 뒤의 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애초에 많은 것들이 원작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어색하겠지만요.

p.s 3 근육남과 근육남의 만남. 일부 여성 지휘관들은 좋은 기운 얻어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장님이 주인공 제너럴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이긴 하죠.



댓글 | 4
1


지휘관의 아기는 언제쯤 태어날까요?
18.11.09 07:18
광제 크라이스
작중 내년 봄쯤이 아닐까 싶어요 | 18.11.09 10:47 | | |
(2994139)

175.215.***.***

레알로 싫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게 숨겨져 있는건지...
18.11.11 03:23
Grandkart
그냥 생리적으로 무리라든지... 흑... | 18.11.11 03:3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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