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소녀는 울지 않는다/지휘관 수색 작전>
#. UMP45
[각인? 그냥 적당한 기관단총이나 하나 던져 줘.]
그것은 아주 아련한 기억이었다.
[자매? 누가?]
[그야 너랑 나지. 우리들은 같은 계열의 총기를 쓰는 전술 인형들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곧 자매라는 거야!]
아주 아련하고, 달콤하고, 그리고…….
[날 죽여, UMP45. 그럼 넌 이제 자유가 되는 거야.]
그리고 두 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그런 기억들.
처음 각인을 받던 날, UMP40과의 만남, 그리고 이별, 그 모든 과정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은 쓰레기더미처럼 그녀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특정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연기처럼 희뿌연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할 수만 있다면 비명을 질렀겠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마치 물고기라도 된 것처럼 입은 뻐끔거리기만 할 뿐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수면 모드가 끝날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
“…지긋지긋해.”
UMP45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최악의 기상이었다. 옅은 회색빛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두 눈은 짜증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그 아련한 기억, 자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기억이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것인지 그녀는 알 길이 없었다. 차라리 이런 기억 따위 없애버렸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인드맵에 무턱대고 손을 대는 건 지나친 모험이었다. 이래저래 음지에서 살아가는 쥐새끼는 삶이 고달픈 법이었다.
“깨어났나?”
그때였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무겁고 텁텁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UMP45의 미간에 잡혀 있던 주름이 한층 늘어났다. 구태여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을 모양이었다.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언제나 빙글빙글, 정체 모를 웃음만 짓던 그녀가, 어찌되었건 타인의 앞에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다.
물론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별 상관없다는 듯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그리폰의 로고가 새겨진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와 그녀를 묶고 있는 사슬이자, 얼마 안 되는 연약한 유대의 증거였고, 또한 그녀가 직시하길 피하는 현실에 억지로 눈을 돌리게 하는 저주스러운 표식이었다. 그녀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사내를 노려봤다. 식별 신호 ‘아군, 11지역 지휘관’이라고 뜨는 그 사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엔 분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이만 움직이지, 손을…….”
“치워. 나 혼자 움직일 수 있어.”
도움의 손길도 마다하고, 그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억지로 일어섰다. 그녀나 지휘관이나 꼴이 엉망이었다. 몸은 성한 곳 하나가 없었고, 탄약이나 식량 따위는 떨어진지 오래였다. 특히 그녀의 왼쪽 다리는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과다 출혈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상처가 나있었다. 붕대 따위로 대강 막은 그녀의 다리는 외골격에 의지해 가여울 정도로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휘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일어섰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었지만, 이 빌어먹을 지휘관은 그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아침마다 그녀에게 배려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그는 잠시 묵묵히 UMP45를 바라보다가,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렸다. UMP45는 그 등 뒤를 따라나갔다. 고장 난 자신의 총과, 그보다 더 고장 난 자신의 다리를 질질 끌면서.
저체온증 작전 종료부터 3일.
UMP45와 11지역 지휘관은, 이름도 모를 설산 한가운데서 철혈의 잔당들과 싸우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그들은 조난당한 상태이기도 했다.
#. RO635
‘역시 그때 말렸어야 했어.’
RO635는, 지휘관이 실종되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했던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악명 높았던 저체온증 작전도 끝났거니와,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은 크리스마스로 인해 한창 축제 분위기에 젖어있어야 할 때였다. 더욱이 이번 크리스마스는 한 달 전 너무 바빠서 하지 못했던 지휘관의 부임 1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라 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휘소에는 장식하다 만 크리스마스 장식 위로 전술 지도며 각종 기기가 주야를 막론하고 작동하고 있었고, 중대 내부엔 말 못할 긴장감이 잔뜩 감돌고 있었다.
[2제대로부터 보고 드립니다. 전방에 적 철혈 인형병 다수! 리퍼와 베스피드 부대로 수는 약 30!]
“응전하세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세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여긴 1제대. 아직까지 지휘관의 흔적은 안 보여. 쳇, 눈이 계속 내리니까 흔적이 다 지워져버렸잖아! 일단 수색 요정들을 띄워서 계속 정찰할게.]
“알겠어요, 지휘관님을 찾으면 바로 보고해주세요.”
[당연하지! 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찾는데 어디 가서 죽었기만 해 봐! 아주…아주…….]
“괜찮아요, WA2000. 지휘관님은 분명 살아 계셔요.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찾아주세요.”
지휘소는 정신없이 바빴다. 군수 지원에 필요한 최저의 인원만 남기고 전 소대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엔필드의 보고를 필두로 지휘소에는 계속 새로운 보고가 잇따랐고, 그에 맞춰 RO635는 적절한 명령을 내리며 때로는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격려를 해줘야 했다. 지휘관의 부재로 괴로운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휘관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그녀들은 구성원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카리나 씨, 슬슬 보급 헬기를 띄워야 할 것 같아요. 보급품은 준비가 됐을까요?”
“네. 일단 2~3회 분이라면 어떻게든……. 눈보라가 불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요.”
“고마워요.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 좀 부탁드려요.”
“넵!”
카리나가 몇 가지 서류를 들고 바삐 움직였다. 불행히도 중대의 시설은 그리폰 본부만큼이나 좋지는 않았다. 결국 장비가 나쁠수록 몸이 바쁜 법이었다. RO가 당면한 문제는 지휘관 수색뿐만이 아니었다. 보급 문제도 있었다. 보급품을 꾸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전 지역이 하필 설산에, 그것도 6제대나 되는 인형들이다보니 정말 RO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색은 안 했지만 신경도 매우 날카로운 상태였다.
“RO, 추락한 운송기를 기점으로 지휘관의 루트를 계속 추적하고 있어. 지휘관이 살아있다면…….”
“지휘관님은 살아계셔, 마카로프!”
“…그래. 지휘관은 분명 거기서 가장 가까운 헬리포트 쪽으로 올 거야. 제대들에게 그쪽 지형 정보를 주고 주의 깊게 살피라고 할게.”
줄곧 RO를 옆에서 보좌하던 마카로프는 침착하게 말을 끝맺었다. 그 모습을 본 RO는 고개를 떨궜다. 지독한 자괴감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지휘를 맡았다는 책임감과 아무런 잘못도 없는 마카로프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죄책감이 그녀의 심장을 마구 쑤시고 있었다.
“제대 이동과 보급까지는 좀 시간이 필요해. 15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좀 쉬었다 와.”
마카로프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은 놀랄 정도로 깊게 가라앉아 있어서, 혼란스러워하는 RO보다 훨씬 더 지휘에 어울렸다. 적어도 RO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카로프는 스스로 RO의 부관을 자처했다. 이유는 몰랐다…그리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마카로프, 하지만…….”
“넌 쉬어야 해, RO. 무슨 일 있으면 부를 테니까 좀 쉬고 있어. 너까지 쓰러지면 작전은 모두 끝이야.”
RO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거렸지만 고개를 푹 떨구는 것으로 입을 닫았다. 그녀는 사과도 없이 지휘소를 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카로프도 힘들텐데,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마냥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딱 15분이야. 정신차리자, RO635.”
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녀가 제시간에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마카로프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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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에 움45가 지휘관이랑 따로 조난당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끄적거려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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