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여기 일일보고서."
"고마워 45. 오늘은 어떤 귀찮은 일이 있을지 궁금한걸."
일일보고서엔 하루에 해야할 일들이 모두 적혀있는데, 오늘은 다행히 종이의 두께가 얇았다.
"오늘은 양호한데. 너도 쉴 수 있겠어."
"그거 좋네. 일단 나 씻고 올게. 일어나서 바로 온 참이라."
"나 닮아가지 말라니까? 일어나자마자 씻고 와. 바로 보고서 주지 말고."
"댁이 상관할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UMP45는 그렇게 방을 나가버렸다.
"어후, 사람 명령을 안들으니까 답답해 죽겠네. 그나저나 오늘은 왜이리 적지?"
확실히 평소에 오는 양보다는 적었다.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고서의 첫 장을 열어보았다.
종이에는 평범하게 일정이 적혀있는 표가 있었다.
하지만 아래에는 안보이던 각주가 하나 달려있었다.
'귀하의 지휘구역 내 한 인형에게 결함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중요한 업무는 다른 지휘구역에 분담하여 나누어졌고, 추후 불가피하게 업무가 추가될 것을 미리 통보 드립니다.'
"씁... 다른날이 더 힘들어졌네..."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다음장을 넘겼다.
다음장엔 각주에 언급된 '그'인형이 있었다.
놀랍게도 자타공인 전장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엥? 무슨 결함이지?"
아래에 적힌 세부 사항을 봤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의심."
나는 곰곰히 평소 네게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의심되는 행동은 없었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수화기를 들어 UMP45을 불렀다.
10분 뒤,
"무슨일이야?"
"오늘 11시부터 사격훈련 있는거 알지? NTW-20한테 통솔하라고 하고 훈련 끝나면 네게브좀 불러줘."
"어. 그리고?"
"오늘은 더 없어."
"그거 반가운 소리네."
"근데 내일부터 좀 힘들것 같은데."
"말 취소. 난 가볼래."
UMP45는 무표정으로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부관이 뭐 저래..."
잠깐 투덜댄 후 시계를 보았다.
10시 20분. 훈련이 끝날때까지 4시간 40분 남았다.
평소같으면 일에 쫒기며 쩔어있겠지만 시간이 남아 돌아 인형들의 사격 훈련 현장을 보러 갔다.
그곳엔 NTW-20이 먼저 사격 훈련 준비를 하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안녕. 고생이 많아."
"아. 지휘관인가. 무슨일이지?"
"그냥. 나도 돕게. 오늘은 할 일이 없어."
"괜찮다. 거의 다 했다."
"그러냐. 아 맞아. 혹시 네게브가 이상한 행동 하는거 봤어?"
"음... 자신이 특별하다는걸 어필하는거 빼고는 본적이 없다."
"그렇구나. 훈련 끝나고 네게브 나한테 보내줘. 할 일이 있거든."
"그래."
나는 훈련장 외곽에 있는 벤치에 앉아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NTW-20이 통솔을 해서 그런지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훈련이 끝나기 5분전, 나는 지휘실로 들어가 네게브를 기다렸다.
"무슨일이야 지휘관?"
"어. 아주 평범한 질문이야."
"뭔데?"
"그러니까... 요즘 잘 지내?"
"당연하지."
"그럼 불편한건 없고?"
"아주 좋아. 전에 있던 곳보다 더 나은걸."
"...그래. 이걸로 끝이야."
"뭐야. 별거 아니었네. 나 먼저 가볼게."
네게브의 겉모습은 이상이 없었다.
"45. 여기로 와봐. 할일이 생겼어."
"흐응. 뭔지 알겠는데."
"네게브의 마인드맵을 볼 수 있어?"
"전문이지. 어느부분을 원해?"
"여기 오기 전의 모든 정보."
"알겠어. 추출되면 부를게."
나는 네게브의 소대원인 갈릴과 TAR-21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지휘관님. 무슨일이시죠?"
"혹시 네게브가 특이 행동을 하는걸 본 적이 있어?"
"음... 몇번 보긴 했죠."
"자세히 알려줘."
"일단... 그리폰에서 파티를 할 때 폭죽을 많이 쓰잖아요. 처음에 작은 폭죽이 터질때까진 괜찮았어요. 그런데 중간크기 폭죽이 터질때부터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죠. 몸을 모아 덜덜 떨다가 책상같은 작은 공간에 무기를 가지고 들어가서 흐느껴 울기도 했죠.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제 몸이 아플 지경이었어요. 어떤때는 어두운 밤에 혼자 거실에 나와서 미친듯이 웃다가 울다가... 얼굴은 웃고있는데 눈물은 흐르고있고... 저도 소대장을 도우려 했지만 별 방법이 없었어요..."
이어서 갈릴이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안보이는 적에게 쫒기기도 했어. 가끔 나랑 TAR를 보고 식겁해서 주저앉아 비명을 지른적도 있었지. 가장 끔찍했던건 잠시 업무 처리하러 다른곳에 가 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을때, 공허한 얼굴로 휴대용 접이식 칼로 자신의 팔을 천천히 긋고 있었어... 그래도 요즘은 나아진 편이긴 한데, 불인해서 작전을 못나가겠어."
"그렇구나. 고마워. 들어가봐."
"부디 좋은 정보가 되셨기를."
생각한것보다 사태는 심각했다. 서둘러 UMP45에게 가서 진행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다 됬긴 해. 내용이 좀 그런데."
"고마워. 이제 좀 쉬어. 난 이것좀 봐야겠어."
"충격에 대비하라고."
UMP45는 내게 CD를 넘겼다.
컴퓨터에 CD를 넣었더니 동영상 파일 하나가 있었다.
영상을 재생시켰다.
"...후....퇴해!"
잡음이 껴서 그런지 잘 안들렸다.
"빨리 빠져! 지금 상태로는 못버텨!"
"차탄! 차탄온다! 빨리 흩어져!"
"TAR! 니쪽으로 오고 있어! 피해!"
영상속 TAR-21은 재빨리 회피 기동을 했지만 결국 포에 맞았고, 네게브의 얼굴에 빨강색 액체가 튀었다.
굉음과 함께 TAR-21를 포함한 그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먼지 구름이 사라진 자리엔 선혈이 낭자했고 그 주변엔 TAR-21의 것으로 추정되는 파편들이 있었다.
"안돼!!!!"
"가지마 네게브! 미쳤어?!"
화면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중간중간 갈릴의 모습이 보였고 곧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우리라도 살아야해! 빨리 뛰어!"
"젠장! 젠장할!"
그 뒤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잠시후, 여러발이 총성이 들리자 뒤를 돌아보았다.
갈릴은 다리와 등 쪽에 총알을 맞아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엄폐하려고 기어서 바위쪽으로 움직였고, 바라만 보고 있던 네게브에게 소리쳤다.
"뭐해! 빨리 가라고! 난..."
결국 한발의 총성과 함께 머리가 관통되었고, 정체 불명의 액체가 생긴 구멍에서 천천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네게브는 그대로 달려 헬리포트에 도착해 구조됬다.
그 뒤로는 영상이 짤려있었다.
"......세상에."
"충격에 대비하라니까."
4분짜리 영상을 보고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 괜찮은거야?"
"어...조금."
"내가 더 해줄건 없어?"
"아직은. 근데 이번 일은 왜이리 적극적이야?"
"...동질감이랄까. 치료 방법이나 생각해 봐."
바로 그때, 갈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휘관! 네게브가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빨리 와서 도와줘!"
급하게 네게브 소대의 숙소에 도착했을때 네게브는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군의관! 군의관 불러와!"
곧내 군의관 두 명이 들것을 들고 네게브를 데려갔다.
나는 구경하려고 몰려든 인형들을 다시 돌려보내고 수복실로 들어가 네게브가 깰 때 까지 기디렸다.
몇 분후, 네게브는 황급히 일어니 거칠게 숨을 몰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제리코? 제리코?!"
"진정해 네게브. 여긴 수복실이야."
"지휘관? 지휘관이 왜 여기에..."
그녀가 사태를 파악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안."
"네게브. 괜찮다는거 거짓말이지?"
"아냐... 오늘만 갑자기 이러는거야. 걱정 안해도 돼."
"...너의 소대원들이 너가 이상행동을 하는걸 알려줬어. 더이상 숨기지 않아도 돼. 날 믿어줘."
그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말문을 텄다.
"...전 부대에서 소대원들을 전부 잃은 적이 있었어.
소대원들은 내 목숨을 지켜줬지만 난 그녀들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지. 동료가 앞에서 죽어나가는데도 난 돕지 못했어... 그 장면이 언제 어디서나 내 눈앞에서 다시 일어나........"
결국 통곡을 하고 말았다. 나는 그저 그녀를 안고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모두를 한번씩 죽게 한거야... 난 내 자신이 너무 역겨워..."
"아니야. 소대원들은 너가 살 길 바란거야. 넌 그녀들의 소망을 이루어주었지. 그러니까 네 어깨의 짐을 조금은 덜어도 괜찮아."
"맞아. 우린 널 원망하지 않는걸. 그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말이야."
어느새 갈릴과 TAR-21이 뒤에 와있었다.
"미안해...미안...미안......."
네게브는 한참동안 사과만 했다.
"진정됬어?"
"응..."
"내일부터 집중치료를 할거야. 치료 받는동안은 푹 쉬어."
"고마워 지휘관. 덕분에 조금은 나아진것 같아."
"뭘. 내 역할인걸. 들어간다."
네게브를 뒤로 한 채 수복실에서 나와 창 밖을 보았다. 밖은 이미 해가 떨어진지 오래였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하나...?"
어디선가 UMP45가 나타나 말했다.
"아마 그래야 할껄. 업무가 상당히 밀렸을거야."
"에잇. 뭐 하지도 않았는데 하루가 다 지나가버렸어..."
"당신의 주름살도 하나 추가되겠네."
"그래도 보람찬 하루였어. 안그래?"
"몰라. 이런건 처음이야. 그냥 한잔 할까?"
"그러지. 묵은 때를 한번 씻어내려 보내자고."
그날따라 밤은 너무나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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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힘들지만요 | 18.06.15 08: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