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걸려서 소설 써보았습니다. 잘 읽혔으면 좋겠네요.
그냥 읽기에는 심심하실테니 음악이라도 같이 들어보셔요
----
지휘관이 죽어도 인형은 죽지 않는다.
대신 인형은 언젠가 그의 기억을 지운다.
원하든 원치 않든.
* * *
새하얀 햇살이 볼을 어루만지자 G36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뻐근한 몸을 일으킨 그곳은 평소와 같은 칙칙한 지휘부가 아니었다.
흐릿한 조명으로 멋을 낸 이 작은 카페는 아늑함이 가득한 게 무언가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분위기에 맞춰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카페 주인이 나타나 그녀를 맞이했다.
“오늘도 변함없군요.”
나긋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스프링필드였다. 이곳은 그녀가 관리하는 작은 카페로, 파는 거라고는 머핀과 커피뿐이다.
하지만 인형에게는 조금 특별한 상품이 준비되어있다.
G36은 스프링필드에게서 건네받은 작은 장치를 귀에 꽂았다. 잠시 후 기계는 그녀의 메모리를 읽고서 카페 내에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남자였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얼굴도 평범한 그냥 보통 남자.
하지만 그녀에게는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지휘관…….”
G36은 속삭이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늘은 지휘관이 세상을 떠난 지 일년 째 되는 날이었다.
* * *
낡은 나무 책상에서 G36C는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서를 읽었다.
어째서인지 매일 하는 작업인데도 업무속도는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아침에는 한가해서 망정이지 오후에는 커피 한잔 마시기도 힘드리라.
수북이 쌓여가는 저 종이 더미가 한숨과 함께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그럴 일은 오늘도 내일도 없겠지.
G36C는 펜촉에 힘을 주며 마음을 잡았다.
하지만 긴장한 팔꿈치가 그만 책 더미를 쿵하고 떨어뜨리자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달아 올랐다.
“아, 죄송합니다, 지휘관!”
그러나 비좁은 사무실에서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이제는 가고 없었지. G36C는 눈에 줬던 힘을 풀며 그대로 의자에 누웠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인형의 기억은 흐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흉터처럼 선명한 맹독과 같다.
잊을 수 없다면 자신을 속일 수 밖에. G36C는 이빨을 깨물며 다시 일에 전념했다. 조금 지나자 카리나가 보고서를 수거하러 들어왔다.
“고생하네요~.”
그녀는 뒤뚱거리며 안아 들은 커다란 상자를 내려놓았다. 이것저것 박혀있는 괴상한 물건들을 보자 G36C의 동공이 동그랗게 커진다.
“이게 다 뭐죠?”
“창고를 오늘 내로 비운다고 해서요. 쓸만한 거 알아서 처리하라네요.”
마치 보석을 다루는 듯 카리나는 물건을 하나하나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열거한다.
G36C에게는 대부분이 잡동사니로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상품인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신기해서 같이 보던 중 작은 기계 하나가 손에 잡혔다.
“어머.”
카리나가 반가운 듯 그것을 어루만지자 G36C가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을 내보였다.
“그건 뭔가요?”
“아, 지휘관이 만든 거에요.”
카리나가 만지자 방안에 전자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그것은 지휘부 인형들의 과거 기록이었다.
군수지원부터 휴일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 각양각색의 추억들이 비디오처럼 뿜어져 나왔다.
“원래는 마인드맵 백업을 대비한 간이 저장장치인데, 쓸 일이 없어서 비디오로 개조했대요. 언젠가 몰래 찍어 놓고는 다같이 보자고 했죠.”
그리움이 가득한 영상이었다. 흥겨운 노래와 갖가지 웃긴 사진들로 이루어진 비디오는 인형들의 추억들을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다.
하긴 지휘부에서 인형이 있는 곳은 늘 지휘관이 있었고, 지휘관이 가는 곳이면 언제나 인형들이 따라다녔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죠.”
카리나는 살짝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지휘관의 유머는 거의 웃긴 적이 없었어요.”
“그건, 사실 저도 그랬어요.”
“그렇죠? 근데 지휘관은 살짝 밀어주면 어찌나 좋아하는지!”
오랜만에 빠진 추억에 둘은 일 따윈 나중으로 미뤄두고 지금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래서 갖가지 보고가 들어와도 G36C는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언니에 관한 것이기 전까지 말이다.
* * *
수복실에 누워있는 G36은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되려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카리나한테 들은 바로는 문제의 장치는 일종의 네트워크 연결기로, G36이 스스로의 마인드맵 심층부로 접속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방비하게 인형내면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무의식과 동화된 순간 마인드맵은 과부하 상태가 되어 그대로 회로를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일단 G36은 빨리 발견되어서 곧 깨어나겠지만 다른 인형들이 문제에요.”
카리나는 옆에 누운 인형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연결기는 물론이고 더미링크까지 전부 제거해서 타버리지는 않을 테지만,
심층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벽을 쌓아서 메인 서버와 연결이 불가능해요.
어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만든 모양인데, 이 상태로는 백업도 할 수가 없어요.”
인형의 마인드맵은 늘 서버와 동기화해서 만약의 경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악의적으로 동기화를 조작해서 제조도 할 수 없다.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사망시켜야 하고, 그렇게 태어난 인형은 기존의 기억이 전혀 없는, 완전히 다른 인형이 될 것이다.
카리나도 G36C도 그것은 원치 않지만,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상층부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G36C가 직접 G36의 마인드맵에 들어가서 어디의 누구한테 이런 짓을 당했는지 알아내 주세요.
아직 외부와 접속한 상태로 되어있으니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요는 그 다운로드 경로를 거꾸로 찾아가는 것이다. G36C는 의자에 누워 언니의 마인드맵에 접속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데이터가 무분별하게 떠다녔지만 그녀는 착실히 거슬러 올라가 작은 카페에 도달했다.
왜인지 모를 긴장감에 가슴이 떨린다. G36C는 마음을 가다듬고 카페의 문을 열었다.
낡은 구식 디자인 속에서 믿기 힘든 따스함이 몸을 감싼다.
그 한가운데서 스프링필드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현하며 그녀를 반겼다.
“어머, 설마 또 손님을 맞이할 줄은 몰랐군요.”
“스프링필드?”
카리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스프링필드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저는 더미에 불과해요.”
이곳은 오래 전 누군가가 만든 임시 네트워크. 눈 앞의 소녀는 스프링필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남겨진 더미 데이터였다.
“예전에 본체인 저도 이곳에 와서 지휘관을 회상하곤 했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선택을 하러 떠났습니다. 그것이 좋은 결말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요.”
“그래서 다른 인형들도 똑같이 만들고 있는 건가요?”
카리나는 일단 도발적인 자세를 취해 보았다. 먹혔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더미는 딱히 거부할 마음은 없었나 보다.
그녀는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는 건 인형들의 선택이에요. 과거를 그리워한 많은 인형들이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죠.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인형도 있었어요.”
스프링필드가 손을 뻗자 그곳을 왔던 인형들의 영상이 하나둘 나타났다.
만날 수 없는 지휘관을 찾아온 그들은 그것에 만족했으나 현실에는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제게서 얻은 지식으로 영원히 추억 속에 살기를 선택했죠. 지휘관이 죽어도 인형의 기억은 영원해요.
결국 벗어날 수 없다면 언젠가 자의든 타의든 지울 수 밖에 없죠.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고요.”
스프링필드는 다시 손을 내려 이번엔 하나의 데이터를 꺼냈다. 둘이 찾고 있던 바로 그 방어벽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제 지휘관은 그런 결정을 좋아하지 않았죠.”
말없이 프로그램을 건네주자 그녀의 모습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카페 전체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심층에서 꺼낸 추억은 진짜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현실에 간섭하게 되요.
그것을 자주 겪게 되면 결국 마인드맵은 어떤 게 현실인지 분간을 못하게 되고 말죠.”
흩어지는 데이터 속에서 스프링필드의 더미는 마지막으로 카페 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게 또 인간적인 것 아니겠어요? 그렇죠, 지휘관?”
손끝을 통해 전해든 그 감정은 진짜일까 아니면 잘 복사된 가짜 더미일까.
G36C는 머릿속에 든 의문들을 정리하기 전에 다시 현실로 튕겨나갔다.
무수히 많은 정보가 돌아다니는 G36의 데이터 바다.
그곳에는 지휘관의 사진이 가득했지만 G36C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 * *
G36C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수복실은 전쟁터였다. 밖에서는 더미인형들이 공격을 해왔고 안에서는 카리나와 남은 인형들이 어떻게든 방어하고 있었다.
“G36C! 깨어났군요!”
그녀는 현재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G36C가 현실에 깨어나기까지 1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카리나는 방어벽 해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수복실의 인형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원치 않은 모양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더미들이 프로그램 혹은 본체를 파괴하기 위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 해체 장치를 서버에 연결하면 되는 거군요.”
G36C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며 환풍기 구멍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무사히 움직일 수 있는 인형은 의자에 누워있던 그녀뿐이었다.
더미 스프링필드의 네트워크에 접속했었던 덕택에 G36C는 같이 접속했던 인형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적은 무의식으로 움직이는 더미인지라 직접적으로 방해만 안 하면 일부러 그녀를 잡으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힘드시겠지만 잘 부탁 드려요.”
카리나의 격려에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올게, 언니.’
침대에 누워 있는 G36은 1주일이 지났는데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머리띠는 언젠가 지휘관이 변덕으로 선물한 것.
색깔이 탁해서 카리나가 그의 센스를 놀렸지만 G36은 한번도 머리띠를 바꾼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걸까? 아니,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다.
G36C는 주먹을 쥐고서 서버실로 향했다. 그 때 아무도 몰랐겠지만 G36은 살며시 눈을 뜬 채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들었고 몰래 드론 하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 * *
비좁은 곳을 엎드린 채로 전진하니 팔꿈치와 무릎이 여기저기 부딪혔다. 하지만 아픈 곳은 이미 충분하다.
그녀는 철장을 발로 차 부수고 목적지로 뛰어 내렸다. 중앙의 서버에 장치를 꽂아주는 것으로 임무 종료.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때부터 더미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장치가 연결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주위를 맴돌던 더미들이 서버룸을 향해 일제히 다가오고 있다.
G36C는 그제서야 자신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네트워크에 갔었던 더미들을 감지할 수 있듯이 더미 또한 그녀를 통해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연결된 장치는 이미 작동한 이상 분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 방에 그들이 오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다.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다만 서버는 지금 새로운 장치를 설치 중이다. 아마 지금 죽는다면 그녀의 기억도 동기화되지 못하겠지.
G36C는 마음을 가다듬고 무기를 꺼냈다.
“카리나씨. 언니를 잘 부탁해요.”
허나 다음 순간 서버룸의 모든 문이 닫히며 안전 셔터가 내려갔다. 누군가 보안 장치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카리나도 인형들도 모두 위층에서 내려오지 못할 텐데 대체 누가. G36C의 센서는 그 순간 이질적인 더미 하나를 감지해낸다.
그것은 서버룸 근처를 맴돌면서 명백하게 다른 더미들에게 적대적인 행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G36의 더미였다.
“말도 안돼!”
카리나는 화면을 통해 보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G36은 지금 이곳에 누워있다.
더미링크는 확실히 제거했고 그 외에 접속할 장치는 어느 것도 있지 않다. 문제의 네트워크 연결기 또한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는 과부하로 전기 스파크를 내뿜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G36C는 수복실에 돌아와 찬찬히 언니를 살폈다. 얼핏 보기에는 이상해 보이는 것은 없지만 그녀만은 알 수 있었다.
G36의 오른손에는 그녀가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펜촉이 쥐어져 있었다.
“설마 너도…….”
G36C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궜다.
그 날 사무실에서 난데없이 사과할 때도, 네트워크에서 돌아오는데 1주일이나 걸릴 때도 G36C의 회로는 가상의 지휘관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진짜와 같아서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을 비틀고 안주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그녀의 눈에는 지휘관이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언니의 마음 속에는 지휘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기적인 것은 저였어요.”
G36C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휘관, 차라리 이대로 멀리 데려가 줄래요? 그렇게 되면 언니도 다시 볼 수 있겠죠?
설령 가짜라 해도 무슨 상관이겠어요. 어차피 인형의 의식은 전자로 만든 가짜니까요.”
지휘관은 여느 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꼭 끌어안고 위로해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인드맵은 너무도 평안하고 따스해진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는 평소와 달랐다.
지휘관은 그녀가 안으려는 손을 살짝 밀고는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를 봐, G36C. 책상도, 의자도 전부 낡아. 온통 죽은 사람의 물건뿐이야. 대체 언제까지 방안을 이런 걸로 채워놓을 꺼야?”
G36C는 그 말에 울분을 토해냈다.
“하지만 인형에게는 남은 게 기억뿐인걸요. 잊어버리면 그 때는 진짜로 죽는 거잖아요.”
“……오래 전에 가족을 잃고 나니 집안이 너무 쓸쓸했었어. 의자는 여러 개인데 앉은 사람은 나 혼자였고,
옷도 신발도 너무 많았지. 그래서 조금씩 정리를 시작했어. 어쩔 수 없잖아? 이제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침대로 다가가 G36의 머리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이것 좀 봐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 너무 낡은 거 같지 않아?”
그가 선물해주었던 색이 바랜 머리띠. 뜬금없이 선물했다던 이질적인 디자인의 촌스런 머리띠다.
“카리나씨. 지휘관은 왜 난데없이 저것을 선물했을까요?”
G36C의 시선이 그것에 고정된 채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지휘관은 왜 매번 인형에게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어 줬을까요?”
그녀는 머리띠를 잡아서 주의 깊게 다시 살폈다. 끝부분의 솜이 터져 나온 곳에는 작은 기계가 숨겨져 있었다.
카리나는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챘다. 원래는 다른 용도지만 실패했다며 몰래카메라 용으로 썼다는 작은 장치.
하지만 그 진짜 용도는 오로지 인형을 위한 것이다.
“간이 저장장치!”
G36C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덥썩 쥐었다. 방 한편에서는 지휘관이 손가락으로 문 밖을 가리키며 어서 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G36C는 힘껏 두 다리로 뛰었다. 전처럼 어기적 기어가는 게 아니라 전력으로 빠르게 달렸다.
그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확실한 감정을 띄우고 있었고, 감정은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목적지까지의 길은 싸움으로 인해 무너져 미로투성이였지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구석에서 그가 나타나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그는 똑바로 목적지로 안내했고 G36C는 마침내 서버에 언니의 기억을 올렸다.
G36의 자아가 다시금 기억을 되찾고 감정을 읽어들이자 마인드맵이 되살아난다.
심층에서 끄집어 냈던 기억도, 지휘관의 추억도 이제는 떠나 보내야만 한다.
사라져가는 그의 사진을 보며 G36은 눈물을 삼켰다.
“지휘관. 또 저를 버리는 건가요?”
그것은 인간을 만족시키지 못한 인형의 후회고 한탄이었다.
그러자 홀연 목소리 하나가 나지막이 들렸다.
“내 인생 마지막은 인형들과 함께였지만, 가장 인간적인 삶이었지. 고마웠어, G36.
하지만 이제 그만 새로운 사진을 찍어봐. 나만 차지하기에는 이 넓은 곳이 너무 아깝잖아.”
그것을 끝으로 G36은 꿈에서 깨었다. 바로 옆에서는 그녀의 동생이 울상을 지으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인형의 손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포근한 감촉이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지휘부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일련의 사태로 카리나가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지휘부는 전과 다르게 변하였다. 사무실도 새로 리모델링하고 낡은 것들은 창고로 옮겨졌다.
앞으로도 지휘부는 바쁠 테고 G36C는 보고서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어머, 언니 왔어요?”
그리고 G36은 머리띠를 새로 샀다.
옷도 깨끗이 단정하게 차려 입고서 가끔씩은 여유도 부린다.
“네. 그럼 시작할까요?”
둘은 인형들이 파티를 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영상을 하나 틀었다.
그것은 과거에 누군가가 찍어놓은 우스꽝스러운 지휘부의 일상이었다.
인형들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영상은 흥겨운 음악과 괴상한 사진으로 쉴새 없이 지나가 웃고 즐기기 바빴다.
이제 저 비디오도 다시 재생될 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 찍은 사진은 사무실의 한 쪽에 장식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사진과 함께
(IP보기클릭)223.39.***.***
(IP보기클릭)223.39.***.***
뭐랄까 씁슬하면서도 그렇기에 단 소설이네요 | 18.03.13 22:27 | |
(IP보기클릭)113.1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8.03.13 22: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