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문입니다. 또한 작중 스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작중 대놓고 노리고 만든 서로 상반된 "단짝"들이 등장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두 인물은 단연 K[=조]와 러브이다.
러브와 케이는 첫 만남 부터 서로의 의복이 노린듯 상반된 색을 지녔다. 케이는 이름을 가진 러브에게 질투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도발적인 말까지 한다. "이름을 지어주다니 특별한가 보군요." 이때 미묘하게 변하는 러브의 표정이 불쾌감인지 자랑스러움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이런 특별함은 둘의 위치와 함께 그 의미가 점차 변화해간다. * 이름 - 케이 : 이건 이름이 아니라 레블리컨트 일련번호의 일부로 편의상 부르는 약자에 불과하다. 조이가 주는 "조"라는 이름마저도 흔하디 흔한 이름인데다 프로그램 된 단어였다. 아무것도 아닌 레플리컨트였던 그는 조이가 준 그 이름을 결국 특별하게 만든다. - 러브 : 창조주 월레스가 직접 지어준 것으로 보이며 그만큼 본인에겐 특별한 이름일 터이다. 허나 정작 창조주 월레스는 사랑을 모르는 자이며 러브 자신도 결국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한다. 러브는 작중에서 창조주의 사랑을 받기위해 노력하고 일부 리뷰에서는 케이의 사랑을 원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가장 고독한 캐릭터가 된다. * 역할 - 케이 : 블레이드 러너는 같은 레플리컨트를 퇴역시키는, 죽음을 주는 역할이 주어진다. 이때문에 동족과 인간 모두에게서 멸시를 받는 말 그대로 경계에 선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그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며 되도록 무력화에서 그치려 한다. 데커드가 납치될 때에는 거침없이 죽였지만.... 하지만 후반 그는 전작의 로이 베티처럼 누군가를 살리는 길을 스스로 택하게 된다. - 러브 : 첫 등장은 '상품'의 디자인을 고객과 조율하고 생산을 의뢰받는 딜러로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와는 반대로 레플리컨트에게 생명을 주고 그 탄생을 창조주에게 보고하는 말 그대로 천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지위도 높아서 같은 레블리컨트 케이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고 고위층으로 보이는 인간 고객 과도 대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조율했다. 그러나 창조주가 준 러브의 진짜 역할은 죽음의 천사였고 그 스스로도 적극적인 살인을 한다. 러브는 월레스가 부여해준, 세뇌에 갇혀 만들어진 최고의 천사라는 가짜 프라이드에 속박되어 인간은 물론 동족인 복제 레이첼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이는 킬링머신의 모습을 보인다. 레플리컨트이지만 인간을 내키는데로 죽이며 우위에 서고 그러면서도 다른 레플리컨드들과는 유리된, 케이와는 정 반대된 블레이드 러너의 역할을 가진 인물.
* 기억 - 케이 : 결론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이의 복제 기억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알기 전 까지 그를 지탱해준 소중한 추억이었다. 설령 만들어진 가짜라는 인식이 있었음에도. 본인의 것이 아님에도 완전한 가짜 기억은 아니라는 것이 딱 경계 지점에 서있는 케이의 위치를 드러내는 듯 하다. 어릴적 기억 때문인지 그가 독서, 올드팝, 음주를 즐기는 모습은 나중에 만날 데커드와 은근 닮았다. - 러브 : 러브의 기억은 작중 단서가 1도 드러나지 않는다. 월레스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기억따윈 아예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기억과 마찬가지로 내면에 쌓게 되는 독서와 음악같은 예술 소양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외면을 가꾸는 네일아트를 통해 엘레강스한 차림과 상반된 키덜트스런 취향을 한 번 드러낼 뿐이다. 전투 레플리컨트 답게 치장하는 손톱이 짧은 것이 디테일..... 고위층 고객을 응대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교양을 쌓았겠지만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 고뇌 - 케이 : 새퍼에게 들은 "기적", "넌 인간의 뒤나 닦지"라는 말을 내내 속에 담아두며 태어난 아이를 없애라는 상관의 명령에 마치 터부를 두려워하듯 망설임을 보인다. 이때 이미 케이의 내적 고뇌는 그의 인간성, 즉 영혼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그가 기준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특별함을 쉽게 믿으려하지 않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내 고뇌에 시달리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려하지 않고 매달린다. 영혼과 진짜를 찾아 헤메이는 이 고뇌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간다. - 러브 : 감정적 동요와 기복은 오히려 케이보다 러브가 훨씬 다양하게 보여준다. 이 감정의 기복이 러브가 보인, 그리고 가질 수 있었던 몇 없는 인간성이다. 그러나 고뇌는 없다. 아니, 고뇌 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고뇌 할 기회를 시작부터 빼앗긴 것이 어쩌면 러브가 가진 최대의 불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창조주가 준 최고의 천사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조바심에 쫓기며 손을 더럽히는 모습은 결국 수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익사해가는 발버둥과도 같다. 말 그대로 이상과 함께 익사한 인물이다.
* 사랑 - 케이 : 주인공 보정인지 등장인물이 적은 영화에서 꽤 인기남이다. 이는 인간과 레블리컨트 양쪽에서 멸시받는 블레이드 러너의 직업과는 상반되는 캐릭터성인데, 인공지능 조이는 물론, 인간 상사 조시, 레플리컨트 메리에트에게 까지 호감을 받는다. 러브도 케이를 좋아한다는 의혹이 있으며 반란군 지도자 프레이사도 케이를 나쁘지 않게 본다. 또다른 경계선적 인물 데커드와 스텔린도 그를 나쁘게 볼 수 없는 입장이다. 그는 멸시 받는 경계선상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며 그만큼 사랑을 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해결책으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조이라는 차선책을 택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능하고 나름 직책도 가졌지만 그는 결코 타인에게 억압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인공지능 조이에게조차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한다. 가짜에 불과했을 조이를 진짜로 만든 데에는 이런 태도도 일조했을 것이다. 마치 다른 영화 주인공 '존 윅'이 연상되는 이런 소박함과 진정성이 그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미끼로 이용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린 원인 제공자 데커드와 스텔린에게 오히려 인류애적인 사랑을 준다. - 러브 : 창조주의 사랑을 갈구하는 한 편 케이의 사랑을 원했다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케이를 두 번이나 끝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질 못해 자신이 죽게 되었다. 러브는 월레스가 막 태어난 동족의 탄생을 축하해줄 때와 "아이"가 죽었다는 거짓을 들었을 때 총 두 번 눈물을 흘리는데[후자는 배우의 애드립] 이 눈물은 동족과 연결 되고픈 욕망, 즉 사랑 때문이라는 추측도 해봄직하다. 그러나 월레스를 모방해 사랑의 행위인 키스를 살해 의식으로 반복한 그녀는 주는 방식이 아닌 빼았는 방식의 사랑 외에는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라스베가스에서는 조이를 부수고 해수 방벽에서 데커드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결국 사랑이건 프라이드건 그녀의 감정 표현 방식은 케이의 유일한 증오를 사게 되었는데 그 증거 가 고통스럽게 목졸리며 익사하는 러브의 눈을 케이가 끝까지 들여다 본 것이다. 이름과 달리 증오 속에 죽은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 선택 - 케이 : 그는 작중 내내 혼자만의 고뇌에 시달린 끝에 스스로의 신념이 담긴 선택을 찾아낸다. 이는 상관이자 인간인 조시가 말한 "우리는 모두 진짜를 찾고 있다."는 대사가 함의하고 있는 작품의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진짜란 결국 부여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메시지를 말이다. 케이는 믿음이 배신당해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끝에도 프레이사의 "옳은 일을 위해 죽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야." 라는 말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이끌어낸다. 결국 그는 연고는 커녕 조이를 잃게 한 단초를 제공한 데커드를 죽이지 않고 구해준다는 선의의 선택을 한다. - 러브 : 고뇌 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선택이 그 스스로의 간절함과는 상관 없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철처하게 창조주만을 위한 천사라는 입장에서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살인을 통해서 보여준다. 굳이 죽일 필요 없었던 검시관 코코와 경위 조시를 죽인 선택이 그렇다. 특히 혁명을 위한 아이를 죽이려 한 조시에게는 눈물까지 보이며 격렬한 증오를 드러낸다. 허나 이는 창조주 월레스가 부여한 틀 안에서의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러브가 보여준 가장 자유로운 선택은 두 번의 기회에도 케이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 이미 도주 레플리컨트가 된 케이를 라스베가스에서는 조이를 부수는 것에 그치고 자신에게 총상까지 입힌 해수 방벽에선 나이프로 깊은 자상을 내지만 완전히 끝내지 않는다. 똑같이 배를 나이프로 베고 죽음의 키스도 하지만 상처를 헤집어 확실하게 죽인 조시와는 대비된다. 이것이 프라이드를 증명하기 위한 아집이었는지 케이에 대한 연정으로 인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두 번의 미혹은 그녀에게 죽음과 인간성을 동시에 주게 된다. 비록 치명적인 실수이긴 하나 이 선택은 러브 스스로 나름 고뇌한 결과였을 터이다. 러브가 마지막에 입길 선택한 옷은 케이와 비슷한 어두운 색이었다. 이 둘 외의 상반된 단짝을 더 찾아보면 이렇다.
* 프레이사와 데커드 : 데커드의 대척점은 니앤더 월레스일지도 모르나 여기선 레지스탕스 지도자 프레이사를 대입해 본다. 이 둘은 레플리컨트의 아이, 혹은 인간과의 혼혈인 아나 스텔린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데커드는 확실한 친부이고 프레이사는 산파 역할과 함께 죽은 레이첼을 대신해 그녀를 직접 키워낸 어머니의 위치도 가진다. 그러나 사랑의 방식과 방향성은 정 반대이다. 데커드는 그 자신이 한 "사랑하기 위해선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 처럼 스텔린이 태어나는 것도 못 보고 떠나 철저히 스스로를 고립속에 속박한다. 그러나 프레이사는 스텔린이 면역에 약하다는 이유로 무균실에 가두고 심지어 혁명의 지도자로 만들려 한다. 잠깐이나마 비위생적인 고아원에 있었으니 스텔린의 몸은 건강할테고 추억을 주는 게 "유일한" 호의라고 말하는 그녀의 성정은 혁명의 지도자 자린 원치 않아 보인다. 결국 데커드의 사랑 방식은 오로지 스텔린의 안위를 위해 월레스의 회유와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희생적 사랑이 된다. 그러나 프레이사는 자신의 이상을 자식에게 투영하고 속박하며 심지어 스텔린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친부이자 여러가지를 가르쳐준 은인 데커드를 죽이려 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한다.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둘의 심리 근간에는 상반된 감정이 자리한다는 점이 포인트인데, 데커드의 근간에는 레이첼에 대한 사랑이, 프레이사의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증오가 자리한다는 점이 그렇다. 어찌보면 각각 케이와 러브를 닮은 이 둘은 모두 나름의 진짜를 얻은 것이며 상반된 인간상을 가지게 된다.
* 조이와 메리에트 : 이 둘은 육체는 없지만 정신적 사랑을 얻은 이와 사랑 없이 육체적 관계만을 가진 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가진다. 사실 영화 내에서 조이가 정말 자아를 가지고 진정한 사랑을 했는지, 그 희생 조차 케이의 반응과 심리를 반영해낸 계산된 프로그램인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메리에트가 케이에게 보이는 관심도 그것이 이성으로서의 호감인지, 이용하기 위한 미인계에 불과한지 불확실하기 그지없다. 키스할 때 케이와 조이는 눈을 감지만 그녀는 혼자 눈을 뜨고 케이를 바라본다. 이런 모호함이 둘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케이의 입장에서 보면 조이는 그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가 되며 메리에트는 그녀에게 없는 유일한 것.... 육체를 잠시 빌려준 타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셋의 하룻밤 다음 날, 케이를 따라 닥터 배저의 상점에 들린 조이는 메리에트의 외투와 흡사한 검은 모피 코트를 입고 있다. 그간 조이가 보였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코디이다. 재미난 점은 메리에트의 옷이 인조 모피임이 확연하다면 조이의 것은 더 고급스럽고 진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라스베거스에서 중상을 입은 케이가 조이를 주으려 했을 때 러브의 눈에 띈 순간 그녀가 살아날 가망성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를 확보하는 임무에 실패한 러브에게는 앙갚음 대상이 더 필요했을테니. 그럼에도 러브는 이미 전투불능인 케이를 완전히 죽이려 하진 않았고 조이도 이를 모를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케이가 아닌 애머네이터를 향해 곧바로 다가오는 러브에게 외친 "멈춰!"라는 절규는 대체 뭘 멈추라는 뜻이었을까? 이 절망적인 여행에서 케이를 대신해 죽을 수도 없을만치 덧없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해 그의 곁에 있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메리에트는 케이의 관심을 바라긴 하나 용건이 끝나면 바로 떠나고 또 프레이사가 자.살.특공이 될지도 모를 임무에 그를 보낼 때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블레이드 러너에게 겁 없이 다가선 만큼 스스로의 안위에도 큰 집착이 없을지도 모른다. 메리에트는 조이가 가짜라는 것을 그녀에게 강조해주는 한 편 조이가 할 수 없었던 일들, 케이의 손을 잡고, 간호 해주고 허공을 헤메이는 그의 눈을 자신에게 붙잡아둔다. 메리에트는 조이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케이에게 할 수 있지만 정작 사랑은 얻지 못하거나 아예 의미를 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이는 자신이 진짜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존재이지만 메리에트는 자신의 존재와 신념이 진짜가 될 수 있으며 이미 진짜라는 결론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메리에트에게 케이는 전부라 할 수 없지만 조이에게 케이는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전광판의 눈동자 없는 조이는 케이의 흥미를 끌긴 해도 메리에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진 못한다. 하지만 애머네이트와 함께 사라진 조이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 스텔린과 월레스 : 아나 스텔린은 부친 데커드가 가진 정체의 모호함으로 인해 레플리컨트 둘의 자식인지, 인간과의 혼혈인지가 불확실하다. 니앤더 월레스의 경우 눈의 흉터때문에 레플리컨트 의혹이 있으며 그 목적도 인간의 절대적 번영인지, 레플리컨트의 혁명인지 모호하다. 이런 불확실함이 둘의 얼마 없는 공통점이다. 월레스는 레플리컨트들에게 육체를 주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없으며 스텔린은 사랑을 불어넣은 영혼을 그들에게 심어준다. 스텔린이 그 스스로 좋아하며 만드는 생일파티는 진심이 담겨있지만 월레스가 말하는 탄생의 축하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월레스는 원하면 우주의 오프월드도 우습게 오가며 경찰 간부 살해를 덮을 정도의 특권적인 자유를 누리지만 작중 자신의 거처를 벗어나는 모습은 없다. 이는 프리퀄에서 실명한 눈 때문으로 나오는데 결국 그의 처지가 부자유함을 드러낸다. 스텔린은 연구소에 갇힌 몸이나 그걸 오히려 자유라 말할만큼 자유로운 정신과 창조력을 지녔다. 이상에 눈이 먼 월레스는 신처럼 굴며 기쁨과 고통의 의미까지 멋대로 정하려 들지만 그의 내부는 사랑도, 인간성도 모르는 황량한 소금 가득한 대지와도 같다. 천진한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스텔린은 자신의 무균실을 녹음이 가득한 숲으로 만들고 여기에 만족할줄 알며 인간다운 행복과 고통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녀는 타인과 대화할 때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심지어는 스텔린과 외부인을 가르는 유리벽 조차 그 자체가 그녀의 눈인듯 상대방을 담아낸다. 또한 그녀의 모습 역시 상대에게 투명하게 비쳐보인다. 그러나 월레스는 그 자신의 눈을 가린 황폐한 벽 속에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가둔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작품에서 눈은 영혼을 표현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월레스는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지만 그를 신으로 받드는 이는 작중 단 한 명이며 스텔린은 스스로 원치 않아도 월레스의 레플리컨드들에게 있어 거의 신성한 존재나 다름 없다. 러브를 제외한 레플리컨드들은 월레스를 부모로 여기지 않을테지만 스텔린은 다를 것이다. 월레스가 자신의 레플리컨트를 진흙이라 칭하듯 그가 만든 것은 필멸성을 가진다. 허나 스텔린이 만들어준 인간성은 죽음에 굴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작중 스스로의 인간성과 영혼을 입증해낸 인물들은 모종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했다. 끝에 가서 월레스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지만 스텔린은 가장 소중한 것을 되찾는다. "레플리컨트가 인간의 미래입니다.", "우린 우주 전체를 정복해야 해!" 니앤더 월레스의 철학은 미래지향적이고 거창하지만 뭔가 결여되어 있다. "미래를 도와줄 순 없지만 떠올리며 미소 지을 기억은 줄 수 있죠." 아나 스텔린의 철학에서 그 결여된 부분을 찾을 수가 있다. 스텔린의 어머니 레이첼은 어떻게 자신의 미래인 아이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건 과거를 채워준 기억을 통해 현재를 지탱할 인간성을 얻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 코코와 조시 : 직책의 차이도 크거니와, 검시관 코코는 분량이 짧고 조시는 길어서 둘을 비교하는 것은 좀 불공평할지도 모르나 몇 없는 등장인물 속에서 둘은 분명 공통점과 상반점을 잘 보여 주기에 일단 써본다. 조시와 코코는 레플리컨트를 지배하는 인간이고 공직, 그것도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 에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 심리와 행동은 다른 것이 코코는 검시관이란 직업이 무색하게 타인에게 무심하다. 새퍼 모튼을 감상적 껍데기라 폄훼한 주제에 같은 껍데기이나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지도 모를 형사 케이에겐 바로 사과한다. 그리고 인간일지도 모를 유골과 어린아이의 묘연한 행방에 다들 의문을 표함에도 혼자서만 "[새퍼가]먹었나 보죠."라는 독설만 내뱉고 휑하니 자리를 뜬다. 검시관이 할 일은 이제 없다지만 죽은 여성과 사라진 아이에겐 극도로 무심하기 짝이 없다. 조시는 어떤가. 유골이 레플리컨트라는 것을 알자마자 아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없애라는 비정한 명령을 내리고 여기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케이를 고압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나가려는 케이를 붙잡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넌 그게 없어도 잘 살아왔어. 영혼 말이야." 이전에는 부상당한 케이를 보며 치료비는 줄 수 없다는 멘트도 날렸다. 월레스보다 더 한 악역 아닌가 했던 첫인상은 극이 진행되며 의외로 다른 방식의 인간성을 드러낸다. 벽 위에 세워진 사회와 벽이 무너지면 일어날 학살과 전쟁. 그녀는 인간의 지위가 레플리컨트라는 성난 파도를 간신히 막는 해수방벽 속 로스엔젤레스 처럼 위태로운 상태임을 여실히 파악하고 여기에 위기감을 느끼는 유일한 인간이다. 단 한 번도 "껍데기[skinjob]"라는 멸칭을 말하지않는 조시는 하찮은 껍데기 부하의 가짜 기억을 듣고 술김이라지만 칭찬까지 해준다. 취중진담으로 받아들이자면 그간 보인 언행은 다른식으로 보이게 된다. 영혼 없이도 잘 살아왔다는 말과 술김에 한 "우리는 모두 진짜를 찾고 있어."를 연결시키면 이는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뜻이 되어버린다. 이미 많은 블레이드 러너를 알아왔고 퇴역도 시켜온 그녀는 코코처럼 되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건만 오히려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차이를 종종 망각까지 하는 지경에 온 것이다. 코코가 삭막한 디스토피아 속에서 인간성이 닳아버린 2049년의 전형적인 인물이라면 조시는 오히려 인간성을 지켜낸 인물이었다. 조시가 내린 비정한 명령이 그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는 것도 그렇다. 경위 직책에 앉아 나랏밥을 먹는 공직인이 레플리컨트가 가엾다고 질서 붕괴를 묵과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미 혁명의 불씨는 막을 수도 없었다지만. 코코는 그 무심함 때문에 레이첼과 아이의 비밀을 듣지 못했음에도 러브의 뒤치기에 당해 고통스럽게 바르작데다 죽었다. 조시는 월레스의 야심이 사실 레플레컨트의 혁명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관객에게 정면으로 던져주며 러브와 대치하다 죽게 된다. 코코는 러브와 월레스에게 있어 그저 무심하게 치운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조시는 러브와 월레스의 야망을 꿰뚫어 본 것을 넘어 저지하기까지 한다. 손을 으깨며 고문하고,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손을 넣어 장기를 찢는 러브가 되려 눈물을 흘리며 발악하고 케이의 도주를 도우며 벽을 지켜낸 조시는 승자의 얼굴로 죽는다. 케이의 보고를 듣고 그걸 믿었는지, 케이가 바로 그 아이일지도 모른단 것을 눈치챘는지 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나 어쨌든 그를 퇴역시키지 않고 보내준 건 확실하다. 대의명분을 위해 인간성을 말살하는 월레스와 그 분신 러브와는 달리 조시는 대의명분과 인간성을 동시에 지켜내며 고통스런 죽음에도 편히 눈을 감는다. 코코는 눈을 부릅뜨며 죽어가고 러브는 아예 뜬 눈으로 죽는다. 케이 역시 편히 눈을 감으며 몸을 뉘였고 새퍼도 아마 눈을 감고 죽었을 것이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던 자들은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있었다.
-끝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근데 이거 작성 수칙에 맞는지 모르겠네요, 스포 표시는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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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블레이드 런너 2049 - 상반된 인물들. 스포 [수정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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