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생은 상산 출신이었습니다.
어느 날 정종대왕이 궁궐 후원을 거닐고 계셨을 때 산에서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나와 왕의 가마를 범하려 하니
이에 김덕생이 활로 호랑이를 쏘아 죽이니 그의 용맹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시기하던 어떤 사람이 그가 왕을 활로 쏘려 하였다면서 참소하기에 이르니
김덕생이 호랑이를 그려 놓고 그것을 활로 쏘았는데 백발을 쏘아 백발 모두 명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끝내 사형을 당하였고 그의 시신이 쓰러지지 않아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세종이 즉위한 지 몇해가 지난 어느 날 밤
대궐 전각 사이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들렸는데 상(세종대왕)께서 이상히 여겨 물으니 혼령이 대답하는 말이
"소신小臣은 김덕생이옵니다. 한을 품고 죽은지 여러 해가 되었사오니
부디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금상 전하께옵서 원컨대 제 유골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 주시고, 제 자손을 등용되게 하여 맺힌 한을 풀어 주십시오."하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말을 듣고 세종대왕이 매우 측은히 여긴 나머지 동지중추부사에게 명하여 고향으로 이장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유골을 실은 운구가 영광의 낭월산 아래에 이르렀는데 운구를 실었던 수레가 갑자기 부러져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날 밤 다시 혼령이 꿈에 나타나 이 땅에 묻히는 것이 원하는 바라 하니
마침내 그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강효석의 대동기문에서 기록되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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